조선의 종법
조선시대로의 이행이 갖는 특징은 ‘종법’의 정립과 확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종법이란 부계중심으로 한 가문의 친족 사이의 관계를 위계화하고 통제하는 원리이다.
유교적인 이념의 사회적 구현에 있어서, 종법의 도입과 구현은 체제 변혁의 성패가 달린 근본적인 과제였다.
가정과 사회 혹은 국가를 예적 질서 속에서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사적인 가정영역이 유교적 보편이념을
담지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즉 혈족 간의 유대에 기초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정서―이를테면 효·제·자와 같은―는 내적 이념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외적 제도를 통해 보장되고 실행될 수 있어야만 했다.
가족집단을 윤리의 근간으로 삼는 종법제도의 기원자체가 종교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것이었다.
중국 주나라의 왕실의 봉건제도는 혈연에 기초한 정치질서의 원리에 기반하여 유지되었는데, 그 내용이 바로
종법제도였던 것이다.
그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
기원으로 모시게 되는 한명의 선조가 이후 모든 후손들의 祖가 되고, 그를 계승하는 자식(적장자)은 대종이 되고,
나머지는 소종이 된다.
대종은 선조가 지녔던 정치적·경제적인 영역에서의 배타적인 특권을 독점함과 동시에 조상의 제사를 주재하는
의무를 지닌다.
대종이 지닌 특권은 오로지 本家라 칭할 수 있는 하나의 라인을 통해서만 전달, 유지된다.
분봉되어 소종이 된 계통 역시 동일한 패턴으로 각각의 라인을 후세로 이어간다. 대종은 조상에 대한 종교적인
제사나 장송의례를 주재하면서, 본가의 라인을 중심으로 소종의 라인들을 결집시키고, 그들 간의 상호적 권리·의무의
호혜적 관계를 제사의 의식 등을 통해 표현한다.
宗主에 대한 공순의 윤리, 즉 孝를 통해 결집된 그들 모두는 친족으로서의 의례적인 규범들에 의해 구속되며, 경건한
예식을 통해 구성원에게 동일한 종족집단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고 상호적인 연대를 확인한다.
대종과 소종의 관계란 사실 대수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혈연을 기반으로 한 결속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가계를 별개로 분지화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동의 유일한 조상에 대한 의무를 배타적으로 주재하는 권리를 지닌 대종의 本家는 分家들에 대해 적통으로
서의 권위에 대한 인정을 기대할 수 있다.
禮로 요약할 수 있는, 종법적 사회질서의 보편화와 별개의 친족집단들 사이의 조화가 유학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층위에서의 정치·사회구성의 프로그램이 되었던 셈이며, 송대에 흥기한 신유학은 고대의 이상적 질서의
단서를 제공하는 고전에 대한 창조적인 해석을 통해서 이상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기획이었다.
주희가 체계화한 신유학을 매개로 이상적인 고대로 접근할 수 있었던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 이념을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추진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념적 진실의 차원에서였든,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였건 간에 조선사회
에서 가족질서의 재편의 핵심은 고려시대의 부계와 모계의 양변적 출계의 논리를 부계 단일체계로 이행시키는 것이
었다.
조선초 유교로의 변혁. 상속과 제사
조선건립후 백년간 사회조직에 관련된 방대한 법률이 보기 드물게 만들어진다.
제사는 상속과 직접 관계된다. 재산을 상속 잗는자가 제사의 의무를 지게 되기때문이다.
새 왕조가 열리고 첫 백년간의 기간동안 상속제는 유교입법자들이 추진한 사회개혁 정강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
이다.
종법을 강조한새로운 법률은 상속의 통로를 수평적인 것에서 수직적인 것으로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제사의 원칙은 장자를 위에놓고 동생은 하위에 두는 것이며 이러한 위계구조가 향후 재산을 몰아주게 된 것이다.
여성은 제사와 무관한 존재가 되고 그에따라 당연히 재산상속에서 제외되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독립성을 상실한다.
여겅은 그녀가 출생한 가족 족보에는 누구의 아내로, 그녀의 남편 족보에는 누군가의 딸로 기재되는 일이 이렇게해서
생겨난다.
유교에서의 정치체제와 사적가족의 관계
서양적인 전통 내에서 ‘가정’이란 사적영역은 공적인 정치질서와 무관하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헤겔, 비교적 최근의 한나 아렌트, 하버마스에게 이르기까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그들의 정치철학을 출발시키는 기본원리였다.
그들에 따르면 자체의 배타적인 경제목적에 종속되어 있으며, 제한된 도덕성을 갖는 가족(사적 영역)의 불투명한
삶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폴리스에서의 정치적인 삶(공적 영역)과는 날카롭게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담론틀 내에서 사적인 영역은 부수적인 것으로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 동아시아 전통 내에서 그 두 영역은 언제나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덕목에 대한 교육은 가정에서 출발하여야만 한다.
공적 윤리의 토대는 가정이다. 가족은 혈족의 유대에 기초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정서의 결속력에 의해 권위가
용인되고 행사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동아시아에서의 모든 윤리적·정치적 담론들이 가족 윤리를 바탕으로 공적인 영역을 사고하게
하였다. 가정의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간의 관계에서 습득하게 될 도덕적인 의식은 사적인 동시에 그 자체로 절대
적으로 보편적인(공적인!) 가치였다.
“親親/尊尊”의 관계설정의 문제가 사회·정치구성체의 정치적 윤리적 담론의 핵심이 된 것은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
즉 동아시아에 있어 정치와 윤리에서의 쟁점은, ‘각각의 사적 영역(가정)에서 형상화되는 보편적인(공적인) 윤리
로서의 親親과 이를 전체 공동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규정하는 계급적·사회적 질서의 분담원칙으로서의 尊尊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였다. 그리고 이를 하나의 체계 속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禮’이다.
조선과 한국.. 지배계급의 세습성
1.
도이힐러의 역사적 서술에서, 현재의 한국사회에 지긋지긋한 현실로 존재하는 지배계급의 조건들을 재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세습지위와 [개인적 능력일] 학문적 성취를 동시에 강조하는 이중성”이 현실에서 드러내는 괴상한
비틀림은, 역사의 무대 위에서 희극적인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근대와 근대가 우스꽝스럽게 착종된 ‘서울대라는 학벌문제’는 그 전형들 중 하나다
(이 놀랄만한 상관성에 대해서는 김상봉의 《학벌사회》가 그리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읽어볼 것).
“세상의 가장 불합리한 것이 인간의 착란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것이 된다.
일국의 통치를 위해 여왕의 장남을 선택하는 것보다 비합리적인 것이 어디있겠는가. 배를 지휘할 사람으로 가문이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 법은 우스꽝스럽고도 부당하다. 그러나 사람은 현재도 그렇고 항상 그럴 것이기 때문에 이 법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가장 덕 있고 유능한 사람?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체없이 난투극에 휘말려들 것이다.
누구나가 이 덕있고 유능한 사람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자격을 무엇인가 이론의 여지없는 것에 결부시키도록 하자. 왕의 장남으로 하자. 그것은 명백하고 시비의
여지가 없다. 이성으로서는 이보다 더 잘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란이야말로 최대의 재난이기 때문이다.”
“정의, 힘 : 정당한 것이 지속되는 것은 정당하며, 가장 강한 것이 지속되는 것은 필연적이다(…)그리고 사람들이
정당한 것을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파스칼, 《팡세》)
2.
"한국 사학계의 주류 이론은 두 가지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일제 식민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후기
노론老論사관이다. 이 두 사관의 뿌리는 같다.
조선 후기 내내 집권당이었던 노론의 상당수 인사는 일제의 대한제국 점령에 협력한 대가로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고,
일제 때도 지배계층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가문 출신 중 일부가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식민사관 전파에 일조했고 이들이 해방 이후에도 사학계 주류를
장악한 결과 노론사관과 식민사관이 한국사를 구성하는 주요 관점이 된 것이다."
국사교과서에 '중상학파(북학파)는 서울의 노론출신이 대부분이었다'란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북학파인) 박제가,
이덕무 등은 노론이 아니다.
가장 크게 왜곡된 부분은 '상공업 중심개혁론의 선구자는 18세기 전반의 유수원이었다(국사교과서 314쪽, 교과서
맥락으로 보면 '유수원=노론'이라고 인식하게 된다)'란 부분인데, 유수원은 노론에게 사형당한 소론 강경파다.
남인이 농업 중심 개혁론을 개발했으니, 집권 세력인 노론도 한 일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왜곡한 것이다.
청을 오랑캐로 보는 노론에서 청과 교류하자는 상공업 중심 개혁론이 나올 수가 없다.
이렇게 교과서가 노론 벽파의 시각을 담고 있으니 정조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것이다."
[출처] [독서일기] 마르티나 도이힐러ㅣ한국사회의 유교적 변환|작성자 n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