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국면에서 북핵 컨트롤타워 무너트린 윤석열 정부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지난 3월 7일 윤석열 정부가 조용히 외교부 조직 개편에 나섰다. 북핵협상과 평화체제를 준비하던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국장급으로 축소, 개편한 것이다. 북핵협상이 없으니 할 일이 없다는 윤 정부의 변명은 귀를 의심케 한다. 이 글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단행된 윤석열 정부의 북핵문제 컨트롤타워 조직의 개편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남북 당국의 ‘난장’ 끝 고요함, 찝찝하다
지난해 12월 말, 새해를 맞으며 개최된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며 도발했다. 여기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북한의 무모한 도발 행위에 대해 우리 군은 '즉·강·끝'(즉시·강력히·끝까지) 원칙에 따라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완전히 초토화하겠다는 응징태세"로 맞받아쳤다.
그렇게 올해 연초까지 이어진 남북의 무력 시위는 <9.19 남북 군사합의>를 무력화시키며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한반도는 고요하다. 아니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왠지 남북 당국의 ‘난장’에 혼을 뺏긴 듯 찝찝하다. 이 찝찝한 기분은 무얼까?
북한의 도발과 윤석열 정부의 강력 대응, 그리고 휴지기를 보내는 롤러코스터 정세의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 결론적으로, 남북의 무력도발과 ‘말폭탄’이 오고 간 후 이어지는 이 고요함은 북한 핵이란 ‘변수’를 ‘상수’로 만들고 있다. 북한의 북핵 굳히기 전략에 윤석열 정부가 부화뇌동(附和雷同)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북핵 컨트롤타워 무너트린 외교부 조직 개편
외교부는 지난 3월 7일 대통령에게 2024년 외교부 주요 정책 추진계획을 보고하고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 실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직 개편을 공개했다. 조직 개편의 핵심은 그동안 북핵협상과 평화외교를 담당해온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1국 3과로 축소하고 ‘외교전략정보본부’를 신설해 그 산하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2006년 북핵 6자회담 대응을 위해 한시 조직으로 출범해 2011년 상설기구로 전환됐다. 지금까지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북핵외교기획단과 평화외교기획단의 2국으로 운영되었으나, 이제 가칭 ‘한반도외교정책국’으로 통합돼 신설된 외교전략정보본부 산하로 흡수될 예정이다. 특히, 평화외교기획단 산하의 평화체제과가 없어지고 탈북민, 북한인권 등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새롭게 들어서게 된다.
외교부는 이러한 개편이 ‘한반도 업무에 전략과 정보, 국제 안보 기능을 추가해 한반도 문제를 보다 큰 맥락에서 접근’하려는 의도라 말한다. 그러나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뜯어봐도 이번 조직 개편은 북한의 핵 도발에 적극 대응 했다기보다는, 마치 북핵 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된 듯한 착각마저 드는 한가한 조직 개편이다.
북핵 컨트롤타워를 국장급으로 축소할 만큼 북핵 문제가 해소되었나? 아니다. 북한은 지금도 그들의 핵 역량을 증강시키며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의 본토를 위협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북핵 대응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사라진 ‘담대한 구상’, 북핵 문제에 손 놓을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 전략으로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담대한 구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우리의 경제·정치·군사적 조치의 ‘동시적·단계적 이행’을 통해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함께 만들어나가자는 제안"이다. 윤 정부는 또한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구현하기 위해 상호 호혜성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를 정립하고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단계별 대북 경제협력과 안전보장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이후 김영호 통일부 장관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지명한 이후 담대한 구상은 폐기되다시피 됐다(관련 기사: 윤석열 정부의 거짓말... '담대한 구상'은 폐기됐다, https://omn.kr/24ztt). 이번에 외교부와 통일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한 <2024년 주요정책 추진계획>에서도 ‘담대한 구상’, 즉 대화를 통한 ‘동시적’, ‘단계적’ 비핵화란 내용은 사라졌다.
필자 또한 정부여당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마음 같아선 NPT를 탈퇴하고 핵 무장을 통한 힘의 균형을 이루고 싶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와 함께 국정을 책임진 국민의힘은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를 만들고 북한이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경우, NPT(핵 확산 방지 조약) 탈퇴와 함께 한시적 핵 무장까지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한 한반도 안보에서 대한민국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관련 기사: '핵보유 한국'을 향한, 미국 핵전문가의 단언, https://omn.kr/22nr9).
한국이 북핵 협상을 포기한다면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선택한 듯하다. 특히나 선거국면에서 ‘북핵’이란 안보리스크를 구태여 들쑤시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고상하게 말해 오바마 정부가 추진했던 ‘전략적 인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북핵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눈감을수록 북한 핵이 한반도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로 굳어진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 무장이 한반도에서 상수로 굳어진다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될 것이다. 남북 간 신뢰가 무너지고 대화가 실종된 상황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북미대화와 북일대화가 진전된다면?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협상테이블에서 자신의 의자를 찾지 못할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귀환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전히 매파가 절대우위에 있고 비둘기파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매파는 대안이 없다. 핵 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북한과 협상할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외교부에서 북핵협상 조직을 축소하고 통일부에서 남북대화와 평화를 지우는 치졸한 짓을 할 뿐이다.
무능한 정부는 우리 국민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다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민주적 대안이 있다. 새롭게 구성될 국회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 정부를 견제할 수 있길 바란다.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 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속삭이다, 평화>, <평양학개론>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