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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NHK 사건 ( 민주당, 주시파 진실을 알려주는 사건 )에 대한 여성의당, 정의당, 녹색당, 워마드 니들은 이 사건을 뭐라고 생각하니.....
https://namu.wiki/w/%EC%83%88%EC%B2%9C%EB%85%84%20NHK%20%EC%82%AC%EA%B1%B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0237913
1. 개요
2000년 5월 17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386세대 정치인들이 전야제가 끝난 바로 직후 광주 시내 '새천년NHK'[1]라는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셔서 논란이 있었던 사건.
박노해, 이종걸 등 진보계 인사들이라 더 충격이 컸으며, 우상호의 경우에는 임수경에게 쌍욕(...)과 폭력을 행사 했다는 도덕성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은 잠시 술자리에 참석한 임수경이 386 커뮤니티인 '제3의 힘'에 올린 게시글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하지만 임수경 본인은 자신이 쓴 원글에 각색, 과장, 왜곡, 악의가 들어간 글로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임씨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취지로 글을 썼고 상황묘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인터넷상에서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장문의 글이 떠돌며 젊은 세대에 대한 비난여론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한국일보 2000.5.27
라는 말로 과잉 해석을 경계하는 스탠스를
취하기도 했다.
처음 임수경 씨가 5월 24일 오전 9시 55분 '제3의힘'에 올린 글은 약 10시간 동안 47명이 조회한 후 삭제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9시 17분 익명의 독자가 동아닷컴 독자게시판에 386-그 두 얼굴의 위선을 알린다(임수경 주장대로 가필이 있는 글)는 글을 올리며 파문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임수경은 26일 "내가 쓴 글은 사이트에서 금방 삭제됐는데 악의적으로 본질을 왜곡한 글들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6월 2일 한 네티즌이 다시 제3의힘 게시판에 원본 글을 올렸다. 이 네티즌은 "그날 한밤중에 우연히 제3의힘에 들어왔다가 이 글을 프린트해서 읽게 되었습니다"라면서 "임수경 씨 보호를 위해 공개를 회피하는 제3의힘 입장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원문이 공개되지 않음으로 인해 쓸데없는 추측만 늘어나는 것 같아 그냥 올립니다"라고 공개 이유를 밝혔다. '제3의힘'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5월 24일 임수경 씨가 올린 원문을 읽었던 회원들의 말에 따르면 오늘 네티즌이 원문이라고 올린 내용이 임수경 씨의 글의 일부를 누락시켰거나 첨가시킨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라고 말했다.# @
독자가 올린 임수경씨의 '386 술파티' 원문입니다. 이미 몇몇 사이트에올라갔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2. 원문
출처: 제3의힘 자유게시판
임수경 씨 원문입니다. 그 날 한밤중에 우연히 제3의 힘에 들어왔다가 이 글을 프린트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임수경 씨 보호를 위해 공개를 회피하는 제3의 힘 입장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원문이 공개되지 않음으로 인해 쓸데없는 추측만 늘어나는 것 같아 그냥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여러가지 일로 잠시 서울에 온지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많이 아팠고 - 거의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 많은 분들께 연락도 못드리고 한달을 보냈습니다. 혹시 저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도 안하고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귀국을 한 가장 큰 이유는 5.18 전야제의 사회자로 행사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저는 그날, 5월 17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5월 17일 아침, 저를 포함한 전야제 관계자들은 아침 9시에 망월동 묘역에 가서 참배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가서보니 오후 1시에 여야 386 당선자들이 참배를 온다고 하더군요. 저는 광주에 온 김에 저와 절친한 임종석씨와 만날수 있을까 해서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광주에 내려오는 중이라며 1시에 꼭 만나자고 하더군요. 저는 이미 참배를
한 상황이고 오후에는 전야제 리허설이 있어서 사실 망월동에 다시 오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선배들에게 이 기회에 한번에 인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일부러 다시 망월동으로 가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당선자들 뿐만아니라 낙선한 분들도 같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저는 그 선배들을 보며 든든하고 흐뭇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광주에서 하루 머물 예정이라며 저녁에 시간이 나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5.18 전야제 행사에 참가했구요.
다소 서언이 길었는데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전야제가 다 끝나갈 무렵 정범구 박사가 제가 있는 무대 앞으로 오셨습니다. 정박사님과는 기독교방송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어서 상당히 친한 관계입니다.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시며 행사가 끝나면 꼭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전야제 사회를 보며 저녁밥도 쫄쫄이 굶어가며내내 서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뒷풀이 장소에서 겨우 밥을 먹을 수있었지요. 그때 정박사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일행이 있으니 저보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대부분 낮에 망월동에서 만난 분들이었지요. 저는 여러사람들 모인 곳에 가기가 뭐해서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는데 대여섯 차례의 전화를 계속 받고보
니 그곳에 안가는 것이 참 결례인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장소가 어디인지를 물으니 새천년이 어쩌구 NHK가 어쩌구 하시대요. 저는 새천년 민주당 사람들이 NHK 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곳은 새천년 NHK 라는 가라오케였습니다. 어쨌든 그곳으로 가서 그분들이 계신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찾을 것도 없이 적어도 7-8개의 룸이 있는 그 술집의 손님이 있는 방은 그 방이 유일했습니다.
문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박노해 시인은 아가씨와 부르스를 추고 있었고 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크를 잡고있던 송영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얼핏보기에 정범구 박사를 포함하여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 이상수 의원 등이 있더군요. 저는 아가씨들이 있건 말건 선배들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고 다가서는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년-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믿고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은 놀라서 모두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우상호는 -미안합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더이상 존칭을 붙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금 말했습니다.
이-놈의 기-집-애, 니가 뭔데 이 자리에 낄려고 그래? 미-친-년...
저는 일단 방을 나와 저와 함께 온 전야제팀이 앉아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참외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우상호가 들어와 앉더군요.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 그 기-집-애, 이-상-한 년-이네. 아니 지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기-집-애 같으니라고...
한두번도 아니고 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테이블에 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
이런 씨-*, 어따대고 이-년 저-년이야. 나두 나이가 30이 넘었고 애기엄만데 어디서 욕을 해...라고요.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시정 잡배들의 오고가는 대화도 아니고 참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계속 하겠습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이 꽤 취해있긴 하더군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의 불만은 이것이더군요. 서울에 온지 3주가 지났는데 제가 연락을 안 했다는 것, 5.18 전야제 사회를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임수경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발언중간 중간 이-놈의 기-집-애, 저-놈의 기-집-애, 이-년, 저-년 소리는 계속 되었구요. 그러더니 마무리를 하면서 자리에 있던 광주의 김태홍 당선자 에게 선배님, 죄송합니다...하더라구요.
저는 그랬죠. 국회의원이라고 선배님이고 죄송하냐고... 나는 내가 존경하던 선배에게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년 저-년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같이 고생하던 후배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우리같은 사람들은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마실 팔자가 안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
. 그리고 나왔습니다. 모두 일어서는 순간 우상호가 테이불에 있던 양주의 병을 새로 따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계산대
로 갔습니다. 이미 정범구 박사가 계산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명세서를 조목조목 써달라고 했습니다. 양주 두병에 음료수, 안주가 서너가지로 22만 7천원이 나왔고, .양주 한병과 안주 한접시는 서비스였답니다.
저는 술집 아저씨한테 물었죠.
난 이집에 처음으로 오는데 이집은 처음 오는 사람한테도 서비스를 주느냐, 우리는 서비스 받을 일이 없으니 모두 계산서에 넣으라고 말이죠.
그 아저씨는 그냥 서비스로 드시라고 했고, 저는 계산을 하겠다고 부득불우겼습니다. 그 아저씨는 좀 황당했겠지
요. 서비스 주고 욕먹고...
아무튼 계산은 하되 다는 못 내겠다, 양주 한병은 우상호가 땄으니 저 사람에게 꼭 받아라, 이미 계산한 돈은 정박사에게 꼭 돌려줘라 당부를 한 후 20만원을 저와 함께 전야제 사회를 본 송선태 선배님의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하며 저는 그랬습니다. 낮에는 검은 넥타이 매고 망월동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밤에는 아가씨끼고 술 먹고 잘들 한다 등등... 술마시고 노래부르며 떠들던 그 방에서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 말을 다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가라오케 술집을 나서며 송선태 선배님에게 술값은 나중에라도 꼭 갚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지갑을 갖고있지 않았습니다. 송선배님은 물론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정말 갚을 생각입니다. 그때 우상호가따라오더군요. 수경아, 이-놈의 기-집
애야, 너 거기 안 설래?? 아, 이 구제불능의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우상호, 당신하고는 이제부터 끝이야, 우리서로 아는 척 하지 맙시다. 나 정말 당신하고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제 친구들은 다 압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세사람을 대라면 그중에는항상 우상호 형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단순히 술취한 우상호에게 욕먹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글을 쓰고있지는 않습니다. 386, 사람들은 386이 어쩌구 하며 회의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저는 386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資笭윱求� 그 386의기반은 바로 5월의 광주입니다. 80년대의 학생운동은 그것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지속되었습니다. 광주를 떠나서는 386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저는 선배들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월의 광주에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광주의 라디오방송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도 않습니다. 그 커다란 가라오케에 그들이 유일한 취객이었다는 것이 말
해주듯이 광주 사람들은 5.18이 되면 먹고 노는 일을 자제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망월동 참배를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386을 내세워 국회의원 선거전에 나와 그것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다는 사람들이, 낮에는 망월동에서 광주의 영령을 추모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습니다.
만약 5.18 유족이 이 사실을 안다면, 386의 순수성과 역사성으로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들과 거리에서 어깨를 겨누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동지들이, 5월 17일 하루종일 아들의 무덤 곁에서 참배객을 맞고 계시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감히 주문합니다. 386의 이름을 더이상 들먹이지 말던가, 망월동 참배가 아닌 놀러왔다고 하던가, 한때나마 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을 자랑스러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더이상 믿음도 희망도 걸 곳이 없음에 앞이 캄캄합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386 당선자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에 났더군요. 술에 취했던 그들은 다음날인 5.18 아침에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새 광주 영령을 진심으로 추모했다는 듯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요.
제가 밥도 굶어가며 다섯시간씩 서서 전야제 사회를 보던 그 시간에 내가 존경하던 선배들은 아가씨와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나보고 5.18에 이름을 팔아먹었다고 말한 사실 역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10시경, 제 휴대폰 벨이 울리더군요. 저는 그들 중의 한명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이성헌 선배였습니다. 망월동에서 만났는데 반가왔다는,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번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이성헌 선배는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두차례 만난 것이 전부인데도 우리나라로 귀국하실때, 또 귀국을 해서도 저에게 미국까지 수시로 전화를 하던 분입니다. 전화를끊으며 생각했습니다. 왜 이성헌이 당선되고 우상호는 선거에서 떨어졌는가를...
그후 며칠 동안 저는 그들로부터 단 한통의 전화도, 제3자를 통한 메시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그 자리에 잇었던 김성호 당선자가 전화가 와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그날의 사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상호와 아는척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다음 날인 오늘, 우상호가 전화를 했더군요. 아마 김성호씨가 무슨 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여보세요, 임수경씨 부탁합니다.
전데요.
수경아, 나 상호야.
누구시죠?
나 ;야, 우상호.
저는 우상호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
수경아, 미안하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새천년 NHK 는 가라오케를 나설 때 처럼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한낮 버스정류장에서 땡볕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받은 전화 한 통, 그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저를 심란하게 만듭니다. 제 어머니는 우상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고, 저와 친한 선배언니는 아주 잘했다고말했습니다.
저는 잘 한걸까요, 잘못한걸까요...
긴 글을 마칩니다.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셈이 되어버리긴 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임수경 올림
3. 파장[편집]
임수경이 제3의 힘 게시판에 비공개로 올렸던 글은 인터넷에 퍼지면서 엄청난 파문을 낳았고, 오마이뉴스를 시작으로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기에 이른다.한겨레21 기사 파문이 확산되자 386세대들의 모임인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에서는 5월 30일 비상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총회에서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은 결의문을 채택,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죄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였다. 그러나 정작 술자리 참석자들은 비상 총회에 불참했으며, 이들에 대한 징계도 흐지부지돼 버렸다.
박노해 시인도 이 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맞으면서, 사실상 진보진영에서 사라졌다. 박노해는 1997년 출간한 옥중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부터 1998년 준법서약서 서명, 그리고 출소 이후 행보에 대해서 진보진영 내에서 변절이다, 변화다 등 뜨거운 논쟁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박노해에 호의적이던 인사들도 모두 등을 돌려버렸고, 이후 진보진영에서 박노해를 찾는 일은 없었다. 박노해는 생명운동을 한다면서 충청도로 낙향하였고 완전히 듣보잡이 되어 잊힌다.
임수경의 비판이 386세대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386세대가 아닌 이종걸, 정범구, 김태홍, 이상수 등은 은근슬쩍 넘어가버렸다.[3] 지금도 386세대의 타락과 변질이라는 측면으로만 이 사건이 이야기되면서, 위에 4명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대부분 5.18술판사건 하면 임팩트가 컸던 김민석, 송영길, 우상호만 이야기하지 나머지 인사들은 잘 모른다.
언론의 취재가 계속되면서 같은 시간 새천년NHK가라오케에는 문용린 교육부 장관 일행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문용린 장관은 5.18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 연설을 한 이후에 전남지역 교육계 인사들과 뒷풀이 차원에서 1시간가량 술을 마셨다고 해명하였다. 당시 참석자는 문용린 장관,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4], 노성만 전남대 총장, 오수성 전남대 5.18연구소장, 천득염 전남대 학생처장, 박종율 전남대 교무처장 등으로 알려졌다. 문용린 교육부 장관은 결국 '5.18정신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자진사퇴하였다. 장관 취임 7개월 만이었다. [5]
보수 진영은 이 사건을 두고 386 정치인들의 위선이 드러났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임수경은 26일 다른 인터넷 게시물에서 '사건을 악의적으로 왜곡, 과장하고 정치 쟁점화해 젊은 세대의 몰락을 즐기려는 세력이 있다'면서 보수 진영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도 경계하였다."386당선자 5.18전야 술자리" 인터넷에서 왜곡돼...임수경 씨[6]
임수경은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한겨레21에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자는 특별기고를 실었다.새롭게 시작하십시오 - 예상되지 못한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선 임수경 특별기고
임수경은 같은 해 연말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당사자들의 태도가 너무나 무책임했다는 점을 지적했다.임수경 격정토로
당시 술자리에 있었던 김민석, 송영길, 우상호 등은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학생운동의 지도자들로 386세대의 상징적인 존재들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김민석이 처음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2000년 16대 총선에선 386세대 수십여 명이 출마해서 한나라당에선 김영춘, 원희룡, 김부겸, 민주당에선 김민석, 임종석, 송영길이 당선되자 언론은 이것을 정치권 세대교체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7][8] 돈과 보스를 중심으로,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구태정치를 개혁할 희망으로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데, 국회의원 임기도 시작하기 전에 자신들이 입만 열면 민주화의 성지라고 찬양하던 광주에서 그것도 5.18기념식 전날 술집에서 접대부끼고 추태를 부리다가 개망신 당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기성세대, 구태정치꾼과는 다르다는 참신함을 무기로 했던 386세대 정치인들의 도덕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2020년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386 정치인'들의 타락과 변질을 지적하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9]
페미니즘 담론이 활발한 2010년대 후반이나 2020년에 터졌으면 우상호, 이종걸, 송영길 등 모두 옷을 벗었을 대사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칭 친여성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이들 모두 중진으로서 승승장구 하고있다.
4. 여담[편집]
참고로 훗날 우상호와 임수경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같은 당의 의원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임수경은 탈북자에 대한 폭언으로 인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얼굴을 보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안그래도 임수경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을 크게 갉아먹는 주범으로 인식되어 있기에 일반 여론도 "짤릴 만한 사람들이 들어갔네" 정도로 좋지 않았으며, 오히려 임수경을 쳐내고 나니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선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돌고 있는 상황이다. 17대 총선에서 정동영[10], 19대 총선에서 김용민[11]에게 제대로 데였다보니 후보들의 그런 면면 하나하나가 중요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임수경을 배척해야 할 상황이었던 것.
[1] 광주 동구 불로동에 소재. 지금은 없어진 그랜드호텔 인근에 있었다.
[2] 80년대 말부터 90년대만 해도 일본 대중문화는 정식으로 들어올수 없었지만 암암리에 퍼져서 우리 대중문화보다 한수 위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로인해 일본문화를 암시하는 NHK라는 이름이 90년대 중반이후 노래방, 술집 등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었다. 뭐 인식만 있지 정확하게 아는것은 아니였으니.
[3] 특히 이종걸은 아직도 현역으로 국회에서 활동 중이다. 무려 5선...
[4] 국민의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그 한상진 교수가 맞는다.
[5] 문용린은 이후 서울대 교수로 돌아갔다가, 곽노현이 뇌물을 준 것이 걸려서 교육감직을 상실했던 2012년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에 보수진영 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되었으나 2014년 지방선거에선 보수진영이었던 고승덕과의 폭로전과 소송전까지 벌이는 추태를 보였고, 결국 보수표가 분산되어서 3위로 낙선하였다. 지방선거때도 이 5.18술판이 다시 불거지면서 도덕성 시비가 일었으나, 딸이 아버지 노릇을 못했다고 고승덕 후보를 비난하자, 고승덕의 못난 아버지를 둔 딸에게 정말 미안하다!라는 개드립이 터지면서 상대적으로 묻혔다.
[6] 임수경은 386세대 내에서 자체적인 자정작용을 촉구하기 위해서 386커뮤니티인 제3의힘 게시판에 비공개로 글을 올렸는데, 사건이 외부로 공개되면서 386세대 전체가 공격받게 되자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7] 2000년 16대 총선은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과 "바꿔" 열풍이 거세게 분 선거였다.
[8] 2000년을 끝으로, 최형우, 서석재, 김윤환, 신상우, 박찬종, 이기택 등의 구세대 정치인들이 절멸하고,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들이 등장했다.
[9] 참신함을 무기로 정치권에 등장했던 386세대는 새로운 정치도,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도 내놓지 못한 채 오히려 이제는 청산돼야 할 기득권으로 거론되는 지경까지 되었다.
[10]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나온 열린우리당 압승 분위기에 노인 투표 발언으로 찬물을 끼얹음.
[11] 인간의 금도를 넘은 막말로 인해 민주통합당 전체에 찬물을 끼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