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1.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첫 헌혈
헌혈, 얼마 만인가? 그때는 예수께서 피 흘리신 고난을 기념한 고난주간에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하여 시작했던 헌혈이다. 비록 그분이 흘린 피와는 의미가 다를지라도 그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신앙의 실천이었다. 17세부터 20대 후반까지 꽤 열심히 그리고 제법 부지런히 동참하다가 나 자신이 수혈 대상자가 된 이후로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혈소판 추출 헌혈
1995년도 늦은 봄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대학교 신학과 4학년생이었던 김경필 형제가 백혈병에 걸려 처절하게 투병하던 때 그에게 기증하기 위해 혈소판 추출 헌혈을 하였다. 이것은 혈액에서 혈소판만 추출하기 위해 양팔에 꽂은 호스를 통해 한 팔에서 피를 뽑아서 기계를 거치며 필요량의 혈소판만 추출한 후 나머지 피는 다시 다른 팔로 돌려주는 그런 헌혈이었다. 약 3-4시간에 걸친 추출 과정 중에 몸에 경련이 오기도 했던 정말 힘든 헌혈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의 기도와 응원에도 불구하고 김 형제는 얼마 되지 않아서 하나님의 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천국으로 갔으니 언젠가는 다시 만나겠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는 앞날이 창창한 20대의 젊은 청년이었으니 말이다.
얼마 남지 않은 헌혈 기간
오랜만에 헌혈하기 위하여 헌혈의 집에 방문하였다. 혈소판 추출 헌혈 이후 약 25년 만이다. 문진과 더불어 혈액 검사를 해 보니 다행히 문제가 없었다. 병역, 예비역, 그리고 민방위대까지 제대한 지 오래기에 이제 몸으로는 이웃에게 줄 것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줄 것이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쓸모가 있어서 좋다.
친지들이 종종 “건강 어떠시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제는 신체 부위별로 물으셔야 해요. 예를 들어 머리는 아직 쓸만하고, 얼굴도 꽤 괜찮은데 정형외과 쪽은 좀 부실해요.”라고 대답하며 같이 웃는다. 연식이 좀 되다 보니 신체 부위의 호불호가 분명하지만 전반적으로 내 몸의 품질은 꽤 괜찮은 편이다. 이날 이때까지 평생 술 담배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올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 나의 심혈관 나이는 원 나이보다 12세나 더 어리게 나왔다. 그러고 보니 내 몸과 그 안의 심혈관은 흔히 말하는 띠동갑인 셈이다.
생각해 보니 줄 것이 아직도 더 있기는 하다. 사후(死後)에 각막, 신장 등 사용 가능한 장기를 기증키로 했으니 말이다. 서약한 지 20여 년이 지났으나 내가 살아 있으니 실행될 날은 좀 더 남았다. 그러나 이 약속은 끝까지 유효하다. 그러므로 하나
님께서 주신 선물인 내 몸을 더 잘 관리해야겠다. 꼭 필요한 다른 분들께 전해 드릴 때 깨끗하고도 양질의 제품으로 선물해야 하니까 말이다.
철 든 남자
안식구도 헌혈하러 같이 갔으나 할 수가 없었다. 몇 달 전에는 헌혈을 같이했는데, 이번에는 검사 결과 그녀의 혈액 중 철분(Fe) 수치가 낮아서 아쉽게도 할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말했다. “피를 통해서 증명되었듯이 당신은 철이 덜 들었으니까, 앞으로는 내게 이래라저래라하지 말아요. 나, 철 든 남자예요.”
“예에~~ 철 든 낭군님.” *^^*
2. 꼬맹이가 써 준 각서
짐을 정리하다가 편지 한 장 때문에 죽을 뻔(?)했다. 잘 보관해 두었던 아주 중요한 ‘편지’ 한 장 때문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재밌어서 “우스워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내 생일 선물로 써 준 글인데, 재산 가치가 꽤 높은 소중한 문서였다. “이 귀한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니 나도 참~~”하며 웃었다. 글 쓴 시기가 1998년이니 꽤 오래되었지만, 이 편지가 소중한 이유는 그냥 편지가 아니라 내게 선물을 주기로 약속한 ‘각서(覺書)’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꼬맹이가 각서라는 용어를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사랑하는 아빠 생신 축하해요.
내가 28살이 되면 승용차 한 개를 내가 사
드리겠습니다.
1998년 9월 11일. 금요일 각서 끝.
사랑하는 아빠에게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22년 봄에 드디어 그 꼬맹이가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인 내게 자기의 차를 주었기 때문이다. 전달 예정 시기인 28살보다는 세 살이 더 지났다는 약속 위반 조항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예쁜 며느리와 귀여운 손녀까지 보게 해 주었으니 그 정도는 봐 줄 수 있다. 신접살림 차리느라 융자까지 끌어 썼기에 어려울 것 같아서 임의로 정한 일정 금액을 송금했지만 그것은 자동차 값이 아니다. 결혼한 자식에게 주는 아버지의 사랑이다.
3.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있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나누어 줄 때 그 행복감은 설명이 필요 없다. ‘줌’이 이루어지면 받는 상대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은 해 본 사람만이 아는 은총이다. 그리고 준 그것만 남는다. 하늘 창고에 쌓이기 때문이다. ‘줌’은 하나님의 마음과 통한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다.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으며 터전을 주셨다. 배필을 주셨으며 자손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며 천국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틀림없다면 우리도 아버지를 닮는 것이 맞다.
찬찬히 줄 수 있는 것의 목록을 생각해 본다. 나의 시간, 재능, 소유, 노동력, 복음···. 목록을 적다 보니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참 많은 부자임이 느껴진다. 아직은 줄 것이 꽤 남아 있으니 나는 행운아가 분명하다.
임학균 전도자 / 등대 그리스도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