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87)
기저귀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병들어 침상에 누운 상태를 와상(臥床)이라고 하는데 와상상태에서는 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며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농경사회에서는 며느리와 딸, 여성들이 이런 일을 도맡아서 했다. 중풍 걸린 시어머니 대소변을 십몇 년간이나 받아내며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는 말을 어릴 때 자주 들었다.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가 하는 주된 일은 식사수발, 목욕시키기,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다. 스스로 식사와 배변을 해결하는 환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태반이다. 입원 상담 할 때 식사와 배변을 스스로 하는지가 큰 요소이다.
입원환자 특히 남자 환자들에겐 기저귀 차는 것이 자존심을 크게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전에 큰 회사 사장을 했건 학교 교장을 했건 기저귀를 차는 순간 자부심은 날아가고 무능력하고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절대로 기저귀를 차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리에 힘이 없어 잘 넘어지고 다치고 하여 기저귀 착용을 권유해도 끝까지 거부하고 기어서라도 화장실까지 가서 변기에 앉아 용변을 보려고 하는데 결국 넘어져 다치기도 한다. 처음엔 기저귀에 적응하기도 힘들다. 기저귀를 채웠으니 누워서 용변을 보라고 해도 잘 못 본다. “원장님은 누워서 변을 볼 수 있습니까?” 하고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노인병학회에서 존엄케어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안동복주요양병원의 이윤환 이사장의 강연이었다. 이분은 물리치료사 출신으로 일찍이 일본의 요양시설을 둘러보고 냄새도 나지 않고 기저귀도 채우지 않고 손발을 묶는 억제대도 하지 않는 일본의 요양병원 시스템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아 4무2탈(4無2脫) 존엄케어를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행한 분이다.
4무(無)란 욕창, 낙상, 냄새, 와상이 없는 병동이고 2탈(脫)은 기저귀, 억제대를 벗는 것을 말한다. 기저귀만 없애도 어르신들의 존엄성이 크게 회복되어 치료에 도움이 된다.
다른 요양병원에서 이런 것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고 인건비 문제로 사람을 충분히 쓰지 못해 못하는 실정이다.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실 때 10만 원이라도 싼 병원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싸다는 말은 결국 필요한 간병인원을 적게 쓴다는 의미라 케어의 질이 떨어진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큰일이기 때문에 어떤 병원에서고 가능한 한 기저귀를 안 채우려고 하지만 낙상 위험이 클 때 기저귀를 채운다. 자기 전에 부축하여 화장실 변기에 앉혀 대소변을 보게 한 후 눕혀주면 아침까지 기저귀 없이도 갈 수 있다.
일본은 노령화를 일찍 겪었기 때문에 노인복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전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개호(介護)보험이라고 하여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국가가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하여 요양병원에서 간병비보험이 되어 충분한 인원을 쓸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요양병원에서 간병비보험이 되지 않아 적절한 케어를 못받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지 않아도 노인의료비가 폭증하는 마당에 개호보험까지 정부가 보장해 주기는 예산이 태부족한 것이 우리나라 상황이다.
일본에서는 노인 환자가 위독해지면 집으로 보낸다고 한다. 위독한 상태에서 병원 신세를 지면 의료비가 엄청나 재정이 감당을 못하기 때문이다. 노인의료비가 현 추세로 폭증하면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렇게 바뀔 수 있다. 노후설계에 노인간병보험까지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 암에 걸려도 오래 살고 병들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사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노인들이 침상에 눕지 않게 평상시 건강관리와 예방에 힘을 쓰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침상에 눕고 나서야 치료에 관심을 갖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걷는 것만이 운동이 아니라 실내운동도 있고 기구를 사용하는 운동도 많으며 누워서 하는 운동도 있으니 자신의 상황에 맞는 운동을 꾸준히 해보자. 오래 살려고 하지 말고 건강하게 걸어 다니며 살다 떠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