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의 추억 2부
2007. 8. 9 ~ 8. 13(5일간)
소산/문 재학
2007년 8월 10일
아침에 일어나 내려다보니 창밖의 눈에 띄는 원형건물은 성당이다. 주변에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었다. 섭씨20도 내외 우리나라 초가을 같이 기분 좋은 날씨였다.
9시 15분 몽골에서 제일 큰 사찰 “간등사” 로 향했다.
시내 중심지로 들어가면서 어제 본 승전탑 옆의 산에 있는 돌에 흰 페인트칠을 하여 산 전면에 만든 거대한 칭기즈칸 초상화가 승전탑과 같이 시내 어디에서 보아도 잘 보이도록 만들어 두었다.
산에 풀이 자라지 않으니 초상화 관리를 위한 刈草작업은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여름이면 초상화를 보기 위해서 수차례 예초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간등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중앙분리대 녹지 공간의 가운데 보행 길을 따라 200m 지나 도착 하니 몽고풍의 다양한 사찰이 본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있었다.
간등사”내에는 금동으로 장식한 대형 불상(3층 높이 = 높이가 28m)이 있었다. 이 불상은 7년 동안에 걸쳐 제작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법당 내는 사람이 만지면서 소원을 빈다는 라마교풍의 원통형 조형물을 돌리고 있었다.
간등사의 아름다운 불상 등 촬영을 위해 10 $을 주고 동영상으로 담았다.
어제 시간 관계상 보지 못했던 이태준 열사의 기념공원으로 다시 갔다.
1883년 경남 함안 출생으로 1911년 연세대 2회 졸업생이다.
한일 합방을 반대하며 이곳 몽골에서 의술을 펴며 독립운동을 했다.
특히 무지한 몽골인들의 불치병으로 아는 성병치료에 탁월한 효과로 굉장한 인기를 누렸다.
독립자금을 중국 상해로 운반 하던 중 38세 나이에 일본인에게 피살된 애국지사이다.
몽골에서도 이를 잊지 못해 이곳 중요지역에 1000평이나 되어 보이는 추모공원을 세우고 입석과 함께 “게르” 2곳에 유품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태준 애국지사의 바로 뒤쪽은 한국인이 건립한 거대한 금동불상이 있고 그 위쪽으로 전승 기념탑이 있다.
툴(Tuul)강을 건너오면 몽골의 종합운동장과 체육관이 있다.
몽골인과 자매결연을 위해 시내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2층 그랜드 홀에서 11시부터 우리 12명과 몽골 측 12명이 마주보고 앉고 소개와 함께 자매결연서를 교환하고 준비해간 선물도 주고받았다.
필자는 가죽에 화살과 화살촉이 있는 작은 공예품을 받았다.
결연식이 끝나고 대형 홀에서 몽골풍의 오찬을 함께 했다.
몽골 측에는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는 언론인. 유명한 성악가. 대학교수. 화가. 과학기술원 위원 등이 축하 노래와 함께 결연의 분위기가 진지했다.
오찬 후는 양궁 장으로 가서 양궁행사를 가졌다.
양측이 활과 화살촉이 달라 경쟁이 안 되었지만 몽골 분들은 전통 양궁복장을 하고 나왔다.
툴(Tuul)강 부근 관람석이 있는 활터에서 사전에 준비된 활쏘기 시합(한국5명-몽골5명) 하였다. 활과 화살이 한국과 달랐다.
몽골 전통복장을 하고 나온 궁사가 명중률이 높았다. 그리고 한국 활을 쏠때는 위험하여 화살수거를 못하게 하는데, 몽골은 활을 쏘고 있는 중에도 현지인이 화살을 수거해 가져다주었다.
시합이 끝난 후
兩國의 화살을 기념으로 교환하고 단체 사진도 남겼다.
일행은 화살촉을 서로 주고받으며 행사를 끝냈다.
다음은 화랑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건물이 5층으로 상당히 크고 국가에서 무료로 제공 하는 것이라 했다.
해외(파리. 도쿄 등) 전시회를 가진 경험이 있는 40여명의 유명 화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이어서 서울의 거리 부근에 있는 “개르”에서 몽골 측에서 베푸는 주연에 참석 몽골 酒(50도)에 大醉하는 대접을 받았다.
호텔로 돌아와서도 준비된 양주로 폭음을 했다.(계속)
첫댓글 좋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