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시간까지 / 고현자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치매를 앓고 계셨지만 그래도 우리 곁에 계신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모든 걸 바꿔 놓았다. 대구의 모병원은 면회를 금지했고 나는 회사 일에 치여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멀리서 건강하신지만 확인하며 지냈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그날 오후 대구에 사는 오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와 다른 다급한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 빨리 내려와.”
숨이 멎는 듯했다. 수화기를 붙잡고 잠시 멍해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서울에서 대구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들이 온통 희미하게만 보였다. ‘조금만, 제발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며 속력을 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후였다. 차가운 병실 희미한 소독약 냄새 속에서 어머니는 조용히 누워 계셨다. 마지막 순간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한 미안함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을 꼭 잡아 드리고 싶었는데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버렸다.
나는 그제야 어머니를 부르며 흐느꼈다. 이제는 더 이상 대답해 주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언제나 후회만 남기는 것 같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나는 자주 전화를 드리곤 했다. 간단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소중한 대화가 그립기만 하다.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따뜻한 미소가 그리워진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종종 어머니를 부른다. 대답 없는 그 이름을 가슴속에 오래도록 새기며 그리움으로 깊어만 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어머니와의 기억을 되새기게 되었다. 어릴 적 함께 손잡고 시장에 가던 날 저녁밥을 함께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들 그리고 힘든 순간마다 나를 감싸주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떠오른다.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기 시작했을 때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기억이 흐려져 가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무력함을 느껴야 했다. 그런 아픔 속에서도 어머니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리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추억한다. 매일매일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살아간다.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사랑에 어머니를 부르며 다시 한번 그 사랑을 느껴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그 상실감은 가슴 깊이 남는다. 하지만 어머니가 남긴 사랑은 영원히 내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오늘은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니 문득 어머니와 함께한 소중한 기억들이 더욱 떠오른다.
주말마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곤 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고르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반찬거리를 사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음식을 만들 것인지 이야기해 주셨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기대에 부풀곤 했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봄철 소풍을 가던 날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특별히 도시락을 챙겨주셨고 그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밥과 과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웃고 떠들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름밤에는 함께 마당에 나가 별을 보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별자리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며 별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 느꼈던 경이로움과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매년 내 생일 때마다 어머니는 정성껏 미역국을 끓이고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주셨다. 그날은 항상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내가 아플 때는 항상 곁에서 따뜻한 손길과 위로로 약을 먹여 주었었다. 나를 안아주며 “괜찮아, 금방 나아질 거야”라고 힘을 주셨고 그 말이 나를 안심하게 하셨다.
이런 기억들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사랑이 지금도 나를 지탱하고 있다. 어머니의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과 함께 따뜻한 마음이 함께한다.
어머니가 해주신 요리 중 가장 놀랍고 맛있었던 음식은 김치찌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김치찌개는 우리 집의 인기 메뉴였고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신선한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셨고 특히 직접 담근 김치를 사용하셨다. 찌개를 끓일 때면 고기와 두부 다양한 채소를 듬뿍 넣어 깊고 풍부한 맛을 내셨습니다.
향긋한 냄새는 언제나 집안을 가득 채우고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리게 했다. 밥과 함께 따뜻한 김치찌개를 먹으며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는 항상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맛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고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 맛은 소중한 기억으로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