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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협회의 교리 중 단 하나도 성서의 명료하고 직접적인 말
씀에 의해 지지되는 것은 없습니다. 각각의 교리는 매우 복잡한 설명과
문맥의 복잡한 조합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일부 교리의 경우에는 그것
을 지지하는 데 정신적으로 많은 땀을 흘려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위의
교리는 사람들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판단하는 데 사용되었고, 하느님께
대한 봉사에 그들의 삶을 쏟아 부었던 이들을 배교자라고 판단하는 근
거로 제시되었습니다.
통치체 앞에서 심문을 받은 다음 날 아침, 의장 슈로더는 내 방으로
와서 본부 직원인 파비오 실바의 추가 증언에 대한 내 대답을 녹음하려
했습니다. 언젠가 르네 바즈퀘즈가 자신을 공항에서 협회까지 태워 주
면서 했던 말을 파비오 실바가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소문
에 근거한 증거에 대해서는 전혀 할 말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나는 그곳의 압제적인 분위기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았을 때 나는 내 방을
나와서 위층으로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의
방으로 가는 라이먼 스윙글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얼
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되냐고 묻자, 그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오후쯤에
는 통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통해서 나는 일부 통치
체 성원들이 나를 제명시키는 것을 강하게 주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일부 성원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지 이해가 안 돼. 나는 반대했다네, 아~ 내가 얼마나 반대했는데...” 그
리고 그는 굳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어깨를 들썩이면서 내 앞
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그를 위로하는 처지가 되어버렸
습니다. 나는 스윙글에게 통치체의 결정이 어떤 것이든지 정말 상관없
다고 말하면서, 그저 이 문제가 빨리 끝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스
윙글이 계속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나는 그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도록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나는 통치체 성원 중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 라이먼 스윙글보다 더 헌
신적인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존경과 애정을
동시에 느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정직함과 용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
후에 스윙글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
습니다. 아마 그때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
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그날 복도에서 보여주었던 진실한 감정을
가진 스윙글을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그의 슬픔 속에서 나
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44)
라이먼 스윙글
그 날 오후 의장 슈로더가 통치체의 결정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명처분을 주장했던 성원들이 3분의2의 과반수를 넘지 못한 것이 분명
했습니다. 왜냐하면 슈로더가 나에게 통치체와 본부 직원의 사임을 요구
하는 결정만을 간단히 통보했기 때문입니다. 통치체는 나를 (아내를 포함
해서) “병가 중인 특별 파이오니아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을 제안했습
니다. (이것은 순회 혹은 지역감독자가 노령으로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감독의 직분을 수행할 수 없을 때 종종 제안되는 제도입니다.) 그 목록
에 포함된 사람들은 매달 협회에 보고서를 쓰며 매달 협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전파 사업에서 “할당된” 시간을 채우는 것은
요구되지 않습니다. 45) 나는 슈로더에게, 아내와 나는 어떤 의무를 지는
것이라면, 심지어 그것이 실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마련을 받아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슈로더는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가 “너무도 훌륭한 작품”이었다며,
몇 마디 말을 하고는 우리 숙소를 떠났습니다.
나는 사임서를 썼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사임서에 있는
내용을 현재까지도 지키고 있습니다.
통치체 친애하는 형제들께: 나는 이 편지로 통치체 성원으로서 사임한다는 뜻을 밝힙니다. 나는 또한 베델 봉사도 중단하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항상 여러분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상 전역에 있는 모 든 여호와 하느님의 종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형제인, 레이몬드 빅터 프랜즈. |
아내와 나는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며칠간 본부를 떠났다가 소지품
을 챙기기 위해 다시 돌아갔습니다. 나는 많은 파일을 두고 떠났지만,
이 문제와 개인적으로 깊이 관련된 파일들은 먼저 챙겨 떠났습니다. 앞
선 몇 가지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이 사건과 관련된 나의 입장이
오해를 살 소지가 있으므로, 나의 입장을 문서화해 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에드 던랩이 본부 건물 밖에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날 사법위원회에 출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에드는 당시 69세였고, 한 해 전에 그러니까 1979년에 본부를 떠나
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통치체 내외부
에서 그 문제로 인해 자신을 좋지 않게 평가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
니다. 괴로운 나머지 에드는 어느날 집필위원회에 그 문제에 대한 도움
을 요청했습니다. 집필위원회는 라이먼 스윙글, 로이드 배리와 어트 치
티를 임명하여 통치체 성원 칼 클라인에게 이야기하도록 마련해주었습
니다. (칼 클라인은 당시에 집필위원회 성원이 아니었으며, 나중에 치
티가 사임한 후에 집필위원회 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칼 클라인
에게 에드의 사무실 출입을 금하고, 에드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비평
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는 동시에 에드에게도 비평적으로 말하지
말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회기 중 통치체 내부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통치체 외부에서는 일정기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1979년 말에 나는 에드에게 본부를 떠나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생각
을 이야기했지만, 그는 자신도 그 문제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보았으나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나이와 경제적인 여
건으로 인해 그는 자신과 아내가 먹고 살길을 합리적으로 찾기가 어렵
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입니다. 본부에 남아있음으로 인해 적어도 에드
와 그의 아내는 살 곳과 먹을 것과 필요한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
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부에 머물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면서, “만일 집
필위원회에 있는 것이 너무 골치 아프게 되면 그냥 목공 쪽이나 다른
종류의 일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할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 년이 조금 안돼서 사법위원회에서 자신을 거론하고 있다
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를 본 날, 그는 “나는 사법모임에서 정말
솔직하게 말할 거야. 돌려 말하는 것은 나에겐 안 맞아.”라고 말했습니
다. 그는 사법위원회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5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사회자위원회가 고디네
스 부부 면담 테이프를 통치체 성원들에게 들려준 지 6주 정도가 지
나갔습니다. 그 테이프에는 에드워드의 이름이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좀 정보를 찾고 있을 뿐”이라며 로이드 배리와 잭 바가 에드워드를 안
심시켰을 때부터 6주 정도가 지나간 것입니다. 그 시간동안 에드워드
던랩은 계속해서 본부에 있었고, 통치체가 거의 마지막으로 맡긴 업무
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었지만, 사회자 위원
회에 속한 어느 누구도 그를 매장시키기 위한 조치가 진행 중이라는 사
실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전체적인 방향을 지시할 수 있
는 입장에 있었고, 게다가 그들 모두 에드워드와 매우 친밀한 사이였는
데도 그에게 단 한마디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46)
에드는 먼저 배리와 바와 면담을 했습니다. 그 후 거의 6주 동안, 거의
50년을 연합하고 약 40년을 전 시간 봉사자로 일했으며 하늘 희망
을 가지고 살던 이 70살이 다 된 에드에게 통치체 성원 중 그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추리하거나 그와 함
께 토의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이 말이 사실임은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통치체가 보기에는 에드워드가 길을 잃어버린 것이지만 그들
이 행한 처사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남겨두고 “길 잃은” 양 한 마리
를 찾아 나선 목자와 너무나 달랐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명된 사람들 중 몇몇이 분별없는 말을 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취해진 앞서 언급된
조치들은, 내가 생각하기엔, 제명된 사람들이 한 분별없는 말에 비해 너
무나 가혹하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47)
에드 던랩을 판단하는 일은 5명의 본부 직원으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임명받았으며, 통치체는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임명된 5명은 모두
에드보다 나이가 적었으며, 아무도 자신을 “기름부음받은 자”라고 공언
하지 않았습니다. 위원회는 단 하루의 조사만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들의 전형적인 태도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두 개의 반열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인’에 관한 조직의 교리에 대해
의견을 묻자, 에드는 그들에게 로마서 8장 14절을 제시하며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했습
니다. 에드가 “다른 식으로 이 성구를 이해할 방법이 있는가?”라고 묻
자, 에드가 사무관으로 있을 때 길르앗 학교 강사로 일했던 프레드 러
스크는 “오, 에드, 그건 그냥 당신의 해석일 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는 이 성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에드가
묻자, 프레드 러스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봐요, 에드, 지금 재판
받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에요.”
조직이 정한 법규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과분하신 친절(또는 은혜)아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에드는
믿음과 사랑이 율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
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로버트 월렌은 “하지만 에드, 난 누군가가 내가 뭘 해야 할
지를 말해주는 것이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에드는 히브리서 5장
13-14절에서 사도가 말한 바, 그리스도인은 아기가 아니라 성숙한 개
인으로서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그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성서를 더 읽어보아야 하겠군.” 로버트 월렌이 웃으면서 “저와
이백만 명의 다른 사람들이죠.”라고 말하자, 에드는 “그들이 그렇게 하
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네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핑계가 될 수는 없
네.”라고 응수했습니다. 에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 즉 형제들이 성서
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출판물만을 의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들의 양심은 진정으로 성서로 훈련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
니다.
회기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된 주요 현안은, 에드가 이제는 제명된 사
람들과 두 번 가졌던 성서 토의였습니다. 에드는 모든 부면에 있어 처
음부터 완전히 개방적인 태도로 사법위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따라서 그 사법 모임은 제명된 사람들과의 대화로 인해 에드를 문제 삼
을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제명된 사람들은 두 번의 경우
모두 에드와 함께 로마서를 토의하고, 그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려고 했
던 것일 뿐입니다. 48)
사법위원회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점에 관해 이야기했는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그것을 “광고하려는” 의도는 전
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에게 개인적으로 찾
아와 도움을 구하면,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서를 제시할 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그들을 도와줘야 할 의무감을 느꼈
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십중팔구는 이 말이 사법위원회 판결에 결정적
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사적으로 성서에 대해 토의하고 의
견을 표명하는 자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것은 이단으로, 분열
시키는 위험한 요소로 취급되었습니다.
사법모임에서 있었던 말 중에 특히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에드가 그들에게, 자신은 제명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현재 즐
기고 있는 형제관계를 끊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하자, 사법위원
회는 에드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조직을 기다려 보세요, 누가 압
니까? 한 5년쯤 후에 형제가 말하고 있는 것들 모두 또는 상당수가 출
판물에 실리고 교리로 확립될지 말이에요.”
그들은 조직의 교리가 수시로 변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습니다. 따라서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은 그러한 생각을 근거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된 쟁점들에 대해, 확고한 성
서적 근거가 있다는 확신이 그들에게 얼마나 있었을까요? 만일 그들이
그 문제들에 대한 조직의 교리가 확고한 것이 아니며 앞으로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어떻게 당시의 교리를 근거로 에드가 하느님
의 충실한 종인지 배교자인지 결정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만일 그들이 (의장위원회에 의해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되었던) 교리
들이 변경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고려했다면, 5년 후에 어떤 변화가 있
을지에 대해 기다려 볼 가치는 없었던 것일까요? 또한 조직에 대한 봉
사로 5년이 아니라 50년을 보낸 에드에 대해 어떤 형태의 사법조치라
도 연기할 가치는 없었던 것일까요?
사법위원회가 취한 이러한 행동은 한 개인의 명성과 힘들게 쌓은 평
판, 그리고 생애를 다 바친 봉사를 포함한 그 개인의 이익이 한 조직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소모품처럼 버릴 수 있다는 가
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만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사법위원회가 비록 던랩을 정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입장
이었을지라도, 그들 모두는 에드워드 던랩이 하느님과 그리스도 그리
고 성서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음을 알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
만 그것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요? 사법위원회는 사회자위원회를 통
해 전달되는 통치체 내부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직의 해
석과 주장을 모두 수용하지는 않았던 던랩에 대해 그러한 강력한 조치
를 취하는 것만이 조직에 대한 충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드워드 던랩을 제명시켰습니다. 그리고 던랩에게 그
의 집이었던 베델 본부를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던랩은 일흔 두 살
의 나이로 자신이 자란 오클라호마로 돌아가, 자신과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도배공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 일은 그가 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
회의 전 시간 대표자로서 40년간의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했던 일입니
다.49)
에드워드 던랩과 그의 아내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할 - 정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 사람들이 과연
한밤중에 하느님께 나아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는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44) 몇 개월 후 라이먼 스윙글은 통치체의 구성원으로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집필위원회 성원
및 집필부 조정자로서의 역할에서는 제외되었다. 대신 로이드 배리가 그 역할을 맡았으며, 스윙
글은 얼마 후 사망했다.
45) 당시의 1인당 수당은 한 달에 약 175달러였던 것 같다.
46) 앨버트 슈로더는 길르앗 학교에서 수년간 에드워드 던랩과 함께 동료 강사로 일했었다. 칼 클
라인과 집필부에서 함께 일했으며, 게다가 집무실은 에드워드의 옆방이었다. 그랜트 수터는 일
년 전쯤에 자신에라이먼 스윙글게 할당된 일(지부 세미나의 개요를 정리하는 일)을 에드워드 던랩에게 대신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매우 바쁘며 에드워드가 “어차피 잘할 테니까”라는 이유
였다.
47) 요한 1서 3:14-16,18.
48) 에드워드는 지부위원회 위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에서 로마서 강좌를 맡아 보도록 통치체
교습 위원회로부터 지시를 받았었다.
49) 에드워드 던랩은 86세가 될 때까지 생계를 위해 계속 일을 해야 했다(신체가 노쇠하여 도배 일은
계속 할 수 없었지만). 그리고 1999년 9월 1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