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회 마음 난리에서 이기는 병법
안녕하세요. 마음나라 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 최경도 교무입니다. 반갑습니다. 근래 세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으로 인하여 인플레이션과 물가상승의 압력으로 사람들 사는 데 주름살이 늘어만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모든 전쟁이나 보이지 않는 난리가 모두 마음난리에서 시작된 것인지라 오늘은 온 세상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 난리에서 이기는 병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개인·가정과 사회·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전쟁의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다 사람들의 마음 난리로 인하여 발단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음 난리는 모든 난리의 근원인 동시에 제일 큰 난리가 되고, 이 마음 난리를 평정하는 법이 모든 법의 조종인 동시에 제일 큰 병법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정이나 사회 국가에서 그 지도자가 중요함을 예지하고 지도인으로서 준비할 요법을 최초법어에서 설파하고 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였듯이 좁은 의미에서 세상 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어떤 지도자는 자국의 영토를 이웃나라에 주기도 하고 또 다른 지도자는 주었던 땅을 다시 찾기 위하여 되돌리려는 전쟁을 하고 있다. 복잡한 길거리에서 어깨가 부딪치면 어떤 사람은 미안하다 사과하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이를 가지고 시비를 걸어 다툼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더 확대하여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패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이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난리에서 비롯하였음을 알아차려 마음과 일을 선한 방향으로 돌리도록 하여야 한다.
마음난리를 평정하는 방법은 곧 우리의 마음 가운데 개인의 그릇된 욕심을 항복받는 법인데 그 법은 바로 정과 혜와 계를 닦으며, 법과 마를 구분하는 우리의 수행 길이다. 이것이 곧 더할 수 없는 세계 전쟁을 편안하게 만드는 병법이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이 마음 난리는 난리로 생각하지도 않고 있으니 그 일의 근본과 끝을 안다 할 수 없다.
소태산 대종사는 그런즉 그대들은 이 뜻을 잘 알아서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 오래오래 쉬지 아니하고 반복 수행하면 마침내 모든 마군을 항복받을 것이니, 그리 된다면 법강 항마의 법위를 얻게 되는 동시에 마음 난리에 편할 날이 없는 이 세상을 평정하는 훌륭한 도원수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하였다.
이 뜻을 잘 알아서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으라는 것은 육근이 일 없을 때는 염불 좌선 등 정신수양과 경전 강연 회화 등 사리연구를 부지런히 하고 나에게 일이 있을 때는 그일 그 일에 일심과 알음알이를 얻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또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는 것은 죽어도 계율을 범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반복 수행하라는 것은 훈련처럼 하고 또 하여 챙기지 아니해도 자동적으로 될 때까지 하는 것으로 마음속에 탐진치 삼독심과 아만심 시기심의 다섯 가지 악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정과 혜와 계를 부지런히 닦는 방법은 마음 병 치료하기의 의술편에서 배운 삼학팔조의 공부이다. 삼학공부 하는 것을 요점을 잡아 간추려 쉽게 하지 못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정전]의 “삼학” 중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요지에 밝힌 데로 이해하고 실행하면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삼학” 가운데 ‘정’인 정신수양은 정신 수양의 요지에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이요, 수양이라 함은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하며 밖으로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함을 이름이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마음수양이라 하지 않고 정신수양이라 한 점이다. 이곳에서 정신은 제가 마음공부의 기초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마음의 네 가지 모습으로 성품 정신 마음 뜻 가운데 정신이다. 이 정신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왜 마음수양이라 하지 않고 정신수양이라 했는지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수양하여 힘을 길러야 할 때 변함이 없는 정신에 기준을 두어야지 변하는 마음에 기준을 둔다면 수양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양도 안으로 하는 수양과 밖으로 하는 수양으로 구분 하였는데 이는 인간에게는 동정이 있어서 일이 있을 때와 일이 없을 때로 구분할 수 있으므로 일이 없을 때는 안으로 하게 되고 일이 있을 때는 밖으로 하게 됨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삼학” 가운데 ‘혜’인 사리연구는 사리 연구의 요지에 “사라 함은 인간의 시·비·이·해를 이름이요, 이라 함은 곧 천조의 대소 유무를 이름이니, 대라 함은 우주 만유의 본체를 이름이요, 소라 함은 만상이 형형색색으로 구별되어 있음을 이름이요, 유무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 순환과, 풍·운·우·로·상·설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를 이름이며, 연구라 함은 사리를 연마하고 궁구함을 이름이다”고 하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공부인은 마음 난리 가운데 법과 마 곧 정의와 불의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일을 당해서는 밝게 분석하고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대소 유무의 이치를 알고 시비이해의 일을 판단하여 사실과 허위 그리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해야 한다.
“삼학” 가운데 ‘계’인 작업취사는 작업 취사의 요지에 “작업이라 함은 무슨 일에나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작용함을 이름이요, 취사라 함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을 이름이다”고 하였다.
마음난리 중에 있는 공부인은 정의는 실행하고 불의는 버리는 실천이 있어 백번을 해도 백번 모두 다 바르게 행해야 한다. 정당한 일은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행할 것이며 부당한 일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간단하고 단순하게 이해하고 그 해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삼학 세 가지를 함께 병진해야 한다. 마음의 기초 체력을 키우고 근육도 단련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수양력과 연구력과 취사력이 골고루 함께 길러야 한다.
1952년 시인 김춘수가 발표한 시 “꽃”의 초반부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였다. 어느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의미,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대상을 특별하게 인식하게 되는 행위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소태산 대종사는 삼학의 요지를 설명하며 “~ 이름이다” 하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불교의 계정혜 삼학과 소태산 대종사의 삼학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음으로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산 종사는 이렇게 불교의 삼학과 우리의 삼학은 다르다 한 것이며 우리는 이점에 입각하여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켜야 할 것이다.
오늘은 마음 난리에서 이기는 병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마음난리에서 백전백승하기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오늘도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