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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E “SEVEN TIMES” OF DANIEL 4
6 다니엘 4장의 "일곱 때"
IN THE PREVIOUS chapter it was shown that the prophecy of the seventy years may be given an application that is in full agreement with a dating of the desolation of Jerusalem in 587 B.C.E. Would this mean , then , that a period of 2,520 years of Gentile times started in 587 B.C.E. and ended—not in 1914―but in 1934 C.E.? Or could it be that the 2,520-year calculation is not founded on a sound biblical basis after all? If not, what meaning should be attached to the outbreak of war in 1914―a year that had been pointed forward to decades in advance? These are the questions discussed in this chapter. We will first take a look at the attempts made to end the Gentile times in 1934. 앞 장에서 70년의 예언을 적용함에 있어서 기원전 587년이 예루살렘 멸망 연대와 온전히 일치한다는 사실과 서로 상충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2,520년의 '이방인의 때'가 기원전 587년에 시작되어 1914년이 아니라 1934년에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2,520년의 계산이 결국 건전한 성경적 근거에 기초하지 않은 것일 수 있는가? 만일 이방인의 때가 1934년에 끝이 난다면, 수십년 전에 미리 예측되었던 1914년의 전쟁 발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이러한 것들이 이 장에서 논의될 문제들이다. 193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다는 가정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
A. THE 1934 PROPHECY
A. 1934년에 대한 예언
Ending the times of the Gentiles in 1934 would not be a new idea. As far back as 1886 the British expositor Dr. Henry Grattan Guinness pointed to 1934 in his book Light for the Last Days.1 Dr. Guinness made use of three different calendars in his calculations and thus succeeded in giving the Gentile times three time periods of different lengths: 2,520, 2,484, and 2,445 years respectively. In addition, he also used several starting-points, the first in 747 and the last in 587 B.C.E. 2 This provided a series of terminal dates, extending from 1774 CE. to 1934 CE., all of which were regarded as important dates in God’s prophetic timetable. With the 1934 date, however, the Gentile times would definitely end, reckoned according to Dr. Guinness’ longest scale and from his last starting-point. The four most important dates in his scheme were 1915, 1917, 1923 and 1934. 193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다는 생각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1886년까지 영국인 성서 해설자인 Dr. 헨리 그라탄 기네스는 1934년을 지적한 그의 저서 <마지막 날의 빛>에서 그의 계산에 세 개의 다른 달력 계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각각 2,520년, 2,484년, 2,445년 등 세 개의 다른 시간대를 이방인의 때에 부여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그는 또한 몇 개의 시작점을 사용했는데, 첫 번째는 기원전 747년이고 마지막은 기원전 587년이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몇개의 종료 시기를 제공했는데, 이는 1774년부터 1934년까지 이르는 연대로 이어졌고, 계산된 모든 연대들이 하나님의 예언 시간표에서 중요한 시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네스 박사의 가장 나중의 연대로 계산된 1934년이 되면, 이방인의 때는 분명히 끝날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4개의 연대는 1915년, 1917년, 1923년, 1934년이었다. Dr. Guinness had predicted that the year 1917 would be perhaps the most important year in the termination of the trampling of Jerusalem. When the British general Edmund Allenby on December 9 that year captured Jerusalem and freed Palestine from the Turkish domination, this was seen by many as a confirmation of his chronology. Quite a number of people interested in the prophecies began to look forward to 1934 with great expectations.3 Among these were also some of the followers of Pastor Charles Taze Russell. 기네스 박사는 1917년이 아마도 예루살렘이 이방인에 의해 짓밟히는 때가 끝날 것이라는 추측에 의해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해 12월 9일 영국 장군 에드먼드 알렌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팔레스타인을 터키의 지배에서 해방시켰을 때,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연대기가 사실로 확인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예언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1934년을 고대하기 시작했다.3 이들 중에는 찰스 태이즈 러셀 목사의 추종자들도 있었다. |
A-1: Pastor Russell’s chronology emended
A-1: 수정된 러셀 목사의 연대표
At the climax of the organizational crisis in the Watch Tower Society following the death of Russell in 1916, many Bible students left the parent movement and formed the Associated Bible Students, in 1918 chartered as The Pastoral Bible Institute.4 In the same year Paul S. L. Johnson broke away from this group and formed The Laymen’s Home Missionary Movement, today one of the strongest groups to grow out of the Bible Student movement aside from the parent organization. Early in the 1920s the Pastoral Bible Institute changed Russell’s application of the Gentile times, which caused an interesting debate between that movement, the Laymen’s Home Missionary Movement, and the Watch Tower Society. An article entitled “Watchman, What of the Night?” published in the Pastoral Bible Institute’s periodical The Herald of Christ’s Kingdom, April 15, 1921, marked a significant break with Pastor Russell’s chronological system. Mainly responsible for this reevaluation was R. E. Streeter, one of the five editors of the Herald. His views, accepted by the other editors, reflected a growing concern on the part of many Bible Students (as evidenced from letters received from nearly every part of the earth) who had experienced deep perplexity “as to the seeming failure of much that was hoped for and expected would be realized by the Lord’s people by this time.”5 Some of the questions which had arisen were: 1916년 러셀이 사망한 후, 워치타워 협회의 붕괴위기가 절정에 달하자 많은 성서 연구생들이 몸 담았던 운동을 떠나, 1918년 목회성경 단체로 인가된 성경 연구생 연합회를 결성했다.4 같은 해 폴 S. L. 존슨은 이 그룹에서 탈피하여 레이먼즈 홈 선교 운동을 결성했는데, 이는 오늘날 성서 연구생에서 자라난 운동 중에서 가장 강력한 단체 중 하나이다. 1920년대 초 '목회자 성경 연구소'는 러셀의 이방인의 때의 해석을 변경하였고, 이 때문에 그 운동과 레이먼즈 홈 선교 운동, 그리고 워치 타워 협회 사이에 재미있는 논쟁이 벌어졌다. 1921년 4월 15일 목회자 성경 연구소의 정기 간행물인 <그리스도 왕국의 전령(The Herald of Christ's Kingdom)>에 실린, '파수꾼은 도대체 밤에 무엇을 하나?'라는 제목의 기사는 러셀 목사의 연대 체계와 완전한 결별을 알렸다. 연대에 대한 이 재평가는 주로 <전령>지의 5명의 편집자 중 한 명인 R. E. 스트리터가 담당했다. 다른 편집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그의 견해는 곤혹스러움을 깊이 경험했던 많은 성경 연구생들의 커져가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었다.5 제기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Why has not the Church realized her final deliverance and reward by this time? . . . Why is not the time of trouble over with by now — why has not the old order of things passed away, and why has not the Kingdom been established in power before this? Is it not possible that there may be an error in the chronology?6 왜 교회는 지금까지 궁극적 구원과 보상을 깨닫지 못했는가?. . . 왜 지금까지 문제의 시기가 끝나지 않는 것인가? 왜 낡은 사물의 질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왕국은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임하지 않는 것일까? 연대기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6 Calling attention to the fact that Pastor Russell’s predictions for 1914 had not been fulfilled, it was concluded that there was evidently an error in the former reckoning. This error was explained to be found in the calculation of the times of the Gentiles: 1914년 러셀 목사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전의 어떤 계산에 오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오류는 이방인의 때에 대한 계산에 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Careful investigation has resulted in our locating the point of difficulty or discrepancy in what we have considered our great chain of chronology. It is found to be in connection with the commencement of the ‘Times of the Gentiles’.7 면밀한 조사 결과, 우리의 훌륭한 연대기의 고리에서 우리가 생각해 왔던 어려움이나 불일치되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찾아냈다. 그것은 '이방인의 때'의 시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7 First, it was argued, the seventy years, formerly referred to as a period of desolation, more properly should be called “the seventy years of servitude.” (Jeremiah 25:11) Then, referring to Daniel 2:1, 37–38, it was pointed out that Nebuchadnezzar was the “head of gold” already in his second regnal year, and actually dominated the other nations including Judah, beginning from his very first year, according to Daniel 1:1. Consequently, the era of seventy years commenced eighteen to nineteen years before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This destruction, therefore, had to be moved forward about nineteen years, from 606 to 587 B.C.E. 첫째로, 예루살렘이 황폐한 기간으로 이해되었던 70년을 이제는 "종살이(=포로) 70년 기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예레미야 25:11). 그리고 다니엘 2:1, 37-38을 언급하면서 느부갓네살은 그의 두 번째 통치 2년에 [그의 꿈에서 본 신상에서]이미 금으로 된 머리였고, 다니엘 1:1에 따르면, 유다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을 지배했던 때가 그의 첫 해부터 시작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70년 기간의 시작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18~19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멸망은 기원전 606년에서 587년으로 약 19년 늦추어져야 했다. But the 606 B.C.E. date could still be retained as a starting-point for the times of the Gentiles, as it was held that the lease of power to the Gentiles started with Nebuchadnezzar’s rise to world dominion. Thus 1914 marked the end of the lease of power, but not necessarily the full end of the exercise of power, nor the complete fall of the Gentile governments, even as the kingdom of Judah did not fall and was not overthrown in the final and absolute sense until Zedekiah, a vassal king under Nebuchadnezzar, was taken captive nineteen years after the period of servitude began. The Herald editors concluded: 그러나 기원전 606년은 여전히 이방인의 때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권력이 부여된 것은 느부카드네자르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14년은 권력이 부여된 이방인의 종말을 의미하지만, 반드시 권력의 완전한 종말은 아니다. 그것은 유다 왕국이 멸망하지 않았고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의미에서 전복되지 않았으며, 느부갓네살 휘하의 예속된 왕인 시드기아(Zedekiah)가 종살이 기간이 시작된 19년 후 포로로 잡힐 때까지 권력이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전령>지의 편집자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Accordingly it was 587 B.C. when Zedekiah was taken captive, and not 606 B.C., and hence while the 2520 years’ 1ease of Gentile power starting in Nebuchadnezzar’s first year, 606 B.C., would run out in 1914; yet the full end of the Gentile Times and the complete fall of Gentile governments is not indicated as taking place till nineteen years later, or in about 1934.8 따라서 시드기야가 포로가 된 것은 기원전 606년이 아니라 기원전 587년이었으며, 그리하여 이방인에게 권력이 부여된 2520년 기간은 느부갓네살의 첫째 해인 기원전 606년에 시작되어 서기 1914에 종료되지만; 이방인의 때의 온전한 끝과 이방인 정부들의 완전한 몰락이 19년 뒤인 1934년경에 일어날 것으로 지적되지는 않았다.8 So what could be expected to take place in 1934? The Herald of Christ’s Kingdom indicated: 그러므로 1934년에는 무엇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왕국의 전령>지는 이렇게 지적한다: The reasonable deduction is that the great changes and events which we have heretofore expected to take place in 1914 would, in view of the foregoing, be logically expected to be in evidence somewhere around 1934.9 합리적 추론은 1914년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큰 변화와 사건들은 1934년 경 어느 지점에서 증거로 나타나리라 기대하는 것이 논리적일 것이다.9 Other articles followed in the issues of May 15 and June 1 of the Herald, giving additional evidence for the necessity of these changes and answering questions from the readers. The changes evoked much interest among the Bible Students: <전령>지의 5월 15일과 6월 1일호에는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다른 기사들도 이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성서 연구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Many have freely written us that they have heartily accepted the conclusions reached. . . 많은 사람들이 . . .에 도달한 결론을 충심으로 받아들였다는 내용의 편지를 우리에게 거리낌 없이 보냈다. . . It has been of special interest to us to receive advice from brethren in several different quarters telling of how for some months or years before receiving our recent treatment of the subject, they had been led to make an exhaustive examination of the chronology and had arrived at exactly the same conclusions as those presented in the HERALD with regard to the 19 years difference in the starting of the Gentile Times , and found that all the evidences showed that Nebuchadnezzar’s universal kingdom began in his first year instead of his nineteenth.10 우리가 그 주제에 대한 우리의 최근 토의내용을 받기 몇달 전 또는 몇년 전 동안 서로 다른 진영*의 형제들로부터 조언을 받는 것이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사였다, 그들은 연대기를 철저히 검토하려는 동기를 부여 받았고, 이방인의 때의 시작에 대한 19년의 차이와 관련하여 <전령>지에 제시된 것과 정확히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모든 증거들은 느부갓네살의 세계 강국이 그의 19년째가 아니라 첫 해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10 * 다른 진영이란 성경 연구생 단체가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역자 보충 해설) |
A-2: The Bible Student controversy on the Gentile times chronology
A-2: 이방인의 때에 관한 성서 연구생들의 연대기 논쟁
However, most Bible Student groups rejected the conclusions of the Pastoral Bible Institute. The first counterattack came from P. S. L. Johnson, the founder of the Laymen’s Home Missionary Movement and editor of its periodical The Present Truth. 그러나, 대부분의 성서연구생 단체들은 목회성서연구소의 결론을 거부했다. 첫 번째 반격은 레이먼즈 홈 선교 운동의 창시자이자 잡지 <현재의 진리>의 편집자인 P. S. 존슨으로부터 나왔다. |
In the issue of June 1, 1921, he published a critical article entitled “‘Watchman, What of the Night?’ —Examined” (pages 87–93), in which he defended Pastor Russell’s understanding of Daniel 1:1 and 2:1 and the seventy years of desolation, also adding some arguments of his own. This was followed by other articles in the issues of July 1 and September 1.11 1921년 6월 1일 호에서 그는 "파수꾼이여, 도대체 밤에 무엇을 하는가?" (87~93면)라는 제목의 비판적인 기사를 발표했는데, 그는 이 기사에서 다니엘 1:1과 2:1 그리고 70년간의 예루살렘 황폐에 대한 러셀 목사의 해석을 옹호했고, 자신의 주장도 덧붙였다. 이어 7월 1일과 9월 1일 호에도 다른 기사가 실렸다.11 In 1922, the Watch Tower Society, too, plunged into the debate. Evidently the chronological changes in the Herald rapidly came to the knowledge of many Bible Students from different quarters, and seem to have caused no little agitation among the readers of The Watch Tower magazine, too. This was openly admitted in the first article on the subject, “The Gentile Times,” published in the May 1, 1922, issue of The Watch Tower: 1922년, 워치 타워 협회도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분명히 <전령>의 연대기 변경은 여러 진영의 많은 성경 연구생들에게 빠르게 전해졌고, 파수대 잡지의 독자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동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22년 5월 1일호 '파수대'에 실린 '이방인의 때'라는 제목의 첫 기사에서 공개적으로 인정됐다: About a year ago there began some agitation concerning chronology, the crux of the argument being that Brother Russell was wrong concerning chronology and particularly in error with reference to the Gentile times. . . . Agitation concerning the error in chronology has continued to increase throughout the year, and some have turned into positive opposition to that which has been written. This has resulted in some of the Lord’s dear sheep becoming disturbed in mind and causing them to inquire, Why does not THE WATCH TOWER say something?12 약 1년 전에 연대기에 관한 약간의 동요가 시작되었는데, 그 논쟁의 핵심은 러셀 형제가 연대기에 관한 잘못된 것, 특히 이방인의 때에 관한 잘못된 것. . . . . .연대기의 오류에 관한 동요는 일년 내내 계속 심해져갔고, 몇몇은 이미 쓰여진 내용에 대해서 적극적인 반대를 하였다. 이로 인해 주의 소중한 양들의 마음이 혼란되었으며, "왜 파수대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하기에 이르렀다.12 Consequently, beginning with this article, the Watch Tower Society started a series in defense of Pastor Russell’s chronology. The second article, entitled “Chronology,” published in The Watch Tower of May 15, 1922, opened with a reaffirmation of belief in Russell’s dates, and added the date 1925: 이에 이 기사를 시작으로 워치타워 협회는 러셀 목사의 연대기를 옹호하는 시리즈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1922년 5월 15일호 파수대에 나오는 "연대기"라는 제목의 두 번째 기사는 러셀의 연대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하는 내용으로 시작되었고, 1925년을 추가했다: We have no doubt whatever in regard to the chronology relating to the dates of 1874, 1914, 1918, and 1925. Some claim to have found new light in connection with the period of “seventy years of desolation” and Israel’s captivity in Babylon, and are zealously seeking to make others believe that Brother Russell was in error. 1874년, 1914년, 1918년, 1925년의 연대에 대해서 우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각에서는 '70년간의 황폐'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포로된 것과 관련해 새로운 빛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러셀 형제가 오류에 빠진 것으로 믿게 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The arguments put forth in this and subsequent articles were much the same as those earlier published by Paul S. L. Johnson. Johnson, who involuntarily had to side with the Watch Tower Society in this “battle,” supported The Watch Tower with a series of new articles in the Present Truth, running parallel with the articles in The Watch Tower.13 이 글과 그 이후의 글에 제시된 주장들은 폴 S. L. 존슨이 이전에 발표한 주장들과 거의 같았다. 이 "전투"에서 무의식적으로 워치타워 협회의 편을 들어야 했던 존슨은 파수대 기사와 병행하면서, <현재의 진리>에 새로운 일련의 기사로 파수대를 지지했다.13 These responses were not long left unanswered. The Herald of June 15, 1922, contained the article “The Validity of Our Chronological Deductions,” which was a refutation of the arguments put forth in support of Pastor Russell’s interpretation of Daniel 1:1 and 2:1. In the July 1 issue, a second article “Another Chronological Testimony” considered the evidence from Zechariah 7:5, and the July 15 issue contained a third on the desolation period, again signed by J.A.D. (See note 10.) 이러한 반응들은 얼마 되지 않아 대답이 나오게 되었다. 1922년 6월 15일자 <전령>에 러셀 목사의 다니엘 1:1과 2:1의 해석을 지지하는 주장들에 대해 반박하는 '우리의 연대기 결론의 근거'라는 기사를 실었다. 7월 1일호의 2차 기사인 '또 다른 연대기 증언'은 스가랴 7장 5절의 증거를 다루었고, 7월 15일호에는 다시 J.A.D.가 서명한 '[예루살렘]황폐'에 대한 3차 논문이 수록됐다(각주 10 참조). Gradually the debate subsided. The Pastoral Bible Institute editors summarized their arguments and published them in a special double number of the Herald, August 1–15, 1925, and, again, in the May 15, 1926 issue. Then they waited to see what the 1934 date would bring. 차츰 논쟁이 가라앉았다. '목회자 성서 연구소' 편집자들은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여 1925년 8월 1일부터 15일까지 <전령>지의 두 배 분량으로 특별히 출판했고, 1926년 5월 15일에도 다시 출판했다. 그리고 그들은 1934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를 목격하기 위해 기다렸다. As 1934 approached the Institute’s editors assumed a very cautious attitude: 1934년이 다가옴에 따라 연구소의 편집자들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If the nineteen years was intended to indicate the exact length of time of the running out of the Gentile Times from 1915 onward, then that would carry us to approximately 1933–1934; but we do not know that this was so intended, nor do we have positive evidence as to the exact length of the closing out of the Gentile Times beyond 1915. 14 만약 19년이 1915년부터 대략 1933-1934년까지 이어졌을 '이방인의 때'의 정확한 기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적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것이 그렇게 의도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고, 1915년 이후 '이방인의 때'가 끝나는 정확한 길이에 대해서도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14 This cautiousness proved to be wise, and when the 1934 date had passed, they could assert: 이처럼 신중한 태도를 나타낸 것은 현명했으며, 1934년이 지나가자, 그들은 이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Brethren who have perused carefully the pages of this journal, are well aware that much cautiousness and conservatism have been urged upon all in the direction of setting dates and fixing the time for various occurrences and events; and this continues to be the editorial policy of the ‘Herald’.15 이 잡지의 내용을 주의 깊게 읽어온 형제들은 시기를 정하는 방향이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때를 확정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신중함과 보수주의가 요구되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것이 <전령>지의 편집 정책이기도 하다.15 As to the question of why 1934 did not see the passing away of the Gentile nations, it was explained that 1934 should be looked upon as an approximate date, and that “we believe the progress of events and all the facts as we see them unfolding before us in this day of the Lord, lead us to look for the running out of the present order more by degrees or stages rather than that of the sudden crash and passing away of everything at one point of time, as the Apostle Paul suggests — ‘As travail upon a woman’. ”16 The worsening situation in the world leading to The Second World War seemed to give support to this way of looking at the matter.17 1934년에 이방 민족의 사라짐을 보지 못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 관하여, 1934년은 대략적인 날짜로 보아야 하며, "우리는 주의 날에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사건들의 진행과 모든 사실들이, 사도 바울이 시사한 것처럼 모든 것이 한 순간에 갑자기 추락하고 세상을 떠나기 보다는 '여자에 임하는 산고처럼', 우리가 현재의 질서가 바닥나는 것을 더 많이 목격하도록 인도하였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16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세계의 악화된 상황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17 The years 1914 and 1934 have come and gone, and the Gentile nations still rule the earth. In fact, the number of independent nations has tripled since 1914, from 66 in that year to about 200 at present. Thus, instead of ending in 1914, the times for the majority of nations on earth today have begun after that year! 1914년과 1934년이 왔다가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이방 민족은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 실제로 1914년 이후 독립국 수는 그해 66개에서 현재 200여개로 3배가량 늘었다. 따라서,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기는 커녕, 오늘날 지구상의 대부분에서 이방 민족들의 시대가 1914년 후에 시작된 셈이었다! Some proper questions to ask now surely are: Is the 2,520-year period really a well-founded biblical calculation? Was Jesus’ mention of the “Gentile times” at Luke 21:24 a reference to Nebuchadnezzar’s “seven times” of madness? And should these “seven times” be converted into 2,520 years? 지금 바로 물어봐야 할 몇 가지 적절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2,520년의 기간은 참으로 성경적으로 근거를 가진 계산일까? 예수께서 누가복음 21장 24절에 '이방인의 때'를 언급하신 것이 느부갓네살의 광기 '일곱 때'를 염두에 두고 언급하신 것인가? 그리고 이 "일곱 때"를 2,520년으로 환산해야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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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 Grattan Guinness, Light for the Last Days (London, 1886).
1. H. 그라탄 기네스저 <마지막 날의 빛> (런던, 1886년)
2. The others were 741, 738, 727, 713, 676, 650–647, and 598.
2. 나머지 연도들은 기원전 741, 738, 727, 713, 676, 650~647 및 598년이었다.
3 Most of these expositors seemed to be unaware of the fact that Guinness himself back in 1909, in his book On the Rock, had revised his chronology and “had calculated that the end would occur in 1945 instead of 1934.”—Dwight Wilson, Armageddon Now! (Tyler, Texas: Institute for Christian Economics, 1991), pp. 90– 91.
3 이들 대부분의 해설자들은 1909년 기네스 자신이 그의 저서 <반석 위에>에서 그의 연대기를 수정하고 "종말이 1934년이 아닌 1945년에 일어날 것이라고 계산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와이트 윌슨저 <아마겟돈은 지금!> (타일러, 텍사스: 기독교경제연구소, 1991), 90–91면.
4 The Pastoral Bible Institute (P.B.I.) was headed by former board members of the Watch Tower Society who were illegally dismissed by J. F. Rutherford in 1917 together with other prominent members.
4 목회성경연구소(P.B.I.)는 1917년, J. F. 러더포드에 의해 다른 저명한 성원들과 함께 무고하게 해임된 워치타워 협회의 전 이사들이 회장을 맡았다.
5. The Herald of Christ’s Kingdom, April 15, 1921, p. 115.
5. <그리스도 왕국의 전령> 1921년 4월 15일 115면
6 Ibid., pp. 115, 116.
6 동 저서, 115, 116면
7 Ibid., p. 118.
7 동 저서, 118면.
8 Ibid., p. 120.
8 동 저서, 120면.
9 Ibid.
9 동 저서.
10 The Herald of Christ’s Kingdom, June 1, 1921, p. 163. Interestingly, the November 1, 1921 issue of the Herald published an article prepared by another Bible Student in 1915, in which he presented evidence and conclusions practically identical to those of R. E. Streeter, although he dated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in 588 instead of 587 B.C.E. The 588 date was adopted by P.B.I. in subsequent issues of the Herald. As this man had no connection with P.B.I., he preferred to be anonymous, signing the article with the initials J.A.D. The Beraean Bible Institute, a Bible Student group with headquarters in Melbourne, Australia, also accepted the conclusions of the P.B.I. editors, as seen from their People’s Paper of July 1 and September 1, 1921, pp. 52, 68.
10 <그리스도 왕국의 전령> 1921년 6월 1일 163면. 흥미롭게도, 1921년 11월 1일자 <전령>지에서는 1915년 다른 진영의 성경 연구생이 작성한 기사를 실었는데, 그는 기원전 587년이 아닌 588년에 예루살렘을 멸망되었다는 기사를 실었는데도 불구하고 R. E. 스트리터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증거와 결론을 제시했다. 588년은 다음 호의 <전령>지에 P.B.I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 사람은 P.B.I.와 관련이 없었기 때문에 익명을 선호하여 이니셜이 J.A.D.로 서명되어 있다. 호주 멜버른에 본부가 있는 성경 연구생 단체인 베레아 성경 연구소도 1921년 7월 1일과 9월 1일자 국민일보 52, 68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P.B.I의 편집자의
결론으로 받아들였다.
11 “‘Ancient Israel’s Jubilee Year’ Examined” in the July 1, 1921 issue Of The Present Truth, pp. 100–104, and “Further P.B.I. Chronology Examined” in the September 1 issue, pp. 134–136.
11 1921년 7월 1일호 <현재의 진리>, 100-104면에 "고대 이스라엘의 희년에 관한 연구" 및 9월 1일호 134-136면의 "P.B.I.의 연대기 추가 검토".
12 The Watch Tower, May 1, 1922, pp. 131–132. Other articles published during 1922 were “Chronology” (May 15, pp. 147–150), “Seventy Years’ Desolation (Part I)” (June 1, pp. 163–168), “Seventy Years’ Desolation (Part II)” (June 15, pp. 183–187), “The Strong Cable Of Chronology” (July 15, pp. 217–219), “Interesting Letters: Mistakes of Ptolemy, the Pagan Historian” (August 15, pp. 253–254; this was written by Morton Edgar), and “Divinely-given Chronological Parallelisms (Part I)” (November 15, pp. 355–360).
12 파수대 1922년 5월 1일호 131–132면에 발표된 다른 기사로는 "연대기" (5월 15일, 147–150면), "70년간의 황폐 (1부)" (6월 1일, 163–168면), "70년의 황폐 (2부)" (6월 15일호, 183–187면), "연대기의 강한 끈" (7월 15일 217–219면) 등이 있으며,"흥미로운 편지:이교 역사가인 프톨레미의 오류(8월 15일 253-254면;이는 모오튼 에드가의 글이다.), "신성하게 부여된 연대적 평행성 (Part I)"(11월 15일호, 355–360면).
13 The Present Truth, June 1, 1922: “Some Recent P.B.I. Teachings Examined” (pp. 84–87); July 1: “Some Recent P.B.I. Teachings Examined” (pp. 102–108); August 1: “Further P.B.I. Chronology Examined” (pp.117–122); November 1: “Some Mistakes in Ptolemy’s Canon” (pp. 166–168).
13 <현재의 진리> 1922년 6월 1일호: "어떤 최근의 P.B.I. 의 연구내용"(84-87면); 7월 1일호: "일부 최근의 P.B.I.의 연구내용" (102–108면); 8월 1일: "P.B.I.의 추가된 연대기 연구" (117–122면); 11월 1일: "프톨레마이오스 명부의 일부 오류" (166–168면)
14 The Herald of Christ’s Kingdom, May I, 1930, p. 137.
14 <그리스도 왕국의 전령> 1930년 5월 1일호 137면
15 The Herald of Christ’s Kingdom, May, 1935, p. 68.
15 <그리스도 왕국의 전령> 1935년 5월호 68면
16 Ibid., p. 69.
16 같은 호 69면
17 The year 1934 was still held to be an important date, occupying “a prominent place in chronological prophecy.” In support of this conclusion, the P.B.I. editors referred to a statement by Edwin C. Hill, a press reporter of international reputation, to the effect that “the year 1934 had been a most remarkable one. There had been many important occurrences and developments, he said, affecting the destinies of all the nations of the earth and marking the year 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of history.”—The Herald of Christ’s Kingdom, May, 1935, pp. 71–72. (Emphasis added)
17 17 1934년은 여전히 중요한 시기로 "연대기적 예언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P.B.I는 이 결론을 지지한다. 편집자들은 에드윈 C. 힐의 진술을 인용했다. 명성있는 힐 기자는 1934년이 가장 주목할 만한 해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다. 그는 "많은 중요한 사건들과 발전들이 있었고 이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해를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해 중 하나로 기록하게 했다"고 말했다.ㅡ <그리스도 왕국의 전령> 1935년 5월 71~72면 (강조는 추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