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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떨릴 때 떠난 동유럽 6개국 여행
소정 하선옥
독일>>
2015년 4월 29일 12시 30분 비행기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거제에서 서울행 심야버스를 타고 새벽 4시 40분쯤 남부터미널에 도착 후, 터미널 건너편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공항버스를 탔다. 전날 서울 사는 친구의 남편상 문상을 하고 새벽에 도착했다가, 그날 저녁 다시 서울행 버스를 타고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설레는 내 마음만은 막지 못했다.
공항에 내려 독일행 비행기에 혼자서 티켓을 발급받고 짐을 부치고, 좌석 번호만 가이드에게 메시지로 보낸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11시간 40분의 지루한 비행 시간이지만 언제 또다시 내게 이런 시간이 주어질까. 설레고 들뜬 마음이 없진 않지만 이틀을 거의 못 잔 상태라 컨디션은 별로다. 다행인 건 무릎의 반월상 연골 파열이라지만 수술을 하지 않고 약으로 치료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모든 여건에 감사한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잠에 깊이 들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손을 잡으며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잊어버렸어요. 죄송해요.” 하였다. 놀란 내가 “누구세요?” 하니 이번 일정에 동행하는 가이드란다. 예쁜 여자 가이드가 기내에서 나를 찾아왔다.
이제 한 시간 남짓이면 독일에 도착한다. 어쩌면 아주 옛날 내가 재독 간호사로 왔을 수도 있었던 독일로. 이번 여행의 목적은 크로아티아다. 순수한 물의 향연.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살 날 만큼 보고 싶었다. 비용도 다른 일행보다 80만 원 정도 더 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인원 체크를 하니 총 24명. 부부,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중에 혼자 벌쭘히 서 있는 나를 보며 일행들이 의아해했다. 어떻게 혼자 올 수 있느냐, 무섭지도 않냐고 물었다.
나는 하나도 무섭지 않고 좋기만 한데. 무슨 재미로 혼자 가느냐고 하지만, 떠나보시라.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일인지. 독일 뉘른베르크 호텔에서 1박을 했다. 연이틀을 못 잔 여독이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게 했다. 아침 식사는 깔끔하고 정갈한 치즈와 베이컨, 막 구워낸 모닝빵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창밖을 스치는 짙은 숲과 너른 땅. 대체 에너지 작물로 활용된다는 유채꽃밭. 그리고 길게 펼쳐지는 아우토반. 1차로는 속도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달릴 수 있는 도로. 한 번쯤은 아우토반을 질주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다. 수많은 화물차 행렬.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인천공항과는 달리 오래된 공항이지만 입국 심사는 까다롭지 않았다.
체코>>
가도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포도밭. 로맨틱 가도를 지나 오늘은 8시 20분에 체코의 프라하로 이동이다. 프라하는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정제된 도시. 보도블록의 화강암은 한 번 시공으로 족히 500년은 간다는 말에, 연말만 되면 배정된 예산이 남는다는 이유로 도로를 파헤치는 우리나라와는 상반된다. 카를교, 바츨라프 광장, 틴 교회, 전차인 트램 탑승. 카를교 위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연주들. 감동이다. 아침도 빵. 점심은 빵에 양파스프, 얇은 송아지 엉덩이살 두 조각, 삼겹살 두 점 정도. 저녁도 빵, 송아지 갈비에 양파스프와 커피. 밥 생각이 절로 난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양파스프라서 다행이다.
식사 후 구시가지를 걸어 8시 정각에 펼쳐지는 시계쇼를 보기 위해 천문시계탑 광장으로 갔다. 16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시계의 정교함. 인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프라하의 야경을 보기 위해 카를교 아래로 걸어갔다. 프라하성의 야경을 비추기 위해 밤이 되면 성 아래에 있는 모든 건물들은 커튼을 치고 프라하성의 야경을 돋보이게 한단다. 주민들의 협조가 아름답다.
10시쯤 호텔에 도착해 씻고 한국에 연락하니 한국은 새벽 5시 30분이다. 수다 떨 수 있는 일행이 없다 보니 호젓하게 글도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날,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롬로프를 향해 출발했다. 체스키 크롬로프는 ‘구불구불한 산길’이라는 뜻. 불타바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도시다. 이 지역을 벗어나면 체코는 마지막이란다.
프라하에서 출발 후 버스로 세 시간여를 달려 체스키 크롬로프 성에 도착했다. 강물의 색깔은 검은빛이다. 철분이 많아서란다. 아름답고 예쁜 마을을 성 아래에 두고 영주가 마을을 다스리던 곳. 성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빨간 뾰족 지붕들이 나를 동화 속으로 이끌고, 나는 잠시 열 살 소녀가 된 느낌이다. 작은 장터 안 토굴 식당에서 마늘스프와 쪄서 살짝 구운 닭고기로 점심을 먹었다. 대체로 음식들이 짜다. 소금이 귀하던 시절, 귀한 손님에게는 짜게 대접하는 것이 예의였다고 한다.
체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체스키 크롬로프. 정말 멋지다. 성을 한 바퀴 둘러 내려오던 중, 우리 버스를 기다리며 우연히 쳐다본 버스에서 내리는 한국 아줌마들 중 눈에 확 띄는 모습 하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이름을 불러봤다. 먼 타국에서 이름을 들은 내 초등학교 친구는 “와아!” 하더니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부산에 사는 친구다. 그 반가움을 어떤 말로 표현할까. 부산 거리에서도 만나기 힘든데… 둘이서 부둥켜안고 팔짝거리며 뛰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기서 친구를 만났다 하니 일행들까지 반가워했다.
오스트리아>>
다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알프스 산맥을 넘어 국경을 넘었다. 동유럽의 봄은 우리나라보다 한 달 정도 늦다. 길 옆으로 펼쳐진 민들레의 향연. 여러 종류의 야생화, 개나리, 벚꽃, 튤립.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넓은 초원 위의 밀밭.
약 세 시간여를 달린 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흐르는 뒤른슈타인에 도착했다. 뒤른슈타인성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모습이다. 언덕 위에 지은 집들과 좁은 도로를 돌아 포도밭을 지나 내려왔다. 그곳을 뒤로하고 비엔나에 도착해 석식으로 소시지를 먹은 후 빈 오페라 국립극장 음악회에 참석했다. 참석 인원은 24명 중 5명. 내 평생 잊지 못할 공연을 봤다. 감동이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식사 후 슈테판 대성당의 웅대한 위용을 봤다. 조각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과 장인들의 손길이 대단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쇤브룬 궁전, 여름 별장과 벨베데레 궁전을 돌아보며 그 웅장함에서 왕가의 막강한 권력이 느껴졌다.
국립미술관에서 클림트의 작품 ‘키스’를 보며 어떻게 고개를 저렇게 꺾을 수 있을까, 너무나 사랑했던 연인을 놓지 못하는 아픔일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겨울 별장을 들른 후 공원에 세워진 세계적인 음악가 모차르트의 동상. 그 앞에 누군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인상 깊었다.
점심 후 자유시간 두 시간 동안 빈의 거리를 걸으며 유명하다는 멜랑슈 커피의 달콤함도 맛보고, 아이스크림도 먹어봤다. 우리나라에 줄줄이 엮여 있는 ‘비엔나 소시지’가 정작 비엔나에는 없다는 사실에 웃음이 났다. 일본에서 온 재일교포 부부인 의사 선생님과 처제, 부산에서 온 모녀,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 명은 빈의 한복판을 거닐었다.
그리고 헝가리로 향했고, 저녁 식사 후 다뉴브강 야경을 보기 위해 유람선을 탔다. 부다와 페스트 양옆으로 늘어선 국회의사당과 부다왕궁, 어부의 요새 주변 건물들의 불빛이 강에 일렁이는 모습을 봤다. 화려하고 멋스러웠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옛 도시인 부다로 건너갔다. 어부의 요새, 마차시 교회, 부다왕궁, 겔레르트 언덕 등을 돌아보고 국회의사당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더 넓게 펼쳐진 부다와 페스트의 도시는 강을 중심으로 이쪽과 저쪽으로 갈라져 있고, 잘 정돈된 도시가 한눈에 펼쳐진다. 어젯밤 불빛들의 근원지들이다.
세체니 다리 건너편, 프랑스 식민지 시절 계획 도시로 만들어진 페스트. 빨간 지붕과 푸른 다뉴브강이 흐르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페스트가 건설된 지 150년이라는데, 계획 도시답게 프랑스식 건축물들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영웅광장을 지나 성 이슈트반 성당을 보고 다음 일정인 크로아티아로 향해 출발했다.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버스로 약 6시간이 걸리는 거리. 세 시간쯤 달렸을 때 크로아티아 국경에 도착했다. 문제는 우리 일행 24명 때문이 아니라, 체코인 운전기사가 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벽돌처럼 굳어버린 가이드의 얼굴, 난감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사님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원래 EU 가입국 국민은 여권 없이 운전면허증만으로도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데, 하필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정치적 대립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다시 국경에서 헝가리 쪽으로 넘어와 인접한 슬로베니아 국경으로 향했다. 슬로베니아 국경에서는 여행객들의 여권 검사 후 바로 크로아티아 입국을 허가해준다. 다시 네 시간여를 운행해 크로아티아의 소도시 오굴린에 도착해, 아주 오래된 옛 성주가 살던 성을 개조한 호텔에서 송어구이로 저녁을 먹었다. 토마토에 쌀을 넣어 끓인 스프, 삶은 감자, 브로콜리, 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체코인 기사가 미안하다며 서비스로 준 화이트 와인 세 병. 버스 안에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박수 쳐주고 격려해 준 감사의 마음이란다. 무사히 도착한 안도감에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농촌 같은 느낌이지만 평지에 가까운 너른 땅에는 밀, 감자, 옥수수가 심어져 있고, 아담한 집들은 작지만 예쁜 정원에 꽃 한 포기라도 심겨 있어 소담스러워 보인다. 오굴린의 옛 성주가 살던 성 안의 작은 호텔에서 1박을 했다. 아침 산책 삼아 성 안과 성 밖을 둘러보니, 커다란 물레방앗간의 물레 위로 수로를 따라 쏟아지는 물이 정겹다.
신선한 공기가 막힌 가슴을 뚫어준다. 상쾌하다.
폴리트비체를 가기 위해 다른 팀보다 서둘렀는데, 우리보다 먼저 온 팀들이 많다. 가는 길 양옆은 헝가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시골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라 그런지 빈곤함이 거리 곳곳에 보이고 사람들은 순수해 보인다. 인접 국가와는 달리 산악 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너른 평야도 많았다. 주식은 밀, 감자, 옥수수이며 놀고 있는 땅이 농사를 짓는 땅보다 많았다.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폴리트비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광경이라 탄성만 나온다.
파아란 물빛은 어찌 저리 고우며, 그 물속에 유유자적 헤엄치는 송어 떼들! 작게, 때론 크게 넓게 이루어진 폭포. 파란 물에 씻긴 풀잎과 나무는 전혀 때가 타지 않은 신선함을 품었고, 온 평지를 뒤덮은 노란 민들레의 향연은 순수 그 자체다. 너무 아름다운 풍광. 얼마 전 꿈속에서 본 그 광경이다. 이곳을 오기 위해 나는 몇 번이나 이런 꿈을 꾸었던가. 영화 ‘아바타’의 촬영지로 선택됐을 법한 장소다. 아름다운 폴리트비체를 뒤로하고 슬로베니아로 향했다. 국경을 조금 넘은 후 작은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쇠고기와 삶은 감자를 으깬 요리가 맛있다. 성벽 위 갈라진 돌 틈새로 피어난 민들레. 전혀 식물이 자랄 수 없는 공간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나는 슬며시 말을 걸어봤다. “힘들지? 힘들었겠다. 그래도 너는 참 예쁘고 대단하다.”
슬로베니아의 블레드성. 바로크 양식의 성이다. 건너편 산허리 절벽 위에 세워진 블레드성 아래 펼쳐진, 바다가 없는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호수 블레드호수.
그 가운데 자리한 성당. 호수 위 작은 섬에 지어진 성당으로 가기 위해 사공이 젓는 작고 예쁜 배를 탔다.
성당에 들러 세 번 종을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간절한 소원을 담아 종을 쳤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나와, 블레드성에 반해 북한 김정일이 자청해 슬로베니아 북한 대사를 3년이나 하며 차를 즐겨 마셨다는 호텔 발코니에 앉아, 동경에서 오신 의사 선생님이 사주신 카페라테 한 잔으로 우리 여섯 명은 추억을 나누었다.
오스트리아>>
5월 5일. 오늘은 7시 30분에 슬로베니아에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었다.
세 시간 삼십 분 정도 버스를 타고, 말 그대로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곳곳에 펼쳐진 황홀한 광경, 녹지 않은 설산의 눈. 그 아래쪽으로 띄엄띄엄 자리한 아담한 농가의 풍경들에 넋을 잃었다. 자연의 조화로움, 그림에서 보던 그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호수로 이루어진 할슈타트 마을은 훼손되지 않았고,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이 나라 국민성이 참 뛰어나다. 비엔나는 화려하고 복잡하지만, 이쪽 할슈타트는 정겹고 아름답다. 몬트제 호숫가에서 점심 식사 후 모차르트가 태어났다는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도레미 촬영지인 미라벨 정원, 호엔잘츠부르크 성, 모차르트 생가, 잘츠부르크 대성당, 그리고 오래전부터 형성된 구시가지 게트라이데 거리.
세계 최초의 카페가 생겼다는 곳에서 모카라테 한 잔. 세계 최초라니, 기념으로 마셔보았다.
독일로 넘어가기 위해 잘츠부르크 신시가지에 있는 중국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곳에서 30분이면 독일 국경을 넘는단다. 다시 세 시간 삼십여 분을 버스로 이동해 지금은 독일의 군츠부르크라는 작은 도시의 호텔에 도착했다. 동유럽의 아침은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여행 마지막 날, 아침 8시에 독일 로텐부르크를 향해 출발했다. 약 두 시간 정도 버스로 이동하는 거리. 벌써 우리나라로 돌아가는 날이라니.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아쉽다.
1시간 50분 정도 달려 로텐부르크에 도착하니 날씨는 어느덧 개어 있었다. 성 야곱 교회, 마르크트 광장, 옛 독일 시청사 주변을 둘러보며 예전에 번창했던 독일의 문화를 새삼 느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로 향해 출발했다. 점심 식사는 프랑크푸르트의 ‘길손’이라는 식당에서 동태찌개를 먹었다.
옛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와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분이 운영하는 곳이라 한다. 개운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인데도 내 나라의 맛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인천에 도착하면 나는 또 집으로 가기 위해 서울 남부터미널로 갔다가 심야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할 테지. 힘들었지만 힘들지 않은 여행. 다음 여행지는 북유럽이다. 허기진 내 삶이 조금씩 채워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아직은 다리가 떨리지 않으니까.
10년 전의 추억을 꺼내 보며
2025년 12월 12일

첫댓글 돈 들이지 않고 동유럽 6개국을 참 잘 구경했습니다.
그 중에 유럽에서 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다는 우연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군요.
소설책 한편을 읽은 기분입니다.
귀한 여행기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