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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진원원의 노래 이튿날 위소보는 오삼계의 상처를 살펴볼 겸 평서왕부로 들어갔다. 오 삼계의 둘째 아들이 나와서 접대하며 흠차대인께서 와 주시어 감사한다 고 말했다. 그는 왕야의 상처는 차도가 없으며 지금은 깊이 잠들었으니 깨울 수 없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하국상에 대해서 물었다. 하국상은 지금 군사를 거느리고 이 곳저곳을 순시하며 민심이 동요하지나 않는지, 성 안에 변고가 일어나 지는 않는지 점검하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오응응의 상처가 어떠냐고 물었으나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위소보는 평서왕부에서 그를 의심하고 적의를 품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 다. 이럴 때 목왕부 사람들을 구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아가를 구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다. 잘못하여 왕부를자극하다 가는 아가의 목숨이 즉시 사라지고 자기의 목숨까지 곤명에서 이슬처럼 사라지게 될 것만 같았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그가 전노본, 서천천, 기청표 등과 상의하고 있는 데 고언초가 방 안으로 들어와 한 명의 늙은 여도사가 뵙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위소보는 이상하여 물었다. [늙은 여도사라니? 왜 나를 찾는다는 거요? 공양을 받으려는 건가?] [속하가 그녀에게 어인 일로 찾느냐고 물었더니 그 여도사는 어떤 사람 의 명을 받고 흠차대인께 편지를 갖다드리러 왔다고 하더군요.] 그는 노란 봉투의 편지를 내밀었다.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수고스럽지만 고형께서 뜯어 보시오. 어떤 내용이오?] 고언초는 겉봉을 뜯어 한 장의 노란 종이를 꺼내더니 다음과 같이 읽었 다. [아가가 위험하오....] 위소보는 그 말을 듣자 펄쩍 뛰어 일어나며 급히 말했다. [뭐, 아가가 위험하다고?] 천지회의 군웅들은 구난과 아가의 일을 모르고 있어서 어리둥절해서 위 소보를 쳐다보았다. 고언초는 말했다.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편지에는 서명도 없습니다. 위 향 주께서 편지를 보낸 사람을 따라가 함께 아가를 구할 방책을상의하자는 내용입니다.] [그 여도사는 밖에 있소?] 고언초가 막 대답하려고 할 때 밖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위소보는 번개처럼 뛰어나갔다. 그가 대문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여도사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지키던 시위가 큰소리로 의쳤다. [흠차대신께서 왕림하셨소!] 그 여도사는 몸을 일으키고 허리를 굽혔다. 위소보는 물었다. [누가 그대를 보냈소?] [청컨대 대인께서 걸음을 옮겨 주십시오. 그러면 자연 아시게 될 것입 니다.] [어디로 가오?] [대인께서는 빈도(貧道)를 따라오세요. 지금은 말씀드리기 거북합니 다.] [좋소. 내 그대를 따라가리다.] 그는 부르짖었다. [수레와 말을 준비하시오!] 그 여도사는 말했다. [대인께서는 수레를 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놀 라지 않을 것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여도사를 따라 문을 나서서 함께 수레 위 에 올랐다. 서천천과 전노본 등은 적이 판 함정이 아닌가 싶어 멀리서 그 뒤를 따랐다. 그 여도사가 길을 가리키자 마차는 곧장 서쪽으로 나 아가 이윽고 서문을 나섰다. 위소보는 갈수록 주위가 황량해지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디로 가오?] [곧 도달합니다.] 다시 삼 마장 정도 나아가 북쪽으로 꺾어들었다. 길은 협소하여 겨우 한 대의 수레가 지나갈 수 있었다. 잠시 후 조그만 암자 앞에 이르자 그 여도사는 말했다. [다 왔습니다.] 위소보는 수레에서 내렸다. 암자의 편액에는 석 자가 씌어 있었는데 첫 번째 글자는 삼(三)자이고 나머지 두 자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고언초 등이 멀리서 따라오고 있었다. 위소보는 약간 마음을 놓으 며 그 여도사를 따라 암자 안으로 들어섰다. 둘러보니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고 뜰 안에는 몇 그루의 다화가 심어져 있었다. 전당(殿堂) 중앙에는 백의의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었다. 그 신 상의 모습은 지극히 아름다워 장엄한 보상(寶相) 가운데 가장 예뻤다. 위소보는 생각했다. (소문에 들으니까 오삼계의 마누라 가운데 사면관음(四面觀音)인지 팔 면관음(八面觀音)인지 하는 여자가 있다고 하던데 저 관음보살처럼 예 쁜지 모르겠구나. 제기랄! 대매국노의 염복이 대단하군.) 그 여도사는 그를 동쪽의 편전(偏殿)으로 모시고 차를 올렸는데일진의 향기가 코에 스몄다. 찻물은 파란 빛이 감돌고 있는 게 바로 최근에 새 로 개발된 용정차(龍井茶)였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용정 찻잎을 강남에서 이곳까지 운반하였으니 값이 매우 비쌀 것이 다. 암자 안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여도사인지 여승인지 모르지만 어쩌 면 이다지도 씀씀이가 헤플까?) 그 여도사는 다시 쟁반에 여덟 가지의 간식을 담아 내왔다. 백자로 된 접시에 송자당(松子糖), 소호도고(小湖桃 =米+ ,떡 고로 바꿨음),핵도 편(核桃片), 매괴고( 塊 ), 당행인(糖杏仁), 녹두고(緣豆 ), 백합수(百 合 ), 계화밀전양매(桂花蜜餞楊梅) 등 모두 소주에서 쌀로 만든 간식인 데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었다. 이런 강남 땅의 간식을 위소보는 양주 의 기녀원에서 종종 먹어 보았다. 기녀와 하룻밤 자려고 찾아온 손님에 게 주모는 종종 이와 같은 간식을 대접했는데 위소보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훔쳐먹기도 했었다. 운남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옛친구 와 다름없는 그 간식들을 대하게 되니 마음속으로 크게 기뻤다. (내가 다시 양주의 여춘원으로 돌아간 기분이군.) 그 여도사는 간식을 바치고 즉시 물러갔다. 차 탁자 위에는 구리로 만 들어진 향로에서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타고 있는 향은 아주 유명하고 값이 비싼 단향(檀香)이었다. 위소보는 물건을 알아볼 줄 알았다. 태후의 자녕궁에 갈 때마다 그와 같은 고급 단향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순간 그는 속으로 놀라 부르짖 었다. (앗! 야단났다. 늙은 갈보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벌떡 몸을 일으키는데 문 밖에서 발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한 여인이 걸어들어와 위소보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출가인 적정(寂靜)이 위 대인께 인사올립니다.] 맑고 부드러운 그 음성은 소주의 억양이었다. 그 여인은 사십 세 전후 의 나이에 연노란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눈썹과 눈동자는 그린 듯이 수려하고 용모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위소보는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처음 보았다. 그는 손에 찻잔을 들고 입을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그 여인은 미소지었다. [위 대인께서는 앉으시죠.] 위소보는 넋을 잃고 있다가 곧 말했다. [예, 예.] 위소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바람에 손에 들린 찻잔이 흔들려 옷자락을 적시고 말았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천하의 남자들이 자기를 보기만 하면 하나같이 넋 을 잃는 광경을 수없이 많이 보아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소보는 나이 어린 소년에 불과한데도 자기를 보자마자 얼이 빠지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나이는 젊어도 재주가 대단하시더군요. 옛날 사람 감라 (甘羅)는 십이 세에 승상(丞相)이 되었다고 하던데 위 대인께서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아, 서시인지 양귀비인지 하는 여인들도 반드시 그대에게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소맷자락 속에 있는 옥과 같은 손으로 입술을 가리 고 방긋 웃는데 온갖 교태가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곧 엄숙한 얼굴로 말했디. [서시나 양귀비는 모두 팔자가 센 여자들이지요. 저는 이런 용모를 타 고나 천하 창생을 해치고 고달프게 했으니 그 죄가 적지 않습니다. 그 래서 청등고불(淸橙古佛)을 모시고 애써 참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목탁이 깨어져라 두드리고 불경이 해어지도록 읊어도 옛날의 죄 를 만분의 일도 속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위 소보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미소짓 는 것을 볼 땐 마음이 환해지고 눈물을 흘리자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 게 하는 매력이 흘러넘쳐 그녀를 측은히 여기는 마움이 솟구쳐 올랐다. 그녀가 어떤 내력을 지녔는지도 모르면서 가슴 가득히 뜨거운피가 끓어 올라 그녀를 위해서라면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기꺼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가슴을 치고 몸을 일으키면서 격앙된 음성 으로 말했다. [누가 그대를 업신여겼습니까? 내가 가서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그대에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해내지 못한 다면 저의 머리통을 잘라 그대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는 오른손으로 자기 목을 베는 시늉을 하였다. 이와 같은 대장부의 기개를 보여 준 적은 일찍이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사실 이때 그는 조금도 거짓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흐느끼며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하늘처럼 커다란 의리와 정을 지니신 분이셨군요. 저는 정말 어떻게 보답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그녀는 무릎을 꿇고 살포시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위소보는 부 르짖었다. [안됩니다. 안됩니다.] 그는 즉시 엎드려 그녀를 향해 쿵쿵쿵, 하니 몇 번 큰절을 올리고 말했 다. [그대는 선녀가 하강한 것이고 관음보살이 현신하신 몸이시니 마땅히 제가 그대에게 큰절을 해야 옳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나직이 말했다. [그것이야말로 저의 수명을 감소시키는 일입니다.] 그녀는 손을 뻗쳐 그의 두 괄을 받쳐들더니 가볍게 부축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위소보는 그녀의 뺨에 몇 방울의 눈 물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눈물방울은 수정 같이 맑고 진주처럼 찬연히 빛나는 것만 같았다. 그는 소맷자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가볍게 닦아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했다. [울지 마십시오. 울지 마십시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들은 반 드시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나이로 보면 그의 어머니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용모, 행동거지, 말투, 표정에서 교태가 뚝뚝 떨어지고 가냘퍼 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위소보 는 다시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무슨 일로 괴로워하시오?] [위 대인께서 편지를 보시고 즉시 왕림해 주시니 저는 실로 고마울 따 름입니다.] 위소보는 아이쿠, 하며 자기 이마를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정말 멍청하다. 바로 아가 때문에 왔거늘....] 그는 멍하니 그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다가 비로소 큰 목소리로 말했 다. [그대는 아가의 어머니이시군요?] [위 대인은 정말 총명하시군요. 제가 말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짐작해 내셨군요.] [그거야 쉽지요. 그대들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닮았습니다. 하지 만.... 아가 사저는.... 그대의 아름다움에 미칠 수 없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대는 아가를 사저라고 부르나요?] [예, 그녀는 저의 사저입니다.] 그는 조금도 숨기지 않고 어떻게 하다가 아가를 알았고, 어떻게 그녀에 의해 팔뼈가 어긋났는지, 어떻게 구난을 사부로 모시고 어떻게 곤명으 로 오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기는 아가에게 많은 정을 쏟 고 있으나 그녀는 자기를 조금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속사정까지 솔 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구난의 신세와 자기가 오삼계에게 불리한 일을 하려는 사실은 사태가 워낙 중대하여 슬쩍 감추고 들먹이지 않았 다. 아름다운 여인은 조용히 듣더니 그의 말이 끝나자 한숨을 내쉬며 나직 이 읊었다. [제가 어찌 큰일에 간섭할 수 있겠나이까? 영웅은 정이 많은 것이 당연 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화근 덩어리라고 했습니다. 위 대인께서는 앞으 로 큰일을....] [틀렸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화근 덩어리라는 말을 나는 이야기꾼에 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달기니 양귀비니 하는 미녀들이 나라를 해쳤다 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못난 남자만이 미녀의 유혹에 빠져 나라 를 망치는 것입니다. 예컨대 오삼계가 진정으로 명나라에 층성을 다했 다면 설사 열여덟 명의 진원원을 주었다고 해도, 오삼계는 청나라에 투 항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여인은 몸을 일으키더니 날아갈 듯이 살포시 절을 하고 말 했다. [위 대인께서 밝게 보시니 감사합니다. 천고에 드문 억울한 누명을 쓴 천첩(賤妾)을 위해 변명해 주시니 고맙기 이를 데 없습니다.] 위소보는 재빨리 반례하고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그대....그대는....그대 는....아....아이쿠, 그렇군요. 저는 정말 너 무나 멍청합니다. 그대가 만약 진원원이 아니라면 천하에 어찌 당신 같 은 미녀가 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대는 평서왕의 왕비가 아 니십니까? 어째서 이곳에서 불도에 전념하고 계신지요? 아가 사저는 어 떻게 하여....그대의 딸이 되었는지요?] 그 아름다운 여인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천첩이 바로 진원원입니다.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그러나 천첩은 첫째 로 위 대인께 부탁이 있어서 모든 일을 속일 수 없고, 둘째로 방금 대 인께서 천첩이 억울한 누명을 쓴 데 대해서 변명해 주시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감격했습니다. 이십여 년 동안 천첩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한 큰 죄는 모조리 천첩의 머리 위에 떨어졌지요. 당금 세상에서 오로지 두 분의 재자(才子)만이 천첩이 억울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뿐입니다. 한 분은 대시인(大詩 人) 오매촌(吳梅村) 오 재자(吳才子) 이시고, 다른 한 분은 바로 위 대인입니다.] 사실 위소보는 국가의 대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는 진원원 이 억울한 누명을 썼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놀랍고 절세적 인 요염한 용모를 대하자 마음이 기울어져 좋은 말올 골라 아부를 해댔 을 뿐이었다. 그는 오삼계를 매우 미워하고 있었으며, 또 그녀가 아가 의 모친이니 그녀에게 천 가지 만 가지 잘못이 있다 해도 그와 같은 잘 못을 모두 오삼계에게 덮어씌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자기를 재자(才子)라고 칭하는 소리를 들으니 크게 기뻐서 재빨 리 말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저는 글자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나를 보고 재 자라 칭하시려면 그 호칭에 '개방귀'라는 말을 보태야 할 것입니다. 즉 개방귀 같은 재자 위소보라고 해야겠죠.] 진원원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시사와 문장을 잘 짓는 사람들은 조그만 재자에 불과합니다. 견식이 있고 담량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큰 재자이지요.] 위소보는 칭찬의 말을 듣자 전신의 뼈마디가 녹신거리는 것만 같아 속 으로 생각했다. (이 천하제일의 미녀가 나보고 큰 재자라고 한다. 하하하, 원래 나의 재질이나 감정은 그렇게 낮지 않았다. 제기랄!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이후 이와 같은 칭찬은 처음 듣는구나.) 진원원은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대인께서는 걸음을 옮기시지요. 천첩이 지금까지의 사정을 자세히 말 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는 그녀를 따라 조그만 자갈들이 깔린, 꽃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어 느 조그만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탁자도 의자도 없었다. 바닥에 두 개의 방석이 놓여 있고 벽에 한 폭의 액자가 걸려 있는데 액자에는 글자가 빽빽이 들어 차 있어 글자 수가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옆에 는 한 개의 비파가 걸려 있었다. [대인께서는 앉으십시오.] 위소보가 방석 위에 앉자 진원원은 벽에 걸린 비파를 내려 품에 안고 방석에 앉더니 벽에 걸린 그 한 폭의 글을 지적하며 나직이 말했다. [저것은 오매촌 재자가 천첩을 위해 지은 한 수의 시인데 원원곡(圓圓 曲)이라고 하지요. 오늘 이와 같은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대인을 위해 한 곡조 퉁겨 볼까 합니다. 대인의 귀를 더럽히지 않을까 염려되는군 요.] 위소보는 크게 기뻐서 말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정말 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대가 몇 마디의 노 래를 부르고 난 후에는 반드시 설명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 개방귀 재 자는 학문이 형편없답니다.] [대인께서는 너무나 겸손하십니다.] 그녀는 즉시 현을 다듬었다. 딩동댕, 하고 및 번 통기더니 다시 말했 다. [이 곡은 퉁기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 제대로 퉁기지 못하더라도 이해 하십시오.] [겸손해 할 것 없습니다. 설사 잘못 통겼다 하더라도 저는 모를 것입니 다.] 그녀는 자세를 가다듬고 비파를 몇 번 퉁기더니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정호당일기인간(鼎湖當日棄人間) 파적수경하옥관(破敵收京下王關) 동곡육군구고소(慟哭六軍俱縞素) 충관일노위홍안(衝冠一怒爲紅預) 진원원은 이 네 마디를 부르더니 말했다. [이것은 과거 숭정천자께서 붕어하시고 평서왕과 청나라 군사가 연합하 여 이자성(李自成)을 패배시키고 북경으로 쳐들어을 때 관병들이 모두 황제를 위해 상복을 입었으며, 평서왕이 출병한 것이 바로 이 불길한 사람 때문이라는 내용입니다.] 위소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그토록 아름다우시니 오삼계가 그대를 얻기 위해 대청 나라에 투항한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만약 이 위소보였다 해도 역시 투항했 을 것입니다.] 진원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나이 어린 아이 역시 나를 희롱하려고 드는 것인가?) 그러나 그의 얼굴빛이 엄숙한 것을 보고서야 그가 진심에서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을 깨달았다. 불현듯 그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홍안유락비오련(紅預流落非吾戀) 역적천망자황연(逆賊天亡自荒諒) 전소황건정흑산(電掃黃巾定黑山) 곡파군친재상견(哭罷軍親再相見) 그녀는 여기서 다시 잠시 노래를 멈추고 말했다. [이 시구는 왕야가 이자성을 패배시킨 일을 말하고 있지요. 시에서는 이자성이 큰일을 도모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것은 왕야가 쳐들어 가서 망한 것이 아니고 이자성이 북경을 얻고나서 하는 짓이 황당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왕야는 이 한 구절을 보고 매우 불쾌하게 여겼답니다.] [그렇겠지요. 그가 어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곡에서는 분명히 이자 성을 패배시킨 것이 결코 그의 공로가 아님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원원은 말했다. [이제부터는 천첩의 신세를 읊게 됩니다.] 그녀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상견초경전보가(相見初經田寶家) 후문가무출여화(侯門歌舞出女花) 후허장척리공거(侯許將戚里空車) 등취장군유벽거(等取將軍油壁車) 가본고소완화리(家本姑蘇浣花里) 원원소자교라기(圓圓小字嬌羅綺) 몽향부차원리유(夢向夫差苑裏遊) 궁아옹입군왕기(宮娥擁入君王起) 전신합시채련인(前身合是抹蓮人) 문전일편횡당수(門前一片橫塘水) 음성은 부드럽고 아름답게 흐르고 비파소리는 그윽히 울려퍼지고 있어 마치 미풍이 이는 연못물에 조그만 파문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진원원 은 나직이 말했다. [이것은 천첩을 서시에 견준 것인데 지나친 칭찬이지요.] [견준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되었어요.] 이 말에 진원원은 어리둥절해졌다. 위소보는 계속 말을 했다. [서시를 어찌 그대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진원원은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위 대인께서는 농담을 잘하시는군요.]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지요. 저는 서시 가 절강성 소흥부(紹與府) 제기(諸己)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 니다. 소흥의 여인들은 얼굴은 아름다우나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돼지 멱 따는 것 같다는 속담이 있으니 어찌 그대 같은 소주 여인의 음성처 럼 간드러지고 부드럽겠습니까?] 진원원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하, 그와 같은 속담이 있었군요? 그러나 오왕(吳王) 부차(夫差) 역 시 소주 사람인데 어찌해서 소흥의 여인 서시를 좋아했을까요?] 위소보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오왕 부차의 귀가 잘못됐나 보죠.] 진원원은 입을 가리고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두 눈동자는 호수에 물결 치듯 찰랑거리고 입술을 살짝 벌리고 웃는데 모든 근심을 모조리 떨쳐 버린 듯하지 않은가? 그 바람에 온 방안이 교태스럽고도 아름다운 기운 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온몸이 나른해지고 취해 와 자기 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횡당쌍장거여비(橫塘雙奬去女旿) 하처호가강재귀(何處豪家强載歸) 차제기지비박명(此際猜知非薄命) 차시지유루첨의(此時只有淚沾衣) 훈천의기연궁액(薰天意氣連宮掖) 명모호치무인석(明 晧齒無人惜) 탈귀영항폐양가(奪歸永巷閉良家) 교취신성경좌객(敎就新聲傾座客) 여기까지 노래부르고 그녀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첩은 본디 풍상을 겪은 몸입니다. 속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 다....] [풍상을 겪었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천첩은 본디 소주의 기녀 출신이었습니다....] 위소보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거 정말 묘하군요!] 진원원은 약간 화가 난 얼굴빛으로 나직이 말했다. [그것은 천첩의 팔자가 드세기 때문이죠.] 위소보는 신이 나서 말했다. [그대와 나는 뜻이 같고 가는 길도 같군요. 저 역시 풍상을 겪었습니 다.] 진원원은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말을 해줬는데도 풍상을 겪었다는 말뜻을 모르는구나.) 위소보는 말했다. [그대도 기녀원 출신이고 저 역시 기녀원 출신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 은 소주 사람이고 한 사람은 양주 사람이군요. 저의 어머니는 바로 양 주의 여춘원에서 기녀 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그대와 비교한다면 천양지차입니다.] 진원원은 몹시 놀라며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 말은 농담이시지요?] [농담이라뇨? 아, 저는 그 동안 너무나 바빴습니다. 진작 사람을 보내 어머님을 모셔와 기녀 노릇을 못하도록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여춘원에서 매우 재미있게 사시는데 북경으로 모셔와 오히려 즐겁지 못한 여생을 보내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영웅은 출신이 천한 것을 개의치 않습니다. 위 대인께서는 광명정대하 시고 소탈하시며 조금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니 그야말로 영웅의 본색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대에게만 이야기했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번도 말하지 않았습 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더러 후레자식이라고 욕할 텐데 그 노릇을 어떻 게 감당한단 말입니까? 더욱 아가 앞에서는 그 사실을 들먹일 수가 없 었습니다.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나를 업신여기고 있는데 그와 같은 일 을 알면 아마 영원히 나를 우습게 보고 멸시할 것입니다.] [위 대인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천첩은 결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실 아가.... 그녀의 어머니 역시 명문의 규수는 아니지 요.] [어쨌든 그녀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녀는 기녀를 가장 증오합니다. 기녀들을 나쁘게만 보고 있어요.] 진원원은 고개를 숙이며 나직이 말했다. [그녀는....그녀는 기녀원의 여자가 가장....가장 나쁘다고 하던가요?] [그대는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아가는 결코 그대를 가리킨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진원원은 처연하게 말했다. [그녀는 물론 나를 가리켜 말하지는 않았겠지요. 아가는 내가 그녀의 어머니인 줄을 모르고 있답니다.] 위소보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녀가 모른다구요?] [그녀는 모릅니다.] 진원원은 고개를 돌리더니 넋을 놓고 생각에 삼겨 있었다. 잠시 후에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숭정 황제의 황후 주(周)씨 또한 소주 사람입니다. 숭정 황제는 전 귀 비(田貴妃)를 총애했지요. 황후는 전 귀비와 많이 싸웠습니다. 황후의 부친 가정백(嘉定伯)이 저를 기녀원에서 사서 궁 안으로 들여보냈는데 전 귀비와 황제의 총애를 나눠 가지기를 바랐지요....] [정말 묘책이로군요. 전 귀비는 야단이 났겠구만요.] [그러나 야단이 나지 않았어요. 숭정 황제는 나라 일만 근심하고 여색 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궁에서 머무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황상의 분부에 의해 궁에서 내보내졌지요.] 위소보는 큰소리로 말했다. [이상하군요. 저는 숭정 황제는 눈은 있어도 눈알이 없어 그저 간신만 믿고 원숭환(袁崇煥)과 같은 층신을 죽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남자를 보는 눈이 없을 뿐 아니라 여자를 보는 눈도 없었군 요. 그대와 같은 사람도 마다했으니, 쯧쯧쯧!] 그는 연신 혀를 차는데 마치 천하에서 가장 기이한 일을 들었다는 표정 이었다. 진원원은 말했다. [남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부귀공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금 은보화를 좋아하죠. 그리고 황제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국가 사직을 보 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모든 남자들이 아름 다운 여자를 좋아한다고는 볼 수 없답니다.] [저는 부귀공명도 좋아하고 금은보화도 좋아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더욱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황제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게 시킨다 해 도 그 노릇을 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 이 곤명성에는 그런 노형이 있 죠. 천하에서 가장 높은 벼슬을 하고 천하에서 으뜸가는 갑부이고 천하 에서 제일 가는 미녀를 맞아들였는데도 만족할 줄 모르고 황제 자리에 앉아 보려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진원원은 안색이 변해 물었다. [평서왕을 말하는 것인가요?] [나는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간에 당신 진원원도 아니고 이 위소보도 아니랍니다.] 진원원은 말머리를 돌렸다. [이 곡 가운데 뒷부분은 내가 어떻게 평서왕을 만나게 되었는지를 이야 기하게 됩니다. 그는 가정백에게 저를 달라고 해서 데려갔지요. 그러나 그 자신은 산해관에 가서 변방을 지켜야 했으므로 나를 북경의 그의 집 에 데려다 놓았지요. 얼마 후에 틈왕....이자성이 북경성으로 쳐들어왔 지요.] 그녀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좌객비상홍일모(座客飛觴紅日暮) 일곡애현향수소(一曲哀弦向誰訴) 백석통후최소년(白晳通侯最少年) 간취화지루회고(揀取花枝屢廻顧) 조휴교조출번롱(早携嬌烏出樊籠) 대득은하기시도(待得銀河幾時渡) 한살군서저사최(恨殺軍書底死催) 고류후약장인오(苦留後約將人誤) 상약은심상견난(相約恩深相見難) 일조의적만장안(一朝蟻賊滿長安) 가련사부루두류(可憐思婦 頭柳) 인작천변분서간(認作天邊粉絮看) 거기까지 노래하더니 비파를 멈추고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위소보 는 곡이 이미 끝난 줄 알고는 손뻑을 치며 갈채를 보냈다. [끝났군요! 정말 노래가 좋습니다. 정말 노래가 절묘합니다. 정말 대단 합니다.] 진원원은 처량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만약 그때 내가 죽었다면 곡은 여기에서 자연히 끝나게 되었겠지요.] 위소보는 얼굴을 붉히고 속으로 생각했다. (제기랄! 나는 학문이 없어서 언제나 개망신을 당한단 말이야! 이자성 이 북경으로 쳐들어가자 나의 사조(師祖) 격인 숭정 황제의 곡은 모두 다 끝났다고 할 수 있어도 진원원의 곡조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 가?) 진원원은 나직이 말했다. [이자성은 저를 빼앗아 갔지요. 후에 평서왕이 다시 나를 빼앗았어요.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한 가지 물건에 지나지 않아요. 힘이 센 사람은 누구라도 빼앗아 갈 수 있있죠.] 그녀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편색녹주위내제(遍索綠珠圍內第) 강호강수출조란(强呼絳樹出雕欄) 약비장사전사승(若非壯士全師勝) 쟁득아미필마환(爭得蛾眉匹馬還) 아미마상전호진(蛾眉馬上傳呼進) 운빈부정경혼정(雲賀不整驚魂定) 랍거영래재전장(蠟炬迎來在戰場) 제장만면잔흥인(啼粧滿面殘紅印) 전정소고향진천(專征簫鼓向秦川) 금우도상거천승(金牛道上車千乘) 사곡설심기화루(斜谷雪深起晝樓) 산관일락개장경(散關日落開粧鏡) 전래소식만강향(傳來消息滿江鄕) 오구홍경십도상(烏鉤紅經十度霜) 교곡기사련상재(敎曲技師憐尙在) 완사여반억동행(浣紗女柑意同行) 구소공시함니연(舊果公是銜泥燕) 비상지두변봉황(飛上枝頭變鳳皇) 장향존전비노대(長向尊前悲老大) 유인부서천후왕(有人夫壻擅侯王) 그녀는 '천후왕'이란 석 자를 부르고 다시 멍하니 넋을 잃었다. 이번에 위소보는 감히 그녀에게 노래가 끝났느냐고 묻지 못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노래가 끝났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묻지 말아야지. 그래야만 창피한 꼴을 당하지 않는다.) 이때 그녀는 나직이 하소연하는 투로 말했다. [저는 평서왕을 따라 사천성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는 평서왕에 봉 해졌습니다. 이 소식이 소주에 전해지자 옛날 기녀원의 자매들은 하나 같이 부러워하며 저의 운이 좋다고 했다나요. 그녀들은 나이가 많았지 만 여전히 기녀원에서 그 짓을 하고 있었답니다.] [제가 여춘원에 있을 때 그녀들이 '동방야야환신인(洞房夜夜換新人)'이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진원원은 그를 흘깃 바라보았다. '밤마다 새로운 남자를 끼고 잔다'는 그 말을 하는 위소보가 비웃는 표정을 짓지 않자 나직이 한숨을 쉬었 다. [대인께서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녀들의 고초를 모른답니다.] 그녀는 비파를 다시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지수성명루(當時只受聲名累) 귀척명호경연치(貴戚名豪競延致) 일곡명주만각수(一斛明珠萬斛愁) 관산표박요지세(關山漂泊腰肢細) 착원광풍표락화(錯怨狂風飇落花) 무변춘색래천지(無邊春色來天地) 당문경국여경성(當聞傾國與傾城) 번사주랑수중명(飜使周郎受重名) 처자기응관대계(妻子猜應關大計) 영웅무나시다정(英雄無奈是多情) 전가백골성회토(全家白骨成灰土) 일대홍장조한청(一代紅粧照汗靑)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비파 퉁기기를 멈추고 목메인 음성으로말했다. [오매천은 내가 비록 명성을 떨쳤으나 마음은 괴롭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가리켜 미녀는 화근 덩어리이고 대명나라의 강산을 그르쳤다고 했지만 오 재자는 가냘픈 이 몸이 여자 에 지나지 않아 어떤 능력도 없었음을 알고 있었지요. 그리고 옳고 그 른 것은 모두 남자들이 책임질 일이라고 읊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대청나라의 수천 수만이나 되는 병마가 공격해 들어오는데 그대같이 연약한 미녀가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이와 같이 비파를 퉁기고 말을 해주니 소주의 이야기꾼이 창을 하는 것과 비슷하구나. 내가 그녀를 상대로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말 하는 것을 몇 번 거들어 주었으니 이야기꾼의 조수가 된 셈이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양주의 찻집으로 가서 사람을 모으고 노래를 부르면 양 주성 안이 떠들썩하게 될 것이고 찻집으로 몰려드는 사람은 홍수처럼 불어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이름 덕분에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될 텐데....) 그가 이와 같은 헛된 망상에 잠겨 있을 때 그녀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군불견(君不見) 관왜초기원앙숙(館娃初起鴛鴦宿) 월녀여화간부족(越女如花看不足) 향경진생조자제(香徑塵生島自啼) 첩랑인거태공록(堞廊人去笞空綠) 환우이궁만리수(換羽移宮萬里愁) 주가취무고량주(珠歌翠舞古梁州) 위군별창오궁곡(爲君別唱吳宮曲) 한수동남일야류(漢水東南日夜流) 그녀의 노랫소리는 길게 여운을 남기었고 비파 가락은 점점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차차 노랫소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야 비파소리 가 점차 늦추어져 마치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끝 내 조용해지고 말았다. 진원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흐느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몸을 일으켜 비파를 벽에 걸고 다시 방석에 앉으며 말했다. [곡의 마지막 한 토막은 바로 과거 오왕 부차가 죽임을 당하고 나라가 망하게 된 일을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저는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습니다. 저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어째서 오나라 궁전을 들먹이 는지 몰랐던 거예요. 나를 서시와 비유한다 해도 이미 들먹인 바 있지 않아요? 오나라 궁전? 오나라 궁전? 혹시 평서왕의 왕궁을 가리키는 것 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근년에 이르러서야 저 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어요. 왕야는 군사를 훈련시키고 있으며 극도 로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훗날.... 아! 나는 그에게 몇 번이나 권했지만 오히려 그를 화나게 하는 데 그쳤 어요. 그래서 나는 삼성암(三聖庵)에 출가하여 머리를 기른 모습으로 불도를 닦으며 한평생 지은 죄를 참회하여 그저 모두들 무사하기를 기 원했어요. 그런데 아가가.... 아가가 그런 짓을 할 줄 어떻게 알았겠어 요. 아가....] 그녀는 흐느끼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