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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리교수의“민주당만 빼고”를 읽고서, 웃음이 나왔다.
인간이 성장과정에서 그 바탕이 지식으로만 발전한 인간은 그것을 힘으로 부리고자 한다. 돈으로 부모도 만들고, 애인도 만들 듯이 지식으로 그렇게 하고자 한다. 자신의 의지든, 아니면 힘에 팔렸던 전제(前提)를 설정해놓고, 그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해 가면서 마술을 부린다.
논리적 마술 말이다. 이 분의 칼럼은 전형적인 이런 유형의 글이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전제는 현 집권정부와 여당을 부정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것이 먼저 설정되어 그것을 대한민국에 정동칼럼이란 여론의 마당을 통해서 자신의 지식적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표를 찍었는데, 일본에서 시작 된 움직임이 대한민국 서울 목적지에 도달하자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듯이 꽝! 하고 기승전결(起承轉結)로 목적하던 의도대로 끝맺음을 하고자 했으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왜, 취소를 했는가? 장수가 칼을 빼들었으면 쉽게 칼집에 꽂는 것은 행동이야 쉽지만 그 다음은 자신이 우습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민주당이 이럴 때는 고발조치를 취했으면 법으로 이를 다스리는 데까지 몰아갔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이 ‘임미리’ 교수의 글을 반박하는 확실한 논리로 이의 칼럼이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었다. 어떻게 국가를 운용하는 여당과 정부가 이렇게 쉽게 행동을 하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바로 이런 점이 스스로 문제를 앉고 가는 것이다.
야당은 실수하고 번복하고 해도 여당이나 정부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임미리교수가 권위를 경시하는 뜻한 발언을 하고 국민들을 높이는 전형적인 논리를 폈는데, 즉 이런 배경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현대 강국들의 약소국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깔아가는 전형적인 논리가 아닌가?
본인도 국민이다. 국민 개인의 인격과 권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국가 공동체라는 사회성의 존재는 우리 모두의 개체성은 반납하고 나라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와 정부를 약화시키고, 국민을 앞세우는 것은, 우리 모두가 수용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배경이나 독재가 아닌 순수한 자국 중심의 나라와 정부라 할 때, 국민을 위해서 발언을 하는 것처럼 국민운운 하는 이들은, 바로 오늘 현대의 침략적 배경들이 이런 지식인들을 이용해서 국민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렇게 국민들을 중심으로 해 놓을 때, 나라 구심점인 정부와 그 대표성이 약화되는 것이다. 그럼, 결국 국민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힘을 행사하려할 때, 반드시 사회는 혼란스럽게 되고, 이때 다른 힘들이 우리 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여지(餘地)가 생기는 것이다.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이 잘못 된 것은, 지난 75년 동안 우리의 사회 구조가 우방이란 울타리 배경에서 소리 없이 美日의 영향력이 정치권, 경제, 종교, 학문의 장에 스며들어 왔기 때문에 임미리교수 같은 이들이 자국 정부를 부정하는 논리를 전제하고서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논리를 전개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왜, 임미리교수가 안철수와 같은 부류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이분이 “국민”이라고 강조하는 의미 속에서 너무나 강하게 같은 동류(同類)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어떻게 민주당은 자신들의 주장을 그렇게 쉽게 포기를 하는가? 제대로 짚은 것이다. 포기하니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가?
여기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아직도 정부 여당이란 그릇으로 안착이 안 된 신념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니까 너무 점잖은 성향은 시기를 놓칠 때까지 갈등하다가 만다는 것을 모르는가?
처음 검찰 문제를 거론하면서 시작했다. 이는 은근히 검찰을 지지하면서 검찰보다 못한 정부처사, 즉 검찰과 기 싸움 정도 밖에 안 되는 기(起)를 폈던 것이다. 여기 검찰을 강조하는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검찰이 단순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컨트롤 타워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이 컨트롤 타워와 검찰, 임미리교수, 현여당의 두 인물들, 그리고 안철수 등이 맞아 떨어지는 수가 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렇게 더욱 재미있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 분이 통속적인 내용을 앵무새처럼 입을 벌이는 것 같은 수작을 부리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럴 듯한 논리를 전개하면서 최순실국정농단과 함께 대통령제를 약화 시키려고 동시에 시동을 걸던 의미를 강조하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김무성의원을 비롯해서 지금 한국당의 이전의 여당 안에서 대통령제 약화를 도모하려는 움직임들이 한창 진행되었는데, 이분이 다시 민주당과 정부, 그리고 현 문대통령의 힘을 부정시하고자 대통령제 거론을 다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 분의 색깔이 다시 노출되고 있음이다.
또 통속적인 개념의 전유물인 “정치혐오”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을 민주당의 전적인 책임으로 돌리고자 하는 것으로 연계(連繫)시키고 있다. 물론 이것을 감추고자 한국당을 살짝 건들고 넘어가지만, 그 누가 읽어도 민주당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숨은 의도는 이것이 아니다. 우리사회 정치혐오를 계속 강화해감으로 국민들이 지도자들을 부정하도록 부추기는 지식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지식인들이 학문의 힘을 빌려 국민들을 위한답시고, 국민의 이름으로 이 같은 짓들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수들은 자국에 대한 마음들이 약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마음이 강하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은, 승(承)으로 넘어가면서, 국민들이 얼마나 바보인지 건들고 있다. 촛불집회, “누적수 1,700만 명, 고스란이 대통령 선거에 갖다 바쳤다?” “촛불의 여망을 선거에 담는 순간 모든 것은 문재인 후보를 위해 깔아놓은 주단(綢緞)길”
기(起)에서 검찰문제, 정치혐오 문제로 민주당의 부정 그림자를 강화해서 그런 정부를 세운 것은 국민들이지 않느냐? 여기에 촛불의 위력을 등장시키고, 결국은 그릇 된 인물을 세우기 위해서 갖다가 바친 것이 아니냐? 라며 강한 반문으로 국민들을 일깨우는 질타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특징이 반복된다. 그 하나는 촛불이고, 국민이 주역, 민주당은 차악이란 논거(論據)가 반복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분의 의도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그래서 기승전결 형식으로 글을 발전시켜 결론으로 도출하고자 점진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민주당이 차악인지, 이 부분에서 우리사회 민주주의가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현 민주당이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이에 대해서 부각을 시키려고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여기서 민주당만 빼고, 이 주제를 대입시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나 조직들은 완전할 수 없다. 그 어떤 인간이든, 조직이든 실수하고, 왜곡하고, 문제를 노출할 수 있음이다. 그런데 그것을 데이터화해서 어떤 대상들을 길들이는데 사용하고자 수작을 부리는 여론몰이나 이런 칼럼 등의 지식보고는 목적을 추구하는 자들의 전유물이란 사실이다.
이미 임교수가 민주당을 부정하고, 이런 문제들을 나열한다면, 그럼 최선이 어느 당인가? 한국당? 안철수 이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민주당을 의도하여 부정하고자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면,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최선이 이 둘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들이 민주당보다 나은 점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전(轉)으로 북소리가 더욱 강하게 두들겨지는 것처럼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국민들의 상전” 논리이다. 2016년 최순실국정농단을 기점으로 국민들이 정치권력에 대해서 상전노릇을 하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자 했다.
이 분이 뉴 라이트 출신이 아니기를 바란다. 본인은 이낙연총리께서 임미리교수의 글 때문에 고발을 취소하라고 했다는 주장에 이고리가 뉴 라이트가 아니기를 바란다. 본인은 왜, 뉴 라이트를 심각하게 말하느냐 하면, 어쩌면 이 개념이 본인이 맨 처음 사용했던 강도사 논문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사상을 심도 있게 기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신자유주의가 MB 정권과 함께 출범을 하면서 항일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데, 어딘가 모르게 처음부터 이상하게 상영이 되는 것이었다. 즉, 과거의 항일 영화와 확연하게 달랐다.
또 과거 역사 드라마, 영화, 특히 이순신장군관련해서 영화가 나오는데, 그 안에 왕실과 정치인들의 부정적인 면들이 적나라하게 부정적인 면들이 묘사되고 스크립 되어 집중 조명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이순신 장군께서 그렇게 국란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하고자 했는데 나쁜 정치지도자들에 의해서 억울한 일들을 당하고, 결국은 개죽음처럼 사라지는 모습이 부각되도록 영상처리 기법이 강하게 묘사되는 것이었다.
이것을 임미리교수가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국민들을 부추기기 위해서, 그것은 현 정부나 대통령도 똑 같다는 국민들의 입에서 불만과 부정적인 말투가 나오고 그래서 항거하는 국민들로 만들기 위해서 학술을 전개하는 그런 지식층 말이다.
실현 된 역사를 현대 현실에서 어떤 각도에서 연출하고, 분장하고, 영상처리하는가? 그럼 학문의 기술력이나 학술세미나도 마찬가지이다. 뉴 라이트 학자들이 친일 사관의 관점에서 학술 세미나, 그것을 과거 한국당이 국회에서 그런 교수들을 초청해서 부지런히 인식을 바꾸려고 시도들을 했지 않는가?
임미리교수의 칼럼이 바로 이런 차원에서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전(轉)의 배경이었던 것이다. 왜, 국민들이 상전? 그리고 정치권력의 무용론과 같은 논리전개? 무슨 짓인가? 5천 만 명 국민들이 모두 상전으로 띄우고, 나라 정치권력을 무력화해서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
괜히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지금처럼 나라 국경선이 무너지는 시대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답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라에 대한 마음이 없는 지식인들이 지식을 무기로 해서 국가론,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논할 때, 더욱이 그가 숨은 스파이와 같은 정체불명의 인물이 위장 교수나 박사로 활동할 때, 그 사회는 한 사람의 이런 인물로 여론이 조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고” 상전국민을 주장하면서 일체의 권위를 부정할 것을 간접 독려를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선동가들이 더욱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앞뒤 문맥으로 조화롭게 논리를 전개하여 감동을 주어서는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전국민 위치가 다시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누구에 의해서? 민주당에 의해서, “죽 써서 개줄까 봐 염려했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국민들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일깨우고자 하는가?
민주당은 차악인데, 최선이 없어서 그런 차악을 택했는데 역시 차악이었음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그런 차악이니 국민들의 상전 위치를 빼앗아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민주당을 택한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잖은 어투로 권하면서 결(結)로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다.
이 부분을 위해서 앞에 기승전이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이 결에서 국민들이 살 떨리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서서히 끌어올리면서 마지막 한 방으로 사람들을 넋 아웃 시켜버리는 펜의 힘인 것이다.
이 결에서는 핵심개념 4가지가 작렬하고 있다. 이제는 끊어버려야 한다. 그 배신에는 국민도 책임이 있다.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정당을 길들여보자.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
정말, 웃기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그리고 이 분의 칼럼을 보면서 우리나라 컨트롤 타워들이 다급하기는 다급해졌구나! 라는 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글들, 너무 조직적으로, 쓰여 지는 글들이 총선, 대선이 진행될 때마다 사건 사고만큼 우리사회를 위협하고, 눈과 귀를 막아 흔들어 대겠구나! 라고 말이다.
특히 “국민이 정당을 길들여보자.”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그런데 아는가?하와가 뱀의 달콤한 말에 빠져서 인류를 이렇게 불행으로 내몰았다는 점을 말이다.
글을 맺도록 하자!
우리 정부는 현재 너무나 잘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환경, 어쩔 수 없는 세계적 상황이다. 물론 나라 안에 돈이 안 돌아가니 자영업자 소상공인들, 중소기업인들, 어느 한 둘이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가 좀 더 어려울 수 있다. 무역으로 먹고 살아가는 나라인데, 흑자 그레이프는 올라가는데 자국 내수경제가 안돌아가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정부 문제가 아니다.
어느 정당, 누가 나라를 맡아 국가 운용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정부와 민주당보다 더 잘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중국 무너지는 것을 보라! 세계 거대한 나라 중국도 맥을 추지 못하지 않는가? 하물며 우리 같은 작은 나라는 어떻겠는가?
그나마 이 정도 잘 견디며 인내하고 있고, 여러 부분에서 괄목할만하게 잘 해오고 있다. 본인이 볼 때, 현재는 현정부와 민주당만한 정치정당이 없다고 본다. 좋은 국민은 감언이설에 넘어가 엉뚱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때일수록 자기 정부를 믿고 정부와 하나 되어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는 것이 바른 국민, 바른 자세라 믿는다. 본인은 믿는다. 우리나라가 이 어려운 난국을 잘 헤쳐 나갈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이 살아있는 국민들은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져 가는 국민들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임미리교수는 나라 어려울 때, 힘을 모으려하여 교수의 역할로써 국민들과 나라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어떤 목적의식과 방향을 위해서 자신이 전제한 정부 부정논리에 충실한 반역의 논리일 뿐이다.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위대한 산물이지만, 그것이 자국을 헤치고 어지럽게 하는 주장을 할 때는 자유가 아닌 것이다. 방종을 부추기는 혼란일 뿐이다. 지식은 때론 보편적 사회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겠지만, 자국의 안위와 나라와 민족의 실존을 위해서 절제되어져야 할 필요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충동질시키는 지식은 그 가치가 존귀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참 된 지식은 자신이 고귀하게 발전되는 길잡이가 되면서 자신의 사회를 위해서, 먼저 선택되고, 활용되고, 질서를 따르고자 할 때, 이것이 자유인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자신의 나라를 기준으로 하여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고, 세계 질서를 생각하는 것이 질서이자 자유인 것이다. 이것을 전면 부정하고, 국민들을 부추기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지식이고 높은 사고라 할지라도 이미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악한 목적을 숨기고서 아름답게 미화하며 자신에 세운 설정을 위해서 논리를 전개해 가는 기승전결이기 때문이다. 나라가 나라 되고, 인간이 인간되고, 사회 정의가 사회 정의되는 것은, 임미리 교수 같은 의도 된 논리로 전개해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읽으면서 그때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짜임새 있게 기술 된 내용들이 너무 뻔한 주장들을 펴고, 그것이 선동가처럼 다만 고도의 논리전개로 읽히는 글 때문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당이여! 이런 자들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를!! 얼마나 국민들을 많이 생각하는가? 그런데 이들 말로 화려하게 잘 엮어대는 이들로 인하여 왜, 우왕좌왕 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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