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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시도 때도 없이 넘나들며 전국을 누비고 계신 쇠북 백신종 대사께서 금남정맥과 금북정맥을 가르는 금강하구 백두대간의 종점 서천에 나투셨습니다. 거창군 민주평통자문회의 서천 평통이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거창사람들 25명과 함께 오늘 3일 백두대간을 넘어 이곳 서천에 온 것입니다.
백선배와 반갑게 만나 저도 그들 틈에 끼여 금강하구가 내다뵈는 장항항의 한 횟집에서 오찬을 함게 하고 마침 경남도가 발주하고 장항사람들이 이곳에서 건조한 판옥선과 거북선 진수식에 참여 했습니다.
백선배는 두 배의 무사함을 비는 제례의식의 아헌관이 되어 거북선과 판옥선을 진수시켰습니다.
<관련 사진>
건배사를 하는 백신종 대사
거북선 - 180톤
임진왜란시 주력전함 판옥선. 여기에 덮개를 씌운 것이 거북선
아헌관이 되어 잔을 올리다
통영에서 온 취타대
경남 행정부지사 부인이 첫테이프를 끊음
판옥선 갑판
대장 지휘소
판옥선 내부
거북선 내부
거북선 내부의 작전회의실
화장실
거북선 후미의 낚시하는 곳
돛대 위에 장착한 승리의 상징 꿩털
<거북선 복원 관련 기사>
충무공의 정신 서천에서 되살렸다
거북선·판옥선 복원한 장항사람 전기태·신현택씨
경남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의 기숙사 ‘세병관’ 현관에는 생도들의 교훈격인 ‘옥포훈’이 액자에 담겨 걸려 있다. 마지막 네 번째 항은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임을 자부할 수 있는가”이다.
이 충무공이 왜적을 무찌를 때 주력 전함은 판옥선이었으며 판옥선에 덮개를 씌워 거북 형상으로 만든 것이 거북선이다. 이를 당시에는 ‘귀선(龜船)’이라 불렀으며 이충무공의 전란 중에 쓴 <난중일기>에 따르면 뱃머리에는 용머리를 만들어 붙이고, 그 입으로 포를 쏘며, 배 위에는 쇠못을 꽂았다. 그리고 거북 꼬리 부분과 배 좌우에 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놓았다.
정유재란 때 종군한 이분(李芬)의 <충무공행록(忠武公行錄)에 따르면 거북선은 전투시에 거적으로 덮개판 위의 도추를 덮고 맨 먼저 적진에 돌진하였는데, 적병이 배 위에 올라 덤벼들다가는 송곳에 찔려 거꾸러지고, 또 에워싸고 엄습하려 하면 좌우 전후에서 일시에 총을 쏘아 적선이 바다를 덮어 모여들어도 이 배는 그 속을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공격하여 크고 작은 해전에서 항상 승리를 거두었다.
이같은 충무공의 전승지가 많이 있는 경상남도는 판옥선과 거북선을 복원하여 충무공의 정신을 되살리고 통영과 거제도에 각각 배치하여 관광자원으로 삼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두 배를 복원하는 사업을 맡은 사람들은 장항사람들이었다. 장항에 있는 선박건조업체인 금강중공업의 전기태(51) 사장이 이를 수주한 것이다.
지난해 3월 계약을 체결하고 6월부터 작업에 들어가 진수식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장항읍 원수리 거북선 복원 현장을 찾아 전 사장과 복원사업 현장 책임자인 신현택(59)씨를 만났다.
“15년 전 거북선을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장항은 본래 목선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난 곳으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신현택씨의 말이다. 이러한 기술력이 거북선 복원사업을 맡게 된 주된 이유였다 한다. 백제가 동아시아의 해양강국으로서 이름을 떨칠 때 장항(당시 기벌포)은 그 중심이었다. 백제가바다로 진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대양항해를 가능케 했던 항해술과 선박건조 기술이었다고 한다. 장항은 이 때부터 조선소로 명성을 이어왔으며 연근해 어업을 주도하던 크고 작은 목선을 만들어왔다. 이같은 전통은 길산천 하구의 ‘선소(船所)’라는 마을 이름으로 남아있다.
경남도에서 배를 건조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거북선 복원 작업은 장항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기떼를 쫓아 남지나해까지 오가던 중선배를 만들던 목수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이들을 다시 불러 목선을 만드는데 연로하신데다 이들을 보좌할 젊은이들이 없어 애로가 많았습니다.”
전기태 사장은 목선 건조의 전통이 단절돼가는 안타까워했다. 또한 경남도에서 울진, 영양 등지에서 나는 금강송을 제공해주기로 하였지만 여의치 않아 소나무 목재 확보가 어려웠다 한다.
원광대학교 나종우 박사팀의 역사적 고증을 거쳐 이번에 복원한 거북선은 기존의 2층 구조가 아닌 3층 구조로 만들어졌다. “거북선은 노를 젓고 활과 포를 쏘는 3가지 행위가 동시에 이뤄져야하는데 2층 구조로는 원활한 전투가 이뤄질 수 없다”며 “같은 공간에서 포를 쏘면 노를 저을 수 없고 노를 저으면 포를 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거북선 3층설이 채택된 것이다.
180톤의 거북선은 길이 25.6m, 폭 8.67m, 높이 6.06m 크기이며 판옥선은 280톤으로 길이 41.80m, 폭 12.03m, 높이 9.51m로 거북선보다 훨씬 크다.
사람들은 거북선 하면 이순신 장군만 알지 실제로 거북선 건조를 총감독한 나대용(1556~1612) 장군은 모른다. 15년 전에 복원하여 현재 해군사관학교에 전시된 거북선, 이번에 복원한 거북선과 최초로 판옥선 복원은 모두 장항사람들이 해냈다. 이를 알리고 전통을 이어가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뉴스서천 6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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