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5.12.7.) 말씀/ 시편 95:2 시인의 마음을 주소서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 되었습니다. 가을을 보내기가 아쉬운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시편 저자의 권면 95: 2절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노래하자는 말씀을 주제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시를 지어 즐거이 노래하자! 물론 시라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를 이해하 못하면 성경 말씀을 깊이 이해하는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요즘 시에 대해서 독서하며 배우지 않습니까? “그래도 시는 못씁니다.” 시를 못써도 괜찮습니다. 못 쓰면 시처럼 살면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시를 알든 모르든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서 시인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시를 짓고 있고, 시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마음의 느낌과 감동을 고백하면 그게 시가 되는 것입니다. 은유가 바로 시의 기본입니다. 실례로 우리의 이름들을 보세요. 이름도 한 편의 짧은 시입니다. ‘김재중’. 있을 재, 가운데 중. 중심이 있는 사람의 의미로 인생 전체를 은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축된 의미의 이름을 묵상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재중 집사님도 처음에는 무엇인가 철저하지 못해서 이름을 김철저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평생 중심의 사람이 되어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시라는 것은 그냥 읽으면 너무 싱겁고 재미가 없고 때로는 난해 합니다. 그러나 그 뜻가 의미를 알면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12제자를 불러 사명을 주실 때 먼저 이들에게 특별히 이름을 주어 훈련하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주시고 이들이 과격한 성격을 고쳐야할 문제의식을 가지셨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특별한 이름 반석이라 하여 앞으로 그를 통해 교회를 이루실 하나님의 큰 비전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되엇습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들을 보면 비유가 아니면 전하시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34절) 가만히 보면 모두가 천국을 비유하는 시입니다. 그냥 문자적으로 읽고 이해해서는 안 되고, 비유(은유)를 풀어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자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습니다. 단순한 농사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음미하며 새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비유였습니다. 그냥 겉으로 이해하려 하면 재미도 감동도 없습니다. 그런데 숨겨진 비유와 은유적인 내용을 풀어서 해석하면 깊은 의미를 알게 되고 감동이 있습니다. 여기서 농부는 하나님이십니다. 씨는 천국 말씀입니다. 네 종류의 밭은 네 종류의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좋은 땅은 오직 하나 좋은 밭에 심겨진 씨만이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좋은 마음으로 받아야 결실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만 듣고 깊은 이해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몇몇 제자들만 남아서 그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말씀을 다시 새겨들었습니다. “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은 밭이구나, 염려근심 걱정 불신 세상욕심 이런 것들이 있으면 말씀이 잘 안 들어오고 사단이 빼앗아가는구나! 아 그렇구나! ” 비유를 풀어주실 때 비로소 제자들의 마음에는 천국이 임하고, 기쁨이고 생명과 은혜가 흘러넘쳤습니다.
여러분, 신구약 66권 중에 가장 두꺼운 책, 가장 많은 내용이 기록된 책이 어떤 책인지 아십니까? 시편입니다. 150편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중에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 다윗이 모든 신앙을 삶의 체험을 통해서 기록하며 하나님을 찬미한 시들입니다. 시편 중에서 가장 애독하시는 시는 다 아시겠지만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이 시편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그냥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며 우리가 우리의 필요한 것을 주시고 좋은 길로 안내하시는 분이시다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깊고 감동적인 뜻을 담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기르시는 목자시요 우리는 목자로부터 돌봄을 받는 양으로 비유했습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로, 목자가 없으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지만 목자가 있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두렵지 않은 양! 그래서 결과 은유적 시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심지어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조차도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시가 왜 이렇게 감동을 주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왜 우리는 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헤르만 헷세가 쓴 <삶의 단계>라는 책 중에서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한 곳에 묶어두고 거기에 친숙해지는 순간, 무력감이 우릴 덮쳐온다. 언제나 떠나고 방랑할 자세가 된 사람만이 습관이라는 마비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친숙해지는 것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습관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친숙한 단어들에서 벗어나라! 왜 그렇지요? 친숙해지는 순간 무력감이 덮쳐오고, 습관에 젖는 순간 우리 감각은 마비되기 때문입니다. 친숙해지면 진짜 중요한 것이 보이지 않고 감동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 그는 언제나 떠나고 방랑할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친숙한 것을 벗어 나 낯설게 보는 눈을 가져야 일상의 모든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것도 계속 같은 패턴으로 보고 누리다 보면 식상해집니다. 좋은게 좋은 줄 모릅니다. 카네기의 젊은 시절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양 손 양 발을 움직이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그러나 평상시 감사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한 사건이 그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나는 신발이 없어서 우울했다.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나기까지는”(데일 카네기) 이것이 사물을 새롭게 보게 하는 시의 힘입니다. 시인의 눈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누구나 보는 일상적인 것을 일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단어나 일상적인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좀 낯설게 보고, 낯설은 단어를 쓰고 낯설은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크게 망치로 머리를 때리듯 깊이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것들은 감동이 안 됩니다. 감동이 있으려면 달리 보고 달리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시적 감각입니다. 그렇게 보고 표현을 하면 다른 사람들 역시 달리 보면서 새로운 감동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출근길, 똑같은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어떤 것도 같은 길이 없습니다. 항상 그 자리에 흐르는 것 같지만 똑같은 강도 없다고하지 않습니까? 날마다 같은 길도 마음에 새로워지면 새로운 길이 되고, 새로운 감동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똑같은 길을 걷고 매일 똑같은 사람을 스치고, 똑같은 행동을 하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 같은 태양이 뜨고, 똑 같은 태양이 지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도 그렇습니다. 매일 읽는 성경 말씀이 매일 그게 그거고 똑같다면 성경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을 것입니다. 다 아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는 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롭지 않은 책을 반복해서 읽지 못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찾아 새로운 책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똑같습니다. 똑같은 지구에서 지루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성장하고 변하고 달라지면 새롭게 다가오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도 너댓 번째 읽는데 읽을 때마다 감동이 다릅니다. 내 마음이 읽을 때마다 성장하고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달라져야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우리의 눈입니다. 낯설게 보는 눈, 낯설은 마음 그것이 시인의 눈이고 마음입니다. 다윗이 시를 지어 하나님을 즐거이 노래하자고 한 것은 식상한 언어, 감동 없는 말로 “주여, 주여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하지 말고 새로운 느낌과 감동으로 노래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즐겁게 찬양하자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여러븐,. 우리가 한 번씩 대 자연 밖으로 나가면 너무나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한 번씩 등산도 하고 여행도 하라고 합니까? 왜 다양한 책을 읽으라고 합니까? 그 자체로 즐거운 것도 있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닙니다. 습관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낯선 풍경을 보고 낯선 사람을 만나면서 낯선 생각과 시각을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시인의 눈을 키워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욱 성숙한 마음으로 다윗처럼 감동의 시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글로써 시를 못 써도 날로 새로워지는 우리의 삶 자체가 감동 있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쓰는 글 내가 깨달은 말씀, 한마디 말, 내 모든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일상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다윗처럼 감동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즘 날씨가 아침 저녁 좀 싸늘해집니다. 바다보다 캠퍼스 운동장에 가서 걷기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해가 뜨면 목포대학 산책길을 걷습니다. 걷다 보면 “와” 하고 감탄이 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꽃이 확짝 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때는 단풍이 붉게 물들고, 어떤 때는 길가에 떨어진 낙엽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사진을 찍습니다. 해마다 걷고 보는 똑같은 그 길인데도 걸을 때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내 마음이 작년과 올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데 주변의 단풍이 너무나 예쁘게 물들어있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길을 걷는데 땅에 떨어진 단풍낙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또 사진을 찍어 저장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행기 타고 가다가 의자에 낙옆을 뿌렸다는 레오버스카 글리오의 <삶며 사랑하며 배우며>가 생각났습니다. 글을 써서 올리고 여러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곧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올텐데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특히 한국의 가을 단풍은 한 2주간 지속되다가 끝납니다. 이 한국 단풍이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해져서 K 단풍을 보러 한국에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변화무쌍한 사계절 날씨로 인해서 단풍이 예쁘게 물드는 대한민국 너무나 멋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칩니다. 매년 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분이 글을 읽고 답글을 보냈습니다. 글과 아름다운 풍경에 한참 머물다 갑니다. 그렇습니다. 바쁘게 살다보면 직접 가을 길을 걸으며 갈으르이 단품을 감상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멈춰서서 시인의 감성으로 담은 경치와 글에 공감하며 감상알 수 있습니다. 잘 하는 것입니다. 자칫 깊은 가을의 아름다움을 놓칠뻔했는데 글이나 사진으로라도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하게 목적지로 향해 달려갑니다. 돌아보니 어느새 마지막 저무는 12월 끝자락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분주하게 달려 목적지에 이르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여러분, 삶은 목적지가 아닙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과정입니다. 과정 과정을 충실히 음미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입니다. 그것을 놓치면 목적지에 이르러도 아무것이 없습니다. 허망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시인의 감수성입니다. 시인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인의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주어진 삶을 음미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또한 감동과 감탄으로 하나님을 마음껏 찬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로 납치하다 책을 보면 <지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나는 고요히 앉아, 혹은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존재의 기본 감각을 느끼고 싶고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에 놀라워하고 싶고 나의 호흡을 바라보고 싶고 공기 중의 온갖 소리를 듣고 싶고 구름과 별들로 내 눈을 애무하고 싶다. 일체의 걱정을 내려놓고 크게 웃고 싶고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임을 완전히 깨닫고 싶다. .......중략 빛과 바람의 변화무쌍한 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갈매기와 펠리컨과 제비갈매기와 논병아리와 야생 오리들이 찾아오는 물을 그저 바라보고 싶다. 멀리 떨어진 바위 위나 고독한 해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싶고 새벽 하늘을 응시하고 싶다. 앨런와츠,
와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이 시의 특징은 그냥 지구에 와서 무감각하게 살다가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섬세히 느끼고 싶다는 것입니다. 고요히 앉아, 혹은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내 존재의 기본 감각을 느끼고 싶고, 있는 것과 죽은 것에 놀라워하고 싶고, 나의 호흡을 바라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잘 살아보려고 지구상에 와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지구에 무엇이 있는지로 모르고 후회하며 떠납니까? 지구가 아니라 남해 신안에 살아도 어디 좋은 곳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산다는 것은 단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존이 아닌 삶의 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때론 천천히 머물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이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시인의 감수성을 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도 시인처럼 이 지구상에 있다는 느낌, 이 지구상의 깊은 가을 속에 있다는 느낌도 가져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찬송을 올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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