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세계는 송강호와 어울리지 않는 세계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는 늘 깡패이거나 건달이었다. 중소기업 사장(복수는 나의 것)이거나 국가정보원 요원(쉬리) 혹은 대통령 이발사(효자동 이발사)처럼 권력의 지근거리에 있었어도 언제나 피 흘리고 상처 받으며 거친 세계 속에 내던져졌었다. 그는 산 속에서 라면을 먹으며 훈련을 하거나(넘버3) 판문점 군사분계선 초소에서 초코파이를 먹으며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가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해야 했고(공동경비구역JSA) 남극에서 동상에 걸려가며 눈 덮인 세계를 걸어갔었다.(남극일기).
그런데 [우아한 세계]는 완벽하게, 송강호의 영화다. [우아한 세계]라고 해서 송강호가 우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우아하지 않은 세계에서 발버둥치며 살고 있다. 청과물상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의 진짜 직업은 조폭 중간 보스다. 힘을 사용하여 강제로 서류에 손도장을 찍게 해서 재산을 갈취하는 우아하지 않은 일을 하며 먹고 산다. 조폭은 그의 직업이다. 그의 생활이다.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아내가 있고 유학 간 아들이 있으며 유학 보내달라는 딸이 있다. 수도물도 잘 나오는 공기 좋은 전원 주택에서 우아하게 살고 싶은 소망은 어쩌면 송강호의 영원한 꿈에 그칠지도 모른다.
[우아한 세계]의 강인구는 온갖 장애물을 물리치고 영화의 마지막에 드디어 그가 그토록 소망하던 우아한 전원 주택으로 이사를 한다. 일반적인 조폭 영화의 리듬으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마지막 후일담의 긴 시퀀스는, 역설이게도 그의 우아한 세계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우아한 세계]가 느와르였다면, 그래서 비극적 종말로 가장의 부재를 증명해 주었다면 순간적인 감동은 더욱 커졌을지 모른다. 더 많은 대중들이 극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애의 목적]에서 사실적이고 일상적인 솔직한 연애담을 보여준 한재림 감독은 이번에는 생활인으로서의 조폭을 보여주려고 한다.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한재림 감독은 송강호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처럼 잠시도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오직 강인구 역의 송강호에 의해서만 영화는 전진한다. 모든 것이 강인구에서 시작되고 강인구에서 끝난다. 조연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 들고 마치 일인극처럼 강인구에게로 모든 이야기가 집중된다.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 내 그의 라이벌인 나상무가 등장하고, 그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부인과 딸 등 가족들이 함께 살 새 집을 찾으려는 장면이 등장한다. 생활인으로서의 갈등을 좀 더 세밀하게 보여주기 위해 어릴적 부터 친구이지만 지금은 라이벌 조직에 있는 현수(오달수 분)와의 만남이 등장한다.
강인구와 현수(오달수 분)의 관계는 조금 특별하다.그들은 라이벌 조직의 중간 보스로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어린시절부터 죽마고우로 설정되어 있다. 그들이 각각 조직 내부에서 압력을 받을 때 서로에게 연락을 해서 몰래 만나는 장면은 [우아한 세계]의 일반적 흐름에서 일탈하는 부분이다. 조폭 샐러리맨 강인구로서는 일종의 탈출구다. 숨구멍이다. 화액을 싣고 전력 질주하는 폭주기관차가 잠깐 전원의 맑은 공기나 푸른 하늘 밑에서 쉬고 있는 것 같은 한가로운 여유를 제공한다. 만약 [우아한 세계]가 진짜 비극적 결말로 맺음하는 느와르였다면, 인구와 현수의 관계는 서로의 배신이나 오해로 오히려 더 큰 폭발을 줄 수 있는 복선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아한 세계]의 촛점은 조폭 가장의 비극적 죽음이라는 외형적 사건보다는, 모든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데 사실은 더 큰 비극이 진행되고 있는 내면적 상처의 드러냄에 있다.
강인구를 위협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소속된 들개파 조직의 2인자인 노상무(윤제문 분)다. 강인구는 회장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지만, 회장의 친동생인 노상무는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회장의 신임을 받는 강인구를 제거하려고 한다. 또 하나는 가족 내부의 위기다. 아내 미령(박지영 분)은 조폭생활을 청산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한다. 사랑하는 딸은 아버지가 조폭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강인구가 담임에게 찔러 넣어준 촌지봉투, 현금이 없었다는 이유로 준 2백만원짜리 룸싸롱 할인쿠폰이 집으로 되돌아오면서 딸은 아버지를 증오한다. 아버지가 칼을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고 일기에 쓴다.
강인구가 고민하는 것은 대부분의 샐러리 맨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식들을 잘 키우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 수 있는 쾌적한 집을 구하는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높은 층에 살고 있는 강인구의 가족들은 수도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비누칠을 하고 세수를 하다가 곤란을 겪기도 하고, 공기가 좋지 않아서 쾌적한 곳으로 이사 가기를 원한다. 아들은 유학을 보냈지만 딸은 자신도 유학 보내달라며 부모를 조른다. 강인구는 돈이 필요하다. 그가 조폭 일을 하는 것은 오직,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인 샐러리맨들과 그가 처한 환경은 똑같다.
마치 송강호라는 배우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명해 보여주는 증거 사례들을 모으듯 [우아한 세계]는, 강인구가 체험할 수 있는 극단적인 감정의 폭을 드러내며 관객들이 송강호의 연기에 넋을 잃게 만든다. 강제로 인신을 구금하고 폭행하며 강제적 힘을 사용하여 계약서에 지장을 찍게 하는 그의 악행까지도, 마치 샐러리맨이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어떤 임무처럼 받아들여진다.
[우아한 세계]의 내러티브가 끌어 안고 있는 내용 자체는 기존의 조폭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가령 주인공을 친아들 같은 친밀함으로 대하는 조직 보스와의 관계과 애증으로 변질되면서 복수의 시퀀스로 전개되는 부분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비슷하고, 라이벌 조직에 절친한 친구가 있다는 설정은 [친구] 이후 한국 조폭 영화 계보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며,, 인구와 노상무의 관계처럼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놓고 내부 갈등하는 모습 역시 [넘버 3] 이후 보편화 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우아한 세계]는 상투적인 조폭 이야기의 아류에 불과한가?
아니다. [우아한 세계]는 이렇게 관습화 된 한국 조폭 영화의 코스츔에 크게 기대지 않고 그것들을 사소한 변방의 이야기로 밀어버린다. 그 힘은, 바로 강인구의 일상에 있다. [우아한 세계]가 일반적 조폭 영화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주 다른 이유는, 내러티브의 중심 축이 조직 내부나 외부의 갈등에 있는 게 아니라 강인구의 일상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상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우아한 세계]는 낯익은 이야기를 낯설게 바꿔 버림으로써 돌연 새로운 이미지가 발산되고 상상력이 확산된다. 그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