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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6/25-7/2. p30. SUMMER JOURNEY: The Food Chains That Link Us All (우리 모두를 연결 시켜 주는, 식품 사슬). 식품이란 단순히 우리가 먹는 것 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바로 그 세상에 관해서 표현해 주는 것이다.
C.L.R James는 Trinidad출신의 위대한 essayist로서 그의 좋아하던 sport에 관해서 한 때 글을 썼었다, “cricket만이 알고 있는, 저들 사람들은 cricket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나?” 이와 똑 같은 질문을 식품에 관해서도 해야 한다. 식품을 식품으로 자체로만 생각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태어나서 죽는 일 사이에서의 위대한 전체 인간의 경험에 관한, 핵심, 또는 많은 핵심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식품이란 우리가 먹고있는 것에 지나지 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의 들고 나감을 설명해 주며, 무역과 지정학적인 동맹에 관하여 변화하는 patterns을 반영해 주며, 그리고 우리의 가치관, 위상 및 건강 등을 정의해 준다- 좋던, 싫던 말이다. 19세기 초, France의 미식가 Brillat-Savarin의 유명한 어록, “당신이 먹는 식품을 내게 말해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다,”은 확대 해야 한다. 당신이 먹는 식품을 내게 말해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당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당신이 정치적인 문제들에서 어디에 서있는지, 당신의 이웃들이 누구인지, 당신의 경제가 어떻게 기능을 발하고 있는지, 당신 나라의 역사와 외국 관계, 그리고 환경 상태 등을 말해 줄 수 있다. 식품을 봄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한 때, 음식은 매우 작은 지리적인 지역에서 정의 되었었고, 그 지역 내에서의 생산품과 전통들에 의해서 규정된 적이 있었다. 전쟁들이 있었을 때, 식품은 조금 변경되었다. Arabs인들이 유럽을 정복했었다; 사탕 수수가 그들과 함께 갔다. 중국인들이 일본에 들어갔다. 그리고 콩이 일본 음식 속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이민이 또한 족적을 남겼다. Jews들이 Portugal을 도망칠 때, chocolate를 France의 남서부 지방으로 가져갔다. African 노예들은 frying 하는 조리법과, okra를 (두유의 일종) Caribbean과 미국 남부 지방으로 가져갔다. France에서는 왕가의 결혼식이 있을 때 마다, 요리들은 몇몇 성분들과 요리의 종류를 추가하는 듯이 보였다. Catherine de’ Medici가 14살의 나이로 1533년, Paris에 많은 Italian 요리사들과 함께 시집가려고 도착했을 때, 현대 역사가들은 그녀의 영향력에 의구심을 갖는다. 그와 같은 일은, 때때로 말해지는 것처럼 France의 요리 법에 혁명을 가져오질 못했으나, artichoke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식물)을 북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Louis XVI세가 Lorraine출신의 Marie Antoinette와 결혼했을 때, sauerkraft (cabbage를 저며서 식초로 발효 시킨 것)가 Paris에서 유행했으며, 또한 그녀 보다 훨씬 더 오래 남아 있었다.
Ebb and flow; 들고 나가는 것. 증가/퇴조
Dictum; 어록. 유명 인사가 한 말
음식은 오늘날 보다, 더욱 세계적인 상품이 된 적은 없었다. Franchised된 형태의 superchef (McDonalds와 같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먹거리를 만드는 자/기업)의 부상, 어디서나 편재되어 있는 fusion 음식, 손 쉽게 외계적인 성분들이 국경과 바다들을 건너는 모습들을 보라.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전체 다,는 어떤 현대적인 현상은 아니다. 순수하게 현지 요리들은 항상 드물었다. 향신료 무역을 예로 보라. 부가 Asian, African and American 교역에서 만들어 지고 있을 동안, 유럽의 음식은 지나치게 많은 양의 nutmeg, mace (모두가 향신료), 생강, 후추 및 cinnamon (열대 향신료) 등으로 장식되었다. Spanish 수도사들은 후자 (cinnamon)을 chocolate속에 넣어서, 하나의 외계적인 음식은 또 다른 외계적인 음식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추론했다. 노예 무역은 molasses를 New England를 가져왔으며, 또한 염장 대구를 서부 Africa와 Caribbean지역들로 가져왔다. 한편, 제국 건설을 모색하고 있던 영국 해군은 옥수수를 섞어 먹는 쇠고기를 대서양 지역으로 가져왔는데, 고국에 있던 자기들 국민들이 curry를 먹기 시작했을 때였다. Caribbean 지역에서는, 역사가 끝 없이 연속되는 이민과 정복들로 이루어진 곳으로서, “현지” 음식에는 토속적인 그 어떠한 것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중국마저도 대단한 요리들을 갖고 있는데도, 그들의 전통 음식에 Portuguese인들이 미국 대륙에서 운반해 간, 고추 같은 수입품들로 차있다.
Cooks들이 새로운 상품들과 새로운 ideas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의 역사)에게 접하게 되었던 모든 과정들이 19세기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는데, 교통 수단이 더욱 빨라졌기 때문이다- 가속도가 너무나 걷잡을 수가 없어서, 지난 50년에 걸쳐, 변화는 당혹스럽게 보여왔다. 오늘날 무역은 신속하고 또한 범 세계적이다. 또한 따라서 음식이란 이젠 더 이상 이것의 (고유) 장소 또는 시간을 반영하질 안는다. 이젠 만나는 식품에 의해서, 사람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일년 중 어느 계절에 속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매일같이 Calif.로부터 들어오는 유기 채소들, France로부터 dry ice에 포장 된, 이제 갓 잡은 광어, 신선한 Portuguese산 정어리, New Zealand산 굴, 및 세계의 공항들에 있는 Asia산 향기로운 durian과일 등. 우리 역사 상, 그 어느 때 보다도 더욱, 우리는 식품에서 끝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제공 받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화적 잠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 이 같은 흥분을 수용하는지 모르겠다. Globalization은 또한 평등으로 이어지질 안았다. 식품은 아직 계급주의자로 (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편견을 갖는 사람) 남아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직도 거의가 탄수화물과 지방질 식품을 먹으며, 한편 부자들은 단백질을 먹는다- 이 같은 현상은, first class와 economy class에서의 기내식의 차이에서도 심지어 볼 수 있다. 나는 한 때, 저 탄수화물 diet를 하는 중에, NY City의 어느 점잔은 정찬 식사 자리에 참석해야만 했다. Caviar에서 fish에 이르기까지 모든 호화판 음식들은 나의 regime에 (=regimen; 섭생. 건강을 위한 diet와 운동을 합한 개념) 맞았다. 대형 restaurants들은, 자기들이 판매하는 저 탄수화물의 음식들이, menu판에 설명서 한 paragraph가 부착되어 있으며, 준비하는 음식들은 너무나 복잡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요리하질 못할 정도이다. 가격 또한 너무나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