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대립적 개념을 극복한 ‘반야(般若)’ 중도(中道) 이론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소나-라는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아무리 수행해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는 실망 끝에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나름대로 제법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나 아직도 번뇌를 다 소멸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세속으로 되돌아가 널리 보시행을 하면서 복이나 짓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소나 비구의 고민을 알아차린 부처님은 조용히 그를 불러 상담했다.
“소나여, 그대는 집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집에 있을 때 악기를 잘 다루었습니다.”
“어떠한가. 거문고를 탈 때 줄을 너무 느슨하게 하거나 반대로 팽팽하게 하면 미묘한 소리가 나겠는가.”
“아닙니다. 거문고 줄은 너무 조이거나 늦추면 미묘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소나 비구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수행도 그와 같다. 너무 급하면 오히려 피곤해지고 반대로 너무 느슨하면 게을러진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이 두 가지 이치를 잘 알아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게 수행해야 한다.”
소나 비구는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했다.
그리하여 번뇌가 다 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 잡아함 9권 254경 소나경(索那經, Soṇa Sutta)
불교 수행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양극단을 피하는 ‘중도(中道)’의 실천에 있다.
부처님은 출가 후 6년간 고행 수도를 했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이때 부처님이 행한 고행은 하루에 쌀을 한 톨씩 먹는다든가,
몇 날 며칠을 잠을 자지 않는다든가 하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얻은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건강의 쇠약에서 오는 정신의 혼미였다.
굶주림의 결과는 음식에 대한 무한욕망을 부채질할 뿐이었다.
고행은 무익함을 깨달은 부처님은 강물에 들어가 목욕하고
수자타라는 처녀가 끓여주는 유미죽을 먹고 원기를 회복했다.
이를 본 동료 수행자(나중에 부처님의 첫 제자가 된 다섯 비구)들은 부처님이 타락했다며 모두 떠나갔다.
홀로 남은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로 옮겨 앉아 명상을 거듭한 끝에 깨달음을 성취했다.
후세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이 같은 가르침을 ‘중도(中道)’라고 이름하였다.
양극단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적절한 방법이란 뜻에서다.
이 같은 중도 수행의 요체를 가장 요약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경전이다.
이 중도는 실천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중요한 이론으로 발전했다.
예컨대 대승불교는 두 개의 대립적 개념을 극복한 ‘반야(般若)의 지혜’를 강조하는데
이는 바로 중도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중도의 실천은 비단 수행의 방법으로서만이 아니라 인생살이의 방법으로서도 중요하다.
극단적인 쾌락은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환각적 쾌락을 위해서 마약(痲藥)을 상습적으로 투여한 사람의 말로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술이나 여자,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패가망신 이야기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반대로 지나친 도덕적 엄숙주의도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원리원칙과 꼬장꼬장함은 미덕일 수도 있지만, 융통성이 없으면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맑으면 이웃이 없다(水之淸淨無魚 人之淸淨無隣).’라는 말은
이 경우 매우 적절한 충고다. 극단적 쾌락주의나 그 반대인 도덕적 엄숙주의는 모두 피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걸어가야 할 중도의 길이다.
- 홍사성 – 불교 평론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