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메디쿠스의 아나토미,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시집을 출간한 이 시대의 ‘명의’
김연종|내과의원 원장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medicus curat, natura sanat)’는 라틴 명언이 있다. 그는 의사로서 치료하고 시로써 치유하는 의사 시인이다.
최초의 의학시집인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에서 그의 환자에 대한 연민과 의사로서의 강직한 소명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에 시단에서도 시인의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김연종 원장의 문학적 소양은 군의관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각종 문학지와 소설 등을 독파하면서 글쓰기에 매료되었고, 회보나 사이트에 글을 게제하기 시작했다. 의대시절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시간이 없었던 만큼 문학이란 섬을 향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부단히 헤엄쳐 갔다.
이후 1997년 의정부에 내과의로 개원했다. 환자들을 만나면서 이성과 감성의 접목에 유연하게 된 그는 시와 수필을 쓰면서 2004년 「문학과 경계」로 등단, 제 3회 의사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집 「극락강역」 이후 등단 8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인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를 출간하게 되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
시인들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창작의 어려움을 표현한다. 등단 이후 김 원장은 시를 쓰기 위하여 날마다 새벽에 기상했다. 날계란 같은 어둠의 냄새를 한껏 맡으며 적막 속에서 자연과 사람의 우주적 근원을 찾았다. 모자라는 잠은 점심시간 토막잠으로 보충하며 오로지 의료(醫療)와 시작(詩作)의 생활만을 계속해왔다. 진료실 옆방엔 사방 책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서재가 있었고 그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다.
그는 유년의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의사라는 직업을 택했지만 자신의 병마를 이겨냈듯이 환자들의 건강회복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자 결심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시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는 덕목이 되었다고 보인다.
현장 시는 그 질박한 진정성으로 시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게 된다. 시 분야의 블루오션이라 할 수 있는 의료현장시집에 대하여 그는 “사람이 살아온 인생사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 병원이지요.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이곳에서 날마다 진행되고 있어요. 의료현장에서의 일화를 가슴으로 적다보니 그것이 시가 되었어요.” 라고 말한다. 서문에서 그는 편집과 강박으로 인한 언어의 반신불수 불면증, 실어증, 기억상실증... 등이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 얻은 병이라고 말하는 만큼 의사시인으로서의 힘겨움을 짐작할 수 있다.
의사시인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근 의사시인협회도 생겨 시선집도 출간하고 그 활동범위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존의 의사시인도 있지만 의학시집의 출간은 김 원장이 최초다. 다양화의 21세기, 시 분야의 틈새를 선점하여 차별화한 예가 되었다.
‘연명치료 중단을 고(告함)’, 환자의 입장에서 고뇌하는 시인의사
시집에 실린 60편의 시에는 의술의 한계에 대한 회의, 환자에 대한 연민, 의사로서의 양심적 선언 등이 드러나 있다.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와 「히포구라테스 선서」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는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히스테리 발작중이다’라고 고백한다.
특히 ‘안락사와 존엄사’의 대수대명(代數代命)에 있어 소신 있는 의료행위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치료하면 생존확률 0.01% 방치하면 99.9% 치사율 사이에서 고뇌한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에게 주기도문만 반복적으로 외워대는 중환자실의 내과의사는 마침내 연명치료를 중단을 고(告)한다.
“나는 죽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담보로/ 삶의 고통을 덜어내고자 함도 아니다/ 그저 마지막 길을 당당하게 걷고자 함이다/ 이제 모니터로는 남은 생을 기록할 수 없으니/ 내 몸에 부착된 고통의 계기판을 제거하고/ 가장 편안한 단추의 상복을 부탁한다/ 덩굴식물처럼 팔을 친친 감고 있는 링거줄/ 산소처럼 고요한 인공호흡기/ 울음 섞인 미음을 받아 삼키던 레빈튜브/ 충전이 바닥난 심장을 감시하느라/ 한시도 모눈종이의 눈금을 벗어나지 못한 / 심전도 모니터링을 모두 제거해주기 바란다(「연명치료 중단을 고(告)함」 부분)
동네 의원, 동네 의사로서의 호모 메디쿠스
김 원장은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가 ‘명의’라고 생각한다. 그의 편안함에 노인들께서 꾸준히 찾아오시고 자연히 노인성질환과 만성질환에 주력해왔다.
환자 중에는 정신과 병력이 있는 환자도 있었다고 한다. 고통과 멸시로 성난 사자 같은 그 사람을 동네가 모두 외면했지만 십 년 이상 상담해 주다 보니 어느 해 부터인지 술을 멀리하고 전화 통화도 예절을 갖추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 사람으로 바뀌더란 것이다.
시 치료도 학문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는 만큼 시인의사로서의 치료는 육체와 정신의 치유에 있어 금상첨화라 하겠다. 그는 시인과 의사로서의 소명을 위해 체력을 다지는 일도 힘써 한다. 주말이면 불암산, 수락산을 찾아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재충전한다.
시인의사로서 살기 위해 동네의원을 선택한 김 원장은 지천명에도 청년의 용모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시집이 기대된다.
Homo medicus / 김연종
나의 텍스트는
피와 살과 뼈로만 기록되어 있다
도제 시스템으로만 단련되어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
세균을 혐오하지만
오직 세균의 힘으로만 부패한다
한 번 피맛을 본 후론
달콤한 적포도주로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바스락거리는 뼈맛을 느끼고 나선
부드러운 육질을 거부한다
두개골은 갑각류의 등딱지보다 단단하고
매끈한 피부는 사나운 짐승의 가죽보다 질기다
박쥐처럼 초음파를 이용하고
동굴 같은 내시경을 들여다보지만
몸 속 깊은 슬픔의 발원지를 찾을 수 없다
만약 내게 투시경이 주어진다면
옷 속에 감추어진 외부성기가 아니라
욕망을 감추어둔 내면의 장기를 훑고 싶다
캡술 내시경처럼
입에서 항문까지 구불구불한 텍스트를
구석구석 밑줄 긋고 싶다
형광펜처럼 빛나는 고독의 가시부를 다시 찾고 싶다
오진과 오독 사이에서 또 하루를 탕진하였다
부패와 발효 사이 아찔한 칼날 위에서
오늘도…
온통 오류투성이다
첫댓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계속되는 문협의 도약과 발전을 소망합니다^^
아직 청년의 용모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겠네 오진과 오독한건 아닐 것이네 그 젊음으로 쭉쭉 뻗어나가시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것만도 힘든 일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시를 쓴다는 것,
삶에 충실한 시인님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