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에 의하면 인간세계는 중생들의 업력(業力)에 따라
사주(四洲)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그 사주(四洲)의 중생은 업력에 따라 수명도 다르다고 한다.
동승신주(東勝身洲)의 중생은 3백 세를 산다고 하고,
서우화주(西牛貨洲)의 중생은 2백 세를 산다고 하며
북구로주(北拘盧洲)의 중생은 천세를 산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 중생이 사는 세상
남섬부주(南贍部洲)의 중생은
고작 100세를 넘기도 힘들다.
왜 유독 남섬부주에 살고 있는 우리들 중생만 그 수명이 짧은가?
부처님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때에
네 가지 일로 말미암아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다.
이른바 넷이란,
첫째는 항상 머무는 것도 반드시 항상 머물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부귀영화를 누리더라도 언젠가는 빈천해지는 것이며,
셋째는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이고,
넷째는 건장한 이도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라고 했다.
첫째와 넷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오음성고(五陰盛苦) 의미를 말하는 것이고,
둘째와 셋째는 팔고(八苦) 중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삼독(三毒)과 오욕(五欲)에
갇혀 살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하면서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에 끌려다니게 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번뇌를 벗어나고 생사를 벗어나
영생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의지할 곳은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이라고
부처님은 유촉을 남기셨다.
이것 외에는 다른 일체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범부 중생이 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기에는 세속의 욕망이 깊어
이를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집트에 예지력이 뛰어난
<샤 화루크(sha farouk)>라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대신(大臣)들이 왕에게 물었습니다.
『폐하 이후에 어떤 왕들이 통치하게 됩니까?』
그러자 왕은 서슴없이 말했습니다.
『5명의 왕이 출현할 것이다.
영국의 왕, 사랑의 왕, 다이아몬드의 왕, 사교계의 왕,
그리고 도박의 왕이다.』
영국의 왕이란 권력을 상징한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는 투표로서 권력을 쟁취한다.
오늘날 선거는 자질(資質)이 아니라 머릿수로 결정된다.
그래서 표를 얻기 위해서는
“조상의 묘도 팔아치운다”라고 할 정도로 탁해졌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 양심도 도덕도 친구도 정의란 것도
모두 팽개쳐 버린다.
사람들이 살아 가는 삶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특별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다른 <독특함>을 찾는 사람이다.
독특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본성이고
특별하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특별함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고,
독특함은 결코 비교를 수반하지 않는다.
독특함은 종교적이고 특별함은 정치적이다.
특별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고귀하고 우월하며
다른 사람은 당신보다 비천하고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림이다.
이런 사람이 정치를 하고 권력을 잡으니,
세상은 빈부와 세대 간의 갈등과
온갖 번뇌의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왕이란 애욕을 말한다.
성(性)은 타고난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본능이 오로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될 때 사회윤리가 무너지고
각종 성범죄가 야기된다.
“모든 범죄의 뒤에는 여자가 있다.”라는 말이 있지만
성의 문제는 남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여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애욕이 충족되지 않으면
미움과 시기, 질투가 따르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그러므로 <신심명>에 이르기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도가 통연히 명백해진다」라고 한 것이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애욕의 마음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재물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 생명이다. 돈이 곧 재산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돈이 신처럼 숭배되는 사회가 되었다.
심지어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라고 까지
말할 정도가 되었다. 돈이란 신 앞에는 나라도,
부모도, 친구도 모두가 의미가 없다.
오로지 돈이다. 그래서 돈 때문에
인륜이 파괴되고, 각종 범죄가 야기되고 있는 것도
인간의 끝없는 이런 재물욕 때문이다.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동정호에 수장시켜 버린 세계불교의 삼대 거사 중 한 분인
방거사의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현대인들은
십중팔구 미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수행이란 마음 닦는 것을 말한다.
내 본래의 마음을 찾아가는 길이다.
재물이란 얻어도 만족이 없고 잃으면 더 큰 괴로움이 따른다.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원하고
얻고 나면 지키기 위해서 걱정이 따르는 것이 재물이다.
그러면서도 재물을 놓지 못하는 것이
바로 중생의 탐욕이요, 어리석음 때문이다.
사교계의 왕이라는 특정 각종 동아리나 동우회,
친목 단체의 우두머리가 됨을 말한다.
그 특정 집단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것도
정치적, 기업적인 측면, 사회활동을 위한
지원단체가 될 수도 있고, 열성팬 조직과 같이
특정한 이익을 위하거나 인기몰이를 위해
형성된 무리도 될 수 있다. 요즘은 유명 탤런트나,
인기 연예인, 운동선수 등을 지원하기 위한 무리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는 겉으로는 대중적, 공공의 이익을 내세우지마는
안으로는 당리당략을 추구하고, 특정인을 지원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드높이고 영달을 취하고자 하는
욕망과 대리만족감에서 기인됨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도박의 왕이란 일확천금을 꿈꾸는 자,
요행을 바라는 자를 의미한다.
성실하고 정직한 자가 발붙이기 어려운 세대가 되다 보니
한순간에 기회를 잡고자 하는 욕망이 일어나는 것이다.
10년 20년 일터에서 일하는 것보다
하루 저녁 운이 좋으면 카지노(casino))에서,
때로는 복권당첨으로 일확천금을 얻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열심히 성실하게 정직한 삶을 일깨우는 인성 교양보다는
가수나 운동인, 연예인이 되어 출세하게 되면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게 되니
삶의 가치, 진정한 행복의 가치가 전도되고
오욕의 욕망만 키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요행의 기회를 부추기는 것은
특정한 성향의 기회주의자를 양성하는 요람이 되는 것이다.
사주(四洲) 가운데에서도 가장 수명이 짧은 것이
남섬부주에 살고 있는 우리들 중생이다.
그나마 주어진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섯 왕에 의존해도 죽음은 면할 수 없다.
삼독의 번뇌와 오욕락의 번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번뇌란 심신(心神)을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하여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이 번뇌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이 번뇌를 없애려면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마땅히 생(生)하지도 않고
멸(滅)하지도 아니함을 생각해야 한다.
마땅히 생(生)하지도 않고 멸(滅)하지도 아니함이란
선(善)하지 않는 것은 생하지 아니하고,
선(善)한 법은 멸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선(善)하고 선(善)하지 아니함의 근본은 이 몸이다.
이 몸이 있기에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허망 분별을 일으키고
그 허망 분별이 전도(顚倒)된 망상을 지어내기 때문에
생사 등 일체 번뇌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유마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경은 그 전도망상의 근본을
머무는 데가 없는 것(無住)이 근본이라고 했다.
경에서는 열반을 무주(無住), 무상(無相),
무원(無願). 무작(無作)이라고 한다.
깨달음 즉 해탈의 구경을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는 데가 없다는 말은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죽음은 싫지만 삼독의 번뇌가 깊으면
깊을수록 이는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 된다.
무엇에 의지하고 무엇을 믿을 것인가?
죽음 앞에서는 자식이 있어도 믿을 수 없고
부모 형제라도 믿을 수 없으니
죽음이 앞에 닥칠 때는 어떤 절친한 이도 믿을 수 없고
누가 나를 대신할 수도, 피할 수 있는 곳도 없다.
오로지 믿고 의지해야 할 곳은
이 몸에 대한 전도망상의 분별을 깨트리는 길뿐이다.
그것이 죽음을 벗어나는 길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깨달으면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몸은 허물어지고 흩어져 불과 바람으로 돌아가지만,
영구히 신령한 한 물건(마음)은 하늘땅을 덮는다’. 고 하였고
영가스님은 마음속에 마니주를 있음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기에
「오음(五陰)의 뜬구름이 부질없이 오가며
삼독(三毒)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한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진: 파주 보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