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 132주년 맞아 그 후손들에게 연금 준다는 뉴스를 보고
혹시 그 후손이 "전봉준이 저기 숨어 있다"고 신고하고 잡혀갈 때 박수친 동학교도 현손(4대손), 내손(5대손) 아니던가?
혹시 그 후손이 "교주 최시형이 저기 숨어 있다"고 신고한 동학교도들 현손이나 내손 아니던가?
혹시 그 후손이 부적 붙이면 총알도 비켜간다며 무작정 기관총 앞으로 달려간 우금치 동학교도들의 현손이나 내손 아니던가.
전봉준 신고한 동학교도 중 1등은 군수로 제수되고, 나머지도 1000냥, 300냥, 200냥 받았어. 전봉준 잡을 때 도와준 마을사람 9명도 각각 200냥씩 받았다더군. 그러니 그 사람들 후손은 연금 대상자에서 빼란 얘기지.
아, 물론 윤석열이 잡기 위해 애쓴 이놈 저놈 저마다 뱃지 달고, 자리 받고, 출세한 거로 치면 뭐 세상 일이란 다 그런 거야.
132주년 기념하여 동학군 포고문 조금 보여줄게.
전봉준과 지도부가 머리 맞대어 쓴 이 따위 포고문이 동학 농민 운동 정신이란다. 알고나 그 돈 받아.
- 우리 임금께서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자애롭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며, 신통력 있는 명확함과 성스러운 명석함을 지니셨다. 현명하고 어질며 바르고 강직한 신하가 전하를 보좌하여 밝게 한다면 요순(堯舜)의 덕화와 문경(文景)의 통치를 손꼽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신하라는 자들은 나라에 충성을 다할 생각하지 않고 다만 녹봉과 지위를 도둑질하며, 전하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하고 뜻만 맞추면서 충성을 간하는 말을 요사스러운 말이라 하고, 정직한 자를 비도(匪徒)라고 한다...
안으로는 나랏일을 도울[輔國]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을 학대하는 관리가 많아, 백성들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변하였다. 집 안에 들어가서는 즐겁게 살아갈 생업이 없고, 밖에 나와서는 몸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 학정이 날마다 심하여 원성이 그치지 아니하니,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 상하의 명분이 뒤집어지거나 무너져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사유(四維)가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하였으니, 지금의 형세는 옛날보다 더욱 심하다. 정승 이하부터 방백과 수령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위태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배를 불리고 자기 집안을 윤택하게 할 생각에만 골몰하고, 관리를 선발하는 통로를 재물이 생기는 길로 생각하여 과거 시험을 보는 장소는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가 되었다. 나라의 많은 재화와 물건들이 나라 창고로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개인 호주머니만 채우고 있다. 또한 나라빚은 쌓여만 가는데 아무도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교만하고 사치하며 방탕한 짓을 하는 것이 도무지 거리낌이 없다(전봉준은 이 모든 일의 주범이 왕인 줄도 모르고 있다). 전국은 모두 어육(魚肉)이 되고 모든 백성은 도탄에 빠졌는데도 수령들의 탐학이 참으로 그대로이니, 어찌 백성이 곤궁해지지 않겠는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바, 근본이 쇠약해지면 나라도 쇠약해진다. 나랏일을 도와 백성을 편안하게 할(輔國安民) 방책은 생각하지 않고 시골에 집을 지어 오직 혼자만 온전할 방법만을 찾고 오로지 녹봉과 지위를 도둑질하니, 이것을 어찌 도리라 하겠는가...
우리는 초야에서 사는 백성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먹고 임금이 준 옷을 입고 있으므로 나라의 위태로움을 좌시할 수 없다. 이에 전국은 한마음으로 수많은 백성과 의논하여 오늘 이 의로운 깃발을 들어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만들 것을 죽음으로써 맹세를 하였다.... 모두 임금의 덕화(德化)를 입을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겠노라...
- 전라도 사람 황현이 기록한 동학농민운동의 민낯
전라도 광양과 구례에서 활동한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기록한 <연오하기문(梧下紀聞)>에는 동학농민군이 저지른 약탈과 폭력을 상세히 적었다. 그는 탐관오리의 부정부패도 굉장히 날카롭게 꾸짖었으나, 동학군의 급진 폭력과 무질서 역시 생생하게 기록했다. 황현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東學之徒 遍滿邑里 肆行剽掠 巨室巨族 多被殘滅 甚者至淫人妻女 奪人財物 凡平日之有睚眦者 輒以東學告之 無不立碎 國法蕩然 人無固志(동학 무리가 고을과 마을에 가득 차서 제멋대로 노략질을 일삼았다. 큰 집안과 유력한 가문이 대부분 참혹하게 멸문당하고, 심한 자들은 남의 처녀와 부녀자를 욕보이고 재물을 빼앗았다. 무릇 평소에 눈을 흘기며 앙심을 품은 자가 있으면 번번이 동학에 고발하여 즉시 박살 내지 않는 법이 없었다. 나라의 법은 완전히 무너지고 백성은 안심하고 살 뜻을 잃었다)
匪徒自設執綱所 擅行威福 捕殺官吏 拷訊士族 遠近震駭 道路斷絶(동학 무리들이 스스로 집강소를 설치하여 제멋대로 권세를 부렸다. 관리를 잡아 죽이고 사족(선비 계층)을 고문하니, 멀고 가까운 곳이 모두 두려워 떨고 길마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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