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설계,창출했다는 왕의 남자 이재오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이재오를 가리켜 흔히 '왕의 남자'라고 부른다. '왕의 남자'는 이재오의 정치적 위상을 웅변하는 권력적 '전매특허'다. 이처럼 거창하고 독보적인 수식어가 따라 붙는것은 이재오가 이명박 정권의 최고 권력실세이자 대통령 이명박의 최측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이명박은 친형인 섭정대왕 이상득외에 이재오를 빼면 정치적 시체나 다름없다.
이재오가 있기에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고 존재한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이재오는 이명박 정권 설계사이자 정권 탄생 특등공신이다. 이명박을 대선후보로 나서도록 권유한데 이어 박근혜 전 대표와 건곤일척의 대결을 펼쳤던 당내 경선에서 승리를 안겨주고 대선에서 결정적 역할로 정권 창출의 주역이 되었다. 이러한 공로로 이재오는 명실상부한 이명박 정권 제2인자의 위상을 구축하였지만 반면에 당내 권력지형을 양분하고 있는 친박계로 부터는 정치적 숙적으로 낙인 찍혔다.
정권 창출의 특등공신,왕의 남자,정권 제2인자라는 정치적 영광은 정권 출범후 지러진 제18대 총선에서 자신에게 3선의 정치경력을 쌓아주었던 정치적 보금자리 은평(을) 에서 창조당 문국현 후보에게 패해 낙선하면서 정치적 고난의 행군으로 바뀌었다. 전직과 현역간의 정치적 위상은 하늘과 땅차이다. 물론 정권 최고실세,왕의남자 이재오에게 낙선은 큰의미가 없을 수 있다. 대통령 이명박을 수렴청정하는 섭정대왕 이상득과 이재오 본인을 정치적 궤멸 대상으로 규정한 박근혜 전 대표 중심의 친박계가 존재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럴수 있다.
그러나 이재오 자신과 함께 친이계를 양분하는 이상득계의 입장에서는 이미 정권이 출범한 상태에서 강만수,최시중 좌우 섭정소왕과 함께 국정을 장악하고 수렴청정을 해나가는데 있어 권력 지향적 집념이 남다른 돌쇠 이재오를 걸림돌로 여길 수 있다.따라서 할수만 있다면 토사구팽시켜야할 이재오의 낙선은 이상득계로서는 이재오를 권력적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는 호재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차기대권을 노리는 친박계 또한 이명박 정권 집권기간 당내 역학구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명박의 대리인인 이재오가 사라져 줘야 하는 것은 희망사항을 넘어 계파생존과 대권구도상 묵인 불가능한 최우선 과제일 수 밖에 없다. 이재오의 낙선은 이러한 이상득계와 친박계의 정치적 이해를 충족시키는 해결책으로 안성마춤이었다.
권력과의 연결고리이면서 권력실세의 기본자격 기준인 현역 신분을 상실한 끈 떨어진 이재오는 이상득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날려 보낸 무형의 권풍과 친박계의 박풍을 견디지 못하고 태평양 상공으로 날려가 아메리카로 곤두박질 쳤다. 미국땅에서 일년 가까이 강연장을 뒹굴며 정치 노숙자를 전전하며 필수품으로 들고간 국내 권력동향 감시용 안테나와 망원경을 이용하여 시시각각,주야장창 정권 심장부와 여권 정치지형의 변화 추이를 살피며 자나깨나 귀국 기회를 엿보았다.
마침내 미국에 위리안치된지 10개월쯤 되어 친박계의 영향력과 자신에 대한 경계심이 약화되었다는 판단이 서자 행동을 개시하였다. 이재오는 이명박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감고 있는 앞에서 이상득과 친박계가 쏘아대는 연합권력 장풍을 노숙자 보따리로 맞받아 치며 태평양을 건너 서울 입성을 결행한 것이다. 귀국후 이재오는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못하는 이상득과 친박계를 특유의 납짝 엎드리기로 안심시킨후 상전 이명박을 전광석화 수법으로 압박하여 '국민권익위원장' 이라는 감투를 만들어 쓰고 '민원 해결사'와 '강연정치'로 자신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과시하면서 권력 실세의 위상을 확고하게 업그레이드하였다.
재보선 승리로 위기에 처한 이명박 정권 구출한 수호신
이재오가 왕의 남자이자 권력 2인자로서의 권력실세로 다시금 자리매김 하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민생경제 파탄,권위주의 역주행에 의한 민주주의 위기,대북 강경 대결고수와 천안함 사태 자초에 의한 남북관계 파탄및 안보국난,세종시 사태,국토환경생명파괴 4대강 강행,사찰및 고문사태,망국외교등 총체적인 국정실패에 대해 국민이 지방선거를 이용,처참한 정권심판을 가한게 이재오의 입장에서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향방과 정치적 기회를 거머쥐는데 있어 삵괭이를 능가하는 동물적 감각을 지녔다는 이재오가 권력실세 위상을 굳히는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올 이러한 기회를 놓칠리 없는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재오는 귀국후 부터 3선고지를 쌓을만큼 난공불락 불패의 철옹성을 쌓아 놓았다고 자신했던 정치적 보금자리 은평(을)에서 4선 감투를 빼앗아 간 문국현이 자신의 정치적 기사회생을 위해 이명박 정권이 던진 기획성 사법 올가미에 걸려 의원직을 잃자마자 재보선을 향해 바닥 표심 갈기를 계속해 왔었다.
두더지처럼 지역구를 누비며,형님,아우,아버지,어머니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재오가 이제 정신을 차리는것 같다"라는 말이 나올때쯤 여권이 지방선거에 참패를 하면서 이명박 정권이 인적 개편,국정쇄신 압박과 함께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리자 이재오는 재보선 승리를 통해 위기에 처한 이명박 정권을 구출하는게 이명박의 레임덕을 막고 자신이 사는 길임을 확신하고 선거운동에 온몸을 던졌다.
재보선 승리효과를 정치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중앙당 지원을 배제한 지역일꾼론을 앞세운 나홀로 선거운동이라고 결론짓고 자전거를 이용한 생활밀착형 선거운동에 전력투구한 결과 정세균,정동영,손학규등 빅쓰리가 총력 지원한 장상 야당 연합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트로이카 체제 구축한 이재오에게 특임장관으로 보답한 이명박
이재오 재보선 승리는 이재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국을 급반전시켰다. 한마디로 정치적 태풍이 따로 없었다. 권력 바람잡이인 친위언론인 보수신문의 이재오 역할론 뻥튀기 기획성 나팔보도가 융단폭격식으로 이어지면서 이재오의 재보선 승리는 정권심판으로 수세에 몰린 이명박 정권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데 이어 정국 주도권까지 장악토록 해 주었다.
정권을 설계하고 창출한데 이어 위기에서 구출까지 해준 이재오는 이명박에게 구세주요 수호신이었다.이러한 이재오에게 대통령 이명박은 '특임장관'감투 하사로 보답하였다. 특임장관은 이름뿐인 장관인것 같지만 실세 이재오가 감투를 쓰면 격이 달라지는건 두말하면 잔소리다.재보선 승리로 이상득,박근혜 전 대표와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한데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생활밀착형 신정당 정치를 주장하던 이재오에게 날개를 하나 더달아 준 것이다.
당정청 소통과 야당과의 갈등 조정이라는 기본 임무외에 대통령의 정치적 하명 사안을 총대를 메고 수행하는게 특임장관 인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항인 개헌과 행정개편,경우에 따라서는 남북관계 개선문제까지 선봉장을 맡을것은 자명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총리 임명 동의안이 통과될 경우 얼굴 마담 총리 김태호의 상투를 잡고 국정을 감시,수렴청정 하는 사실상의 특임총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재오의 권력 팔자가 승승장구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니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장관 문턱에서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 이재오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친화력을 보유하고 있고 노회한 권모술수,삵괭이 같은 날카로운 기회포착,저돌적 돌파력으로 권력을 거머쥐는 정치공학의 대가일지 모르지만 경세가로서는 자질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낱 권력 석두(石頭)에 불과하다는 점때문이다.
23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이재오의 흠결은 이재오가 장관은 커녕 공직자로서의 전혀 자격이 없다는게 대다수 국민들의 일관된 정서다. 야당의원들은 이 내정자의 병역.학력 허위기재 의혹,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로비 의혹을 비롯해 불법 정치후원금 제공에 연루 의혹 등을 제기했다.모두 장관으로서 결격사유에 해당하지만 특히 학력문제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만큼 사안이 아주 중대하다.이재오는 군복무와 대학 졸업을 동시에 해결하고 교사생활까지 하는 전무후무한 전지전능함을 보여 주었다는 것인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재오는 요술 몽둥이를 가진 손오공,시공을 자유자재했다는 삼천갑자 동박삭이를 능가한다.
국민과 나라가 출세꾼 이재오의 봉이 될 수 없다.
이재오는 중앙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 한일회담반대 학생운동에 참여한게 문제가 되어 제적당하자 이미 없어진지 오래된 중앙농민학교에 1966년 3월 입학하였다고 한다.이재오는 입학 한달후인 4월 강제 징집되어 군대 입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교육,대학행정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재오는 입대후 휴학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도 포천 이동면에 위치한 이동 중학교에 군인파견 교사로 선발되어 3년동안 병사 신분으로 영외 거주하면서 대학까지 마쳤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이 내정자는 1966년 4월23일 입대해 1966년 7월6일까지 공병학교 중장비 정비로 군사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 중앙농민학교의 성적증명서에 1966년 1학기에 18학점을 이수한 것으로 기록된 것은 의문"이라며 성적증명서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대해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육군이 펴낸 `육군사'에 따르면 60년대 말 대민병력지원이라는 형식으로 입대자 중 교사나 통학버스 운행자로 활동하게 해 군 복무를 인정해줬다"면서 "영외거주를 하면서도 방학 때 리포트 제출 등을 통해 학업을 이수한 것"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이어 당사자인 이재오는 학력.병역문제가 "현재 학제로 보면 의혹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60년대엔 그게 묵인됐다"면서 "45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 잣대를 갖고 본다면 이해가 안 되는 점도 있는 게 사실인데, 오해가 없으시기 바란다"고 변명하였다.
그러면서 "파견교사도 군인신분으로 했는데, 군인신분으로 비록 계절제 수업이고 리포트이긴 하지만 서울까지 다닌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적절치 않다. 그 점은 사과드린다"고 한발 물러서긴 하였지만 당시 교수가 중앙대 재학시 딴 학점을 인정해 주었고 나머지는 파견교사 시절 계절제 수업도 받고 리포트를 내는 방법으로 이수하여 졸업하였다고 거듭 주장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뻔뻔 유치한 이재오의 자기 합리화식 풀뜯어 먹는 궤변에 지나가는 개가 미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이니 국민이 포복절도 하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재오가 군복무하던 1960년대 중반에는 비포장 도로에 다니는 버스도 많지 않았고 당시 포천 이동면에서 서울까지 오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인데다 헌병 검문소를 무시로 통과하여 통학을 했다니 계절학기도 없던 시절에 교수란 작자가 부모형제가 아닐터인데도 이재오 한사람을 위해 제멋대로 방학에 쉬지도 않고 단독 1인 강의를 해주었다는 말인가.
이야말로 국민을 우롱하는 엽기적인 말펀치요,담배씨 만큼의 양심도 없는 치사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둔갑술과 축지법에 능통하여 몸뚱이 하나는 학생을 가르치고 분리된 몸뚱이는 축지법을 써서 서울로 날아가 정규시간에 강의를 받았다고 하는게 낫겠다. 1~3학년 성적을 기록한 필체가 한날 한시에 같은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고 1969년 재학생이 42명인데 1970년 졸업생은 102명이라는 뻥튀기 엉터리 학교라면 중앙농민학교 라는게 학력장사 유령학교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러한 학교를 군대 다니며 졸업했다며 국민을 우롱하고 좋게 말해 친화력이지 잇속으로 점철된 저급한 처세술로 표심을 홀려 국회의원 해먹은것도 모자라 국정을 실질적으로 통할하는 총리위의 특임총리 장관을 하겠다니 국민과 나라가 정치꾼 이재오의 출세용 봉이란 말이냐.
또 한가지 어이없는 것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청렴을 외친 장본인답지 않게 아들,사위,친척들의 취업과 관련하여 이해하지 못할점이 너무 많이 드러났다는 것이다.민주당 조영택 의원이 밝힌바에 따르면 “소기업에서 화장품 용기 등의 수출입 업무를 담당했던 이 내정자의 사위는 경력만으로 삼성전자에 특채됐고, 이 내정자의 아들은 불투명한 현대차 입사를 위해 한화S&C의 정규직 채용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것은 이들의 취업 과정에 청탁이 개입되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뿐이 아니다.이재오 내정자가 15∼18대 국회당시 조카 3명을 의원 보좌관으로 채용했으며 이들 중 2명은 현재 각각 청와대 행정관과 한국콘텐츠진흥원 차장으로 근무 중인데 친인척을 보좌관으로 쓰는 것은 준 횡령죄라는 점에서 이재오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식의 전형적인 표리부동한 정치꾼이 아니냐는 것이다.
2007년 부산의 모 관광회사 A회장이 한나라당 의원에게 법인자금으로 후원금을 제공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사건과 관련한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위반의혹, 공성진 의원 불법정치자금 공범내지 몸통의혹,측근 3명의 대우조선해양 고문 취업대가로 남상태 사장 연임 보장 및 비자금 수수의혹등에 대해서도 이재오는 부인으로 일관했지만 그냥 넘길 사안이 절대 아니다.
이처럼 도덕적 비리 백화점임에도 그동안 국회의원으로 국정을 논하고 정권창출이라는 중차대한 역할까지 도맡은 결과 나라가 백척간두 위기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국민들은 기가 막혀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정이다.나아가 이구동성으로 "이재오, 그정도로 출세했으면 많이 해먹었다 아이가. 석고대죄 필요 없으니 이제 고마해라, 역겹다"는 말을 하는게 아니겠는가.민심이 이러한데도 대통령 이명박은 국민을 개무시하고 이재오를 특임총리에 임명할게 분명하다.국민과 천벌이 두렵지 않다는데 무슨짓을 못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