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3일 (화) 촬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6,7전시실및 전시마당, 2022년 10월 21일부터 2023년 3월 12일까지.
얼굴 - 아침 /
1995, 종이와 흙 혼합부조에 아크릴릭, 240 x 180 x 20cm, 서울시립미술관소장,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전시개요.
<임옥상 : 여기, 일어서는 땅>은 한국 현대미술 작가 임옥상의 대규모 설치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민중미술과 한국 리얼리즘 미술 흐름의 주요 작가 중 한 사람인 임옥상 작가의 '지금, 여기'를
살펴 보고자 한다. 리얼리즘 미술에서 출발, 대지미술, 환경미술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작업영역을
넓힌 임옥상의 현재에 주목한다. 서울관 내 장소특정적 조건과 상황을 활용해 새롭게 선보이는 작업들과
그에 연관된 주요작들은 작가의 예술세계 본질을 보다 확장된 맥락에서 읽어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신작인 12m 높이의 대규모 설치 작업 <여기, 일어서는 땅>(2022)을 전시의 중심에
놓고 이를 둘러싼 서사를 위해 6전시실, 7전시실 그리고 전시마당에 그의 초기 회화와 최근작을 "깍지 끼듯"
마주 이어 구성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국가적 위기는 더 큰 인류사회적 위기, 생태와 환경의 문제와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문명사적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지금의 위기는 실제 우리의 일상에서 그 어느 때 보다 깊숙히 스며들어 불안과 두려움의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이에 예민하고 날카로운 신경 촉수를 가진 듯 세상을 감각하는 임옥상 작가의 지금 예술작업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작가소개
임옥상 작가는 1950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부터 13년 동안 광주교육대학교와 전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역임했다. 첫 개인전은 1981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한바람>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되었고 , 이후 1988년 <아프리카 현대사>, 1991년 <임옥상 회화 초대전>,
1995년 <일어서는 땅>,2011년 <토탈 아트 : 물, 불, 철, 살, 흙>, 2017년 <바람 일다>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1972년 <십이월전>을 비롯하여 <제3그룹전>, <현실과 발언전> 등의 동인전에도 출품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주요 국제미술행사들에 초대되었다.1993년 퀸즈랜드 트리엔날레, 1995년 광주비엔날레 1995년베니스비엔나레 특별전,
1997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2004년 2010년베이징비엔날레, 2021년 강원트리엔날레 특별전,
2022년 통영트리엔날레 등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미술관 밖" 미술실천 차원의 참여프로그램, 이벤트, 설치, 퍼포먼스 등을 다수의 기획,
진행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공공미술, 공공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통의 계기를 구체화 했다.
근래 민통선 내 통일촌 장단평야의 실제 논에서 '예술이 흙이 되는'형식을 빌려 일종의 환경미술 혹은 대지미술,
현장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는 작가의 오랜 인생관, 예술관이 복합적으로 엮여 펼쳐진 실천의 장이라 하겠다.
흙의 소리 / 2022, 흙, 혼합재료, 390 x 480 x 300cm, 작가 소장.
6전시실에서는 임옥상 작가의 최근 대형 입체, 설치 작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선 6전시실을 들어서면 표면이 흙으로 빚어진 설치 작품 <흙의 소리>(2022)가 마치 거대한 인간의 머리가
옆으로 누워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6전시실에서 관객들은 7전시실과는 전혀 다른 공감각적 경험을 한다.
<흙의 소리>는 한쪽에 입구가 마련되어 그 거대한 인간의 머릿속으로 관객을 걸어 들어가게 한다.
동굴과도 같이 다소 어두운 공간에서 가이아, 대지의 어머니가 내는 숨소리를 감각할 수 있다. 안과 밖,
빛과 어둠, 소리와 침묵 그리고 이를 경험하는 관객의 신체적 움직임은 다시 깊은 지하 공간으로 이끄는
계단이라는 특징적 공간 상황을 통해 이어진다.
전시실 내 계단을 내려가 그 끝에서 마주한 긴 복도 공간에는 작가의 또 다른 주요 재료인 '철'로 만들어진
<산수>(2011)가 자리하고 있다.
<산수>는 금속세공업자와도 같이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낸 듯한 입체 작품이다.
코르텐스틸이라는 철물을 제단하여 만든 이 작품은 전통적인 수묵 산수에서 볼 법한 형상을 띠고 있다.
자연의 원경(遠景)을 보며 걷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공간에는 또 다른 철 산수가 병풍으로 제작되어 <산수>와
마주하고 있다.자세히 들여다 보면 글씨가 쓰여 있는데, 대한민국 헌법 조항의 내용 일부다.
긴 복도를 두고 마주한 산의 풍경은 저 멀리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우리의 산세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내 짙은 색감과 녹슬고 거친 질감으로 인해 그리 편치만은 않은 감정마저 불러일으킨다.
산넘어 산 / 2020,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89.4 x 260.6 x 2cm, 개인 소장.
전시마당.
땅
임옥상의 1976년<웅덩이>는 진한 흙냄새와 물냄새를 풍기며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마당의
<검은 웅덩이>와 마주한다. 시절마다 생겨난 웅덩이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지금 여기' 같이 모여 있다.
미술관 내썬큰(sunken) 공간인 전시마당은 사방이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안' 공간이면서 '밖'이다.
지름 4m의 거대한 웅덩이가 전시마당 한 가운데 나 있다. 그 속에는 검은 물이 가득 차 있는데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대형 현장설치자작품 <검은 웅덩이>(2022)는 미술관이 자리한
'장소'의 사회문화적 서사도품고 있으나, 그 의미가 단선적 문맥에만 고정되어 있지 않다.
웅덩이를 '숨구멍'이라 칭하는 작가의 태도에서 볼 때, 오히려 다양한 읽기가 가능하다. 생태, 문명, 혹은
문화, 사회 등 어떤 관점이든 간에 눈앞의 웅덩이는 '지금' 현재를 새삼 각성시킨다.
<검은 웅덩이>를 바라보고 있는 대형 구성조각<대지-어머니>(1993)는 철로 제작된 작품이다.
그런데도 마치 흙이 일어서 있는 모습같다. 주목할 점은 힘겹게 버티고 서있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웅덩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에서 회복해야 할 우리의 문제와 이슈를 한 번 더 고민하게 한다.
7전시실.
어머니 / 1987, 캔버스에 아크릴릭, 152 ~137.3 X 5.5cm, 개인 소장.
귀로 / 1983, 종이부조에 먹 채색, 190.5 ~284 x 10.3 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가나아트 이호재 기증 2001년.
김씨 연대기 II / 1991,종이부조에 아크릴릭, 144.3 ~200.5 x 7.8 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땅 II / 1981,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유채, 141.5 X 35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봄 / 2022,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80 X 130cm, 작가 소장.
홍매와 춤추다 / 2020,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112 X 168cm, 작가 소장.
심매도 / 2019,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200 X 640 X 4.7cm, 개인 소장.
북한산에 기대 살다 / 2020,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227.3 X 728 X 4.5cm, 가나문화재단 소장.
무극백록 / 2021,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227.3 X 545.4 X 5cm, 개인 소장.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를 그리다 / 2022, 캔버스에 흙, 먹, 아크릴릭, 162 X 36 X 3cm, 작가 소장.
4.3레퀴엠 / 2018, 캔버스에 흙, 아크릴릭, 개인소장.
지하.
산수 / 2011, 코르텐 스틸, 270X 900 X 3cm, 개인 소장.
산수의 일부.
산수의 일부.
헌법 병풍 / 2015, 코르텐 스틸, 200 X 520 X 5cm. 개인 소장.
여기, 일어서는 땅 / 2022, 흙, 혼합재료, 200 x 200 x 10cm (36), 1,200 x 1,200 x 10cm.(전체)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스케일을 넘어서는 거대한 흙벽이 바로 펼쳐진다.
<여기 일어서는 땅>(2022)은 2 X 2m 크기의 패널 총 36개를 짜 맞춰 이룬 세로 12m, 가로 12m의 대규모
설치 작업이다.임옥상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작년부터 올해로 이어지는 때까지 파주 장단평야 내, 논에서 작업했다.
미술재료용으로 가공되어 정제된 흙이 아닌 '진짜' 흙, 생존을 위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땅, 흙을 마주한 것이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벽 위에는 다양한 형상들이 흙으로 빚어진 듯 자리하고 있다.
사람, 동물, 식물, 인공물, 기호 등이 나열되어 있는데, 문화적, 정치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가늠하게 한다.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개별 서사를 반추할 수도 있다.그런데 더 즉자적인 차원에서 다가오는 것은
흙의 빛깔이고, 흙의 질감이다.
<여기, 일어서는 땅>은 재료나 의미에 있어 매우 근원적인 지점에 닿아 있다.
즉 장단평야 논에서 떠온 흙은 추수 후 땅의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다.
베고 남은 볏단의 아래 둥치, 농부와 농기계가 밟고 지나간 자국, 논에 내려앉은 이름 모를 생물들의 흔적,
그리고 여전히 배어 있는 땅 냄새 , 숨 냄새 등이 원초적인 무의식을 깊숙이 건드리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바닥에 펼쳐져 있어야 마땅한 땅이 수직으로 높이 서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작품에 대한 경험이 직관적인 동시에
관념적으로 혼재하여 다가온다는 점에서 중첩된 의미들이 땅의 표면을 휘덮고 있는 듯하다.
패널 한 장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 2m다. 총 36개의 패널로 이루어진 작품의 전체 크기는 가로, 세로 각 12m이다.
패널은 조명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작품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