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째날
오늘은 셋째날(23일 화) 간간이 비가 뿌리는 새벽부터 장백산(중국 측 이름)으로 내달린다. 장백산(천지는 중국 동북의 길림성 동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중국과 조선의 접경호수이다. 호수의 북부는 길림성 경내로, 송화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천지의 면적은 9.8평방 킬로미터이며 그 평균 수심은 204미터로 중국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호수의 수면 해발 높이는 무려 2,150미터에 달하기 때문에 천지<天池>라 불린다.)을 향하여 순조롭게 나아갔다.
07시경에 백두산 아래 美人松의 마을인 二道白蝦(두꺼비 하)에 도착 조식을 했다. 입맛이 적었지만 아침은 잘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창 너머로 은백양나무 숲이 보이고, 인가도 없는 숲 속에 방목해 놓은 소가 보이고, 큰 나무 숲속에 목이버섯을 재배하는 걸 더러 볼 수가 있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이동하여 우리는 서파로 등정을 시작하여 12시경 백두산 천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등산길은 서파, 북파, 남파 능선이 있단다).
우선 장백산 입구 주차장(서파쪽 등정로)에서 티켓을 내고 조금 걸어가면 산길(포도)에만 다니는 35인승 버스가 있다. 그 것을 타고 산 중턱의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는 오래 된 은백양 나무와 잡목과 잡초, 꽃나무 등이 어울려 드문드문 줄지어 있지만, 나무 하나 없는 산중턱 주차장에 내리면 곧 상행 하행 계단이 천지까지 놓여 있다. 산 중턱 주차장 부근에서 부터 천지까지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인데, 온통 키 작은 야생화가 산자락에 수를 놓으며 웃고 있었다. 1,800~ 2,000여개의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천지가 나온다. (400위안이면 가마를 타고 오를 수 있다).
계단이 있는 그 옆으로 비스듬히 생겨난 깊지 않은 계곡을 따라 천지에서 새어나오는 물이 졸졸졸 흘러내린다. 작은 암벽과 검붉은 돌조각 옆이나 사이로 여러 가지 키 작은 야생화가 군락을 지어 흩어져 있고 철 따라 꽃들이 피여 난단다.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여 30위안을 주고 급히 우비를 사서 입고 올라가며, 야생화와 풍경을 찍으며 별 상상을 다 했는데, 보이는 것은 잘 나온 사진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덧 천지에는 비가 개여 있고 통제선 내에 옹기종기 많은 사람들로 사진찍느라 붐볐다.
오! 천지의 신명이시여, 나에게 기와 힘을 주소서! 선남선녀인 우리 모두에게도......조금은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한참을 응시했었다. 저 칼데라 깊은 심연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뭉클, 내게 다가와 갑자기 덮칠 것 같은 너무나도 조용한 침묵의 검푸른 호반. 오! 신령한 백두산 천지여! 백두산 천지에 서면 누구나 그 기를 듬뿍 받게 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으리라.
지금도 내게는 그 날의 감회가 새록새록 하건만 아직도 영 찜찜하다. 천지에 막 도착하여 사진을 찍는데, 무음으로 전화가 걸려와 얼른 보니 서울에서 온 전화였다. 짧게 몇 마디로 통화를 마쳤다(22일 월요일 서울, 경기에 폭우가 많이 내렸단다). 무엇엔가 단단히 씌운 듯 몇 명밖에 보이지 않기에 사진을 찍어가며 내려오니 아무도 없었다. 거기서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마침 빈자리가 있어 채워달라기에 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천지에서 단체사진을 찍으면서부터 나를 찾게 되고 결국,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미치고 다들 야단법석 난리가 났단다. 후에 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산 중턱 주차장이나 산 아래 주차장에서 만나 합류하면 되겠다 생각했고, 곧 전화 연락만 되면 아무 일 없는 것을 -연락이 안 되니- 한마디 아무런 말도 없이 하산해버린 모양새가 되어 여러 사람께 본의 아닌 불편과 심려를 끼친 점 죄송하다. 정말 모두의 신상에 아무 일 없었으니 다행이지만 그 날 나는 영원히 죽은 사람이 되었다. 연길로 돌아와 하루치의 여독을 마사지로 풀고 내일 일정을 위해 곧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 넷째날
오늘은 넷째날(24일 수) 가랑비가 내리는 새벽에 가까운 풍물시장으로 향했다. 하천가에 있는 새벽시장에서 생 단고기의 비릿한 냄새가 풍겨 잠깐 보았는데, 징그럽다 못해 고귀한 식재료의 한 가지 같은 것이, 죽어서도 인간들에게 나눠주는 자기 육신의 보시가 아니고 무었이런가. 여름 날 붉은 물이 내달리는 하천가 새벽시장으로 비 맞지 않게 된 곳에, 빗물이 발목까지 고여 잠긴 곳이 많아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아침부터 방향을 잘 못 잡았으나 이내 잊어버렸다. 우울한 날의 시작은 안개같이 걷히고 더러는 햇살이 구름을 비집고 나온다.
연길의 숙소에서 나와 훈춘~도문간 고속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달려 방천풍경구(동해15km)까지 갔다. 훈춘시 경진에는 러시아인들이 많고 간판에는 중국어와 러시아어, 한글까지 3개 국어가 통용된단다.
신삼각 지역에서 보면 중국과 러시아(핫산), 북조선(함북 두만강시) 3개국이 다 보이고 닭 우는 소리부터 개 짖는 소리에 하루 해가 시작되고 또 저문다는 말이 있는 곳이란다. 두만강을 끼고 한참 달려간 곳인데, 거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길도 좁아 통제가 심한 土字碑(1861년 세워짐)는 북 중 러 경계비이고 중국이 세운 것이다. 거기서 바라다 보이는 다리(철교)를 북한과 러시아가 놓을 때부터 사실상 중국은 동해바다로의 진출이란 오랜 염원을 접어야만 했으니, 해상출구가 봉쇄 돼 숨통이 꽉 막혀버린 것이었다.
두만강의 중국이름이 도문강임은 두말할 것 없다. 중국은 자기네 큰 땅덩어리를 이용해 여기저기 돈벌이를 잘 하는데 북한은 이게 뭡니까. 지척의 금강산 관광부터 영산 백두산을 두고 중국의 연길로 장백산까지 가서 돈 쓰게 만드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바보같이 등신 짓거리나 하고..... 같은 민족으로 참 안타까운 일이다. 도문강 나루터에서 뗏목배를 타고 북한과 경계를 따라 도문강다리 밑을 지나서 돌아오는 코스다. 비가 많이 와서 붉은 두만강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보려고 내심 마음 먹었었다. 도문강 다리와 연결된 곳에는 공원이 있고 8월 15일 전이면 올해도 서울에서 유명가수들이 대거 여기까지 공연을 온단다.
그와 반대로 다리 건너 북한 쪽에는 김정일 부자의 대형 사진 두 장이 내걸려 있다고 일러줘 쳐다보았다. 인민들은 왜 날마다 밥도 못 먹고 있는데 피둥피둥 제 배는 불러가지고 중국쪽 인민들을 바라보며 뭘 기웃거리는지 정말로 궁금하였다. 연길로 돌아오자마자 우리가 투숙중인(코스모스반점 호텔) 바로 옆인 류경호텔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30여 분 간의 공연을 관람하였다. 여기(중국)로 와서 먹은 음식중에서 입맛이 제일 잘 맞았으며 맛있고 또 정갈해서 좋았다.
공연은 그들 나름대로 동족의 향수를 자극하는 “반갑습니다“로 시작하는 북한 노래들로 무대 아래서 흥겹게 식사하며 사진 찍고, 그 곳에 있는 꽃다발(대략 10,000원 부터 몇 만원짜리)을 증정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 호텔의 종사자는 보통 2년에 한 번씩 교체되는데, 두 번 다시 근무하지 못한다고 하며 고위층 자제나 백그라운드 등 그 자격여건이 충족되어야 한단다.
- 다섯째날
오늘은 닷새째(25일) 문학기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부터 시내관광 및 숙소 인근의 시장에서 쇼핑이나 아이쇼핑을 나섰다. 중국 술 도매상점에서 모 선배의 주도와 교수님의 코치로 그 가격을 적정선으로 싸게 후려쳐 여러 명이 잘 구입했다. 그 것은 우선 소통의 부재와 함께 바가지 등의 막연한 두려움으로 진짜 제 물건을 잘 사야 본래 가격에 사는 정도인데, 서로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데 그 어려움이 있었다. 마침 한국말을 잘 하는 옆 가게(?) 사람이 있어 소통에 큰 지장이 없었다. 나는 아이쇼핑으로 대강 둘러보고 기웃 기웃하다가 일행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직행했다.(사가지고 간 튜브고추장과 소주팩도 거의 다 갖고 돌아간다.)
연길은 남의 나라 땅. 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흐린 일기는 빗방울이 오락가락. 우리는 똑같은 말을 하고 생각이 일견 같아보여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오해와 편견으로 얼마든지 오류에 직면하게 되는 것. 우리가 아니 내가 현대와 현재를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한 가지는 서로간에 양해의 기지와 양보(yeild)의 미덕, 그 것이 삶에서 최고의 선이요 도가 아닐까 한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처세와 PR같은 것을 행하기도 어렵고, 되려 오해만 불러일으키기 십상인 것이다. 내게 절실한 것 또한 타인도 비슷하다. 타인과의 관계와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아름찬 삶을 위한 한 두 가지의 기술(knowhow)은 꼭 필요하다.
누구나 삶에 있어서 꼭 물질과 재능만이 아니고, 이 번 여행과 같은 것에서 느끼고 성찰하고 반성하며 익힌 것(체득한)들이 얼마간 있기 마련. 물론 휴식을 위한 휴가도 있지만 우리는 대개가 미지로의 여행이나 기행을 즐겨 떠난다고 본다. 이제 출국수속도 마치고 기내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고국이 있음을 생각하고, 누군가를 떠올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데 지난 4박 5일이 조금씩 주마간산으로 보일 뿐이다. 내가 여지껏 살아 온 삶에 詩 卽 切(切實)이란 것을 되새겨 본다.
금번 문학기행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위한 감사의 박수와 함께, 우리 27명 모든 분들께 건강과 행복이 넘치는 뜻 깊은 여행이 되였기를 아름차게 믿사오며, 꼭 문청이나 예술가가 아닐지라도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내내 건강과 건필이 충만하시길 빌면서 이만 끝을 맺는다. - 끝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장문의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문학기행이 되셨군요
수고많으셨고 한문강의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덕분에 여행 한번 잘 했습니다
네, 선배님. 다녀와서 그냥 말기도 뭣해서 올렸습니다.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양태권 학우님 덕분에 마치 현장에 다녀온 듯, 생생한 기행문 잘 감상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선배님!
문학기행을 다녀와도 이렇게 글을 잘 정리하여 올리기란 쉽지 않은데, 정말 놀랍습니다~
생생한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백두산 천지에서 느낀 감상이 부럽군요~~ 나도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차선배님! 아이고 이런 허접한 걸 갖고 - 암튼 칭찬으로 알고- 여러모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한 번 쯤은 꼭 가 볼만한 곳, 서로서로 코드가 맞아야 더 재밋겠지요
짝짝짝! 바쁜일정속에서 이렇게 기록하여 그감동 나눠 주심감사합니다*^^* 좋은 경험하고 오셨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들을께요 윤동주님의 삶의 흔적과 발자취를 느끼고 감상하셨다니 부러워요~
신학우님이 다 읽어주셨다니 반가워요. 부족하지만 서로 얼마만큼이라도 정보를 공유한다는 게 기쁘고 고맙습니다.
이 글 문집에 실었으면 합니다
문학회 게시판에 <문집용 원고>라고 표기하신 후 올려주시면
많은 학우들이 책으로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학회 시간에 꼭 뵈어요. 다음 수업은 8월 14일(수) 저녁 7시입니다
네, 수요일은 좋은데 이 다음에 있을 금욜은 제 다른 일과 겹쳐서 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