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고사 셋째 날이었다. 오전에 시험 감독을 두 시간 들어갔다. 오후는 교외지도 나갈 명목이기에 짬이 생겼다. 저녁에는 십여 년 전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그새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 현관을 나섰다. 내가 사는 동네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갈색으로 물들어 일부분 잎은 새 깃털처럼 날렸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는 잎들이 대부분 떨어졌다.
나는 이웃 아파트단지 건너편 창원실내수영장으로 갔다. 수영장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교육단지 뒤 야트막한 야산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나는 새벽이나 저녁이 아닌 평일 한낮 산책을 나서보기는 드문 코스였다. 나는 폴리텍 대학 후문 곁 오솔길로 들어섰다. 도심에 소나무를 비롯한 잡목이 자라는 숲이 가까이 있음은 다행이었다. 인근 주택이나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더러 찾았다.
나는 숲길을 쉬엄쉬엄 걸었다. 개옻나무가 있긴 해도 낙엽이 진 뒤라 마음이 놓였다. 옻을 잘 타는 나는 숲속에서 옻나무가 무척 신경 쓰였다. 경륜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바위덩이 가 있다. 그곳에서 내가 가끔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상에 잠기는 자리였다. 그런데 산봉우리에 전망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작업 인부에게 물어보니 3층 건물로 높이가 제법 되는 구조물이 들어선단다.
숲길은 호젓했는데 자재를 실어 나르는 장비가 오르내려 훼손되어 있었다. 아카시나무는 진작 나목이 되어 다시 움이 틀 봄날을 기다렸다. 숲속 어디선가 박새정도 짐작되는 멧새 소리가 들려왔다. 까치 소리야 어디서나 흔하게 들렸다. 거뭇거뭇한 털에다 꼬리를 쫑긋 세운 청설모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건너뛰어 사라졌다. 듬성한 나무 사이로 초겨울 오후의 가녀린 햇살이 비치었다.
수년 전 교육단지 뒷동산 북사면에 창원과학관이 들어섰다. 유치원생이나 초중학생에겐 좋은 현장학습 장소였다. 나는 과학관 뒤로 난 길 따라 극동방송국 쪽으로 내려섰다. 교육단지 가로수로 인상적인 벚나무도 낙엽이 진 나목이었다. 충혼탑 사거리를 건너면 대상공원으로 들어섰다. 창원문성대학 뒤 숲은 대상공원으로 불린다. 두대동 주택과 대원동 아파트단지서 가까운 곳이다.
대상공원 숲에는 군데군데 운동기구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몇몇 늙수레한 사람들이 산책을 나와 운동을 하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선 자외선이 걱정되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햇볕은 쬐어야 한다. 날씨가 춥다고 실내만 움츠려 있으면 세로토닌이 부족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다. 도심에서 흙을 밟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행복이며 건강을 지켜가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까 기능대학 후문에 산불감시원이 있었다만 문성대학 뒷동산에도 산불감시원이 있었다. 그분은 한 자리 우두커니 있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고즈넉한 절간의 스님이 마당을 쓰듯 대빗자루로 운동기구가 놓인 쉼터를 말갛게 쓸고 있었다. 허리를 굽혔다 펴 가며 가벼운 운동을 하는 셈이었다. 그 노인네한테는 숲속의 맑은 공기를 마셔가며 한나절 일거리로는 아주 알맞지 싶었다.
근래 창원컨벤션센터 건물에 이어 시티세븐 빌딩이 우뚝 솟았다. 예전보다 유동인구 늘었으니 교통량도 증가했다. 세코에서는 주말까지 경남교육청에서 주관한 교육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많은 교직자와 학생들이 모여들 것이다. 나는 두대로 넘나드는 새로 뚫린 길에서 세코 쪽으로 내려섰다. 마침 무슨 회의가 끝난 직후였는지 세코 건물 안팎에는 사람들과 차량들로 뒤엉켜 있었다.
나는 문성대학을 지나 운동장 앞에서 지하도를 건넜다. 인근 학교 중학생들이 하굣길에 세코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종례시간 담임으로부터 지도가 있은 모양이었다. 그곳에 무엇 하러 가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직업체험 부스에 들리는 걸음이라고 했다. 양복 차림으로 행사장을 먼저 나온 분들을 이을 미래 주역들이었다. 숲이 자연스레 천이 되듯이 인간사에도 세대는 교체 되고 있었다. 1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