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0월19일
시골살이의 로망
무더위가 사라지니 마음이 설렜다. 에어컨 안에 갇혀서 보내면서 ‘가을이 오면 서해로 여행을 가야지. 단풍은 지리산으로 떠나야겠다. 예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생선회 먹으러 후포로 여행을 가야겠다.’ 더위와 씨름하면서 가을을 기다릴 수 있었던 나의 꿈들이다.
하룻밤 사이에 더위가 사라졌다. 언제 더웠나 싶을 만큼 감쪽같은 여름이다. 반바지에 민소매로 두 달가량을 교복처럼 입고 지냈다. 뽀얗던 다리가 거뭇거뭇 미워졌다. 운동할 때 반바지에 양말을 신고 걸었더니 발목이 시커멓게 탔다. ‘발목 흰 여인’은 시 속에서나 살고 있어야 한다. 속이 많이 상했다. 가을부터 긴 옷을 입고 지내다 보면 다시 속살 흰 여인으로 될 것이다. 그때까지 정성스럽게 관리하면서 살기로 했다.
가을이 오니 시골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부터 캐야 했다. 시댁 형제들이 다 모여서 이틀간에 걸쳐서 고구마를 캤다. 그 후로 땅콩도 캐야 했고 텃밭에다 김장배추를 심었다. 무도 심고 쪽파도 심었다. 마당 전체를 점령한 호박이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모른다. 맷돌 호박이 댓돌에 하나 가득하다. 여행을 가니, 맛집 투어를 가니, 하는 마음을 내기조차 미안한 가을이다.
금요일 저녁에 아예 짐을 싸서 시골로 간다. 몇 주 혼자 보냈는데 혼자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밥이라도 해주지 싶어서 따라나섰다. 오늘은 들깨를 베는 날이다. 들기름을 짜서 형제끼리 나눠 먹는다. 들기름 먹을 때는 좋고 일하는 것은 싫다면 너무 깍쟁이 같아서 혼자 웃는다.
비가 그친 뒤 이른 아침부터 남편 혼자 들깨를 베었다. 낫질을 해 본 기억도 없거니와 생각보다 들깨가 나무처럼 단단했다. 남편도 낫으로 나뭇가지를 치듯 베었다. 한 번 낫으로 베어내고는 숨을 골랐다. 어려서도 농사일을 도와준 적이 없다고 한다. 어려서 고향을 떠나 도회지 학교에 다녀서 부모님이 농사를 많이 지었어도 어머니 말씀으로는 ‘큰 애는 낫 한번 잡은 적이 없다’라고 하셨다.
제법 큰 들깨밭의 들깨 베는 일을 남편 혼자서 다 했다. 도와주려 했던 누나가 일이 생겨서 못 오신 탓에 이른 아침부터 점심때를 한 참 넘긴 시간까지 들깨를 베었다. 아침은 물론 점심까지 굶어가면서 들깨를 베는 남편이 안타깝기도 하면서 야속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밭에 감잎을 깔고 앉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보면서 밭을 지키는 나는 점점 지루하고 배도 고팠다. 나중에는 배가 너무 고파서 ‘꼬르륵’ 소리까지 났다. 배가 고프니까 은근히 짜증이 났다. 혼자 집에 가서 밥을 먹기도 그렇고, 나중에 하자고 졸라도 다 끝나가니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감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홍시 소리를 들으면서 떨어진 홍시로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오후 두 시가 훨씬 넘어서 들깨를 다 베었다. 수고했다고 남편 등을 다독여주면서도 나의 얼굴은 무표정이다.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없어서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으로 갔다. 힘이 들어서 얼굴이 붉어진 남편이 그래도 미안한지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생각 같아서는 나가서 자장면이라도 사 먹고 싶었지만, 흙투성이 신발과 일복 차림으로 어디를 가겠는가? 시골이라서 식당도 없고 시내까지 나가려면 시간도 그렇고 해서 할 수 없이 김치찌개 하나를 놓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허기가 가시니까 웃음도 나오고 김치찌개가 정말 맛있었다. 아까 마음으로는 짜증이 나서 화를 낼까 말까, 고민했는데 앉은뱅이 밥상에 둘러앉아 마주 보고 밥을 먹으니, 화는 어느새 멀리 도망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