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가유공자 장례식에 참석, 마지막 이야기.
두달이 지나게 되어 운구차량에서 약간 냄새가 남을 이해바랍니다.
3시간 정도의 장례식이 끝나고 운구차가 서서히 장지를 향해 움직인다.
약 30분 정도 달리는 4차선 도로, 100불짜리 달러 뭉치을 길에 마구 뿌리며 달린다.
30여 대의 운구행렬에 끼어드는 차량은 없었다. 혹 모르고 끼어들던 차량도 장례일행의
차량을 알면 바로 빠져주는 베트남 운전 매너도 새삼 알게 되었다.
웅장한 대문이 활짝열려있고 그 안에는 질서있게 조성된 묘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반 묘와 다른점은 아주 높고 크게 조성된 검은색 대리석 묘.
무슨 약품으로 닦어놓았는지 수백개의 모든묘석이 새것같이 반짝 반짝 빛난다.
묘석 뒤에는 고인의 양력과 사진, 계급, 훈장을 인쇄해 넣고 자녀들 이름까지...
양 옆에 놓인 두개의 화분과 묘 중앙 배꼽 부분에 심겨진 1년 내내 피는 꽃나무 한개
아무리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규격화된 석상과 꽃나무가 똑같은 공산당의 묘 답다.
약 1년전에도 옛날 총리급이 이곳에 묻혔다. 장례절차를 생중계를 했기에 알 수 있었다.
운구차량만 안으로 들어오고 나머지는 밖에 세워놓고 걸어서 들어갔다.
대문 왼편에는 컵라면, 음료수, 생수도 파는 구내 매장이 하나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곳은
상가집에서 아무런 음식물을 제공하는 게 없다고 한다.
아침도 안먹고 새벽부터 움직였더니 배도 고프고 날씨는 덥고,
목이 말라 생수 한병을 사들고 운구차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마지막 고인과 작별하는 의식이 진행중이다.
국화 한송이를 들고 줄서서 시신앞에 다가가 인사를 한다.
(머리 위로 꽃송이를 높이 들어 세번의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방법)
나는 뒤에서 더 뒤로 더 뒤로 물러서며 그 행사에는 끝내 불참했다.
이젠 시신를 묘지로 옴기는 순서다.
땅에 내려놓고 다시 나팔을 불고 요란하게 한바탕 축제분위기를 조성한다.
우리한국은 엄숙하게 그리고 슬프게 하지만 이곳은 분위기 자체가 축제분위기,
유족들 누구 하나 눈물흘리며 슬퍼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불교 의식으로 스님이 집행한다.
불과 20미터 정도 관을 들고 가는데 여러차례 쉬면서 불경을 외우고 다시 나팔을 크게 울리면서
정말로 하늘나라로 인도함 받는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관이 들어갈 묘지에 도착, 2미터 정도의 깊이 판 구덩이에 빨간 벽돌로 쌓고 깨끗하게 시멘트로
미장한 공간에 관을 넣는데 묘지 중앙에 설치한 삼각대에 관을 묶어 정확하게 내린다.
관은 열지도 않고 그대로 관위에 꽃을 드리는 순서, 유족이 먼저 하고 조문객들 모두 한송이 씩
관위에 던지는 것으로 모든 장례절차가 끝이 났다.
꽃은 장례식장에 세워놓았던 생 난꽃을 몇개 싣고와 한 송이씩 뽑아서 직접 관 앞에 다가가
머리숙여 인사를 하며 관에 던지고 돌아나오는 것으로 일반 조문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새벽에 오면서 일행이 잠시 빵집에 들러 반미를 여러 개 사길래 우리 아침식사로 알고 그 빵을
주기만을 기다렸는데 끝내 그 빵을 먹지 못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 빵은 유족들이 부탁하여 아침식사로 사다 줬다는 말을 들었다.
새벽부터 점심까지 못먹고 장례식에 참석했는데 물 한 모금 없는 베트남 상가집 이해가 안된다.
잠간만 들려도 육계장에 고기안주, 막걸리, 소주, 음료수 등 몇번이고 후하게 접대하는
우리 한국의 장례문화와는 너무 다르다.
고인은 17살에 공산당 비밀공작원으로 입대하여 호치민의 제자로 한평생을 나라를 위해
몸 바쳤으며 유족으로는 미망인과 아들 3명, 딸 3명이 있는데 항상 비밀활동하다보니
그가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가족들도 친척들도 이웃도 잘 몰랐다고 한다.
통일이 되고 알려졌지만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자식들도 제대로 공부도 못시키고 돈 없어
가족들도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통일이 되고 연금도 받고, 유공자 자녀로 국영기업체
특채, 이젠 살만한데 오랫동안 앓아 오던 폐병으로 생을 마치고 말았다.
연금은 800불 받았었는데 본인 사망시 유족에게는 3개월분만 일시 지급하고 끝이란다.
다행히 미망인이 공무원 이었기에 연금 300불로 생활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정보 보너스로 알려 드립니다.
베트남은 고인이 입고 갈 수의 (베옷)가 없습니다. 평소에 입던 양복에 양말 구두까지 신기고
그대로 관에 넣어 그 상태로 묻는 게 이곳의 장례 문화입니다.
한국에선 베옷 한벌에 200만원~ 1.000만원 한다고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런 걱정 할 필요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식사 제공도 없다니 장례비용도 부담 없겠지요.
장지도 공동묘지 보통 1.500불 정도 한다고 하네요. 미리 준비하는 분들도 있고요,
호치민에는 빈증에 공동묘를 조성해 분양 하는 곳도 있어요. 어제밤 이런저런 얘기도중
충청도 선산에 준비한 묘지를 말했다가 따귀 한대 제대로 맞았습니다. 평생 살아 있을거라 생각하는
마누라... 차차 갈 준비도 해야 하는 나이가 다가오는데 어찌하오리까..
여러분 매일 매일 행복하세요. 저는 저 천국만을 소망하며 살아가렵니다.
첫댓글 맞아도 싸십니다 ^^
그런가요 생각해보니 맞을짓을 한거 같으네요.
하지만 엄연한 사실을 말했을뿐인데 아직은 받아드리기 않고 아주 먼 다른사람의 말로 생각하니 말입이다.
한인회에서 문자가 오는데 보통 한달에 한 두건씩 교민들의 사망사고가 발생합니다.
젊은이 늙은이도 가리지 않고 가고있어요.어느분은 20년간 이곳에서 화려한 생활도 했던 분인데
허술한 로컬 단칸 임대방에서 혼자서 쓸쓸이 떠난분도 있고요. 어느 젊은이는 카지노에서
다 날리고 사이공 강으로 투신한 사건도 있고 요즘 교민사회가 평온하지 못합니다.
@[호치민]아오자이 60도 안 된 저도 늘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100살이 넘어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함께 사는 사람은 가슴이 철렁한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