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의 기획의도는
정적 사유-내면의 죽음-역동적 부활 < 멘델스존/슈만/베토벤>
오늘 나의 감상은
멘델스존 - 강직한 서정미
슈만 - 과거로 플래시백
베토벤 - 축제의 전야
였습니다
멘델스존,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Op. 27
F. Mendelssohn, ‘Meeresstille und glückliche Fahrt’ Op. 27
고요한 바다 도입부부터 국립심포니의 현악부가 마음을 선듯선듯 쓸어주고
어딘가 이국적인 곳으로 이끄는 느낌인데
마음에 싹 스며들지는 않아서 아직 음악에 물들지 않고 있었다
멘델스존의 고요한 바다가 즐거운 항해로 넘어가자
이국적인 곳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듯
정신이 명료해지고 귀에 각인되는 사운드가 이제 나를 물들인다
역시 국심의 사운드는 빠르고 강한 비트에서 확실한 자기주장을 펼친다
멘델스존의 낭만주의를 구현해내기엔 국심의 연주는 너무 강직했지만
연주는 흠잡을데없이 잘한다 다만 뭔가 전달된 것이 적은 듯
슈만, ‘미뇽을 위한 레퀴엠’, Op. 98b
R. Schumann, ‘Requiem für Mignon’, Op. 98b
슈만의 레퀴엠
이곡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늘 공연을 오는 발걸음이 들떴는데
무대가 준비되고 대기실에서 입장을 시작하는데
아 ............. 이럴수가
등장하는 앳된 어린합창단원들 옷이 낯익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입었던 바로 그 단복을 입고
월드비전 어린이 합창단원이 들어오고
성인합창단까지 다 전열을 가다듬자
김태한 바리톤과 솔로 파트 어린이 단원이 무대 앞으로 자리잡는다
머리를 올백으로 곱게 넘겨 반머리로 묶고
하얀 자켓에 빨간 테가 둘러진 단복은 나를 몇 십년전으로 플래시백
우리는 늘 공연 전에 어떤 단복을 입을지와 어떤 머리스타일을 하는지를
반장언니에게 통보받았고 빨간 자켓과 하얀자켓 두 종류의 단복 중 선택된 옷을 입고
서로 머리를 똑같이 빚어주며 무대를 준비했었다
지금 예당의 무대에 그 시절 내 모습과 똑같은 어린이가 서있다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게 느껴지고
솔로파트 어린이 단원의 미성이 공중으로 떠오르니 눈물이 울컥한다
아 여전히 결 고운 발성을 하는 합창단이구나
제5곡의 바리톤 파트에서 김태한 바리톤의 리치한 질감의 깊이있는 소리와
맑다못해 공기같은 어린이 소프라노의 발성이 어우러지는
실연으로 처음듣는 미뇽의 레퀴엠은
레퀴엠이라기보다 고백송 같았다
난 이렇게 살았다 라고 인간 바리톤이 얘기하면
그러면 안되요 라고 화답하는 천사같은 어린이 소프라노
오늘 공연에 월드비전 어린이 합창단이 선다는 것을 모른 채
갑자기 수십년 전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 시절의 나로 플래시백되고나니
슈만이 그려내는 내면의 죽음을 마주하기보다
내게는 시간이 지나도 꺼지지않는 내 음악의 원천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7번 가장조, Op. 92
L. v. Beethoven, Symphony No. 7 in A Major, Op. 92
로베르토 아바도는 첫곡에서부터 아직까지는 정체성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베토벤 7번에 오니 드디어 그가 느껴졌다
그는 모든 곳을 두루두루 살피고 큰 틀의 이상을 세워서 반드시 그 목표를 향해
한명 낙오되는 이없이 모두 끌고 가서 결국 함께 이상의 열매를 따고자 하는
이상주의적 리더이자 현실적으로는 모자름도 넘침도 본인의 희생으로 기꺼이 채우고자하는
온몸 불사형 지휘자였다
1악장 시작부터 전개가 스피디하고 따박따박 박자가 정확하고 음량도 거침없는데
그 모든 리드를 하는 아바도 지휘자가 의도하는 바가 느껴진다
오늘 달려보겠다고
개인적으로 너무 정박위주의 진행을 선호하진 않지만 오늘 국심은 그 정박 속에서 이루어낸 것이 있다
아직 심오한 뭔가를 구현하지 못할 바엔 정확히 모범생이 되어 확실한 전달을 하자
2악장의 장송행진곡은 좀 더 무게를 실어 축축 떨어뜨리는 듯한 페이스가 좋은데
오늘 국심은 2악장의 걸음도 무겁지가 않다 그리고 걸음이 재다
오늘 제일 아쉬웠던 부분인데 1악장이 이어 바로 연결하는 2악장이 속도감 완급을 좀 더 했더라면........
그래도 언제나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이 내게 주는 정서가 있다
이게 뭔지 슬픈데 슬프지않고 억울한데 한으로 엉켜있지는 않으며
고통스러운데 그걸 이겨보겠다는 의지가 깔린 장송 극복송으로 들린다
오늘 국심의 2악장은 의기충천하여 비극을 결단코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가 만연된 총주로 끝났다
3악장, 그리고 연이은 4악장에서 국립심포니 총주의 결정적 장점이 두드러졌다
3악장 목관파트의 시작부터 열일하는 활약에 힘입어 언제나 믿음직한 저음현의 백업
얼마전 들은 루체른 심포니의 리치한 고음현때문에 다소 약하고 가늘게 들렸던 고음현마저
팔걷어부치고 강건하고 단단한 사운드로 합세하여 감각과 이성 다 끌어다 놓으니 한눈 팔 새가 없다
그리고 그 모든 리드를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다시 거듭난 아바도 지휘자가 온몸을 던져 이끌어내니
이제 남은 건 하나 ~ 임팩트있는 총주로 역동적 부활의 목표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