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요.
지난 주 수요일부터 갑자기 의정부에 가서 저녁 일을 하게 되었지요. 오늘이 6일째네요. 뭐 8년째 거기 오가며 일을 하고 있지만 밤 깊어 끝나 혼자 내려오는 일 익숙하지 않아요. 하긴 처음 의정부 갈 땐 청평 검문소에서 우회전해서 현리 지나 가다보면 2시간 30분은 걸렸지요. 지금은 대성리 지나 퇴계원 초입까지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겨 시간 반이면 오가요.
어두워 8시 25분에 의정부 출발했어요. 빨리 집에 가서 닭발 먹어야지 하고 밟지만 미끄러워요. 오다가 사고난 것도 두번이나 보았어요. 대성리 경춘공원 지나 강가 다릿길 접어들기 전엔 웅덩이에 한 쪽 발이 빠져 쓰러질 뻔 했지요. 누가 곡괭이로 파 놓았나 보아요. 경치 좋다는 경춘가도를 천번은 오간 것 같아요, 먹고 살겠다고. 그러고 보니 의정부만 삼백번은 오갔군요.
소양로 가고파 닭발집에 9시 54분에 도착했어요. 으음 따뜻한 닭발, 은박지에 잘 포장해 놓으셨네요. 식기 전에 어서 집으로. 집에 들어오니 10시 10분이네요. 처가 부침개를 부쳐 놓았어요. 아하, 제가 의정부 가기 전에 '머리카락'이랑 '몽정'이란 시를 써 놓고 갔거든요. 맘에 들었나 봐요. 부추, 대파, 미나리, 누리대랑 청량고추가 들어간 부침개가 두 종류에요. 장 푼 것과 풀지 않은 것. 술은 2005년도에 담가 놓은 돌배술, 2006년도엔 달더니 지날수록 맛이 좋아요.
3.6l 병에 담아놓은 것 조그만 병에 따라 마셔요. 산딸기술, 산머루, 엉겅퀴술, 오디술, 작년에 담근 다래술까지 술이 참 많아요. 어머니가 홍천 서석 절골 촌사람이라 산 것을 좋아해요. 처는 홍천 내촌 광암리 더 촌 사람이지만 늙은 여자는 아니지요. 해마다 어머니가 산 것들을 챙겨주세요. 좁은 아파트 구석마다 3.6l 술병이 쉰이 넘어요. 책상 밑에만 11병이 쌓여 있네요.
저와 처는 일용직 노동자이지요. 가난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둘 다 전공이 시에요. 처가 저의 후배이지요. 제가 복학하던 해 처는 입학을 했지요. 그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술을 마셔요. '머리카락'이란 시를 읽은 처가, 아직 중국 가지도 않았는데 보냈다며 투정이에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요. 저희는 아이가 없어요. 저는 이 세상을 맘에 들어하지 않고 처는 아이를 맘에 들어하지 않죠. 저는 아이는 좋아해요. 촛불집회 가서 아이와 함께 오신 분들을 보며 부럽고 부끄러웠지요. 바람없이 살다라고 말 하기엔 아이들 웃음 소리 울음 소리가 큰 바람이에요.
어쨋든 둘이 술을 마셔요. 일주일에 한두번은 함께 술과 밥을 먹는 오랜 친구, 짝패가 있는데 오늘도 일 했고 낼도 일 해야 한다며 잔다네요. 한 때 스무살처럼 시를 썼던 그와 처가 요즘 저의 술동무이지요. 소설을 공부하는 음침한, 맘 맞는 선배도 한 명 있고요, 서울 가 있는 친구도 하나 있는데 일이 바빠 자주 못 보네요. 저의 선생님은 이제는 몸이 좋지 않으세요. 그러니 처와 저 둘이 술을 마셔요. 시간이 그렁거려요.
쑥스럽지만 사진을 한 장 올려요. 닭밝 같은 손은 저의 손이고 사진은 처가 찍었어요. 장떡 부침개에 빨간 달밝, 해마다 황금빛을 띠는 돌배술과 저 뒤로 1994년도에 구입한 인켈 스피커까지 보이네요. 더 쑥스럽지만 함께 술은 못 마셔도 똑같이 나이는 먹고 있다는 느낌인 손지연 씨의 앨범 사진도 찍었어요.
춘천으로 돌아오며 술을 마시며 이런 생각을 했어요. 뭐 오래 지난 생각이긴 하지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그냥 일용직이에요.
지난 저녁 우리가 지나왔을 그 발톱같은 시간들을 떠올리며 술을 마셨어요. 모두에게 건배.
첫댓글 사이알음님 따뜻한 글과 사진 잘 보았어요. 시를 쓰시는 사이좋은 부부이신데...부인께서 멀리 중국에 가시네요. 그 글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저도 예전에 외국 가려다가 가족과 헤어지기 싫어 포기한 적이 있거든요...
아까 10시 40분에 집에 도착함으로써 의정부 일은 당분간 끝입니다. 오늘도 가고 오는 길에 사고난 차들을 보았지요. 흐흐, 살아있음에 건배.
닭발이 무척 먹음직 스럽군요 부인과 잠시 떨어져 사셔야 되는 처지이신가 봅니다 가능하다면 같이 지내시는게 좋겟지만 요즘의 사회는 다원화 사회 라는 미명으로 떨어져 지내는 부부가 주위에 아주 많더군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 내시기 바랍니다.. 덕분에 시 는 더 잘 써질것 같은데요?
시 잘 쓰려고 떨어져 있어야하는건 아니겠지만..^^서로 건강해서 걱정 안 드리는게 좋겠어요.이 카페로 안부를 자주 전해요 해해
저문강님, 삽 씨으셨나요? 삽은 못 씻더라도 '저문강' 그러면 손이나 귀라도 씻어야 할 것 같아요. 시야 살아지는 것이니 이래저래 살다 보면 쓰다 말다 그러겠죠. 손지연님, 그러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