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숭아꽃
겹홍도화
만첩홍도화
겹수양홍도화
겹수양백도화
33. 복숭아나무 [peach tree]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 소교목
복사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3m 정도다. 나무줄기나 가지에 수지(樹脂)가 들어 있어, 상처가 나면 분비된다. 잎은 어긋나고 바소꼴 또는 거꾸로 선 바소꼴로 넓다. 길이 8∼15cm이며 톱니가 있고, 잎자루에는 꿀샘이 있다. 꽃은 4∼5월에 잎보다 먼저 흰색 또는 옅은 홍색으로 피며, 꽃잎은 5장이다. 열매는 핵과(核果)로 7∼8월에 익는다. 열매는 식용하고, 씨앗은 약재로 사용한다.
개량 품종은 과수원에서 재배한다. 백색 꽃이 피는 것을 백도(for. alba), 백색 꽃이 피고 만첩인 것을 만첩백도(for. alboplena), 붉은색 꽃이 피는 것을 만첩홍도(for. rubroplena), 붉은빛이 돌지만 백색 비슷한 꽃이 피는 것을 바래복숭(for. albescens), 감처럼 편평한 것을 감복숭(for. compressa), 열매에 털이 없는 것을 승도(var. nectarina), 핵이 잘 떨어지고 밑부분이 들어가며 끝이 뾰족하고 둥근 것을 용안복숭(for. aganopersica)이라고 한다.
(두산백과)
옛날 중국의 한무제(漢武帝)는 복숭아를 좋아해서 뒤뜰에 많은 복숭아나무를 심어 놓고 봄에는 꽃을 즐기고 여름에는 그 열매를 즐겼는데, 어느 해 때가 되어도 복숭아가 열리지 않아 동방삭에게 그 이유를 물은 즉, “그것은 장차 서왕모가 천도를 가지고 올 징조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과연 서왕모는 잘 익은 복숭아 30개를 가져왔는데 동방삭이 몰래 3개를 훔쳐 먹어 천 년을 더 살 수 있었다고 한다.
• 복숭아는 복숭아 나무의 열매이다.
• 낙엽활엽소교목으로 잎은 길이 8~15cm로서 어긋나기를 하고 끝은 뾰족하며 뭉뚝한 톱니가 있다.
• 꽃은 담홍색으로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단립 또는 쌍생한다. 화경은 짧고 꽃잎은 5개이며 씨방에는 털이 나 있다.
• 계란형인 열매는 핵과(1)로 크고 털이 빽빽이 나 있으며 7~8월에 익는다. 종자 속의 종인을 도인이라 하며 꽃을 백도화라고 한다.
* 핵과(1) : 장과(漿果)의 하나. 씨가 굳어서 된 단단한 핵으로 싸여 있는 열매로, 외과피는 얇고 중과피는 살과 물기가 많다. 복숭아, 살구, 앵두 따위가 있다. 보통 하나의 방에 한 개의 종자가 들어 있다.
'약용법'
1. 생약명 : 도인(桃仁)
2. 사용부위 : 씨와 열매를 약재로 이용한다.
3. 채취와 조제 : 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사용한다.
4. 성분 : 꽃에는 캠페롤(Kaempferol)의 배당체, 종자에는 에뮬신(emulsin), 아미그달린(amygdaline), 아미노산, 지방유, 수피에는 나린젠닌(naringenin)이 함유되어 있다.
5. 약효 : 월경불순, 월경이 나오지 않는 증세, 자궁혈종, 맹장염, 변비
ㆍ 백도화는 이뇨, 준하제, 수종, 변비증에, 도인은 소염성 정혈약, 월경불순, 하복부만통에 치료제로 쓴다. 잎은 습진, 종기 같은 질환에 쓴다.
6. 용법 : 복숭아 잎을 3~4장을 따서 물에 씻은 후 물기를 뺀 다음 잘게 잘라 용기에 넣고 갈아 으깬 다음 같은 양의 멘소레담을 넣고 잘 섞어 준다. 이 약을 가려운 부분에 바르면 효과가 좋다.
<우리 산야에 자생하는 약용식물(상)>
장미과에 속하는 교목성 낙엽과수.
학명은 Prunus persica (L.) BATSCH이다. 높이는 6m 정도이고 작은 가지에 털이 없으며 동아(冬芽:겨울눈)에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피침형·도피침형·타원상 피침형이며, 길이 8∼15㎝, 너비 1.5∼3.5㎝로서 양면에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둔한 잔 톱니가 있다.
꽃은 연한 홍색으로 4∼5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열매는 핵과(核果:단단한 껍질이 씨앗을 감싸고 있는 열매)로서 난상 원형인데 8∼9월에 익는다.
원산지는 중국 화북의 산시성(陜西省)과 간쑤성(甘肅省)의 해발 600∼2,000m의 고원지대이며 기원전 2∼1세기경에 페르시아 지방에 전해졌고 거기에서 다시 유럽으로 전래되었다.
우리 나라의 남부에도 야생종이 있으나 대과종(大果種:큰 열매를 맺는 종자)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현재 재배되는 품종의 모계인 중국종과는 그 계통이 다른 종류가 자생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식용·약용·화목용으로 일찍부터 재배되어 왔다. 기원전 400∼250년의 ≪산해경 山海經≫에는 그 재배기술이 실려 있고, 10∼11세기에는 대과(大果)의 우수품종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11∼12세기에는 유도(油桃)·황육도(黃肉桃)가 기록되어 있다.
17세기 이후의 문헌인 ≪군방보 群芳譜≫에는 편도(扁桃)·병자도(餠子桃) 등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약용·식용·화목용으로 재배해왔으나, 한말까지는 과실의 크기나 품질이 현재보다 뒤떨어졌고, 경제적인 품종과 기술은 한말 이후, 즉 서구문화의 도입과 함께 전래되었다.
1986년 현재 우리 나라의 총재배면적은 1만 4456㏊이고, 총생산량은 13만 8654t이다. 주생산지로는 경상북도의 대구·안동, 충청남도의 조치원·논산, 경기도의 부천·여주·이천, 경상남도의 사천, 전라북도의 전주 지역 등이다.
얼마 전까지는 소비지와 거리가 먼 원격지 생산은 꺼렸으나 도로사정이 좋아져서 수송이 용이해지면서부터는 지역에 관계 없이 전국적으로 재배가 확산되고 있다.
복숭아나무의 품종을 분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과피에 있는 털의 유무에 따라 유모종·무모종으로 나누며, 과육의 색에 따라 황육종과 백육종으로 나눈다. 또한, 품종육성의 경로, 재배연혁, 품종적응성 등에 따라서 유럽계 품종, 화북계 품종으로 나누기도 한다.
우리 나라의 주요 재배품종으로는 조생종으로 포목조생(布目早生)·사자조생(砂子早生)·창방조생(倉方早生)·대화조생(大和早生) 등이 있으며, 중생종으로 고창(高倉)·백봉(白鳳)·유명백도·대구보(大久保)·백도 등이 있다. 가공용으로는 카디날·황도1호·엠버젬 등이 있고 유도로는 흥진유도(興津油桃)가 있다.
복숭아나무는 고온다습한 조건에서는 결실불량·병충해발생 등의 문제가 많이 생기므로, 연평균기온이 11∼15℃ 되는 지방에서 널리 재배된다. 최적의 생육조건은 20∼30℃의 온난기후이므로 경제적 재배의 북쪽 한계선은 여름철 저온에 의해 결정되며, 보통 감 재배의 북방 한계선인 42°와 일치한다.
동양계 복숭아는 여름철의 고온다습 조건도 어느 정도 견디나 유럽계통은 생육기간 중에 비가 많으면 수체(樹體)가 약해져서 결실이 불량해진다.
토양은 배수성을 고려하여 남향·남동향·남서향의 완경사지(緩傾斜地)가 좋다. 내건성은 상당히 강하며 번식은 3월 초∼4월 초에 절접, 8월 초에 아접을 실시한다. 대목으로는 실생표목·돌복숭아나무·자두나무·매화나무·살구나무 등을 쓴다.
재식거리는 품종이나 토양비옥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보통 7×8m로 하며 정방형식·5점형식 등을 이용한다. 복숭아나무 품종 중 자가불화합성의 품종을 재식할 때는 20∼30%의 수분수를 혼식해야 한다.
복숭아나무는 재식한 뒤 2, 3년째부터 결실을 시작하여 6∼7년째 성과기가 되며, 20∼30년이 되면 수명이 다한다. 그러므로 유목일 때에는 약전정을 하고 성과기 이후에는 강전정을 해서 수세 조절에 힘써야 한다.
복숭아나무와 복숭아는 귀신을 쫓는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을 금기하였으며, 제상에도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다. 이것은 조상신이 찾아와도 복숭아가 지닌 축귀의 힘 때문에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제사 올린 것도 응감(應感)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복숭아가지 중 동쪽으로 뻗은 가지(東桃枝)는 더욱 힘이 강한 것으로 믿었으며, 귀신 뿐 아니라 부정한 것의 접근 또는 음식의 맛이 나빠지는 것도 막아 준다고 믿었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의 소국주방문에도 술을 담근 뒤 동도지로 저어 술맛이 나빠지는 것을 막고 있다.
한편, 복숭아는 <서왕모와 천도복숭아>라는 설화에 기인하여 장수를 의미하는 기복적 민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으며 남자아이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곳곳에서 과일나무로 심고 있는 낙엽활엽수이며 높이는 6m에 이른다.
잔가지에는 털이 없지만 겨울눈(冬芽)에는 털이 생겨나 있다.
잎은 마디마다 서로 어긋나게 자리하고 있으며 피침 꼴 또는 타원 꼴에 가까운 피침 꼴의 모습으로 양끝이 뾰족하다. 잎의 길이는 8~15cm 정도이고 가장자리에는 작고 무딘 톱니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꽃은 잎보다 앞서서 잔가지의 잎이 붙어 있던 자리에서 1~2송이씩 피어난다. 꽃잎은 5장이고 연한 분홍빛으로 피어나며 지름이 3cm쯤 된다. 지름이 6cm 안팎인 열매는 계란 꼴에 가까운 둥근꼴로 많은 잔털로 덮여 있다. 씨와 살(果肉)이 잘 떨어지지 않는 성질이 있다. 개량된 많은 품종들이 있다.
중국의 황하 상류지역을 원산지로 하는 나무로 예로부터 과일나무로 널리 심어왔다.
생약명은 도인(桃仁). 도핵인(桃核仁)이라고도 한다.
잘 익은 열매에서 씨를 분리하여 햇볕에 말린 다음 물에 넣어 씨의 껍데기를 불려서 제거하고 다시 말려서 쓴다.
벤잘데하이드(Benzaldehyde), 코우마린(Coumarin), 말릭산(Malic acid), 아미그달린(Amygdalin), 트리폴린(Trifolin)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통경 효능이 있고 어혈을 풀어주며 장의 활동을 순조롭게 해준다. 적용질환은 월경불순, 월경이 나오지 않는 증세, 자궁혈종, 어혈로 인한 복통, 맹장염, 변비 등이다.
말린 약재를 1회에 2~4g씩 200cc의 물로 뭉근하게 달이거나 가루로 빻아 복용한다.
여름철의 대표적인 과일로 소비량이 많으며 그밖에 잼이나 통조림 등으로 가공된다.
(몸에 좋은 산야초)
승도 복숭아 [Nectarine, 僧桃-]
이 즙이 많은 과일은 전 세계의 과수원에서 재배되지만 그 인기 때문에 오히려 수난을 겪어왔다. 상업용으로 재배되는 품종은 몇 종류 되지 않으며, 너무 자주 수확할 뿐만 아니라 익지도 않은 상태로 시장에 나가곤 한다. 그러나 토머스 제퍼슨의 정원에서 키웠다는, 살이 노란 바가 로지아 두라치나(Vaga Loggia duracina) 같은 극소수의 품종들은 그 향미로 특별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인류가 처음으로 복숭아 나무를 재배한 것은 약 3,000년 전 중국에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 매끄러운 껍질 덕분에, 커다란 자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두와는 생물학적으로도 전혀 연관이 없다. ‘넥타린(Nectarine)’이라는 영어(또는 프랑스어) 이름은 독일어나 네덜란드어에서 유래한 듯하며, 넥타와도 같은 단맛과 쥬이시한 과육을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그 인기가 높아졌다. 루이 14세는 특히 베르사이유 궁전에 있는 그의 부엌용 정원에서 재배한 승도 복숭아를 좋아했다고 한다. 복숭아처럼, 과육이 하얀 품종이 있고 노란 품종도 있으며, 씨를 발라내기 쉬운 것도 있고, 씨가 과육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생과일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지만, 승도 복숭아를 사용한 레시피도 많다. 특히 샴페인에 담가 발효시킨 승도 복숭아는 유명하다.
잘 익은 승도 복숭아는 매끄러운 껍질과 입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질감의 쥬이시한 과육을 지니고 있다. 과육은 복숭아보다는 결이 조밀하며 향미는 향긋하고 달콤하며, 살짝 신맛이 돈다.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세계 음식 재료 )
돌복숭
장미과의 잎지는 넓은잎 작은 큰키나무로 줄기가 하나 또는 몇 개로 갈라져 키 6m 정도로 곧게 자란다. 가지가 비스듬히 하늘쪽으로 뻗어 위쪽이 둥그스름해진다. 복숭아나무를 관리하지 않거나 씨앗이 저절로 나서 자라면 돌복숭이 된다.
산속 계곡가나 토질 좋은 둔덕에 주로 서식한다. 군락성이 있다.
열매가 복숭아보다 작고 단단하다.
4~5월에 잎보다 먼저 연한 분홍색으로 핀다. 꽃자루가 1~2개씩 나와 지름 2.5~3.3㎝ 정도의 꽃이 달린다. 수술이 많다. 꽃잎은 5장이다. 꽃받침잎은 5갈래로 갈라지고 짙은 자주색을 띠며 잔털이 빽빽하다.
길이 7~15㎝ 정도의 잎이 가지에 마주 달린다. 끝이 점점 뾰족해지는 피침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둔한 잔톱니가 있다. 앞뒷면에 털이 없다. 잎자루에는 꿀샘이 있으며 어릴 때는 잔털이 있다가 없어진다.
8~9월에 잔털과 단단한 핵으로 싸인 씨앗이 있는 지름 4~5㎝ 정도의 둥근 열매가 붉은빛 도는 노란 녹색으로 여문다.
줄기껍질은 어린 나무는 노란빛 도는 회갈색을 띠며 윤기가 있다. 묵을수록 어두운 붉은빛 도는 갈색이 되며 세로로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가로로 난 껍질눈이 있으며 젤리 같은 진이 나온다.
줄기 속은 가장자리는 붉은빛 도는 흰 갈색을 띤다. 안쪽에는 붉은빛 도는 갈색의 넓은 심이 있다. 한가운데에는 밝은 갈색의 작은 속심이 있다. 줄기 속을 벌레가 갉아먹어 잘 썩는 편이다.
햇가지는 노란빛 도는 녹색을 띠다가 점차 붉은 자주색이 된다. 묵으면 자줏빛 도는 회색을 띤다. 껍질눈이 있다.
겨울눈은 가운데가 조금 불룩한 원뿔 모양이다. 회색빛 도는 갈색을 띠며 잔털이 많다.
약용으로 중풍, 기관지염, 위장병에 쓰이며 민간요법으로 복숭아나무(복사나무)와 같은 약재이나 복숭아나무보다 약효가 낫다.
뿌리껍질(도근, 桃根) · 줄기껍질(도백피, 桃白皮) · 가지(도지, 桃枝)도 쓰이며, 뿌리껍질은 가을~봄에, 줄기껍질은 봄에, 가지는 봄~가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쓴다. 기관지염에 말린 것 10g을 물 700㎖에 넣고 달여서 마신다.
나무 진(도교, 桃膠)은 생으로 쓴다. 중풍에 생것 5g을 따듯한 물에 풀어 마신다.
열매(도실, 桃實)는 가을에 완전히 익기 전에 채취하여 생것을 쓴다. 위장병에 생것을 같은 양의 흑설탕에 재워서 효소를 만든 뒤 물에 타서 마신다.
익은 열매는 과실로 먹는다.
(약초도감)
개복숭아
산속에서 자생하는 개복숭아는 모양이 예쁘지는 않지만 그 약효가 뛰어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데요. 그 맛이 매우 달고 시며 유기산 및 알코올류, 펙틴 등 섬유소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개복숭아에 대해 소개합니다.
구입요령은 될 수 있는 한 농토에서 많이 떨어진 야생으로 선택하여 채취하여야 약효가 뛰어나며 다 익으면 붉고 겉 표면이 갈라지며 모양이 예쁘지 않고 다양한 것이 자연산이다.
유사재료 복숭아 (복숭아는 과육의 색에 따라 백도와 황도로 나눌 수 있는데 황도는 유기산이나 비타민의 함량이 백도에 비해서 더 많이 들어 있다.)
생과로 먹거나 과실주 또는 액기스를 만들어 먹는다.
기침안정, 신경안정 (복숭아의 가장 중요한 성분으로 비타민 B17인 <아미그달린>은 한방약재의 유효성분으로 기침을 그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도인주 [桃仁酒]
복숭아나무의 씨앗인 도인(桃仁)으로 담근 술이다. 도인은 장미과 복숭아나무 또는 산복사의 씨로 만든 약재로 냄새가 거의 없으며 맛은 쓰고(苦) 달며(甘) 성질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평(平)하다고 하였다. 도인은 어혈을 제거하여 하복통, 월경폐색, 월경불순, 타박상, 폐농양, 맹장염에 쓰이며, 장을 윤활하게 하여 변비에 사용하며 피부가려움증, 건조, 기미, 주근깨 등에 쓰인다. 약리작용으로 혈관확장작용, 혈류량 증가, 자궁수축 및 자궁지혈작용 촉진, 배변작용, 항염증작용, 진해작용, 진통작용 등이 보고되어 있다.
도인주의 재료는 도인 오백 개, 청주 서 병이다. 담그는 방법은 먼저 도인 오백 개의 속껍질을 벗기고 뾰족한 곳인 배아는 떼어버리고 쌍으로 붙은 것은 독이 있으므로 쌍동이(雙仁)는 가려낸다. 청주 서 병을 부어가면서 맷돌에 갈아 고운 명주채로 걸러 물이 새지 않는 항아리에 담아 입을 봉하고 솥에 물을 넣고 그 위에 항아리를 띄워 중탕하고 냉암소에 보관하고 4~5개월 후에 먹는다. 담글 때 술 밑이 누러면 좋은 것이라 하였으며 껍질을 벗길 때 물에 담갔다가 벗기면 수월하다.
도인주는 매일 아침 데워서 한 잔씩 마시면 좋다.
(두산백과)
도화차 [桃花茶]
복숭아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나 꽃은 어느 종류이든 차로 쓰는 데는 무방하다. 복숭아꽃의 성분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으나, 복숭아의 성분은 당분이 많고 타르타르산이 대부분이며 말산도 들어 있다. 비타민 B1, B2도 조금 들어 있다. 도화차는 예로부터 보건차로서이용되었는데, 변비 ·각기 ·결석(結石) 등에 효과가 있고 해독작용도 한다고 한다. 도화차는 봄에 복숭아꽃이 한창 필 때 꽃을 따서 그늘에 말려서 종이봉지에 넣어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매달아 두고 사용한다. 꽃을 말릴 때는 꽃술을 떼내고 말린다. 달이기 전에 재료에 곰팡이가 슬지 않았나 잘 살펴서 손질해야 한다. 하루의 분량은 말린 복숭아꽃 15∼20 g을 물 500 cc에 넣고 달여 하루 2∼3회 마시는데, 여기에 물을 타서 마셔도 좋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마시면 음혈(陰血)을 소모하고 원기를 손상하여 좋지 않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두산백과)
도원결의[ 桃園結義 ]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은 데에서 비롯된 말로,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도원(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로, 뜻이 맞은 사람끼리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이다. 중국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의 사람인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지연의》는 진수(陳壽, 233~297)의 《삼국지(三國志)》에 서술된 위(魏)·촉(蜀)·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승되어 온 이야기들을 나관중이 이야기체의 장편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후한(後漢) 황실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유비를 중심으로 삼국의 분립(分立)과 대립의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그래서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도원(桃園)에서 결의(結義)하여 의형제(義兄弟)를 맺은 내용으로 이야기의 첫머리로 삼고 있다. 이는 진수(陳壽)의 《삼국지》에는 나타나지 않은 사실로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 허구(虛構)로 재구성된 것이다. 나관중이 도원결의(桃園結義)를 이야기의 첫머리로 삼은 것은 국가와 민족의 정통(正統) 회복이라는 대의(大義)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청(淸) 초기에 모종강(毛宗崗)이 다듬은 ‘모본(毛本)’이 《삼국지연의》의 정본(定本)으로 여겨지는데, 이를 기초로 도원결의(桃園結義)와 관련된 이야기를 간추려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천하 인심이 날로 흉흉해지고 사방에서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장각(張角)이 남화노선(南華老仙)에게 세 권의 천서를 얻어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스스로를 대현량사(大賢良師)라 했다. 장각이 두 동생과 함께 난을 일으키니 사방의 백성들이 모두 누런 헝겊으로 머리를 싸매고 장각을 따라서 일어났다. 장각의 군대가 유주(幽州) 땅까지 범해 들어오자 유주(幽州) 태수(太守) 유언(劉焉)은 교위(校尉) 추정(雛靖)의 말을 들어 의병을 모집하는 방문(榜文)을 내 걸었다. 이 방문이 탁현(涿縣)으로 들어가 마침내 그 고을의 한 영웅을 끌어내게 되었다.
한(漢)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비(劉備)는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지성으로 섬겼는데 집이 가난해서 미투리를 삼고 자리를 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다. 유언이 방(枋)을 내어 군사를 모집할 때 유비의 나이는 이미 스물여덟이었다. 이 날 유비가 방문(榜文)을 보고 탄식을 하고 있는데 장비(張飛)가 나타나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서 힘을 내려고 하지 않고 어째서 한숨만 쉬고 있느냐고 꾸짖었다. 유비가 도적을 무찔러 백성을 편안히 할 생각은 간절하나 힘이 없어서 장탄식을 한다고 하자, 장비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 고을 안의 용사들을 모아 함께 큰 일을 하자고 했다. 유비가 크게 기뻐하며 장비와 함께 마을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관우가 주막으로 들어와 군사 모집에 응해 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술을 독촉했다. 유비가 자리로 불러 마음에 있는 바를 이야기했더니 관우도 크게 기뻐했고, 세 사람은 함께 장비의 집으로 갔다.
큰 일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장비가 집 뒤의 복숭아 동산에 꽃이 한창이니 내일 이 동산에서 천지(天地)에 제(祭)를 지내고 셋이 의형제를 맺어 한마음으로 협력하기로 한 뒤에 일을 도모하자고 하였다. 유비와 관우가 동의하여 다음날 도원(桃園)에 검은 소(黑牛)와 흰 말(白馬)과 지전(紙錢) 등 제물을 차려 놓고 제를 지내며 맹세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비록 성은 다르오나 이미 의를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해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케 하려 하고, 한 해 한 달 한 날에 태어나지 못했어도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皇天后土)께서는 굽어 살펴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맹세를 마치고 유비가 형이 되고, 관우가 둘째, 장비가 셋째가 되었다. 제(祭)를 마치고 소를 잡고 술을 내어 고을 안의 용사들을 불러모으니 300명이었다. 이 날 도원(桃園)에서 다들 취하도록 술을 마시며 함께 즐겼다.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桃園)에서 결의(決議)를 한 이 이야기에서 도원결의(桃園結義)는 의형제(義兄弟)를 맺거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합심할 것을 결의하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승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삼국지연의》의 영향 때문에 제문(祭文)의 내용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서약(誓約)의 모범으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두산백과>
만첩홍도
배수가 잘되는 산성토양에서 자란다. 높이 3~6m로 줄기에 수지(樹脂)가 들어 있어 상처가 나면 흘러나온다. 작은 가지에는 털이 없으나 겨울눈에는 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며 길이 8~15cm의 바소꼴 또는 타원형 바소꼴이다. 양면에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에는 꿀샘과 털이 있으나 털은 차츰 없어진다. 꽃은 4~5월에 잎보다 먼저 피며 붉은색의 겹꽃이 1~2송이씩 달린다. 꽃자루가 짧고 꽃받침조각에 털이 많다.
열매는 둥근 모양의 핵과(核果)로 8~9월에 익는다. 표면에 털이 많고 핵은 과육으로부터 잘 떨어지지 않는다. 육질은 부드럽고 달콤하여 먹을 수 있다. 식용·관상용·공업용으로 많이 재배하며 종자는 한방에서 약재로 쓴다. 중국 원산의 귀화식물로 씨뿌리기나 접붙이기로 번식한다. 복숭아나무의 한 품종으로 붉은색의 겹꽃이 피는 것이 특징이다.
<두산백과>
도화원기(桃花源記)
산속을 헤매던 남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낙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풍요로운 논밭이 이어져 있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며칠 간 머물다가 남자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이곳에 오려고 하지만 낙원은 두 번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낙원'은 신비에 싸인 별천지이다.
낙원 사상의 진수 『도화원기』4세기 무렵 중국의 이야기이다. 후난 성(湖南省)의 무릉(武陵)이라는 지역에 민물고기를 잡으며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남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따라 계곡 깊숙이 들어가는 사이에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부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자신의 작은 고기잡이 배를 저어가니 계곡 양쪽 물가를 따라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이 하나같이 모두 복숭아나무였다. 달콤한 향기가 계곡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꽃잎이 하늘하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어부는 이 복숭아나무 숲이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보고 싶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한동안 가니까 복숭아나무 숲은 끊기고 계곡이 맞닿는 곳에 작은 산이 나타났다. 계곡 물이 솟아 나오는 수원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어부는 기슭에 배를 두고 뭍으로 올라와 동굴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동굴 안은 무척 좁아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 갈 정도였다.
동굴 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더니 눈앞에 대지가 나타났다. 넓은 대지는 평탄했고 손질이 잘 되어 있는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도 있었다. 잘 닦인 길과 커다란 집들이 있었고 그 집들의 뜰 안에서는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들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나 머리를 땋은 아이들도 한가롭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어부의 모습을 발견한 마을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어부가 겪은 그대로 이야기하자 마을 사람은 자기 집으로 어부를 데리고 가서 술과 닭고기 요리를 대접해주었다. 어부에 대한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그 집으로 몰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아래 세상에 대해서 이것저것 어부에게 캐물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진(秦)1)나라 때 전란을 피해서 가족과 친지들을 이끌고 이 산속으로 피난을 왔다. 그후로는 마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과는 인연이 끊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마을 사람들은 한(漢)이라는 시대도 몰랐다. 그러니 위(魏)나 진(晋)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략 500년 동안이나 바깥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하자 마을 사람들은 놀라서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 다음부터 마을 사람들은 번갈아가면서 어부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해서 푸짐한 술과 안주로 대접하며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다. 어부는 이 마을에서 며칠 동안을 지낸 후 자신의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 중 하나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주시오."
어부는 마을을 나와서 원래 장소에 있던 배를 타고 오면서 도중에 표시가 될 만한 곳을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자신의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관리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관리는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어부에게 부하를 동행시켜서 마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는 그 평화로운 마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이 중국의 시인인 도연명2)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줄거리다. 이것이 '무릉도원' 전설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단순히 이상향을 그리는 우화가 아니라 어쩌면 길을 잘못 들어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을 가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금은 보화로 치장된 궁전도 없고 이상한 현상도 없으며 일반인들이 무척 친근감을 느낄 정도로 서민적인 장소다. 더구나 이 낙원은 보통 사람들도 걸어서 갈 수 있게 일반적인 땅과 연결된 장소에 있다. 다만 그곳에는 모든 사람들이 꿈꿀 만한 평화로운 전원풍경과 함께 만발한 복숭아꽃과 동굴이라는 '별천지'다운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비경'이라는 이미지는 훗날 중국인들에게도 매우 강한 인상을 주어서 이를 주제로 한 시나 문학, 그림 등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에 그치지 않고 한국이나 일본에까지 이 『도화원기』가 번역되었고, 이 글의 영향을 받은 문인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 작품은 도연명의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평가를 받은 것이지만 그 외에도 글 속에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이나 종교, 나아가서는 문화적 배경이 짙게 배어 있는 장치가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말하자면 중국적 발상에 의한 '낙원'의 진수를 모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영적인 열매 '복숭아'에 대한 이미지
우선 어부가 낙원에 가까이 갔을 때 계곡 양쪽으로 빽빽하게 복숭아나무 숲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 나타났다. 만발한 꽃들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 '복숭아'라는 식물은 중국에서 '천계(天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에는 도교라는 전통적인 종교가 있는데, 이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 전승을 흡수하면서 사람들 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도교, 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복숭아는 중국인들에게 매우 '영적인 힘'이 강한 과일이다. 복숭아가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켜서 그런 것인지 '다산', '생명력',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고 악령을 쫓아내는 효과도 있다고 여겼다. 물론 이는 보통 과일 밭에서 나는 복숭아가 아니라 신선이 사는 '신선 마을[神仙鄕]'에서 자라는 복숭아, 즉 '선과(仙果)'였을 때의 이야기다. 이런 발상은 켈트 사회('아발론 섬' 편 참조)나 기독교 세계에서 나오는 '사과'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복숭아가 주목을 받는 것은 중국 문화권에 한해서이고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원리(女性原理)', 또는 '결혼'이라는 뜻은 있지만 그다지 중요시되는 일은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천계에서 이 복숭아를 관리하는 것은 서왕모(西王母)라는 여신이다. 수많은 여성신 중에서도 능력과 권력에 있어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미녀다. 『서유기(西遊記)』에 의하면 그녀는 천계에 '반도원(蟠桃園)'이라는 이름의 복숭아 과수원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직접 복숭아를 키운다고 한다.
이 과수원에는 복숭아가 전부 3,600그루 있는데, 입구 가까운 곳에 있는 1,200그루는 3천 년에 한 번만 열매를 맺는다. 이 복숭아 열매는 작지만 인간이 먹으면 몸이 가벼워져서 신선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과수원 안쪽에 있는 1,200그루는 여덟 겹의 꽃잎을 가진 꽃이 피고 6천 년에 한 번 달콤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을 먹으면 안개를 타고 날아다닐 수 있고 불로장생의 몸이 된다.
그리고 과수원 가장 안쪽에 있는 1,200그루의 복숭아는 포도 색깔의 반점이 있고 씨가 작아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9천 년이 걸린다. 이 열매를 먹으면 태양이나 달처럼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손오공은 이 복숭아 과수원의 관리인이었는데 몰래 복숭아를 훔쳐 먹어서 죽지 않는 몸이 되었다고 한다.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은 복숭아의 열매뿐만이 아니다. 복숭아나무 또한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전설에 의하면 동방에 있는 바닷속에 도삭산(度朔山)이라 불리는 신비한 섬이 있는데 그 주위는 거대한 한 그루의 복숭아 나무 가지로 둘러싸여 있다.
동북쪽 부분에 약간 가지가 엉성한 곳이 있는데 거기가 이 섬의 유일한 입구여서 많은 귀신들이 출입한다. 말하자면 귀문(鬼門)인데 이곳에는 두 명의 문신(門神: 문지기 신)이 악귀의 침입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중국 사람들은 문가에 복숭아나무로 만든 문신의 인형이나 부적[桃符]를 붙이는 습관이 있다. 집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복숭아라는 식물은 장수의 상징임과 동시에 악령의 침입을 막고 깨끗한 신의 영역을 나타낸다. 이렇게 설명하면 『도화원기』의 낙원이 단순한 산속마을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동굴 속에 있는 신선들의 주거 - 동천『도화원기』에서는 낙원의 입구가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동굴이라고 되어 있다. 이 '동굴' 또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도교에는 '동천복지(洞天福地)'라는 말이 있다. 이는 육조 시대(3세기~6세기)까지 전성기를 이루며 유행되었던 것으로, 명산이나 경치가 좋은 장소에는 신선(신의 경지에 이른 선인)이 사는 '낙원'이 숨겨져 있다는 사상이다. '동천(洞天)'이라는 말은 동굴 속에 있는 별천지이고, '복지(福地)'란 천재지변이나 인간의 재앙이 닿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도교 세계에서 신선들의 이상향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당나라 시대(618~907)에는 십대 동천(十大洞天), 삼십륙동천(三十六洞天), 칠십이복지(七十二福地)가 있다고 했으며 그 소재지들은 도교의 성지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장쑤성(江蘇省)의 마오산(茅山)에 있다는 '금단화양동천(金壇華陽洞天: 10대 동천의 하나)'은 동굴 속인데도 불구하고 태양과 달은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빛나고 보랏빛 구름이 떠 있다고 한다. 공중에는 새가 날아다니고 지상에는 초목이 우거졌으며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이 늘어서 있다. 다른 '동천복지' 또한 비슷한 풍경이라고 한다. 『도화원기』에 나오는 낙원과의 커다란 차이점은 이 이상향이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선을 위해 준비된 세계라는 점이다. 따라서 신선이 살기에 어울리는 궁전이 있고 금은 보화로 장식되어 있다.
동굴 내부에 태양이나 달이 있으며 도시가 존재한다는 말은 그곳이 하나의 세계임을 나타낸다. 나아가 작은 우주로서 본래의 우주 내부에 마치 태아처럼 동천복지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천복지는 땅속에 있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일반 사람들은 동천복지에 들어갈 수가 없다. 도교의 수행을 쌓아서 신선이 될 자격이 있는 도사만이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동천복지는 천계에 있다는 신선의 주거가 지상으로 파견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천'의 이미지를 부풀린 것 같은 이야기를 살펴보자. 『후한서(後漢書)』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후한 시대(後漢: 25~220), 허난성(河南省)의 어느 작은 마을에 비장방(費長房)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어느 날 마을 시장에 호공(壺公)이라는 노인이 나타나서 약을 팔았다. 호국의 약은 무척 잘 들었는데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그러나 그는 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약을 주기도 했다. 더구나 그렇게 번 돈을 모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비장방은 이 노인에게 흥미를 느껴서 매일 그를 관찰하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호공은 장사를 끝내고는 약이 든 호리병 속으로 껑충 뛰어들었다. 망루에서 호공을 지켜보고 있던 비장방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든 이 호리병의 비밀이 알고 싶어진 비장방은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약을 진열해 놓는 길가를 청소하기도 하면서 호공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다. 한동안 비장방을 무시하던 호공도 드디어 그의 성실함을 인정했다.
''날이 저물고 시장에 사람들이 없어지면 이곳으로 오시오."
저녁 때가 되어서 비장방이 호공에게로 갔다. 호공은 따라오라며 호리병 속으로 뛰어들었다. 비장방은 잠시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어 그의 뒤를 따랐다. 그 호리병 속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마을이 있었던 것이다. 눈부시도록 화려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이 세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호공의 저택도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하인들이 몇 명씩이나 머리를 조아리고 서 있었다. 호공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신선이다. 예전에는 천계에서 중책을 맡아보고 있었지만 직무태만으로 질책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다. 너에게는 소질이 있어 보였기에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이 장소에 대해서 결코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
그 후에 비장방은 호공의 지도를 받으며 수행을 거듭하여 드디어 선인(仙人)이 되었다고 씌어 있다.
호공의 호리병 속에는 별천지가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호리병이 우주를 삼켰다고 해야 할까? 말하자면 호공의 호리병은 다른 세계가 현실세계에 들어온 다른 차원[異次元]의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기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 밖에도 많다.
'동천'설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별천지의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도화원기』에서 어부가 들어간 동굴은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었다. 동굴이라는 것은 대개 입구가 작고 안으로 들어가면 넓어진다. 호공의 호리병도 입구가 좁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벌어지는 모양을 하고 있다. 심층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모태로 돌아가기 위한 자궁 입구를 상징한다. 생명을 키워준 장소로 돌아간다는 향수와도 같은 사고가 『도화원기』의 또 다른 요소였다고 할 수 있다.
초자연적 시간 -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시간『도화원기』속에 나오는 낙원의 주민들은 진(秦)나라 때부터 그 장소에 살게 되었다고 씌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었다. 여기서 약500~600년 정도 시간의 엇갈림이 일어났다.
『도화원기』의 낙원에서는 그 이유를 납득하기 쉽지만 중국의 '선계(仙界: 선인들이 사는 장소)'에서는 이러한 시간의 엇갈림, 또는 '초자연적 시간'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중국의 '낙원'은 말하자면 '시간의 낙원'이라는 양상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소개한다.
4세기 무렵의 이야기이다.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어느 마을에 '과혈(瓜穴)'이라 불리는 동굴이 있었다. 이 동굴에서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오고 간혹 참외 잎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어느 날 도교 수행을 어느 정도 해본 적이 있는 이반(李班)이라는 남자가 이 동굴에 들어가보았다. 구멍 속을 3백 보 정도 걸어가자 넓은 장소가 나왔다. 그곳에는 궁전이 있었고 머리와 수염이 새하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무척 고귀한 선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이반은 그들 앞으로 나아가서 엎드려 절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너는 돌아가는 편이 좋다. 여기에 오래 있으면 좋지 않다."
이반은 인사를 하고 출구로 향했다. 구멍 끝에 다다르자 참외가 있었다. 그것을 따려고 손을 뻗었더니 참외는 돌로 바뀌어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말했다.
"나가신 지 벌써 40년이나 지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산둥성의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진(晋)나라의 태시년간(太始年間: 265~274)에 봉구(蓬球)라는 나무꾼이 산속에서 일하고 있을 때 신기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 향기에 매료되어서 바람이 부는 쪽을 향해 찾고 있는 사이에 어느 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궁전이나 높은 누각들이 서 있었다. 문으로 들어가 보니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리따운 미녀 네 명이 구슬치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봉구를 발견한 미녀가 놀라서 일어섰다.
"봉구님, 어떻게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지요?"
"향기에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여자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구슬치기를 시작했다. 봉구는 목이 말라 가까운 나뭇잎에 맺혀 있던 이슬을 핥았다. 갑자기 여인 하나가 학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여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왜 속인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느냐? 서왕모님께 엄한 꾸중을 들을 것이야."
두려워진 봉구는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돌아보니 궁전도 누각도 미녀들의 모습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자신의 마을이나 집은 모두 황폐해져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건평년간(建平年間: 399~405) 시대가 되었다고 했다. 불과 몇 시간 선계에 가 있는 동안에 벌써 1 백 년 이상이나 지나 있었던 것이다.
흔히 세상일의 덧없음을 이야기할 때 예로 드는 『한단지몽(邯鄲之夢)』도 주막에서 밥이 끓는 잠깐 사이에 꿈속에서 영화를 누리며 파란만장한 50년 동안의 인생을 경험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시간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즉 '낙원'이나 '선계'는 속세와 시간의 흐름이 전혀 다르다. 이런 이야기는 민간전승이나 옛날이야기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신들이나 선인들의 시간은 일반 사람들의 시간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신들은 물론이고 원래는 인간이었던 선인 또한 소위 '불로불사(不老不死)'로 죽음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죽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인생 50년'이라고 서둘러서 살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이를 먹기는 한다. 다만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시간의 흐름이 엄청나게 느리다. 그러므로 우연하게 신선 세계의 '시간'속에 있었던 인간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왔을 때 참외가 돌이 되어버린다든지 자신의 마을이 폐허가 되어 있는 것처럼 시간 경과의 엇갈림을 당하게 된다. '다른 세계[異界]'를 본 인간은 그 보복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씁쓸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반(反)도시공동체 '오'이처럼 도연명의 『도화원기』에는 '낙원'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게다가 도연명은 낙원을 꿈꾸기만 하는 예술가였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 산속의 낙원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현실감을 띠고 있었다.
그는 전란과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되풀이되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당시는 그런 혼란이 싫어서 도시를 벗어나 인적 없는 산악지대로 피난하는 사람들, 소위 유민이 적지 않았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탈출하는 경우는 일가친척에 노예까지 데리고 도피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이동하는 사람의 규모도 상당히 컸다. 그들은 산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그 주위에 흙으로 담을 쌓고 완전히 푹 파묻혔던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를 '오(場)'라고 한다. 그야말로 진나라 때 전란을 피해 산속에 '낙원'을 만들었던 『도화원기』의 마을 사람들을 연상시킬 수 있는 일들이 실제로도 존재했다.
다만 유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칫 잘못하여 도적으로 모습을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더구나 도시생활에서 가졌던 상하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도화원기』에 나오는 것처럼 민주적인 여유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화원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연명의 사상적 입장은, 이러한 정세를 바탕으로 두고 있기는 해도 보다 순수한 형태의 '낙원'을 지향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에 있는 뜰 안에서 개나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나 머리를 땋아내린 아이들'이 즐겁고도 한가롭게 놀고 있는 광경이란 농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풍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이 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어부가 마을에 들어갔을 때 그를 응대한 사람은 일반적인 마을 사람들뿐이었지, 그 마을의 지도자나 권력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매우 민주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 부분이다. 어쩌면 도연명은 유민들의 공동체인 '오'에 대해서 커다란 가능성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을과 대비되는 시골, 도시와 대비되는 '반(反)도시'의 이념이다.
그러나 현실의 오(場)는 이러한 이상과는 반대로 괴멸의 길을 걸었다. 그 이유로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도시생활에서 이루어졌던 인간의 상하관계를 그대로 공동체로 가져갔다는 것.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란군이 될 수도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권력자들 쪽도 위협을 느껴서 무력으로 귀순 공작을 진행시킨 결과이기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산 속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해서 어쩌면 아름다운 '이상향'이 될 수도 있었던 공동체는 붕괴되어갔다. 도연명의 꿈은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은일사상도연명의 『도화원기』에 표현된 '반도시(反都市)' 사상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생각해보자.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은일(隱逸)'사상이 있다. 이는 '자신의 뜻이나 생활 방식을 굳게 지켜서 관료가 되지 않는다'는 자세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길은 관료가 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상이나 이상이 당시의 권력자와 맞지 않았을 때에는 관료가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사임했다. 물론 이는 권력자에 대한 명백한 반항이다. 처벌을 두려워한 그들은 시골이나 산속에서, 말하자면 '은거'하는 자세로 스스로의 의지를 내보였던 것이다.
잘 알려진 사례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있다. 이는 위(魏), 진(晋)나라 시대(3세기 후반)에 정치적 혼란을 피해서 잠시 허난성 북동부에 있는 대나무 숲에 모여서는 여러 가지 논의를 벌였다는 일곱 명의 지식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완적(阮籍: 210~263)과 산도(山濤: 205~283) 등이 중심인물이었다.
당시는 사마(司馬)씨가 위나라의 왕위를 빼앗아서 진 왕조를 세우려고 싸우고 있던 시대였다. 칠현이라고 불린 사람들은 각각 사정은 달랐지만 정치적 혼란이 싫어서 '은사(隱士)'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세는 후대 사람들로부터 청렴결백한 사람들이라 하여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위 은자(隱者)와는 다른 존재들이다. 은지(Hermit)라는 것은 주로 종교적 동기에서 속세를 버리고 산속에서 수행을 쌓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과 같은 '은사(隱士)'의 경우는 그렇게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그 사람의 뜻이 위정자에게 인정되어 자신의 이상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치 형태가 마련되면 당장이라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풍조 속에서 세상에 '현자'임을 드러내기 위해 겉으로만 은거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위정자 쪽도 자신의 정치 자세가 관용이 넘치고 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러한 은사들을 후대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옛부터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무릉도원'의 내용에는 잠깐 살펴보기만 해도 이처럼 커다란 테마, 또는 사상이 담겨져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을 연구하는 것은 그대로 중국의 사상사, 종교사, 민속사(民俗史)를 알게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도연명이 『도화원기』에 표현한 이상향은 무척 친근하게 생각되기는 하지만 결국 인간은 지금껏 그 땅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도 그가 제시한 이상향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지금까지도 신선한 매력이 넘치는 존재로 남아 있다.
<신화와 전설>
첫댓글 겹 복사꽃은 홍매화와 버금할만큼 예쁘네요????
그렇쵸. 요즘은 열매보다 꽃을 즐기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