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대로 - 경기도 김포시 대곶 <덕포진교육박물관>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추억의 교실’에서의 감동적인 수업
그동안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얻은 것만큼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살아가야 할 나이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 모든 것들이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는 나이, 속절없이 늙어가면서 지난날들에 대한 그리움조차 없다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이든 오래되면 녹슬거나 빛이 바래듯 기억 또한 까맣게 잊히거나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추억이란 오래 묵은 것일수록 더더욱 진한 그리움으로 우러난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뛰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떠올릴 때마다 찬란하게 빛난다. 마음먹는다고 해서 돌아갈 수 없기에 지나간 일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그립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에 있는 덕포진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덕포진사적지 들머리에 있는 <덕포진교육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덕포진교육박물관은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부부(김동선.이인숙)가 1996년에 설립한 사설 박물관이다. 교사 부부는 재직 중 부인이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어 더이상 교단에 설 수 없게 되었다. 30여 년 동안 천직으로 알고 학생들을 가르쳐 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눈이 멀어 교단을 떠나게 되었으니 그 상실감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1950년 대의 초등학교 교실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당시 사용하던 학용품, 교과서, 교구 등 수집한 각종 자료를 전시한 교육박물관을 설립했다.
박물관은 건물의 층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층은 ‘교육 테마 전시관’으로 ‘추억의 교실’, ‘학창시절 체험관’, 그리고 ‘영어.수학 교과 테마실’ 구성되어 있고, 2층은 ‘교육 사료관’으로 ‘서당.교육과정 변천사실’, 추억의 문방구‘, 그리고 ’문화다양성 코너와 다문화 체험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3층은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농경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 전시실과 박물관의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기실 교육박물관이 사설이다 보니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2층과 3층은 자료가 빈약하여 크게 눈여겨볼 게 없다. 다만 1층에 있는 ’추억의 교실‘은 1950년 대의 교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아 1950년 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육박물관이라고는 하지만 전시한 각종 물품과 자료가 빈약하여 먼 길을 일부러 찾아가서 볼만한 곳은 못 된다. 다만 이곳을 찾은 관람객을 대상으로 ’추억의 교실‘에서 시각장애인인 이인숙 관장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50년 대의 방식 그대로 진행하는 수업은 그야말로 감동적이다. 관람객들은 이인숙 선생님의 풍금 반주와 선창에 따라 ’학교 종이 땡땡땡‘이라는 동요를 시작으로 손뼉 치며 ’오빠 생각‘, ’섬집 아기‘, ’과수원길‘ 등 동요를 부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동요를 부르는 이인숙 선생님의 목소리가 30대 못지않게 낭랑한 것은 지금껏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교사로서의 자존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차렷! 경례” 반장의 구호에 따라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교육박물관에서의 수업은 마무리된다. 그러나 선생님이 손 더듬으며 교단에서 내려선 다음에도 밀물처럼 밀려오는 감동 때문에 자리에서 쉽게 일어날 수 없었다. 이제는 작은 흔들림에도 어지럼을 탈 나이가 되었다. 비록 몸과 마음이 시들대로 시들어버렸을지라도 서로 이마를 맞대고 푸른 꿈을 키우던 ’추억의 교실‘에 앉으니 여전히 벅찬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릴 때의 일들은 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이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보다는 얼마나 자주 그 기억 속에 머무느냐에 달려 있다. 어릴 때의 친구들과 함께 또 하나의 추억을 가슴 속에 담아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