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윤(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한국불교시선-
-만해.조지훈시인등 76명 작품-
-마음 편안케하는 '언어의 법당'-
경전으로 이름붙은 책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불교 1천6백년 역사에서 우리들에게 값진 가르침을 전하는 저술들은 수없이 많다. 얼핏 서가를 일별해보니 옛 선사들의 어록은 물론 나와 함께 이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며 살았던 스님네들의 법어집도 십여권이 넘는다.
그 책들은 언제 펼쳐보아도 누런 종이에 알알이 박힌 검은 활자들이 꿈틀대는 것만 같다. 가끔은 내 눈이 착시를 일으키는 것인가 하고 깜짝 놀랄 때도 있다. 말씀은 말씀을 떠나서 있듯, 활자 또한 활자가 아니어야 한다. 모름지기 나에게 착시를 일으키게 하는 책이 참다운 불서가 아닐까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본다. 싫지 않은 상상이다.
경.율.논 삼장에는 끼이지 못하지만 해를 더해 묵어갈수록 빛을 발하는 책이 있다. 비록 소품이지만, 이 자리에서 소개하려는 <한국불교시선>이다.
책 뒤표지를 열어보니 벌써 20여년전, 1973년 세상에 나온 책이다. 한국불교문학회가 편찬했고, 서정주 김어수 고은 송혁 등 제씨와 석지현 스님이 편집위원으로 참석해 동국역경원에서 퍼냈다.
뒷장부터 소개함은 불교문학이라는 등불이 요즘에는 그 빛이 가물가물거려 당시의 이 책을 펴낸 작업이 너무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불교에도 이만한 문학적 자산이 있었음을 은연중 자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서다.
문학에는 문외한이지만, 현대시의 시발은 만해의 <님의 침묵>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 타당성을 따질 계제는 아니다. 다만 우리 불교의 정신과 가르침이,또 그것을 따르는 불제자들의 노고가 우리나라의 현대문학을 일구어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시집도 만해를 비롯 그 이름만 대도 알만한 시인들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작고한 시인으로는 오상순 조지훈 최연희 김달진 김광섭 신석초등등. 박희진 신동집 오규원 이형기시인들을 해방전과 해방후의 시인들로 나눠 무려 76명의 시인이 등장한다.
이 책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시선'은 70년 7월에 창립한 한국불교문학가협회의 첫 사업으로 간행했으며, 불교와 연관을 가진 작품 3편씩을 자선(自選)토록 해 실었다고 한다. 작고시인의 작품은 편집위원들이 선정했다.
이쯤에서 보면, 70년대 초반까지 우리 시단의 현역시인 대부분이 창작의 자양분을 불교에서 섭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생각이 든다.
시는 언어를 빌어서 터를 닦고 기둘을 세우지만, 한편의 작품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언어로부터 해탈한다. 시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그러니 시인들이 불교에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집은 불교와 시가 만나는 결정체다. 120여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가끔 아무데나 열어 읽곤 한다. 뭘 얻는다, 깨닫는다 하는 생각 이전에 웬지 편안하다. 나의 감상법이다. 조지훈 시인의 '古寺'를 옮겨본다.
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西域萬里人길
눈부신 노을아래
모란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