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의 기독교 성화 주제는 언제나 교회를 선전할 수 있는 내용으로 선택되며, 작가들은 주문자의 요구에 맞추어 그려진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문예부흥 운동이 일어나 신화에 대한 동경이 생겨났다. 그래서 성화의 성인들과 신화속의 신들은 거의 느낌이 비슷하고 언제나 우아하고 아름답고 경건한 모습으로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8등신의 비율과 우아한 콘트라 포스토 포즈의 모습으로 인물들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르네상스 예술의 정점에 있는 세 화가인 미켈라젤로, 레오나들도 다빈치,라파엘로의 그림들을 보면 인물들이 아름답고 우아하게 나타낸다..그러나 100년쯤 뒤에는 우아한 자태를 일그러뜨리고 감정의 격렬한 표출을 하는 매너리즘경향의 화가들이 나타난다. 매너리즘 작가들은 선배들의 위대함을 무너뜨리는 예술품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르네상스의 온화한 빛을 어둡고 칙칙하게 나타낸다. 모나리자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편안하고 우아한 빛은 아래의 그림처럼 격렬하고 불안한 내면을 드러내며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 1605~1606 , 카라바지오
밀라노 태생의 카라바지오는 풍운아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고 귀족의 자제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도망쳤지만,
끝내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보면 어쩐지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해서 그의 그림을 피하고 싶다.
카라바지오는 실력은 좋았으나, 너무나 극적인 빛과 소재도 섬뜩하게 그려 그 당시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한다.
키아로스쿠로 (ciaroscuro-명암법)라는 회화기법은 르네상스때부터 적극적으로 쓰여졌다.
명암의 대비를 강하게 주어 사물의 덩어리감을 드러내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면서 인간의 심리 상태도 나타내게 된다.
그리고 그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어주어 화면의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명암법은 모나리자의 그림에서도 잘 나타나며,
르네상스 화가들 거의 다가 화면에 통일감과 그림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말기에 활동했던 카라바지오는 그 빛을 내면의 이야기를 담는데 사용했다.
더 극적이게 사용하여 보는이에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카라바지오의 영향을 받아 그 후 바로크 시대의 회화에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그 탁월한 예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렘브란트 사이에 카라바지오의 역할은 중요하다.
르네상스의 회화의 절정을 어떻게 극복했고 르네상스 회화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 많은 부분을 찾을 수 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 를 처음 봤을 때, 그림이 예쁘지 않아서 눈이 가질 않았다.
그저 어린 다비드가 카라바지오의 소년 시절을,
머리 잘린 골리앗이 카라바지오의 장년의 모습이라는 설명이 신기했을 뿐이다.
다비드는 영웅이 아니라 벌벌 떠는 소년으로 보였고 골리앗도 죽은 시체로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신학과에 다니는 오빠가 이 그림을 보더니 뜻밖의 말을 했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오빠는 다비드가 골리앗의 머리를 보며 애처로워하는 모습같다고 했다.
그림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그런 말을 했다.
어떻게 그렇게 볼 수 있는지 그때도 놀랬고 지금도 왜 그렇게 보았는지 궁금하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은 아직도 볼 때 그다지 기분 좋아지지는 않지만
그 솔직한 묘사를 볼 때 전에는 몰랐던 삶의 진실 같은 것이 숨은 그림같이 느껴진다.
그의 그림은 또다른 회화의 탄생을 나타내는 씨앗같다.
아무리 좋은 회화도 늙고 새로 태어나는 과정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카라바지오의 회화는 그의 솔직함으로 늘 청년의 상태로
시공간을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거듭 태어나는 것 같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