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거리는 멀어서 저 끝에 계신 분들이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 안에 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십자가를 향해서,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서로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자신들과 함께하지 않고 따로 놀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일을 막으려 했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의식 안에서 세상은 항상 수직적인 서열을 전제로 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그 서열의 가장 윗자리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다른 사람이 스승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지만, 자신들 그룹의 테두리 안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하느님 나라의 범위를 좁히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수직으로, 수평으로 자꾸 울타리를 좁게 치려고 했습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인 즈카르야서 8장에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해 메시아의 세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세상, 그리스도가 오실 때의 세상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야 함을 선포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진실과 정의의 도성’이 되고, 만군의 주님이 그 가운데 계시는 거룩한 도성이 되어, 예루살렘 광장마다 손에 지팡이를 든 노인들이 앉아 쉬고, 소년과 소녀가 뛰어 노는 세상이 될 것이라 선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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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일 주교(가운데)가 9월 30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 2주년 기념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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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구절을 계속해서 보면, 진실과 정의의 도성, 거룩한 도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나옵니다. 전에는 사람이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짐승의 품삯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들이 서로 맞서서 대립하기 때문에 참된 안전이란 없는 세상이었지만,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에는 정녕 평화의 씨앗이 뿌려져 포도나무는 열매를 내고 땅은 소출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뿌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오면, 그리스도의 날이 오면, “서로 진실을 말하고, 성문에서는 평화를 이루는 진실한 재판을 하여라.” 예언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또한 “남을 해치려고 마음속으로 궁리하지 마라.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마라. 이 모든 것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다” 하고 하느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든 수직으로, 수평으로 서열을 만들어 아랫사람을 밟고 올라서고 옆의 사람들을 떠밀어 버리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들이 끊임없이 만드는 울타리를 없애시고 수직으로, 수평으로 길을 넓히기 위해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의 모든 담장을 허무는, 위아래와 좌우의 모든 담장을 허무는 구조입니다. 십자가는 그래서 인류에게 한없는 평화를 주는 평화의 도구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꾸 남을 해치는 마음을 갖고, 진실을 감추며, 거짓 맹세를 하고 평화를 밀어내려고 합니다. 즈카르야 예언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정반대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죽음과 파괴를 가져오는 전쟁을 준비하며 ‘평화를 위해서’라고 거짓 맹세를 합니다.
전쟁을 통해 결코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일본도 전쟁을 일으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북한의 김일성도 조국을 해방시킨다는 거룩한 목표를 세웠지만 결과적으로 수백 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조국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미국도 베트남과 이라크를 해방시키다고 했지만 남은 것은 죽음과 파괴의 행렬뿐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많은 백성들의 생명과 평화가 짓밟혔습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평화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저해하고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에 대비하는 새로운 군사기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평화를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군사기지를 반대해 온 것입니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그 권력이 어디에서 오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국가권력은 국민의 생명과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을 제한하고 위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는 노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30개 중대 3,000명 경찰 병력과 한전 측 용역 1,000여 명이 파견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동안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여러 차례 밀양 주민들과 한전 측, 산업통상자원부를 만나고 중재하려고 노력했으나, 한전 측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고 결국 힘으로 밀어붙이려 합니다.
이대로 가면 돌이키기 어려운 불상사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공권력의 횡포이고, 종이 주인을 두들겨 패는 불상사입니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그 권력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고 힘을 휘두르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우리 모두 손에 지팡이를 든 노인들이 앉아 쉬고, 소녀 소년들이 뛰노는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그런 평화가 우리 가운데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이 나라 지도자들이 주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그분들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강우일 주교 (베드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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