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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니며 얼마나 통일을 꿈꾸었는지 기억이 삼삼하구나. 특히 지리 사회를 배우면서 그 꿈은 마냥 부풀었다. 다른 게 아니다. 북한에 여기저기 매장되어 있는 자연자원들을 배우면서 저것이 모두 우리나라 것인데, 저것들을 사용하거나 수출하면 우리가 얼마나 빨리 발전하고 잘 사는 나라가 될 텐데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전혀 딴 나라 같은 북한에 있으니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통일, 통일만 된다면 우리가 다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왜 안 되는 거지? 달라도 너무나 다른 나라(?)다. 아주, 아주 먼 나라보다도 더 나쁜(?) 나라다. 당시로서는 서로 말도 나누지 않은 이방나라만도 못한 대상이었다. 차라리 딴 별에 있는 나라라면 꿈이라도 꾸지 않을 텐데 말이다.
글쎄 요즘도 통일을 꿈꾸는 우리 국민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누구는 통일비용을 생각하며 차라리 포기하고 우리나 잘 살자고 이야기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로 외국여행 하듯이 자유롭게 오가기라도 하면 좋겠구나. 서로 붙어 있으면서 멀리 떨어진 외국만도 못하다. 이 세대가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모르겠다. 이제 6.25세대도 곧 지나갈 것이다. 이산가족들의 세대도 꿈만 가지고 떠나가겠지. 후세대에 평화나 물려주자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지만 요원하기만 하다. 한반도 통일, 거기에 뭐 그리 목매달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오직 하나 행여 전쟁이 발발할까 그것이 걱정이 되고 두려워서 하는 일이겠지. 그냥 끝없이 긴장 가운데 살아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단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사실 요즘은 전쟁보다 더 두려워지는 것이 부동산 경기인지도 모르겠다. 통일이 되면 더 큰일이 생길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든다. 그냥 여기서나 지지고 볶는 것이 낫겠다 싶지. 해결의 길 중 하나가 인구감소가 아닐까 싶구나. 사람이 줄어드는데 집이 있다 한들 뭐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내비두면 한 세기 안에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다. 기다리는 거다.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거다. 담주도 살아남기를 힘쓰도록 하자. ^&^
2020년 8월 8일 김종우 목사
첨부 : 20-08-02주일설교(가는 곳인가 오는 곳인가)
<강철비2 - 정상회담>
확고한 독재가 가능할까요? 우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북한에서 일어났던 무시무시한(?) 숙청 사건들을 보며 ‘독재자’의 그 무시무시함을 보았습니다. 겨우 30대 초반의 권력자에게 아버지뻘도 더 되는 가까운 친척이 무참하게 사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로들도 많은데 그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젊은 애송이 같은 정치 초년생에게 아무도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서는 오히려 모두가 어린아이만도 못했습니다.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눈을 마주치지도 못합니다. 오로지 하라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하다못해 그가 말할 때 잠깐 조는 모습이 들키기라도 하면 역시 자리에서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의 인생이 끝납니다.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못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당신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잖으냐, 얼마나 좋으냐, 당신 맘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요. 자신은 그럴 처지가 아니랍니다. 의회가 있고 각료가 있고 비서와 참모들이 있습니다. 의견을 들어야 하고 서로 합의를 해야 하고 조정하고 맞춰야 한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 여론의 향방도 주의해야 합니다. 뭐 하나 이루어 내려면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립니다. 도무지 하고 싶은 것들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기도 할 것입니다. 북한의 독재가 부럽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독재자라고 모든 것을 자기 임의대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글쎄, 나름 속사정이 있겠지요.
대한민국은 이 지구촌에서 가장 특이한 나라입니다. 사상으로 대립된 유일한 분단국가이기도 합니다. 한 민족, 한 역사, 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 민족임에도 갈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으르렁댑니다. 휴전으로 70년 세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싸워봤자 남 좋은 일만 하는 꼴이고, 전쟁의 위협 없이 서로가 발전을 모색하자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 남쪽의 제안입니다. 생각해봅니다. 우리 남북이 통일 되는 것을 가장 꺼려하며 은근히 통일을 막는 세력이 있다면 그게 누구일까요? 우리가 통일되면 누가 가장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까요? 우리가 서로 전쟁을 한다면 가장 이익을 보는 자가 누구일까요?
우리는 열강의 세력다툼의 희생물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을 역사 속에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망했던 독립은 이루었지만 사실 우리 독자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이 물러간 그 자리가 참전국들의 전리품 잔치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그 자리의 백성도 사람도, 그들의 꿈도 소망도 무시되었습니다. 단지 이 땅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의 세력다툼의 장이요, 자기들 땅 따먹기 자리일 뿐이었습니다. 분단은 이 민족의 꿈과는 전혀 다른 결과입니다. 이렇게 되리라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힘이 없는 우리는 단지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탄식과 분노로 법석을 떨었지만 아무런 효험도 없었습니다. 분단은 현실이 되었고 이어 전쟁까지 치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득을 본 자가 누구였습니까?
우리는 아직도 양대 국가의 주도권 쟁탈전 가운데 껴있습니다. 그 현실을 가장 잘 우려먹는 자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통일이 되어 하나로 힘을 합하면 가장 두려워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저들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앞으로도 대륙 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 발판이 바로 우리 한반도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조금이라도 대륙에 가까이 접근하려고 부단히 ‘독도’를 빼앗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소리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남북이 합해서 힘을 모으면 쉽게 넘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어떻게든 통일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며 평화통일에 협조하겠다고 입으로는 떠들지만 소위 입바른 소리일 뿐입니다.
어디에나 강경파가 있게 마련입니다. 힘으로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자들입니다. 평화협정에 이의를 단 강경파가 북의 지존을 반역합니다. 대단한 존재이기는 합니다. 협정은 결렬되었지만 회의장에서 나오는 3국 정상들을 인질로 잡습니다. 그리고 근처 바다에 대기 중인 핵잠수함에 가둡니다. 미국의 위기상황이 닥치고 한국에게도 갑작스러운 일입니다. 북한 영역에서 발생한 일이니 사실 북한에게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강경파의 의도대로 사건이 진행되는 듯합니다. 문제는 기후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지요. 동해로 엄청난 태풍이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작전을 이룰 일본의 강경파의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못하는 것이지요. 태풍 때문에. 진행에 차질이 생기고 잠수함 안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북한의 지존은 말 그대로 막강 절대권력입니다. 그런데 반역을 하다니! 지존파와 반역파 간의 전투가 전개됩니다. 그 속에 국가 원수들이 있습니다. 묘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좁은 공간 속에서 아주 사적인 협상(?)이 전개됩니다. 코미디이면서 현실적 지적이고 사실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조금은 유치하면서도 그냥 재밌기도 합니다. 끝나면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의 마지막 질문이 숙제로 주어집니다. ‘국민 여러분, 정말 통일을 원하십니까?’ 영화 ‘강철비2 : 정상회담’(Steel Rain2: Summit)을 보았습니다.
<광주비디오 - 사라진 4시간>
아직도 미해결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쪽의 고집이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저 세상까지 끌고 가리라 짐작합니다. 당사자가 살아있는 한 사실다운 사실을 밝힐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기야 그 사람이 간다 해도 관련된 사람들은 아직도 많습니다. 그러니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새로운 것이 나오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시대가 오면 혹시나 내놓을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X-파일입니다. 궁금하고 답답해도 도리가 없습니다. 일반 사람인 우리가 그러할진대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속이 타겠지요.
그 사람은 아마도 저 세상 심판대 앞에 가서도 부인할 것입니다. 아니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거 참!! 거기서도 통하려나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저 세상을 두려워할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리도 당당하겠습니까? 남은 재산이 30만원도 안 되는 사람의 생활이 여느 재벌 못지않게 보이는데 그것을 믿으라고 고집하는 것을 보면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야 가능하겠습니까? 그 고집이 딴 세상 가서도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거기서의 일이야 누구도 알 사람이 없습니다. 그냥 희망할 뿐입니다.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보는 희망일 뿐입니다.
당일 오전까지의 기록은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시점부터 사곤 종결 시점까지의 그 4 시간의 기록이 없습니다. 합리적으로 유추해본다면 어느 누구도 기록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총탄이 빗발치듯하고 수상한 행동이 보이기만 하면 조준 사격을 가하는데 누가 감히 카메라를 내밀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죽자고 하는 짓입니다. 하나 찍고 목숨을 버리자 한들 그 사진을 누가 제일 먼저 취하겠습니까? 그러니 쓸모없는 행동입니다.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기록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한탄스러운 일입니까?
혹 저쪽에서는 기록한 것이 있지 않을까요? 자기네 업적을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기네 좋을 대로 짜깁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기대해봅니다. 물론 이쪽에서 그 기록을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아직 보관하고 있다면 이 세대가 다 지나가서라도 밝혀질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것입니다. ‘대외비’ 또는 ‘일급비밀’로 어느 깊숙한 창고에 숨어있기를 바랍니다. 이 한 세대가 지나서라도 밝혀질 수만 있다면 우리 후대에서는 진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의 기록도 바르게 교정될 것입니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정도까지만 희망할 수 있습니다.
목격자의 진술도 그다지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대 진술이 있기 때문이지요. 목소리는 오히려 그쪽이 더 셉니다. 속된 말로 목소리 크면 이긴다고요. 그러니 그 목소리를 잡으려면 사진이라든지 동영상이 있어야 합니다. 말이 많은 헬기 사격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티격태격 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안 했다고 우기는 사람의 목소리가 더 큽니다. 어쩌겠습니까? 이 사람 저 사람 분명 그 총탄 자국을 보고 판단해줘도 소용없는 일이란 말입니다. 아 그 4시간!! 참으로 한탄스런 시간입니다. 모든 날 모든 시간은 있는데 왜 고 4시간만 빠졌느냐 하는 것이지요. 도무지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따져도 증거가 없으니 그냥 똥고집에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탄식만 나올 뿐입니다.
당시 우리나라 기자들은 감히 접근도 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통제된 상태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지역 외의 국민들은 보도만 듣고 보며 그런가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물게 외국기자들이 활동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밖으로 사실이 전달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일부만 말이지요. 더구나 그것조차 매우 조심스럽게 나갔습니다. 행여 저쪽에서 눈치라도 챘다면 여지없이 빼앗기고 쫓겨났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라도 나간 것들을 모아서 광주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국내에서는 모르는 사실을 외국에서 먼저 알게 되었고 그것을 각국 교포들이 입수하여 다시 국내로 몰래 반입하였습니다. 비로소 조금씩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비단 광주에서의 그 무시무시한 사건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잘 아는 대로 사회전반에 걸쳐 공포정치가 횡행하였습니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시민들이 점차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해로 놀라기는 했지만 희망이 생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아주 요상하게 돌아갔지요. 알지도 못한 사람이 등장하여 일사천리로 전개되었습니다. 그는 속도전에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원하던 권좌에 올랐습니다.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정치를 구가하였습니다. 맘껏 축적하고 주물러댔습니다.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거 하나는 인정해주어야지요.
아직도 미완의 사건입니다. 40년이나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 한이 언제나 풀릴까요? ‘광주비디오 - 사라진 4시간’을 보았습니다. 다큐멘터리인데 크게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좀 아쉽다 싶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4 : 8 - 9 2020년 08월 02일
설교 : 가는 곳인가 오는 곳인가 김종우 목사
신앙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신앙인끼리는 좀 통합니다. 그러나 무신앙 또는 비신앙인과 대화하려면 우리의 신앙을 설명해주려 하든지 뭔가 남다른 체험을 전해주려면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가까운 사람은 참고 인내하며 들어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마치 딴 나라 사람과 이야기하듯 쳐다봅니다. 참으로 설명해주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험이라도 가지고 신앙하는 사람은 그래도 좀 낫다 싶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보아도 이 사람이 신앙인인지 그냥 세상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이라 말하지도 않고 일요일에 교회는 가는 것 같은데 남다른 모습은 없습니다. 그냥 교회만 다닌다는 것뿐입니다. 가끔 물어보면 기억하는 설교 말씀도 없습니다. 성경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습니다. 교회는 뭐하려고 다녀? 하고 물으면 ‘그냥’ 그게 답입니다. 그러면 시간만 낭비하는 거 아냐? 하고 되물으면 대답은 더 황당합니다. 집에 있어봤자 하는 일도 없는데 뭐. 거 참!! 요즘도 이런 신자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래도 영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소위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땅의 일, 세상사, 먹고사는 일에만 정신을 쏟아 산다면 신앙을 가질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기 땅에서만 사는 것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보이지 않는 세계 곧 영적인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천국입니까? 아닙니다. 당장 천국 가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왜요? 죽기 싫으니까. 그러니 우리가 가장 소망하는 것은 천국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과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천국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천국을 소망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은 천국이 아니라 영생이지요. 그게 정답입니다. 그 영생이 어디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까? 당연히 이 땅, 여기서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믿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자 영적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러면 영계에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만 계십니까? 아니지요. 수많은 천사들이 있습니다. 천사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시 103 : 20 - 22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우리가 잘 아는 천사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하리라 마리아에게 찾아왔던 천사를 알지요. 눅 1 : 26 - 27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하나님의 영의 세계에도 영들이 많으니 분명 그곳에도 질서가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므로 위계질서가 있겠지요. 그래서 천사장도 나옵니다. 살전 4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아무튼 그 하나님이 계시는 영의 세계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사 14 : 12 - 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으로 비유된 이 존재가 지극히 높으신 이 하나님과 비교해보려는 교만을 부리고 있음을 봅니다. 성경에서는 영의 세계를 하늘로 비유하고 있으니 바로 하나님의 영의 세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다른 말씀을 봅니다. 겔 28 : 14 - 16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앞의 말씀을 보면 당시 이방 나라 두로 왕을 빙자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땅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의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룹 즉 천사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완전했던 그가 범죄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습니다.
천사들 가운데 뛰어났던 그가 하나님을 대적할 때 혼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그를 추종하는 영들도 많았습니다. 유 1 :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물론 그 숫자도 알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귀가 등장하지요. 그리고 그 추종하는 영들을 귀신들이라고 합니다.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나 땅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를 가리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엡 2 :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마귀의 손아귀에 놓였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그 이야기가 나오지요. 마 4 : 8 - 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한 마디로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천하만국이 자기 손안에 있으니까요. 인생들이 그 마귀의 수중에 있음을 알고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그 세상을 당신의 나라로 회복하기 위해 창세부터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에 세상 과학자들과 크리스챤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즘도 긴가민가하면서 여전히 고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자신들도 확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지구의 나이입니다. 세상 과학자들이 말하는 것에 의하면 몇 천 년 정도가 아니지요. 수십 억 년도 더 됩니다. 그리고 인류의 발생 시점도 백만 년, 가까이 잡아도 수십 만 년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아담 이후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현재까지의 시간이 6천 년 정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믿는 사람이 세상 지식을 따라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경대로 고집하자니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만 보아도 반만년이라고 노래하는데 그 역사 이전의 구석기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면 다시금 한참을 계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을 해봐도 안 되고 저렇게 계산을 해봐도 맞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져버릴 수는 없고 억지고집하며 혼자서 고민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가?
한번 형성된 지식을 바꾼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지요. 그러나 바꿔야 할 때 바꾸지 아니하면 스스로 무식하게 됩니다.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놀림을 받습니다. 그것이 우리들 믿음과 결부되어 있는 일이라면 생명을 거는 문제입니다. 진리를 믿는가 거짓을 믿는가 판가름이 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은 진리의 편입니다. 거짓을 따라가는 사람을 당신의 자녀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요 8 :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리의 편에 서지 않기 때문이지요. 45절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진리의 편에 있지 아니하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이 거짓을 말씀하실 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자기 말을 하는 것이지요. 마귀의 속임수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시잖아요.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한다고요. 하나님 말씀을 자기 말로 바꾸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가 누구의 역사냐 하는 것이지요. 한국사는 우리나라 역사입니다. 중국사는 중국의 역사입니다. 성경 속의 역사는 누구의 역사이겠습니까?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 속의 이야기가 세상 나라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마귀가 장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당신 백성을 택하여 구원해내는 이야기란 말입니다. 종국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당신의 나라로 회복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세워서 당신 나라를 세우시고 제사장을 만들어 구원하시는 이야기이지요. 처음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1 :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땅에서는 왕이고 하나님 편에서는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출 19 :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 앞의 5절에서 말씀합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세계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곳을 마귀가 장악하고 있으니 그것을 당신의 것으로 회복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당신의 백성을 제사장으로 세워서 말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 나라 이야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아담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하였는지 그것은 말씀하지 않으셨으니 모릅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하나님 백성의 구원과 영생 그리고 하나님 나라 즉 천국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들 즉 하나님 백성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엉뚱한 고집만 부리게 됩니다. 쓰잘데없는 변론이나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계했던 말씀을 상기합니다. 딤전 1 :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의 제사장으로 세워서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결국 그 나라 곧 이스라엘은 멸망을 당했지요. 그렇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무산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시작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제사장을 세워서 당신의 나라를 회복하려 일하십니다. 제사장의 약속은 여전하지요. 벧전 2 :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우리가 지금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래 악이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실 리가 없습니다. 피조물 가운데서 문제가 발생하였지요. 앞에서 보았듯이 영의 세계에 창조된 뛰어난 천사들 가운데서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쫓겨났지요. 그가 마귀 곧 사단이 되었습니다. 혼자만 반역한 것이 아니라 그 추종자들이 있어서 함께 쫓겨났습니다. 땅으로 쫓겨난 그들이 세상 나라를 장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만두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제 것인 양 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나라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사역이 시작되었지요. 먼저 당신의 종, 한 목자를 세웁니다. 그에게 당신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하게 합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 구약의 하나님 백성의 역사는 그들을 중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야곱이 이긴 자 즉 이스라엘이 되어 12지파를 만듭니다. 그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에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실패하였지요. 그 나라는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약속대로 메시야를 그들 가운데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배척당했습니다. 요 1 :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혈통으로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요 1 : 12 - 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자신이 인간 육신의 씨로 오지 않았습니다. 눅 1 : 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아멘! 그리고 친히 이긴 자가 되어 12 제자를 통해 영적 이스라엘을 창조하셨습니다. 요 16 :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아멘! 구약시대 이긴 자를 통하여 12지파와 이스라엘 백성을 창조하셨듯이 신약시대에도 이긴 자를 통하여 12지파와 영적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여기에 속한 은혜를 입고 있는 줄 믿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이스라엘 12지파를 제사장으로 세워 구원사역을 펼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은 실패하였지요. 혈통으로 된 이스라엘의 실패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영적 이스라엘 12지파를 제사장으로 세워 세상을 구원하려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세대에 속하여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고 듣고 읽고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나면서부터 성경과 함께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려고 발버둥친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그들의 잘못을 말씀하십니다. 마 15 : 8 - 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의 계명으로 바꾸어 가르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 말씀 성경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 뜻대로 알고 있는가 그 말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듣고 설령 모조리 암송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뜻대로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 뜻을 이루는 하나님 백성이 되겠습니까? 한 가지만 예를 들겠습니다. 계 14장에 사람 가운데서 구속함을 얻은 처음 익은 열매 14만4천이 나옵니다. 과연 우리가 그 가운데 속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 속하려면 어찌 해야 합니까? 계 14 :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래서 어떤 분은 말하기를 장가도 가지 말고 기다려야 한답니다. 과연 그런 겁니까? 그렇다면 기혼자들은 이미 자격 미달입니다. 어쩌렵니까? 포기하고 살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니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 8 : 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 때 유대인들이 대답합니다. 33절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소위 예수님과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우리 역시 그 수준이라면 구원의 길은 멀 것입니다. 그런 자유입니까?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배웁시다. 그 길은 좁은 길입니다. 힘든 길입니다. 믿으면 가는 길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믿어야 가는 길입니다. 요 17 :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멘! 바르게 알지도 못하니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꾸짖습니까? 마 22 :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지금 우리 또한 성경을 제대로 알고 믿습니까? 세상 역사가 6천년이라고 고집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도 웃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뱀이 기어와서 하와를 유혹하며 말했다고 믿습니까? 그 때는 파충류인 뱀도 사람처럼 말을 했답니까? 답은 성경에 나와 있는데 눈이 가려져서 못 보는 것이지요. 아니면 안 보는 것입니다. 자기 고집이지요. 스스로 어리석음을 내려놓지 아니하면 망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미련한 것은 고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잠 27 : 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어쩌겠습니까? 자기를 버리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을 따를 때 첫째 조건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마 16 :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하나님 나라로 회복하려 하십니다. 마귀가 자기가 주인인 양 권세를 부리고 있으니까요. 예수님이 다녀가시고 12제자로 시작하여 영적인 이스라엘이 번성하였습니다. 그 후 2천 년 동안 온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물론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낳고 죽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 의도하신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회복하려 하시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계 21 :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할! 그곳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하늘 이야기입니까, 땅의 이야기입니까? 하늘 이야기라면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야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이야기를 합니까? 여태 사망이 지배하던 세상에 사망이 없게 되니 언급하는 것이지요. 어디에요? 이 땅에 말입니다. 이제껏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왕노릇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다시 오시면 다시는 사망이 없는 세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어디에? 여기 이 땅에 말입니다. 믿습니까?
다시 봅니다. 계 21 :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아멘! 자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이 내려온답니다. 즉 천국이 내려옵니다. 하늘에서 어디로 옵니까? 당연히 땅으로 내려오겠지요. 그래서 땅에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망하는 천국이 어디에 이루어집니까? 바르게 알고 믿고 신앙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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