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5월 21일)
<고린도전서 7장> “결혼과 독신의 문제에 대한 바울의 권고”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고전7:1-17)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19:12)
『고린도전서 1-6장에서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책망과 권면을 한 데 이어서, 바울은 7-16장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질의해 온 여러 신앙적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7장에서는 결혼과 독신의 문제에 대해 바울이 답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너희의 쓴 말’이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에게 보내온 여러 가지 신앙적인 문제들에 대한 질의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어떤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은 독신으로 사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했던 것으로서, 이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운 때에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 때 그리스도께 더욱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도에서 나온 질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예수 그릭스도의 재림이 임박하다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바울은 일반적인 원리로서는 독신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더 유리함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 ‘때가 단축하여졌기 때문’(29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신약시대는 본질적으로 언제라도 주님이 재림하시고 인류 역사가 종결될 수 있는 말세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창조규례 중 하나인 결혼제도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독신으로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 역시 이런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독신으로 사는 자들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마19:12).
그러나 그처럼 독신으로 사는 것도 바울 자신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그런 은사가 없이 혼자 살려다가는 성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성적인 타락에 빠질 위험이 있으므로 그런 자들은 결혼을 할 것을 바울은 권유합니다. 그리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주님을 위하여 살기에 더 유리하다고 말하면서도 부부관계를 통하여 불신 배우자가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함으로써 결혼의 가치와 유익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결혼 제도를 통하여 거룩한 자녀들을 생산하고 양육한다는 결혼의 적극적인 의미를 밝힘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한 결혼도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신부나 수녀의 결혼이 금지된 데 반해서, 한국의 어떤 장로교단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성경의 원리에서 벗어난 발상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결혼이나 독신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때가 임박함을 염두에 두고 오직 주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결혼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독신 가정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 가운데, 독신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독신의 상태도 주님을 더욱 잘 섬길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음을 알기를 바랍니다.』
● 오늘의 기도 ● “때가 단축된 것을 알고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살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X/154
첫댓글 아멘
아디아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