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 영화 ‘올드’ - 2021년 감독 나이트 샤말란
하느님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영화 <올드>에서처럼 1년이 30분과 같이 빠르게 흐르는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가거나, 그곳에 머무르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1시간이 7년처럼 느리게 가는 행성이 있다면.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그곳으로 가서 살려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이야말로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는 가장 원초적 본능이며, 인간에게 늙음과 죽음보다 싫고 두려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영생을 믿으면서도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오래 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수명을 길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 속에서 초현실적 상황을 섬뜩하게 그려온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올드>에서 이런 상상을 합니다. ‘시간의 빠르기는 마음대로 할 수 없어도, 같은 시간에 인간을 빠르게 늙고 죽게 만드는 곳’이 있다.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강력한 자성을 가진 희귀한 광물질의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여 성장과 노화가 쏜살같이 진행되는 해변입니다.
불화로 이혼을 앞두고 마지막 가족 여행을 온 카파(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분)와 프리스카(빅키 크리엡스 분) 부부, 열한 살과 여섯 살인 딸 매덕스와 아들 트렌트, 의사인 찰스(루퍼스 스웰 분)와 그의 아내와 노모와 강아지와 어린 딸, 남자 간호사와 여자 심리치료사가 그곳에 갑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연의 시간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의 시간만 너무나 빠른 곳에서 매덕스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성숙한 처녀가 되고, 어린아이였던 찰스의 딸이 트렌트의 아이를 임신해서 30분도 안 돼 출산을 합니다. 프리스카의 종양은 갑자기 커지고, 방금 생긴 상처가 피가 나기도 전에 없어집니다. 어제 실종된 여자의 시신은 뼈만 남아있고, 해안에는 버려진 호텔 물건들과 여행용품들로 가득합니다. 바위와 동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충격파로 그곳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혼란과 충격, 절망과 공포 속에서 찰스는 오랫동안 숨겨왔던 정신 질환이 드러나면서 살인을 저지르고, 여자 심리치료사는 발작을 일으킵니다. 이틀도 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들, 지금까지 마음에 품었던 것들을 단 하루 만에 모두 마주하고 행동으로 저지릅니다. 그러나 <올드>가 ‘그곳’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공포나 놀라움이 아닙니다. 바로 ‘깨달음의 시간’입니다. 그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앞에 서서야 아무리 남은 인생이 짧더라도 결코 다른 사람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죽음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야 지난 삶의 이기심과 두려움이 부질없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평생이란 시간이 단 이틀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우주 만물을 창조하면서 “한처음”(창세 1,1)으로 시작한 하느님의 시간은 차별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릅니다. 그 시간을 빠르거나 느리게 하는 것은 저마다의 인간입니다. 셰익스피어도 “시간은 사람에 따라 각각의 속도로 달린다.”고 했습니다.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서울주보 8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