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가 영웅을 부른다!> 2017. 1. 1
경천동지할 대통령 탄핵정국의 현주소
정유 년 원단의 아침이 밝아올랐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난해는 필자에겐
다사다난하던 한해였다. 가정적으로는 아내의 환후가 위중하여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하나님 은혜로 기적적으로 살아나 가정으로 돌아와 회복중이다.
사회적으로는 무소불위로 군림적 횡포를 부리던 박근헤가 최순실 게이트에 언루돼
탄핵을 받아 대선 정국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지경으로 크게 술렁이고 있다.
게이트가 터져나오기 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멎지 않게
군사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돼 탐욕과 이기주의 욕구수요의 충족을 위해 권력과
유착하여 오만가지 정치악을 양산해온 조선일보의 원격조정에 놀아나는 문화
콘텐츠의 나라였다. 조선일보 등을 필두로 하는 족벌 신문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 공기(公器)’로서의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채나라를 온통 불법이 활개치는 권력의 난장판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권력의 화신인 박근혜는 그럴만한 그릇도 되지 못하는 주제에 꼴값을 떠느라고
대통령이랍시고 은둔형 인간으로서의 면모도 약여하게 처녀인체 내숭을 떨며
우아하게 웃고 다녔다. 알고보니 그는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탕녀였다.
(박근혜 리스크의 하이라이트
육영수가 죽고나서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하는 동안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이기도 한
이 탕녀는 독재자인 아버지 박정희보다 여섯 살 연상이며 무당 굿을 하는 최태민의
최면술에 걸려들어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최티민 사망후의 처신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그 사위 정윤희가 박의 호위(虎威)무사로 자리잡는다.
그것만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청와대 내에 지도(地圖) 상에도 표시되지 않은
은밀한 처소를 만들어 놓고 수많은 남정네를 끌어들여 주지육림 속에서 고액의
마취제와 최음(催淫)제 주사를 맞으며 시시덕거리고 도화경 속에 파묻햐 열락의 밤을
보낸 사실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김종일과는 주석ㄱㅇ에서 백두산 독사 산삼주를
먹었다더니...
최순실은 이혼했다는 정윤희의 전처다. 라이벌 관계이니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자내야 온당할 터였다. 헌데 친자매보다 더 친숙했다니 어찌된 영문인가?. 한 남자가
가지고 놀은 두여자.그렇다면 둘이 경쟁하며 한 남자를 가지고 놀은 것인가?
여자끼리의 끈끈한류착이라니. 잘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그 신묘망칙한
삼각관계의 함수여! 오호라!
박정희가 삼성과 독대한 후 박정희는 노동자를 원수처럼 여기고 짓밟은 역사는
한ㄱㄱ 정치사에빼곡히 기록을 남기고 있다.가문들끼리 혼맥을 이어오며 분탕질을
일삼아온 추악한 내막 또한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다. 그러던 나라가 우연의
일치였는지 인위적 작용이 가해졌는지 여부를 촌탁할 수는 없으나 근자 청와대와
조선일보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져 밀고 당기는 듯
해프닝이 연출된지 얼마 안돼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나와 5천만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리스크의 하이라이트는 세월호 참사가 가 아닐까? 참사가 일어니던
날 의문의 일곱시간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세얼네 네얼레하다 일으킨 세월호 참사
통념적으로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가 대통령이 할 일을 재대로 하지 않아
늑장대응으로 구난 시기를 놓쳐 일어난 사건 사고라 믿고 있다. 이와 다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부정선거백서 출판으로 한영수 김필원 두사람이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민심이 흉흉하던 시기였다.
주권자로서 사실에 근거한 문제제기였으니 사건의 성격상 기소가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국민적 시선을 다른데 돌리려고 국정원과 짜고 고의로 대형참사를
일으켰다는 설로 유족들의 신경이 날카로이 곤두서있다.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단순한 모략이었을까?
국회 탄핵소추 가결 당시 세월호 참사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가
일었다지만 국회에서의 특별법 제정 과정에 청와대가 끼어들어 된소리 안된 소리로
훼방을 놓았는가 하면 여야 합의를 거쳐 천신만고 끌에 만든 조사 절차법을 거부권
행사로 무산시킨 일련의 사실을 놓고 볼 때 아니라 반박할 명분도 없다.
국회 탄핵과 천만명 촛불 대모를 보며 대선당시 실행하지 못할 공약을 하지 않는다며
이십 만원씩 주겠다던 노인수당도 못주더니 어힌 돈이 그리 많아 일당 할베를
동원하여 맞불 데모 작전을 놓고 있다. 세상에 동원되는 노병들도 노망아 났지
자녀나 손자들앞에 부끄럽지도 얺은가?. 사람이 탐욕에 눈이 멀면 인간악이 어디까지
뻗어갈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얼씨구 비박게가 개혁신당?
만회작전의 백미는 지난 대선 당시 부정선거로 박근혜 승리를 조작하고 겁에 질려
일본으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가 부정사건의 진상이 음페 호도되는 낌새를 알고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귀국했던 대선 캠프 본부장이던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이
대권 도전 포기를 선언한데 이어 유승민 등 비박게를 이끌고 탈당하여 개혁세력입네
표방하며 개혁신당을 창건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한 꼼수가 아닐까?.
이명박 정권 말기 4대강 사업, 아프리카 자원 외교, ‘524‘조치 등으로 국민을 말로
다할 수 없는 낭패감의 수렁 속에 빠뜨림으로써 한나라당 간판으로는 표를 구걸할
염치가 없게 되자. 새누리 당이라 당명을 바꾸고 ‘경제민주화의 대부"‘인 김종인을
얼굴마담으로 끌어들여 마치 서민정당인 것처럼 가장하며 호가호의하던 거짓말쟁이
사기꾼 박근혜 수법과의 완전한 판박이다.
안철수 박지원 등 정치 철새 들과 패거리를 지어 더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간
정치인들로 구성된 국민의 당이 무슨 꿍꿍잇속에서인지 개헌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4당 협의체를 만들어 개헌특위를 작동시키고 있다. 더민주 탈당파
손학규와 비주류 김종인 등이 이에 가세하고 있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을 영입하여 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제 개현을 하는 모양이다. 이를
고리로 하는 이합집산 형성과 정파간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겠지....
용납돼서는 안될는 재벌정치
여기에 촛불 데모 민심이 깊이 유념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중요 괸전 포인트가
있다. 일본의 경우 자민당 정권의 지속을 가능케 하였듯이 우리나라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이어 다시금 부자에 의한 부자들을 위하은
반기문의 등장으로 부자의 나라를 만들 위험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보는 이명박근햬 리스크의 양산은 한국 사회에서 아뮤런
영양가도 없는 귀태(鬼胎) 박정희 와 같은 군사불한당들에게 능욕을 당한 때문에
빚어진 페해이며 제도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명료히 알아야 한다. 군중심리에
영합하는 집단의지에 영혼을 심어주는 일이 한국의 지성인이나 논객들이 장차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순실 게이트로 민중 혁명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까지 일반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십만선량>이며 헌법기관의 일원인 국회의원 직에 이르기까지도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의식에 눈뜨지 못하고 권력의 횡포에 가위눌려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그저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얼버므리고
지내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풍조의 만연은 권력이 나라의 이권을 독점하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만들려고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얼기설기 저안망 식으로 쳐놓은
테러 방지법이나 국가보안법 등 폭압장치와 수단인 도청 미행 게좌 추적 살인미수
간첩 조자 등 오만가지 패악질로 국민적 기본권을 말살하고 침해를 가한 것과 밀접히
연관지어져 있다. 머슴한태 휘둘려 맥을 못추운 지질히 못난 주인으로 살아왔으니
자업자득의 결과였던 셈이다.
새로이 가다듬어져야 할 정치 문화, 그보다 유권자 의식 가운데에는 대통령을 뽑는데
있어 학벌이나 경력, 또는 출신성분을 중요시하고 이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다. 그런 경햘은 각 정파들이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을 반기고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총장 자리를 세계 대통령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헛물을 켜는 정말 한심한 족속들이다.
한국인들이어! 후회없는 내일을 여로자하면 깨어나라!!!
필자가 이 자리를 빌어 드리고싶은 당부의 말이 있다. 착각에 빠진 사람들에게 얼른
부질없는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권고를 드리고 싶은 것이다, 그렇듯 구멍뚫린
주권자 의식이 빨갛게 달아오른 촛불 데모민심을 자칫 닭쫓던 개 집웅쳐다보기
신세로 전락하게 할까봐 덜컥 겁이 나서 하는 말이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반기문의 얽굴
필자는 수일전 한겨레신문이 반기문의 얼굴을 일면 톱으로 대문짝만하게 실은 것을
보고 질겁을 하여 “반기문이 그러도 비중있는 정치인이냐?“라는 항의성 전화를
걸었다 이제로부터 4년전 박근혜 정권 출범초기 권력에 아첨하려는 저의에서였던지
우아하개 웃는 모습의 박근헤 총천연색 사진을 일면에 실었던 불유쾌한 기억을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나의 물음을 받아 관걔자들은 ”사진에 딸려 실린 기사내용을 읽어보았느냐?”는
반문을 던져왔다. 기사 내옹이 비판적이긴 하였으나 한국민들이 정녕히 반기문을 왜
배척해야 하는지 핵심적 이유가 빠져 있었다. 기독인으로 은혜가 못되는 이야기라서
하나님께 외람스럽긴하지만 외교관으로 미국에서만 거주해온 반기문에게는 가혹할
만큼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관견이다.
모든 한국인의 생각이 천편일률적이어야 한다고는 믿지 않으나 같은 충청도 산이긴
하지만 필자는 반기문이 영어 회화를 유창하게 지껄이는 노신사 정도로만 이해할
뿐이며 대통령이라는 공적 기능 수행자로 적합한 인물아 못된다는 결론을 이미
수년전에 내린 바 있다. 필자가 반기문을 공적 기능 수행자로서는 결격사유가 많다고
단정자은 데는 다음 몇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가 마국정부 정책의 맹종자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도
일제 식민지로부터 사슬을 풀어준 고마운 나라로만 믿었던 필자의 대미 인식이 바뀐
갓은 무엇보다 한국방위문제‘의 대처에서 일본세를 끟어들인 오바마 행정부의
그릇된 외교정책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영구분단
고착화 정책에 대한 거부반응도 원인의 일단을 이룬 것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세게 제일의 부자 나라가 불특정 다수 국들에게 테러전쟁을 선포하고
부질없이 국력을 소진(消盡)하여 세계제일의 채무국가가 된 사정에 눈가림하고
있지는 않다. 영원한 적도 내편도 없는 것이 힘센 자가 장땡인 국제사회의 속성인
것도 모르진 않는다.
필자가 반기문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자국에게 떠넘겨진 짐이 버겁다 하여
동맹구에 대한 배려도 없이 대북제재에 한국에게 철천지 원수이던 침력자 일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게 하려 하다니 언어도단의 망발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고도 모자라 새로이 정권을 출범시키려는 토럼프가 라이벌 중국
견제의 의미도 가미돼 있는 작ㄱ군의 한국주둔을 한국을 위해 비력질을 하여
온것처럼 "무임승론을 일석하며 한반도 수둔 경비 전액을 한국측에 떠넘기려는
속셈을 라보지 못할 일이다.
그같은 트릭과 강정에 대한 한국측 대응이 무엇이냐?“를 묻고 싶다. 가능하면
이기회에 갈테면 가라!“하고 뱃장을 내밀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방위비로 북보다
수십 배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나라가 자죽ㄱ방을 하지 못하는 지질히 못난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달리 유례를 찾을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우리보다 영토가 그리 넓지 않으면서 영국과 미국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호기를 본받을 수는 없을까? 영국의 경우는 어떤가?세계에서 ‘해지지 않는
나라!’로 이름을 날렸지 않은가? 국제 사회에서는 자국 방위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홧대 밑에서 호랑이를 접으려 하다니....
불합리한 니국의 한반도 정책
미국이 전정한 한국의 우방이라면 태평양전쟁 마감 후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조선을 분단한 일로 한국민이 얼마나 큰 고통과 불행을 당하고 있는지를
역지사지하는 정성으로 깨달아 알고 분단을 고착화시켜 긴장을 고조시켜 다량의 무기
판매로 자국의 국익을 챙기려는 대한 정책을 전면 제검토하여 민족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 한국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십시일반의 협조를 아끼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항구여일하게 통일 국가를 건설하여 정을 나누며 더불어 함께 오순도순 살아야할
남북한을 영구히 분단하여 긴장을 고조시켜 무기장사로 짭짤하게 자국의 국익을
챙기고 한국민들 진을 빼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개를 쳐드는 의구심을 달랠 길이
없다. 그 조짐은 후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오래전부터의 북의 제의에
코방기를 뀌며 한미연합 군사연습을 계속해온 바로서도 너끈히 짐작할 수가 있다.
(미정챡의맹목적 추종자일 뿐인 반기문
5넌이라는 길다면 긴 임기 중 반기문은 무슨 핑계로든지 북을 방문하여 김정은을
달랬어야 한다. 그가 단 한번도 북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아야할까? 반기문의 두뇌구조 아니 잠재의식의 밑바닥에는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 한국을 이룩하려는 민족 의식이 전무하며 미국정책의 맹목적 추종자일
뿐이라는 단적인 표시였다.
필자가 번기문을 공적기능의 수행자로서는 결격사유가 많다고 보는 이유 중에는 지난
대선이 부정으로 치러진 정황을 포착하고 래외 교민 모임인 유권소가 십만명 서명을
받아 유엔에 제출한 재선거 싱시를 요구한 내용의 청원서를 반기문이 깔아뭉갠
전력도 포함이 돼있다.
주권 문제는 국민에게는 사활적 관건이 걸려 있는 중차대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우리의 의구심은 당연히 그 일이 아무런 반대급부의 수수 없이 맨입으로
이루어졌겠느냐?“에 쏠릴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일이 박근혜와의 인간적 친분으로
이루어진 일이더라도 공과 사를 가릴 줄 모르는 무분별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반기문이 그 일이 한국민에게 화복불능의 상처를 입히고 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도발행위라는 사실 인식을 빠뜨리고 있었다면 매우 무신경한 사람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반기문이 무책임한 ‘도덕적 청맹과니이거나 천박한 현실
영합자임을 반증 다. 생각해 보라!,반기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애족정신이
실오라기 만큼이라도 있었고서야 어떻게 탐욕을 행하고 이기적 욕망의 달성을 위해
국민정서를 어기지르고 자국민과 원수질 일을 할 염을 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때
필자는 반기문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명분론자가 못되는 천박한
현실부의자이가나 그 아류라는 영속적 결론을 내린 바있다.
(부정선거 암묵의 합의로 한국인가슴에 못박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데 유권소 제출 탄원서 묵살이 정실에차우친 불공정
거래였다면 반기문에게는 "기득권자가 돼 자국민이 왜소하게 보일 것이며 부자의
훈수꾼으로 남을 것이라는 억측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아니 땐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한국 정치 사회에서 정파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과는 달리 국제사회에서 “반기문이 유엔 역사상 최악의 총장!“이라는
등 부정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어떻세 해석돼야 할 일인가?. 이 사실은 세계
유수의 권위 있는 일간지물에 의해 온세게에 널리 유포되고 있다.
반기문을 혹평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명박근혜 리스크의 덫에 걸려 만신창이의
아픔을 겪고 있으면서 다시 ‘반기문‘이라는 부자의 훈수꾼이며 기득권자의 등극에
목말라 하는 여당내 정파들의 움직임을 볼적마다 “촛뷸대모 민심에 찬물을 껴얹는
저주의 굿이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민중들에게 영양가가 되지도 않을
인물의 등장에 목말라 하지않으며 시큰둥헤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아들이 개척교회 목사 일을 한다. 인간적 입장에서 보면 참 따분한 직업이 교회
목사다. 그래 문 닫는 교회가 속풀한다고 들었다. 유럽이나 북미 등 나라들애서 보는
교회 황폐화, 공동(空洞)화의 배경에는 ‘물질적 풍요’라는 변수 외에 이런 복잡한
환경요인의 작용이 깔려 있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자기가 삶의 주인일 수 없는 주제에
교회 목사가 갖춰야할 필요충분조건에는 사업을 경영하다 실패힌 경험, 또는
병약하거나 난치병을 앓아 투병한 병력, 범죄조직에 가담한 경력 등이 매우 긴요하게
쓰여지고 큰 비중을 차지하며 필수적 요건이 됨은 영적감각을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지니는 공통인식이다. 부귀공명은 영적 능력을 기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걸림돌아 될 뿐이다.
그같은 진리의 깨달음은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기도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상류사회의 일원인 바리새 인과 사두개 인을 따돌리고 어부 베드로와 세리 마태 등과
구원사업을 펼치신 바로서도 너끈히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멀하면 영적으로 거슬리는 이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런부류의
사람들일수록 빠지기 십상인 인간적 타성이 있다. ‘삶’이 하나님의 위탁품‘이며
자기가 청지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자기의 것인양 착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지를모르고 살아가니 답답한노릇이다. 정말이지 이 사례에서
우리는 인간이 빠져드는 어이없는 우지(愚智)의 극치를 본다. 그 인생이 자기의 것일
수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우지가 낳은 어림세푼어치 없는 생각의 부스러기들이다. 저들의 생각대로라면
자의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어야지 않는가?. 묻는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백세 장수“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싶어 보양식을 먹고 새벽운동을 다닌다 하여
누구나 달성되는 경지의 세계인가? 부귀공명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존졸히
아낀다 하여 누구나 다 딸 수 있는 열매이던가? 아니잖은가? 인생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보증서다.
사람이란 누구나 부귀공명을 꿈꾸고 살아가지만 빈부 귀천이 있다. 교회에서
목사임들은 “꿈꾸는민큼 이루어지며 나쁜 생각에 얽매어 살다보면 나쁜 또래들이
몰려온다!”고 말한다. 인간의 소망과는생판 다르게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 불쑥
불쑥 찾아듷어 옹골지기 바라는 자기 인생을 토막내고 속절없게 만드는가 하면 욥의
고난이나 박근헤 리스크에 휘감겨 오천만 국민생활이 도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인생이 자기의 것이라는 어리석은 착각속에서 살아간다.
이 촌노 또한 높은 벼슬아치가 돼 부귀공명을 꿈 꾸어도 보았다.그러나 지금 내가
표류하는 곳은 경제적 하층구조의 사람들이 사는 20평짜리 주공임대아파트다. 남들이
네대나 가졌다는 억대 자가용 승용차도 없다. 장교랍시고 어깨에 힘을 주었던 때가
없진 않았다. 장군을 꿈꾸어보기도 했다. 결과로 남은 것이라곤 쥐뿔도 없다.
장군은커녕 영관계급장조차 달아보지 못하고 쭈르르 미끄러져 내려 왔다. 건강하게
살고 싶었으나 백일몽의 꿈이었을 뿐이다. 이십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지체부자유자로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나는 오늘을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 인생에는 도사가 돼 부귀에 처할 줄도
알게 되고 빈천에 처할 수도 있게 됐다.어떤 고괸대적 앞에서도 비굴해지지 않으며
노숙자와도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 있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 한단어의 의미는
외부의 회려함에 관건이 달려있지 않고 내재(內在)적임을 깨달은 후 초래된 변화의
한 단면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허발대신 사죽을 못쓰고 돈에 팔려 정조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풍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환멸의 비애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하여
필자가 도덕군자로만 살아 왔다는 희떠운 고백은 아니다. "원clr장교!“라는
닉네임의 주인공이 바로 필자였으니 비교 우위를 인정할수있었다 해도 관능적
판단으로 달려가 부기공명에 목멀랐던 과거도 있었다.
필자가 젊어서 지은 음란의 죄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예인
인간이기에 저지른 하나님께 지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였을 것이다. 그야 어떻든
부귀공명을 꿈꾸는 마음이나 건강하고 싶다고 건강을 지키기란 어렵고 생노병사라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것만 보아도 생명이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반추(反芻)할 것도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의 인식에 눈떠야 한다. 더 덧붙여
말할 것도 없이 일국의 대통령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할 속성 가운데는 어머니가
새록새록 잠든 갖난아기를 보고 기뻐하듯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어야할 필연성 문제도 포함된다.
무릇 국가 통치는 우주를 창조하여 팽이처럼 굴리고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제하신-
못하는 일 모르는 일이 하나도 없고 안게신 곳이 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잖으면 구심점을 잃어 삼천포에 빠져 들거나 가련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겠으므로 우리는 보편적 가치의 신봉자로 남아야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세게 제일의 문헌적 가치를 인정받는 성경의 가르침을 고즈넉이
받아들인다면금상첨ㄹ하 격일 것이다
난세는 영웅을 불러!
각설-와중에 촛불이 횃불로 변한 성난 민심, 아니 오천만 국민이 다시금 이명박 정권
말기 당시의 수치스러운 실퍼의 전철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백결치듯 들려오고 있다. 친일 요소를 청산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이 개혁의 성취의
필요성이 이제보다 절실히 욕구된 때가 없었는 생각이다. 박근혜에게 저주가
임할지어다.
그러나 탄핵 심판으로 박근혜 시대를 마감하더라도 독버섯처럼 돋아나 페해를
양산하는 친일 잔재들이 깊숙히 뿌리박혀 척결과 개혁 공정의 마무리까지에는
넘어야할 험준한 고갯길이 너무 많고 보니 고갯길을 넘어가는 마음이 그다지 명랑
상쾌하지 만은 않다. 바야흐로 영웅의 출현이 기다려지는 계절이다.
요즘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이 전국에서 고루 지지를 받고 있으며 검증의 칼날을
들여대면서 반기문의 인기가 주춤하다고 한다. 그 뒤를 이재명이 뒤쫓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이나 박원순에게도 꼬집힘을 당할만한 결점이 있을 것이지만. 그들의
시선이 중산층이하 민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성공을 빌며 선전분투를
격려한다.
한류바람이 불어드는 나라에서 정치계는 침체 국면헤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어냐?냐?“라든가 ”새누리당이 법빟어다 죽을 쑤어먹고 대다수 국민들과
원수질일만 하는데도 대안세력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푸념을 들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성남 시장 이재명이다.
오늘 나는 이명박근혜 리스크의 덫에 걸려 망국으로 달려가는 나라에서 왜 이재명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이름을 올리고 대통령 반열에 행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스만큼리 난세라
고난의 시련으로부터 배운 소중한 교훈
이재명이 성남시에서 펼쳐지는 선진 복지도시 행정의 로드맵 을 통해
사실(寫實)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성남시의 실험에서 국민들이 찬찬히 눈역겨
살펴 보아야할 중요 관전 포인트가 있다. 이재명이 행정 복지 사회 문화 등을
종합세트로 한 다발로 묶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청계천 복원이라는 깜짝 이벤트를
통하여 눈속임으로 대권의 꿈을 이룬 이명박과 다르다는 것은 유난히 우리의 눈길을
끈다.
지만 집안의 가난으로 고난의 시련으로부터 배운 교훈의 의미가 워낙 커 바위처럼
흔들리지도 않고 지속적인개혁이 가능할 것임을 경험학적 진단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명박근혜 리스크로 하여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고 오물로 뒤덮인 나라에서
쓰레기를 맑숙히 치워주고 십년 묵은체증을 속시언히 뚫어주며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을 사지(死地)에서 건져주며 혁명적 결단으로 대다수 국민의 욕구수요를
담아내는 것은 물론 민주복지를 넘어 롱일 한국의 꿈을 실현할 인물은 이재명 뿐임을
알게 됐다.
한국의 미래 정부가 혁명적 결단으로 단행해야할 조치에는 4대강사업, 아프리카
자원외교, 천안함 격침을 빙자하여 q북을 걸고 넘어져 다량의 미국무기를 사들인 일,
박근혜와 이명박이 짜고친 고스톱인 지난 18대 대선부정 규명, 채동욱검찰총장
찍어내기 최순실 국정농단 부역자들에 대한 가중처벌과 전재산 몰수 등 그밖에
표면화되지 않은 모든 정치사건 사법부 개혁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일을 할 이가
이재명 말고 달리 있다고 말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 아닐까?.
나로 하여금 이같은 인식에 도달하도록 도와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성남시 자치행정에서 걷은 빛나는 실적이다. 경험학적 진단을
통해 나는 그것이 이재명이었기에 가능성의 예술로 승화할 수 있었음를 굳게 믿는다.
“세상에 고난보다 위대한 스승이 없다!“는 철학의 명제는 정곡을 찌르는 명증된
법칙이다. 여기애서 잠시 에피소드 하나를 인용하고자 한다. 양해 있기 바란다.
이같은 필자의 말에 혹자는 이기적 목적의 달성을 위한 자기 현시(顯示)욕의 발로가
아닐까 의문을 아타낼는지 모른다, 염려를 붙들어 매시라!“ 말하고 싶다.
필다는 향년 여든여섯으로. 4년 후면 구순에 달하는 노인이다. 후손들에게 살기좋고
희망적인 나라를 물려주고픈 일념만을 안고 하나님 은혜로 살아가는 노인이다. 부귀
공명에 목말라있지도 않다. 자녀의 취직 청탁으로 공직자를 번가롭게 할 정도로
몰상식하지도 않다.
이재명 시장은 집안이 가난하여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해야할 최악의 환경 조건에
맛닥뜨려온 불우한소년기를 살은 사람으로 동병상련(同病相憐 격의 연대감을 느꼈다.
필자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줄 카타르시스를 맛보여쥴 인물로 이재명을 손꼽고
싶다. ‘공돌이’로 공장에서 일하면서 검정고시로 중고등 학교 과정을 마치고
고학으로 중앙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패스한 수재중의 수재인 것을 알았다.
누구나 쉽사리 흉내내지 못할 난관을 돌파하여 일군 입지전적 성공은 돈으로는 사지
못할 값진 경력이다.
한국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게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가 못된다. 비판에 재갈을
물리고 소아병적으로 대응하는 못나니 나라다. 분단 팔십년 동안 이데올로기에
얽매어 같은 동족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착각하여 반공 일변도 정첵의 그늘아래
노동자 농민을 흘겨보는 버릇에 길들여져온 못나니 나라다.
노동자와 도시빈민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는 공산주의, 또는 주체사상에 대한 이념적
공감을 느낄 확률이 높다“는 그릇된 편견이 깔려 있다. 인간의 삶을 평면적으로
보는자들의 로차 범위 큰 가다듬어지지 못한 오차범위 큰 사고의 유추형태이며
진리는 그 반대 부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매가이기도 한 예수 그리스도가 상류사회의 일원인
바리새인과 사두개 인들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질타를 남긴 것이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긴기는 영저 깨달음을 얻은 그리스도 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원리다. 불교 창시자이던 싯따르타(석가)는 인도 나라의
왕세자였다.그런 그가 부처의 원리인 열반의 깨달음을 얻은 것은 왕실의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가 아니었다 유랑걸식하고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던 칠년간의 고행
길에서였다.
임금이 하사를 받은 구백리 당과 온갖 부귀공명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비가 새는
오두막 채에서 사는 것에 자랑을 느꼈던 황이 정성이 나라를 다스릴 때가 왕조
시대를 찬연히 빛내던 세종 왕조시대였다는 것은 역사가 명증하는 바와 같다.
현대의 성녀“라 일컬어지는 인도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이웃을 가리켜 ”하나님의
간택자!“ 또는 ”예수의 분신!“ 이라고 불렀음을 기억한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은 집안이 가난하여 초등하교 졸업도 마치지
못한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그런 그가 장성하여 노예를 해방시키는 인류여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공현의 발자취를 남긴 것을 기억하라! 이런 시각기준에서 볼
때“세상에 고난보다 위대한 스승이 없다!”는 철학의 명제나 “고난은 쓰다 .
그러나 열매는 달다!”는 격언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명언이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에는 우리가 왜 가난한 이웃을 흘겨보아서는 안되는지 가르쳐주는
교훈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가진 자들의 독선과 교만이 인간 사회를 삭막함으로
일그러뜨리는지에 대한 소상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기도 하다. 필자가 성남시장
이재명을 난세를 헤치고 이명박근헤와 그 부역자들을 단죄하고 저들이 해외에 빼돌린
제산을 몰수하는 등 명실상부하게 개혁을 이룰 인물로 손꼽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지난 대선당시 있었던 박근혜 당선이 조작된 승리임을 알고
아고라 한토마 등에 ‘충격의 리포트, 박근혜 정건찬탈!“이라는 주제의 글 다음으로
”폭풍전야, 바야흐로 혁명분위기!“라는 타이틀의 글로 오늘의 정치상황을 예단한
필자가 무디지 않은 정치 감각으로 남기는 대국민 선언이다.
“대통령의 필요충분 조건에 대하여 논함”한석현 글
<반기문과 이재명 인물 비교!> 2017. 1. 1
경천동지할 대통령 탄핵정국
정유 년 정유의 해 원단의 아침이 밝아올랐다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지난해는
다사다난하던 한해였다. 가정적으로는 아내의 환후가 위중하여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하나님 은혜로 기적저으로 살아나 가정으로 돌아와 회복중이다.
사회적으로는 무소불위로 군림적 횡포를 부리던 박근헤가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을
받아 대선 정국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지경으로 크게 술렁이고 있다.
게이트가 터져나오기 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멎지 않게
군사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돼 권력과 유착하여 오만가지 정치악을 양산해온
조선일보의 원격조정에 놀아나는 문화 콘텐츠의 나라였다. 조선일보 등을 필두로
하는 족벌 신문은 친일과 민족 반역자인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회
공기(公器)’로서의 언론 본연의 사명을 저버린 채 탐욕과 이기주의 발상에 젖어
권력의 주체가 돼 나라를 온통 불법이 활개치는 권력의 난장판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권력의 화신인 박근혜는 그럴만한 그릇도 되지 못하는 주제에 꼴값을 떠느라고
대통령이랍시고 은둔형 인간으로서의 면모도 약여하게 처녀인체 내숭을 떨며
우아하게 웃고 다녔다; 알고보니 그는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탕녀였다.
(박근혜 리스크의 하이라이트
육영수가 죽고나서 퍼스트 레이디 노릇을 하는 동안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이기도 한
이 탕녀는 독재자인 아버지 박정희보다 여섯 살 연상이며 무당 굿을 하는 최테민의
최면술에 깊이 빠져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최티민 사망후의 처신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그 사위 정윤희가 박의 호위(虎威)무사로 자리잡는다.
그것만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청와대 내에 지도(地圖) 상에도 표시되지 않은
은밀한 처소를 만들어 놓고 수많은 남정네를 끌어들여 주지육림 속에서 고액의
마취제와 최음(催淫)제 주사를 맞으며 시시덕거리고 도화경 속에 파묻햐 열락의 밤을
보낸 사실의 윤곽이 드러났다.
최순실은 이혼했다는 정윤희의 전처다. 라이벌 관계이니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자내야 온당할 터였다. 헌데 친자매보다 더 친숙했다니 어찌된 영문인가?. 한 남자가
가지고 놀은 여자끼리의 끈끈한 유착관계라. 잘 계산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그
신묘망칙한 삼각관계의 함수여! 오호라!
박정희가 삼성과 독대한 후 박정희는 노동자를 원수처럼 여기고 짓밟은 역사는 한ㄱ
정치사에빼곡히 기록을남기고 있다.가문들끼리 혼맥을 이어오며 분탕질을 일삼아온
추악한 내막을 아는 이는 다 알고 있다. 그러던 나라가 우연의 일치였는지 인위적
작용이 가해졌는지 여부를 촌탁할 수는 없으나 근자 청와대와 조선일보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져 밀고 당기는 듯
해프닝이 연출된지 얼마 안돼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나와 5천만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리스크의 하이라이트는 세월호 참사가 가 아닐까? 참사가 일어니던
날 의문의 일곱시간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세얼네 네얼레하다 일으킨 세월호 참사
통념적으로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가 대통령이 할 일을 재대로 하지 않아
늑장대응으로 구난 시기를 놓쳐 일어난 사건 사고라 믿고 있다. 이와 다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부정선거백서 출판으로 한영수 김필원 두사람이 명예훼손죄로
기소돼 민심이 흉흉하던 시기였다.
주권자로서 사실에 근거한 문제제기였으니 사건의 성격상 기소가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국민적 시선을 다른데 돌리려고 국정원과 짜고 고의로 대형참사를
일으켰다는 설로 유족들의 신경이 날카로이 곤두서있다.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단순한 모략이었을까?
국회 탄핵소추 가결 당시 세월호 참사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가
일었다지만 국회에서의 특별법 제정 과정에 청와대가 끼어들어 된소리 안된 소리로
훼방을 놓았는가 하면 여야 합의를 거쳐 천신만고 끌에 만든 조사 절차법을 거부권
행사로 무산시킨 일련의 사실을 놓고 볼 때 아니라 반박할 명분도 없다.
국회 탄핵과 천만명 촛불 대모를 보며 대선당시 실행하지 못할 공약을 하지 않는다며
이십 만원씩 주겠다던 노인수당도 못주더니 어힌 돈이 그리 많아 일당 할베를
동원하여 맞불 데모 작전을 놓고 있다. 세상에 동원되는 노병들도 노망아 났지
자녀나 손자들앞에 부끄럽지도 얺은가?. 사람이 탐욕에 눈이 멀면 인간악이 어디까지
뻗어갈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얼씨구 비박게가 개혁신당?
만회작전의 백미는 지난 대선 당시 부정선거로 박근혜 승리를 조작하고 겁에 질려
일본으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가 부정사건의 진상이 음페 호도되는 낌새를 알고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귀국했던 대선 캠프 본부장이던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이
대권 도전 포기를 선언한데 이어 유승민 등 비박게를 이끌고 탈당하여 개혁세력입네
표방하며 개혁신당을 창건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한 꼼수가 아닐까?.
이명박 정권 말기 4대강 사업, 아프리카 자원 외교, ‘524‘조치 등으로 국민을 말로
다할 수 없는 낭패감의 수렁 속에 빠뜨림으로써 한나라당 간판으로는 표를 구걸할
염치가 없게 되자. 새누리 당이라 당명을 바꾸고 ‘경제민주화의 대부"‘인 김종인을
얼굴마담으로 끌어들여 마치 서민정당인 것처럼 가장하며 호가호의하던 거짓말쟁이
사기꾼 박근혜 수법과의 완전한 판박이다.
안철수 박지원 등 정치 철새 들과 패거리를 지어 더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간
정치인들로 구성된 국민의 당이 무슨 꿍꿍잇속에서인지 개헌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4당 협의체를 만들어 개헌특위를 작동시키고 있다. 더민주 탈당파
손학규와 비주류 김종인 등이 이에 가세하고 있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을 영입하여 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제 개현을 하는 모양이다. 이를
고리로 하는 이합집산 형성과 정파간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겠지....
용납돼서는 안될는 재벌정치
여기에 촛불 데모 민심이 깊이 유념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중요 괸전 포인트가
있다. 일본의 경우 자민당 정권의 지속을 가능케 하였듯이 우리나라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이어 다시금 부자에 의한 부자들을 위하은
반기문의 등장으로 부자의 나라를 만들 위험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보는 이명박근햬 리스크의 양산은 한국 사회에서 아뮤런
영양가도 없는 귀태(鬼胎) 박정희 와 같은 군사불한당들에게 능욕을 당한 때문에
빚어진 페해이며 제도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명료히 알아야 한다. 군중심리에
영합하는 집단의지에 영혼을 심어주는 일이 한국의 지성인이나 논객들이 장차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순실 게이트로 민중 혁명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까지 일반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십만선량>이며 헌법기관의 일원인 국회의원 직에 이르기까지도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각의식에 눈뜨지 못하고 권력의 횡포에 가위눌려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그저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실하게 얼버므리고
지내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풍조의 만연은 권력이 나라의 이권을 독점하기에 안성맞춤의 조건을 만들려고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얼기설기 저안망 식으로 쳐놓은
테러 방지법이나 국가보안법 등 폭압장치와 수단인 도청 미행 게좌 추적 살인미수
간첩 조자 등 오만가지 패악질로 국민적 기본권을 말살하고 침해를 가한 것과 밀접히
연관지어져 있다. 머슴한태 휘둘려 맥을 못추운 지질히 못난 주인으로 살아왔으니
자업자득의 결과였던 셈이다.
새로이 가다듬어져야 할 정치 문화, 그보다 유권자 의식 가운데에는 대통령을 뽑는데
있어 학벌이나 경력, 또는 출신성분을 중요시하고 이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도
문제다. 그런 경햘은 각 정파들이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을 반기고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총장 자리를 세계 대통령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헛물을 켜는 정말 한심한 족속들이다.
한국인들이어! 후회없는 내일을 여로자하면 깨어나라!!!
필자가 이 자리를 빌어 드리고싶은 당부의 말이 있다. 착각에 빠진 사람들에게 얼른
부질없는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권고를 드리고 싶은 것이다, 그렇듯 구멍뚫린
주권자 의식이 빨갛게 달아오른 촛불 데모민심을 자칫 닭쫓던 개 집웅쳐다보기
신세로 전락하게 할까봐 덜컥 겁이 나서 하는 말이다.
댐ㄴ짝만하게 실린 반기문의 얽굴
필자는 수일전 한겨레신문이 반기문의 얼굴을 일면 톱으로 대문짝만하게 실은 것을
보고 질겁을 하여 “반기문이 그러도 비중있는 정치인이냐?“라는 항의성 전화를
걸었다 이제로부터 4년전 박근혜 정권 출범초기 권력에 아첨하려는 저의에서였던지
우아하개 웃는 모습의 박근헤 총천연색 사진을 일면에 실었던 불유쾌한 기억을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나의 물음을 받아 관걔자들은 ”사진에 딸려 실린 기사내용을 읽어보았느냐?”는
반문을 던져왔다. 기사 내옹이 비판적이긴 하였으나 한국민들이 정녕히 반기문을 왜
배척해야 하는지 핵심적 이유가 빠져 있었다. 기독인으로 은혜가 못되는 이야기라서
하나님께 외람스럽긴하지만 외교관으로 미국에서만 거주해온 반기문에게는 가혹할
만큼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관견이다.
모든 한국인의 생각이 천편일률적이어야 한다고는 믿지 않으나 같은 충청도 산이긴
하지만 필자는 반기문이 영어 회화를 유창하게 지껄이는 노신사 정도로만 이해할
뿐이며 대통령이라는 공적 기능 수행자로 적합한 인물아 못된다는 결론을 이미
수년전에 내린 바 있다. 필자가 반기문을 공적 기능 수행자로서는 결격사유가 많다고
단정자은 데는 다음 몇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가 마국정부 정책의 맹종자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도
일제 식민지로부터 사슬을 풀어준 고마운 나라로만 믿었던 필자의 대미 인식이 바뀐
갓은 무엇보다 한국방위문제‘의 대처에서 일본세를 끟어들인 오바마 행정부의
그릇된 외교정책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영구분단
고착화 정책에 대한 거부반응도 원인의 일단을 이룬 것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세게 제일의 부자 나라가 불특정 다수 국들에게 테러전쟁을 선포하고
부질없이 국력을 소진(消盡)하여 세계제일의 채무국가가 된 사정에 눈가림하고
있지는 않다. 영원한 적도 내편도 없는 것이 힘센 자가 장땡인 국제사회의 속성인
것도 모르진 않는다.
필자가 반기문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는 것은 자국에게 떠넘겨진 짐이 버겁다 하여
동맹구에 대한 배려도 없이 대북제재에 한국에게 철천지 원수이던 침력자 일본세를
끌어들여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게 하려 하다니 언어도단의 망발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고도 모자라 새로이 정권을 출범시키려는 토럼프가 라이벌 중국
견제의 의미도 가미돼 있는 작ㄱ군의 한국주둔을 한국을 위해 비력질을 하여
온것처럼 "무임승론을 일석하며 한반도 수둔 경비 전액을 한국측에 떠넘기려는
속셈을 라보지 못할 일이다.
그같은 트릭과 강정에 대한 한국측 대응이 무엇이냐?“를 묻고 싶다. 가능하면
이기회에 갈테면 가라!“하고 뱃장을 내밀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방위비로 북보다
수십 배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나라가 자죽ㄱ방을 하지 못하는 지질히 못난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달리 유례를 찾을 수 있을지 묻고 싶다.
우리보다 영토가 그리 넓지 않으면서 영국과 미국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호기를 본받을 수는 없을까? 영국의 경우는 어떤가?세계에서 ‘해지지 않는
나라!’로 이름을 날렸지 않은가? 국제 사회에서는 자국 방위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홧대 밑에서 호랑이를 접으려 하다니....
(불합리한 니국의 한반도 정책
미국이 전정한 한국의 우방이라면 태평양전쟁 마감 후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조선을 분단한 일로 한국민이 얼마나 큰 고통과 불행을 당하고 있는지를
역지사지하는 정성으로 깨달아 알고 분단을 고착화시켜 긴장을 고조시켜 다량의 무기
판매로 자국의 국익을 챙기려는 대한 정책을 전면 제검토하여 민족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 한국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십시일반의 협조를 아끼지 말았어야 하지 않을까?
항구여일하게 통일 국가를 건설하여 정을 나누며 더불어 함께 오순도순 살아야할
남북한을 영구히 분단하여 긴장을 고조시켜 무기장사로 짭짤하게 자국의 국익을
챙기고 한국민들 진을 빼려는 것이 아닌가?“라는 고개를 쳐드는 의구심을 달랠 길이
없다. 그 조짐은 후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오래전부터의 북의 제의에
코방기를 뀌며 한미연합 군사연습을 계속해온 바로서도 너끈히 짐작할 수가 있다.
(미정챡의맹목적 추종자일 뿐인 반기문
5넌이라는 길다면 긴 임기 중 반기문은 무슨 핑계로든지 북을 방문하여 김정은을
달랬어야 한다. 그가 단 한번도 북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아야할까? 반기문의 두뇌구조 아니 잠재의식의 밑바닥에는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 한국을 이룩하려는 민족 의식이 전무하며 미국정책의 맹목적 추종자일
뿐이라는 단적인 표시였다.
필자가 번기문을 공적기능의 수행자로서는 결격사유가 많다고 보는 이유 중에는 지난
대선이 부정으로 치러진 정황을 포착하고 래외 교민 모임인 유권소가 십만명 서명을
받아 유엔에 제출한 재선거 싱시를 요구한 내용의 청원서를 반기문이 깔아뭉갠
전력도 포함이 돼있다.
주권 문제는 국민에게는 사활적 관건이 걸려 있는 중차대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우리의 의구심은 당연히 그 일이 아무런 반대급부의 수수 없이 맨입으로
이루어졌겠느냐?“에 쏠릴 수밖에 없다. 설령 그 일이 박근혜와의 인간적 친분으로
이루어진 일이더라도 공과 사를 가릴 줄 모르는 무분별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반기문이 그 일이 한국민에게 화복불능의 상처를 입히고 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도발행위라는 사실 인식을 빠뜨리고 있었다면 매우 무신경한 사람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반기문이 무책임한 ‘도덕적 청맹과니이거나 천박한 현실
영합자임을 반증 다. 생각해 보라!,반기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애족정신이
실오라기 만큼이라도 있었고서야 어떻게 탐욕을 행하고 이기적 욕망의 달성을 위해
국민정서를 어기지르고 자국민과 원수질 일을 할 염을 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때
필자는 반기문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명분론자가 못되는 천박한
현실부의자이가나 그 아류라는 영속적 결론을 내린 바있다.
(부정선거 암묵의 합의로 한국인가슴에 못박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데 유권소 제출 탄원서 묵살이 정실에차우친 불공정
거래였다면 반기문에게는 "기득권자가 돼 자국민이 왜소하게 보일 것이며 부자의
훈수꾼으로 남을 것이라는 억측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아니 땐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한국 정치 사회에서 정파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과는 달리 국제사회에서 “반기문이 유엔 역사상 최악의 총장!“이라는
등 부정적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어떻세 해석돼야 할 일인가?. 이 사실은 세계
유수의 권위 있는 일간지물에 의해 온세게에 널리 유포되고 있다.
반기문을 혹평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명박근혜 리스크의 덫에 걸려 만신창이의
아픔을 겪고 있으면서 다시 ‘반기문‘이라는 부자의 훈수꾼이며 기득권자의 등극에
목말라 하는 여당내 정파들의 움직임을 볼적마다 “촛뷸대모 민심에 찬물을 껴얹는
저주의 굿이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민중들에게 영양가가 되지도 않을
인물의 등장에 목말라 하지않으며 시큰둥헤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아들이 개척교회 목사 일을 한다. 인간적 입장에서 보면 참 따분한 직업이 교회
목사다. 그래 문 닫는 교회가 속풀한다고 들었다. 유럽이나 북미 등 나라들애서 보는
교회 황폐화, 공동(空洞)화의 배경에는 ‘물질적 풍요’라는 변수 외에 이런 복잡한
환경요인의 작용이 깔려 있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자기가 삶의 주인일 수 없는 주제에
교회 목사가 갖춰야할 필요충분조건에는 사업을 경영하다 실패힌 경험, 또는
병약하거나 난치병을 앓아 투병한 병력, 범죄조직에 가담한 경력 등이 매우 긴요하게
쓰여지고 큰 비중을 차지하며 필수적 요건이 됨은 영적감각을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지니는 공통인식이다. 부귀공명은 영적 능력을 기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걸림돌아 될 뿐이다.
그같은 진리의 깨달음은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과 끝이기도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상류사회의 일원인 바리새 인과 사두개 인을 따돌리고 어부 베드로와 세리 마태 등과
구원사업을 펼치신 바로서도 너끈히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멀하면 영적으로 거슬리는 이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런부류의
사람들일수록 빠지기 십상인 인간적 타성이 있다. ‘삶’이 하나님의 위탁품‘이며
자기가 청지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자기의 것인양 착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지를모르고 살아가니 답답한노릇이다. 정말이지 이 사례에서
우리는 인간이 빠져드는 어이없는 우지(愚智)의 극치를 본다. 그 인생이 자기의 것일
수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우지가 낳은 어림세푼어치 없는 생각의 부스러기들이다. 저들의 생각대로라면
자의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어야지 않는가?. 묻는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백세 장수“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싶어 보양식을 먹고 새벽운동을 다닌다 하여
누구나 달성되는 경지의 세계인가? 부귀공명이 개미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존졸히
아낀다 하여 누구나 다 딸 수 있는 열매이던가? 아니잖은가? 인생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보증서다.
사람이란 누구나 부귀공명을 꿈꾸고 살아가지만 빈부 귀천이 있다. 교회에서
목사임들은 “꿈꾸는민큼 이루어지며 나쁜 생각에 얽매어 살다보면 나쁜 또래들이
몰려온다!”고 말한다. 인간의 소망과는생판 다르게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 불쑥
불쑥 찾아듷어 옹골지기 바라는 자기 인생을 토막내고 속절없게 만드는가 하면 욥의
고난이나 박근헤 리스크에 휘감겨 오천만 국민생활이 도탄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인생이 자기의 것이라는 어리석은 착각속에서 살아간다.
이 촌노 또한 높은 벼슬아치가 돼 부귀공명을 꿈 꾸어도 보았다.그러나 지금 내가
표류하는 곳은 경제적 하층구조의 사람들이 사는 20평짜리 주공임대아파트다. 남들이
네대나 가졌다는 억대 자가용 승용차도 없다. 장교랍시고 어깨에 힘을 주었던 때가
없진 않았다. 장군을 꿈꾸어보기도 했다. 결과로 남은 것이라곤 쥐뿔도 없다.
장군은커녕 영관계급장조차 달아보지 못하고 쭈르르 미끄러져 내려 왔다. 건강하게
살고 싶었으나 백일몽의 꿈이었을 뿐이다. 이십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지체부자유자로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나는 오늘을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 인생에는 도사가 돼 부귀에 처할 줄도
알게 되고 빈천에 처할 수도 있게 됐다.어떤 고괸대적 앞에서도 비굴해지지 않으며
노숙자와도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 있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 한단어의 의미는
외부의 회려함에 관건이 달려있지 않고 내재(內在)적임을 깨달은 후 초래된 변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