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이성계에게 끝까지 저항하여 지조를 지킨 안동장군 이미숭이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뒤 불러 청하였으나, 이에 불복하고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켜 대항하였다.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장군은 순절하였다.
원래 산의 이름은 상원산이었다가 장군의 절개를 기리어 미숭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정상 주변에는 미숭산성의 성문과 길이는 1.45㎞의 성터가 남아 있는데,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시대까지 이용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 갑검릉(甲劍陵)이 발굴되어 갑옷·철궁·창·고려자기 등이 출토되었다.
산자락에는 신라 문무왕 때 승려 의상이 창건하였다는 반룡사(盤龍寺)가 있다. 수차례 소실되었다가 1764년(영조 40)에 고령현감 윤심협(尹心協)이 중건하였다. 반룡사다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117)과 반룡사동종(경북유형문화재 288)이 대가야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미숭산]
산행은 반룡사에서 시작하여 천제단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청소년수련원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고, 대가야유물전시관에서 출발하여 주산에 오른 뒤 전망대, 가야생수, 청금정, 천제단을 거쳐 정상에 도착한 뒤 미숭산관광농원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다.
두 코스 모두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정상에는 까닥바위가 있는데, 사람이 밀면 흔들려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에는 고령 양전동 암각화(보물 605), 해인사, 벽송정(경북문화재자료 110) 등의 유적지가 많다. 합천읍에서 남서쪽으로 16㎞ 지점에 합천댐으로 생긴 합천호가 있다. 깨끗한 호수와 수려한 경관으 로 유명한 곳이다. [백과사전] ***********************************************************************************
[미숭산의 가야산 조망]
◆ 경북 고령군의 진산인 주산(310.3m)에서 미숭산(757m)까지 6km 종주 산행 코스. 가야시대 고분들을 둘러보고 나서 잘 정비된 능선길을 따라 미숭산을 오르게 되는데, 이 능선길에서 보는 가야산(1,430m)에서 수도산(1,327.3m),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연봉의 파노라마가 기가막히다. 그뿐 아니라 경남 야로면과 경북 고령읍 경계에 놓인 미숭산과 고령읍 뒷산인 주산에는 산성이 그대로 남아 있어 밝고 지나가는 이끼 낀 돌에도 옛조상들의 삶과 역사를 뒤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했다.
미숭산성은 고려 말 이성계의 집권에 항의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저버리지 않고 정몽주, 이색과 함께 끝까지 항거하던 안동장군 이미숭 잔군이 미숭산 정상에 높이 3m, 둘레 1.5km의 석성을 쌓고 군사들을 훈련 시키면서 이태조 군사들과 접전을 벌였던 곳이다. 원레 이름은 상원산이었으나 후세 사람들이 이미숭 장군의 이름을 따서 미숭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미숭산의 신리저수지 조망]
또한 주산산성에는 가야시대에 쌓은 이중성으로 내성은 돌로, 내성의 남북쪽 끝에서 타원형으로 쌓은 외성은 흙으로 쌓았다. 성안에는 우물터와 건물터들이 남아 있고, 가야시대 토기와 기와 조각들이 널려 있다. 두 산 모두 정상에 서면 산성의 위치가 말해주듯 주변 일대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미숭산을 오르는 길은 정상 못미처 일부 구간을 빼고 대부분 평탄한 능선길이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는가 싶으 면 툭 터진 능선길에 접어든다. 중간에 지산리에서 중화리로 넘어가는 고갯길 전망대에서 가야생수를 마시며 숨을 고르고, 조금 더 올라가 412m봉에 통나무로 잘 지은 청금정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주산에서 미숭산까지 등산로에는 친절하게 잘 만들어진 안내표시판이 여러 군데 세워져 있다. 갈림길마다 봉우리마다 현위치와 다음 목표지점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알려준다. 따라서 길 잃을 염려가 없다.
미숭산을 오르다보면 사방으로 운무에 가린 산, 산, 산이 겹겹으로 늘어서 있다. 그 사이로 들녘에 반짝 빛나는 것은 낙동강이다. 한 페이지의 역사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가야의 유물과 사적지를 둘러보면서 주산과 미숭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봉긋하게 솟아난 언덕만 봐도 고분으로 보이고 등산길에 맞닥뜨리는 바위마다에는 원시 암각화 가 그려 있는 것 같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이처럼 신비에 쌓인 가야의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주산에서 미숭산 정상까지 약 5.9km. 소요시간은 3시간쯤 걸린다. 미숭산을 먼저 오른 다음 주산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아담한 미숭산 반룡사]
중간 사잇길로 오르내리는 코스 ○ 반룡사 - 신리 고갯길 - 정상 - 미숭산관광농원, ○ 산리 임도 - 전망대 - 청금정 - 정상 - 반룡사, 또는 미숭산관광농원 코스가 있다.
이 코스로 하산해서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는 6km나 되서 1시간 정도 걸어 내려와야 한다. 승용차를 가지고 가지 않을 경우 택시로 이동하는 것이 비용도 저렴하고 편하다. 미숭산을 오르내리는 다른 등산로로는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 경남청소년수련원 뒷길로 해서 미숭산성 서문지로 오르는 길이 있다.
[석양에 잠들려하는 대가야 고분군]
#주변볼거리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주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1,500여 년 전에 조성된 크고 작은 고분 200여 기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고분들에서 가야금관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가 출토되었으나 대부분 일제시대 때 도굴된 상태다. 그 가운데 1977년에 발굴된 왕릉으로 추정되는 제44호, 제45호 고분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순장 묘로 밝혀졌다. 제44호 고분의 경우 중앙에 주인공을 안치한 주석실을 두고 남쪽과 서쪽에 부석실을 마련 하고 그 둘레에 32개의 소석곽을 배치했다.
대가야 유물 전시관 주산 올라가는 입구에 있다. 지산동 제32호 고분에서 출토된 철갑옷과 투구를 비롯하여 금동관과 국보 제138호인 가야금관 등 고분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장신구들을 비롯하여 여러 토기들을 수집 하여 전시해 놓았다. 16대 왕조, 520년간 내려온 대가야시대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
양전동 선사시대 암각화 고령읍에서 4km쯤 떨어져 있는 양전리 알터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1971년 영남대 박물관의 조사 연구로 알려졌다. 높이 3m, 폭 6m의 바위에 조각된 그림들은 우라나라 최고(最古)의 원시화로, 그려진 동심원이 상징하는 태양신을 숭배하던 원시신앙의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 암각화는 주변에서 출토된 붉은민무늬토기, 돌도끼 등 석기 유물과 관련지어 볼 때 선사 농경시대 석기인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매림서원 고령군에는 향교를 비롯하여 서원, 서당, 재(齋), 사당, 정자가 140여 개나 남아 있어 옛 전통을 이어 가려는 이 고장 사람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쌍림면 매림2리의 매림서원도 그 가운데 하나다. 1707년 조선조 숙종 때 지은 서원으로 조선조 말엽에 철폐되었으나 1984년에 설립자 현풍인 곽수강 선생과 고창인 오선기 선생 의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복원하고 제향(祭享)한다.
우륵기념탑 가야금의 창시자인 우륵이 살았다는 고령읍 쾌빈리 정정골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저리잡고 있다. 우륵은 중국의 쟁을 본따 만들었다는 가야금으로 평생 185곡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단 한 곡도 남아 있지 않고 12곡의 곡명만 남아 있다. 우륵의 가야금은 그후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奈良) 정창원(正倉院)에 1,300여 년 전 모습으로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들머리안내 *주산과 미숭산은 고령읍 뒷산이나 마찬가지다. 읍에 내리면 곧바로 주산에 오를 수 있다. 읍내에 흩어져 있는 유물 사적지를 둘러보는 데도 먼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그태여 승용차를 이용하기 보다 는 떠날 때부터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고령은 대구, 광주간 88고속도로와 합천, 거창, 해인사, 의령을 오가는 중간 기착지여서 대구서 고령까지 오가는 버스는 수시로 있다. 서울서는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10시8분에서 오후 4시45분까지 5회 성주를 경유해서 고령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다(3시간40분 소요). 고령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서울행 고속버스가 하루 5회 다닌다(소요시간 4시간). [한국의 산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