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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
출애굽기 17: 1-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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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가면 <교보문고 빌딩>이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광장의 분위기에는 맞지 않는 건물입니다.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일본의 어떤 건물을 모방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건물이 주는 위안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용기를 주는 글들을 찾아서...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큰 글 판을 붙여 놓습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윤동주 ‘새로운 길’) 요즘은 봄을 맞이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글을 걸어 놓았습니다.
굉장히 큰 그 건물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이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리도 없고 찾아 갈 일도 없는데요...
마침 <교보문고 빌딩>하고 광화문 네 거리에서 대각선으로 서 있는 더 높은 빌딩이 <감리교 본부>입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 광화문에 갈 일이 있으면 교보빌딩 지하에 있는 <교보문고>를 꼭 찾아 갑니다. 최근에는 인천에도 대형서점이 많이 생겼지만, 그곳을 찾으면 참 고맙다는 생각을 건물주에게 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런 금싸라기 땅에 서점을 차릴 생각을 했을까요? 다른 것을 했더라면 많은 수익을 올릴 수가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익을 내려고 지하에 서점을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그 서점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해지는 창업자의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 손님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고, 어린 아이들에게도 꼭 존댓말을 사용하여라.
* 한 자리에 오래 서서 책을 읽는다고 뭐라고 하지 말아라.
* 이 책 저 책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는 사람에게 눈총 주지 말아라.
* 노트에 책의 내용을 옮겨 적어도 그냥 놓아 두어라.
* 만일 책을 슬쩍 하는 사람이 있어도, 망신 주지 말고, 눈에 띠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조용한 말로 타이르고 보내라.’
1981년 서점을 시작하면서 내건 원칙들입니다.
2015년에는 거대한 책상을 서점에 들여 놓았는데요... 이 책상이 화제입니다.
길이가 11.5미터나 되는 책상을 만들어서 두 개를 붙여 놓았으니 23미터나 되는 길이의 큰 책상인 거죠. 세로가 1.5-1.8미터인데요... 무려 80명 정도나 되는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서서 책을 보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뜻에서 그 책상을 들여 놓았습니다.
실제로 사진을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책을 읽기도 하고 노트북이나 다른 기기들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장사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텐데요... 그래서 그들의 이런 시도는 더욱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상을 만든 나무가 독특 합니다.
저 멀리 <뉴질랜드>의 카우리 섬에서 자란 카우리 소나무라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라고 하는 데요... 5만 년 전에 있었던 자연재해로 늪지대에 묻혀서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나무를 이태리로 운반해 가서 가공해서 책상을 만든 거죠.
그 책상의 길이가 11.5미터 인 것은 책상을 운반할 컨테이너의 길이가 11.5미터라서 그랬다고 하니까요... 그들의 최선이 거기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책상의 무게만 해도 무려 1.6톤이나 되는데요... 사진을 보니 그 두께는 정말 엄청났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들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항상 손해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목표 삼았던 곳에서 한참 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생각하면 마이너스이던 내 인생은 갑자기 플러스로 바뀌게 됩니다.
주님을 통해 새 생명 얻은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새 생명의 기쁨이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도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십자가의 큰 사랑 받았으니... 난 어떻게 남을 배려하고... 받은 사랑 베풀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사순절>에 우리가 생각할 것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들도 주님처럼 나누어주고... 베풀어 주고... 배려하며 살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겪은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머무르라고 명하신 곳에 머물렀는데요... 그곳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얼마나 당황 했을까요?
만일 어떤 지도자가 그들이 머무를 장소를 정했는데요, 그곳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 그곳도 파악하지 못하고 머무를 장소를 정했다면... 당연히 무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온 지도자의 책임이 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그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곳까지 온 이스라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에서 보인 이스라엘이 보인 행동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 온 길이 있는데요... 하나님을 향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그곳의 이름을 므리바... 또는 맛사라고 부르게 되는 데요...
공교롭게도 지금 그 지점이 어딘지... 우리는 그것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엔 대대로 므리바나 맛사의 이야기는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이야기로 전해지게 됩니다.
‘므리바에서처럼, 맛사 광야에 있을 때처럼, 너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시편95:8)
오늘 이 시간으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의 한 신앙인은 오늘 일이 있었던 장소를 소개하면서...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인 신 광야를 떠나서,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v.1)
문제는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들이 진을 친 곳에 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물이 없다면... 이것처럼 심각한 문제가 어디에 있을까요?
더욱이 문제는 그들을 이 곳으로 인도하신 분이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가며 이동’하였다고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길을 우리에게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소중한 신앙적인 교훈을 얻을 수가 있는데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하여도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고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길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완벽함이라고 할까요?
물이 없다가도 물이 넘쳐흐르고... 넘어 졌다가도 다시 일어서게 되고... 굽고 막힌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길이 확 열리고... 몸이 아프다가도 갑자기 건강해지고... 일이 안 되어서 고생하다가도 하나님만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뭐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길 기대하는 데요...
오늘은 그와는 정 반대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당연히 그곳은 생명수가 넘쳐흐르는 곳이어야 하는데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된다면... 아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이 참 많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도 그런 위험을 겪으신 적도 있었으니까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시는 데요... 그만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배가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얼마나 스타일 구기는 일일까요?
바다가 미친 듯이 흔들리다가도 주님이 배에 오르시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조용해져야 할 것 같은데요... 주님이 배를 타고 가시는데 잔잔한 바다가 갑자기 험해지다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주님도 그런 일을 겪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매사를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며 나아간다고 하여도... 그것이 우리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 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은 사도 바울도 겪었습니다.
이를테면 두 번째 전도여행을 하러 길을 떠났는데요. 도무지 바울이 원하는 일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이 기도도 하지 않고 길을 떠났을까요?
자기만을 위해서 가는 길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바울은 막다른 길인 드로아에 갈 때까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후에 바울은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성령이 막으시므로...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지 않으셨다.’(행16:6,7) 이렇게 자신의 하는 일을 막으신 분은 주님이셨다고 회고 합니다.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별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선택하고 결정하곤 했는데도... 마치 물이 없어서 고생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갑자기 어려움이 찾아올 때 말이지요.
당시 그들의 행동은 참 부끄러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래서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다.’(v.2) 여기서 “대들다... 투덜거리다...” 마치 강아지가 “으르렁대듯... 으르렁대다... 이렇게 읽을 수가 있겠습니다.
르비딤이란 시내산 근처의 골짜기로 알려진 곳인데요... 물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지고... 중얼거리며 불평과 불만을 털아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런 소리들이 마치 메아리치듯 골짜기를 진동하게 하지 않았을까요?
모세는 이렇게 그들에게 충고 합니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v.2)
모세는 혼자서는 이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대들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좋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곧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그들에게 경고합니다.
이게 바로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불평을 늘어놓는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우리는 모세나 눈에 보이는 어떤 사람에게 대들고 그들에게 불평하는 것 같아도... 그것은 실상은 하나님을 향한 행동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전에도 비슷한 경고를 받았습니다.
신 광야에서는 그들은 양식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출16:2)
그때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보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원망하였습니다.’(출16:7)
물론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다음 날 아침에 양식을 먹게 하시지만, 모세는 이런 그들의 행동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왜 모세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쏟아내는 불만을 하나님께로 화살을 돌리며 자제 시킬까요?는 것일까요?
우리가 어떤 일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보고 들으시고 우리에게 벌을 내리실 것 같아서 그럴까요?
하나님은 그렇게 속이 좁은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마치 아무런 말도 듣지 않은 것처럼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데요...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행동은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곁에 계시지만... 어느덧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빌2:14)
광야와 같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실에서 원망과 불평에 휘말리면...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모세의 거듭된 충고는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진정 시키려고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거칠게 대꾸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백성은 몹시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가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과 그들이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다.’(v.3)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들의 원망과 분노를 잠재울 수가 있는 것인가요?
백성들이 마음이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모세는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v.4)
모세로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요 모세가 하나님께 드리는 말씀이 이야기의 흐름과는 맞지 않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물이 없어서 난리를 치고 죽겠다고 아우성인데요... 모세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하지도 않고 자기가 죽겠다고... 잘못하면 돌에 맞겠다고 백성들이 자기에게 대드는 것만을 말씀드립니다.
마치 하나님께 고자자질이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모세는 왜 이렇게 중요한 부분은 빼놓고 말씀을 드리는 건가요?
그래도 하나님은 다 알아들으십니다.
이게 우리가 새겨야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문제가 뭔지... 모세가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모세가 말한 부분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시고서는... 어떻게 하면 물이 나오게 할 수 있는지... 그것만을 말씀하실 뿐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v.7) 그들은 이게 궁금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가운데 계시지 않으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간주하였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어 고생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아... 하나님은 우리들에겐 관심이 없으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셔...’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면...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겠다고 보고하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서 거기에 대해서 무엇인가 반응 하셨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마치 동문서답하시듯... 말씀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v.5) 이렇게 물이 없어서 고생하는 이스라엘에게 모세가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가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행동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비록 어려움을 겪고 시련을 당하더라도... 이스라엘이 내 뱉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그것을 모르셔...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지 않아... 하나님은 나와는 관계가 없어...’ 그런 경솔한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런 행동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고...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우리의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시험을 극복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설혹 현실이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흔들어 놓을 때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안 계신가 봐...’ 그렇게 말하게 될 때도 그런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인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에서 불평과 의심이 가라앉고 믿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이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데요...
특별히 모세에게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고 하십니다.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라고 설명하시면서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모세에겐 그 지팡이가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호렙 산에서 그 지팡이를 가지고 양을 치다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능력이 없다고...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하나님은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출4:2)
이렇게 하나님은 지금 모세가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언급하셨습니다.
모세에겐 이후로부터 지팡이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그 지팡이로 나일강을 치니까... 물이 피로 변하기도 하고...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홍해바다를 향해 내밀었을 때... 놀랍게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지팡이는 위기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상징입니다.
이제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안 계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모세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하나님은 다시 그 지팡이를 들게 하시는 거죠.
‘그리고,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너는 결코 흔들리지 말아라... 나를 향한 굳센 믿음으로 가거라... 하나님은 이렇게 모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토카프 궁>에 가면 바로 이 모세의 지팡이를 볼 수 있는데요...
그것은 너무나 가늘고 볼품없었습니다. 누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굽혀지고 곧 부러질 것 같습니다. 그게 모세의 지팡이라고 진열해 놓았는데요...
그게 제겐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마치 황제들이 가진 크고 빛나는 지팡이를 생각했었는데요...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아주 가늘고 볼 품 없고... 쉽게 부러질 것 같은 그 지팡이가 모세의 지팡이 맞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런 거죠.
곧 부러지고... 사라질 것 같은데요... 그런 믿음으로도... 마치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겨자씨의 믿음으로도... 우린 얼마든지 어렵고 힘든 현실을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이 지팡이... 가늘고 볼품없지만... 이게 의심을 믿음으로 돌리고... 불평과 원망을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는 출발점입니다.
‘너는 이제 지팡이를 손에 들어라. 지금은 네가 지팡이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의심이 생기고... 우리의 내면에 불평이 쌓이기 시작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작은 기억이라도... 사람들에게 내 놓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이더라도... 우리에겐 누구나...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있고... 소중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는 현실에서 이런 작은 기억의 지팡이를 손에 잡는 일... 이게 결국 메마른 땅에서 생명수가 솟아나는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v.6)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죠.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우리가 목이 말라서 어쩔 줄 모를 때...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시는 분... 그 분은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 가운데서 행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그 결과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가 반석을 쳤다는 것과... 그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고 이름 붙여서 그들의 부끄러운 행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고 말할 뿐입니다.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겠죠.
하나님이 행하시는 데요... 하나님 앞에서 모세가 행하였는데요... 어찌 그 일이 잘못 될 수가 있을까요?
결국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이제는 좀 더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목이 말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믿음으로 현실을 이겨나가라...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거나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도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지 않으셨습니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이집트의 군사들이 있어서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었을 때...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거기에 길이 생길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이스라엘이 마른 땅처럼 걸었던 그 길을 따라오던 이집트의 군사들은 병거의 바퀴가 벗겨져서 꼼짝도 못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신 것을 사랑하는 여러분의 여러분 마음에 새기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 내십니다.
어려움에 직면해서 도무지 피할 길이 없을 것 같아도...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우리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들이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칠 때... 어떻게 이스라엘의 그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을지...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는데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하늘에서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이 날마다 나가서, 그날 그날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게 하여라.’(출16:4)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주시는데요...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 그렇게 넉넉하게... 우리가 먹을 만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행한 일은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아직 믿음이 약해서... 아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 대들고... 하나님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는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했을까요?
같은 길을 가더라도... 우리는 맛사와 므리바의 부끄러움을 반복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걸어가십니다.
홍해를 갈라서 길을 열어 주시고,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십니다. 바위에서 생명수가 솟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기에 우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우리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