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5 - 공야장(公冶長) - ④ |
1 | 或曰 雍也仁而不佞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옹은 어질지만 말재주가 없습니다.”라고 하니,
雍, 孔子弟子, 姓冉, 字仲弓. 佞, 口才也. 仲弓爲人重厚簡黙, 而時人以佞爲賢, 故美其優於德, 而病其短於才也. 옹은 공자의 제자로서 성은 염이고 자는 중궁이다. 佞이란 말재간이다. 중궁은 그 사람됨이 중후하고 간소하고 무뚝뚝하였고, 또한 당시 사람들이 말재주 있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가 덕에 뛰어나다고 찬미하였지만, 말재주에 단점을 보인다고 걱정한 것이다.
程子曰 有便佞之才者 多入於不善 故學不貴 정자가 말하길, “말재주가 교묘하고 아첨하는 재주를 가진 자는 대부분 不善에 빠지기 때문에, 배우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佞是無實之辨 又曰佞是捷給便口者 不是諂是箇口快底人 却未問是不是 一時言語 便抵當得去 撰得說話也好 如子路必讀書之言 子曰惡夫佞者 是也 주자가 말하길, “佞이란 실질이 없는 辨說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佞이란 말대꾸가 빠르고 말재주가 좋은 것인데,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빠른 것이지만, 도리어 옳은지 그른지를 미처 묻지 않으니, 한때의 말은 곧 감당해낼 수 있고, 지어서 말해내는 것도 좋다. 예컨대 자로가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하느냐고 말하자, 공자께서 저렇게 말재주 좋은 자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仲弓從事於敬恕以求仁 又在德行之科而夫子稱其可使南面 今或者又以不佞爲慊 則決非務外而事口者 故以爲重厚簡黙也 人情徇外而不事內 求名而不務實 故以佞爲賢 경원보씨가 말하길, “중궁은 敬과 恕에 종사함으로써 仁을 구하였고, 또한 德行科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공자님께서 그로 하여금 남면하여 정사를 하도록 할 수 있다고 칭찬하셨던 것이다. 지금 혹자가 또한 말재주가 없는 것을 모자란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밖에 힘쓰고 말재주를 일삼은 사람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중후하고 간소하고 묵묵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사람들의 보통 정으로는, 밖을 따르면서 안을 일삼지 않고, 명성을 추구하면서 실질에 힘쓰지 않기 때문에, 말재주 좋은 것을 현명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子曰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말주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내어 자주 남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니, 그가 어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재주를 어디에 쓰리오.”라고 하셨다.
○ 禦, 當也, 猶應答也. 給, 辦也. 憎, 惡也. 言何用佞乎? 佞人所以應答人者, 但以口取辦而無情實, 徒多爲人所憎惡爾. 我雖未知仲弓之仁, 然其不佞乃所以爲賢, 不足以爲病也. 再言焉用佞, 所以深曉之. 禦는 당해낸다는 것이고 응답하는 것과 같다. 給은 갖춘다는 것이다. 憎이란 미워하는 것이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말재간 좋은 사람이 남에게 응답하는 것은 단지 입으로 말재주 갖춤을 취하여 사정이 진실한 것이 없고, 헛되이 남에게 미움을 많이 받을 뿐이다. 나는 비록 중궁이 어진지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가 말재주 없는 것이 곧 현명하게 된 까닭이니, 병폐로 여기기에 족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재차 말한 것은 그를 깊이 깨우쳐주기 위함이다.
慶源輔氏曰 佞人恃口以禦人 浮淺躁妄 發言成文 雖若可聽 然其情實 則未必如此 心口旣不相副 自然招尤 而取憎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말재주만 좋은 사람은 입을 믿고 남을 당해내는데, 얕게 뜨고 조급하고 함부로 하니, 말을 드러내고 글을 이루는 것이 비록 들을 만한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사정의 실질은 반드시 이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과 입이 이미 서로 부합하지 않다면, 자연히 원망을 불러와서 미움을 받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口才雖俗人所賢而實正人所惡 신안진씨가 말하길, “말재주는 비록 속인들이 유능하다고 여기는 바이지만, 실제로 바른 사람들이 미워하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左氏傳云 寡人不佞 蓋以佞爲才 衛以祝鮀之佞治宗廟 然顔子爲邦之問 夫子則告之以遠佞人 蓋木訥者近仁 多言者數窮 佞多失言 不佞不害其爲賢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춘추 좌씨전에 이르길, 과인은 말재주가 없다고 하였으니, 대체로 말재주를 재능으로 여긴 것이다. 위나라는 축관 타의 말재주로 종묘를 다스렸지만, 그러나 안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묻자, 공자께서는 말재주만 뛰어난 사람을 멀리하라고 알려주셨던 것이다. 대체로 말에 어눌한 것이 仁에 가깝고, 말이 많은 자는 자주 곤궁해지며, 말재주가 좋은 사람은 자주 실언을 하게 된다. 말재주가 좋지 않아도 그가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에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或人稱仲弓之仁而短其不佞 夫子不輕許仲弓以仁而反喜其不佞 신안진씨가 말하길, “혹자가 중궁의 어짊을 칭찬하면서도 그 말재주 없음을 단점으로 여기자, 공자께서는 중궁을 仁으로써 쉽게 인정하지 않으시면서, 도리어 그 말재주 없음을 기뻐하셨다.”라고 하였다. |
3 | ○ 或疑仲弓之賢而夫子不許其仁, 何也? 曰: 仁道至大, 非全體而不息者, 不足以當之. 如顔子亞聖, 猶不能無違於三月之後; 況仲弓雖賢, 未及顔子, 聖人固不得而輕許之也.” 어떤 사람은 중궁이 현명함에도 공자께서는 그가 어질다고 인정해주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의문을 가졌다. 이에 나는 말하였다. “仁道는 지극히 큰 것이라서, 仁道를 온전히 체득하여 행하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에 해당하기 부족한 것이다. 예컨대 안자 같은 아성도 3개월 이후에까지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중궁은 아무리 현명하다고 하지만 안자에 미치지 못하였기에, 성인께서 진실로 그를 쉽사리 인정해줄 수 없었던 것이다.”
蔡氏曰 全體是天理渾然無一毫之雜 不息是天理流行無一息之間 愛之理心之德六字所以訓仁之義爲甚切 全體不息四字所以盡仁之道爲甚大 只此十字之約 不惟諸儒累千百言莫能盡 而前後聖賢所論仁字 溥博精深千條萬緖 莫不總會於十字之中矣 채씨가 말하길, “全體(체를 온전히 함)란 天理가 혼연하여 터럭 하나의 섞임이라도 없다는 것이고, 不息이란 천리가 유행하는 것이 한순간도 쉼이 없다는 것이다. 愛之理心之德(사랑의 이치와 마음의 덕) 이 6글자는 仁의 뜻을 매우 적절하게 뜻풀이한 것이고, 全體不息이란 4글자는 仁의 道를 다하는 것을 매우 커지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이 10글자로 요약한 것은, 단지 많은 유생들이 쌓아놓은 수천 수백 마디의 말 중에서 이보다 능히 극진히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전후 성현들이 仁이란 글자를 논하면서 말한 넓고 정밀하고 깊은 천가지 만가지 중에서, 이 10개의 글자 안으로 모조리 모여들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當理而無私心 朱子據所聞於師者而言 此章卽己之所見而言 全體二字已足以該當理無私心之義 加以不息二字 又五字 未盡之旨 蓋亦因其所已聞而發其所獨得 故子文文子章 雖引師說而或問乃曰 仁者心之德而天之理也 自非至誠盡性通貫全體無少間息 不足以名之 則亦引前章之說以釋後章之旨 亦足以見前說之義爲詳且密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다는 것은 주자가 스승에게서 들은 바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고, 이 장에서는 자신이 알아본 바에 나아가 말한 것이다. 全體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이미 ‘이치에 합당하고 사심이 없다’는 뜻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음에도, 不息이란 두 글자를 더하고, 다시 5글자(不足以當之)의 미진한 뜻을 더했으니, 대체로 또한 그가 이미 들은 것을 바탕으로 그가 홀로 터득한 바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子文文子(영윤 자문과 진문자)章에서 비록 스승의 말씀을 인용하였지만, 혹문에서 이에 ‘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면서 하늘의 이치이니, 저절로 지극한 정성으로 천성을 다하여 온전하게 體行하여 관통함이 조금이라도 쉼이 없는 경지가 아니라면, 그렇게 이름을 짓기가 부족하다.’고 말했으니, 이 역시 앞장의 말을 인용하여 뒷장의 취지를 풀이한 것으로서, 이 또한 앞에 한 말의 뜻이 상세하고도 정밀하다는 것을 알아보기에 족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仁惟此心純是天理 無一毫人欲之私 乃可以當其名 全體云者 非指仁之全體而言 乃所以全體之也 진씨가 말하길, “仁은 오직 이 마음이 순전히 天理여서,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인욕의 사사로움이 없어야만, 마침내 그 이름에 합당할 수 있다. 全體라고 운운하는 것은 仁의 全體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온전히 체행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仁者兼該萬善無所不備 如人之頭目手足皆具然後謂之人也 서산진씨가 말하길, “仁이라는 것은 온갖 善을 겸하여 갖추어서, 갖추지 않은 바가 없는 것이니, 마치 사람의 머리, 눈, 손과 발이 모두 갖추어진 연후에, 그를 일컬어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此體字當作活字看 卽君子體仁之體 仁之體本全 故體此仁字 不可以不全 쌍봉요씨가 말하길, “여기서의 體자는 마땅히 活字(살아있는 글자, 動詞)로 삼아 보아야 마땅하니, 곧 군자는 仁을 체행한다는 것의 體이다. 仁의 體는 본래 온전하기 때문에, 이 仁자를 체행함에 있어서, 온전하게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全體而不息 如陳蔡之說 則仁之體本自渾全 如陳饒之說 則是以人全體之 愚玩朱子之意 仁道至大是說仁 全體而不息者是說仁者之人 故著一者字 蓋仁只是人之本心 所貴乎仁者於此心本體 無一毫之虧欠 又無一息之間斷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온전하게 체행하여 그치지 않음이란 진씨와 채씨의 말대로 한다면, 仁의 體가 본래 저절로 渾然하여 온전하다는 것이고, 진씨와 요씨의 말대로 한다면, 이 때문에 사람이 그것을 온전하게 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자의 뜻을 음미해보니, 仁道가 지극히 위대하는 것은 仁을 말한 것이고, 全體而不息者는 仁者가 사람임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 者라는 한 글자를 덧붙인 것이다. 대체로 仁은 그저 사람의 본심이니, 仁을 귀하게 여긴 것은 이 마음의 본체에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이지러지고 부족한 것이 없으며, 또한 한순간의 間斷도 없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胡氏通主仁者之人之說 自是程子曰 公而以人體之 則爲仁 此體仁之說也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仁以爲己任 弘也 死而後已 毅也 仁者本心之全德 必欲以身體而力行之全體 此仁卽弘也 一息尙存此志 不容少懈 此不息卽毅也 必如此始足以參透 全體而不息者之語歟 신안진씨가 말하길, “호씨의 論語通은 ‘仁者가 사람’이라는 설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정자가 말한 ‘공정하면서도 사람이 체행하는 것이 곧바로 仁이 된다.’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仁을 체행한다는 학설이다. 증자가 말하길,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仁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기는 것은 넓은 것이요, 죽은 다음에야 그치는 것은 굳셈이다. 仁이라는 것은 본심의 온전한 덕이니, 반드시 제 몸으로써 체득하여 힘써 행하고자 하는 온전한 體인 것이다. 이러한 仁은 곧 넓은 것이다. 한번 숨 쉴 때라도 여전히 이러한 뜻을 보존하여, 조금이라도 게을리함을 용납하지 않는 것, 이러한 不息(쉼 없음)은 곧 굳센 것이다. 반드시 이와 같이 해야만, 비로소 ‘全體而不息者’에 대한 학설들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