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관한 시 모음
부모 --김소월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성탄제(聖誕祭)
김종길
어두운 방안에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마지막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추억(追憶)에서
박재삼
진주(晉州) 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닷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어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사모곡
신달자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나님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냐고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꼴 저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가슴을 베어요.
어머니
조병화
어머님은 속삭이는 조국
속삭이는 고향
속삭이는 안방
가득히 이끌어 주시는
속삭이는 종교
험난한 바람에도
눈보라에도
천둥 번개 치는
천지 개벽에도
어머님은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생
아득히, 가득히
속삭이는 눈물
속삭이는 기쁨.
어머니, 어머니
이중삼
금이야, 옥이야, 자식 잘 되길
물불을 가리니까
뜬눈으로 지샌 세월
바람든 손끝에 가시밭 일구셨네
아, 몰랐어라
어머니 내 어머니
옛 이야기 즐기시며
자식 사랑 낙이련만
내 자라 어른 되걸랑 되걸랑은
천년 만년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겠다던
골백번 언약이 왜 그리 낯이 선지
어머니, 저 먼 눈빛으로
하늘 끝만 보십니다.
길은
석양을 짊어지고 가슴북 치는데
못된 불효
유 순
나도 같이 가자.
- 노인네는 집에서 애들이나 보세요.
나도 용돈 좀 다우.
- 노인네가 어디 쓸데가 있어요.
나도 이런 옷 입고 싶다.
- 노인네가 아무거나 입으세요.
힘들어 못 가겠으니 오너라.
- 노인네가 택시 타고 오세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 노인네가 가만히 방에나 들어가 계세요.
어머니
유 철
육순 넘으신
어머니를 뵈면
절로 눈물이 난다.
내가 채워드렸어야 하는
生의 여분을
당신께서 지금껏 나를 위해
거꾸로 된 삶을 살게 한
연유에 더욱 그렇다.
머리는 허옇게 쇠시고
몸도 뜻대로 안되시며
마음마저 쇠약해지셨다.
내 탓이라 돌이키지만
늦었구나.
왜 그리 예전에
느낄 수 없었을까 恨하지만
가실 길이 없구나.
그리도 아닌 길 일러주셨지만
듣지 않던 고집에
어머니는 얼마나
멍들었을까
후회는 안하리라던
내 마음에 어머니 아픈 가슴
그늘진다.
자꾸 뒤돌아 보게 되는
흐른 세월 속에 이제라도
어머니 자리찾아 자위한들
그게 무슨 소용일까
통곡할 일만 남았구나
가슴칠 일만 남았구나.
남의 얘기 하나 틀리지 않다더니
결국 나도 걸어가는 길
뭐 그리 잘나 나를 챙겼을까?
어머니 앞엔
용서청함도 외람되리라.
끝없이 쏟아 부으신
어머니 사랑의 마음
주워담을 길 없는
내 지금 처지가
마냥 섧기만 하구나.
꽃다운 청춘
나 하나만으로 바라고
사셨던 어머니
이제사 기억하며
홀로 눈물짓는다.
염치없는 마음을 달래본다.
늘 간절한 어머니 생각
용혜원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선한 눈빛
부드러운 손길, 따뜻한 사랑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신보다 자식을 더 생각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풍성합니다.
어머니의 자식도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어머니의 깊은 정을 알 것만 같습니다.
늘 뵙는 어머니지만
뵙고픈 생각이 간절해
전화를 했더니 어머니도
내 생각을 하고 계셨답니다.
그 무엇으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어머니의 사랑
그 사랑을 갚는 길이 없어
늘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어머니
김초혜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머니
서정주
[애기야...... ]
해 넘어가, 길 잃은 애기를
어머니가 부르시면
머언 밤 수풀은 허리 굽혀서
앞으로 다가오며
그 가슴 속 켜지는 불로
애기의 발부리를 지키고
어머니가 두 팔을 벌려
돌아온 애기를 껴안으시면
꽃 뒤에 꽃들
별 뒤에 별들
번개 위에 번개들
바다의 밀물 다가오듯
그 품으로 모조리 밀려들어오고
애기야
네가 까뮈의 이방인(異邦人)의 뫼르쏘오같이
어머니의 임종(臨終)을 내버려두고
벼락 속에 들어앉아 꿈을 꿀 때에도
네 꿈의 마지막 한 겹 홑이불은
영원(永遠)과 그리고 어머니뿐이다.
어머니
이해인
당신의 이름에선
새색시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걸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이 담겨 있는
유년(幼年)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어머니의 눈물
박목월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시진 못하고
노려보시는
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
꼭 껴안으시던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너무나 힘찬 당신의 포옹
바른 길
곧게 걸어가리라
울며 뉘우치며 다짐했지만
또다시 당신을 울리게 하는
어머니 눈에
채찍보다 두려운 눈물
두 줄기 볼에 아롱지는
흔들리는 불빛
어머니의 기도
모윤숙
놀이 잔물지는 나뭇가지에
어린 새가 엄마 찾아 날아들면,
어머니는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산 위 조그만 성당 안에 촛불을 켠다.
바람이 성서를 날릴 때
그리로 들리는 병사의 발자국 소리들!
아들은 어느 산맥을 지금 넘나 보다.
쌓인 눈길을 헤쳐 폭풍의 채찍을 맞으며
적의 땅에 달리고 있나 보다.
애달픈 어머니의 뜨거운 눈엔
피 흘리는 아들의 십자가가 보인다.
주여!
이기고 돌아오게 하옵소서.
이기고 돌아오게 하옵소서.
어머니
정한모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치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로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어머니날
노천명
온 땅 위의 어머니들이 꽃다발을 받는 날
생전의 불효를 뉘우쳐
어머니 무덤에 눈물로 드린
안나 자아비드의 한 송이 카아네이션이
오늘 천 송이 만 송이 몇 억 송이로 피었어라.
어머니를 가진 이 빨간 카아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 없는 이는 하이얀 카아네이션을 달아
어머니날을 찬양하자
앞산의 진달래도 뒷산의 녹음도
눈 주어볼 겨를 없이
한국의 어머니는 흑인노예모양 일을 하고
아무 찬양도 즐거움도 받은 적이 없어라.
이 땅의 어머니는 불쌍한 어머니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싹을 내거니
청춘도 행복도 자녀 위해 용감히 희생하는
이 땅의 어머니는 장하신 어머니
미친 비바람 속에서도 어머니는 굳세었다.
5월의 비취빛 하늘 아래
오늘 우리들의 꽃다발을 받으시라.
대지와 함께 오래 사시어
이 강산에 우리가 피우는 꽃을 보시라.
불효
변수환
해마다 추석 성묘 한번 못 가고
해마다 구정 성묘 한번 못 가고
가고파도 갈 수 없는 고향인가
보고파도 볼 수 없는 고향인가
먹고살기 어려워서 더욱 어렵습니다.
성묘 및 벌초를
진정 언제나 가보려나
내 신세만 처량한 타향살이
흙으로 돌아가렵니다.
못살아도 좋습니다.
외로워도 좋습니다.
언제인가는 가렵니다.
성묘하러 벌초하러 아버님 비석 세우러
당신의 얼굴
홍윤숙
어머니
흰 종이에
수묵 풀어
당신의 얼굴
그려보아도
꽃 같은 미소
간데 없고
하얗게 바랜 모습
줄줄이 주름진 세월
하늘 같은 희생들
그릴 바 없어
내 손부끄러이
더듬거립니다.
어. 머. 니.
그대 부모가 되어 / 조화훈
그대 부모가 되어
어릴 적 받은
사랑의 무게를 헤아려 보라.
그대 부모가 되어
철없는 울음의
뒷바라지를 채워 주어 보라.
그대 부모가 되어
한없이 베푼 사랑의
허무함을 곱씹어 보라.
생명을 얻은 기쁨
키우고 자라는 보람
스스로 떠나는 대견함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
가문을 지키는 대들보
나라를 지키는 인재되어
그대 부모가 되어
일그러진 자화상을 고쳐
만세 후에 오늘 착한이를 맞이한다면
후회도 회한도
포기도 탄식도
모두가 그대가 지은 업장인 것을
그대 부모가 되어
물 그림자 건져
사랑의 옷 한 벌 꿰매어 보라.
<효와 관련된 고시조 10편>
1. 김상용
어버이와 자식 사이 하늘 아래 지친(至親)이라.
부모 곧 아니면 이 몸이 있을 소냐.
까마귀 反哺를 하니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여라.
2. 김수장
가마귀 열 두 소리 사람마다 꾸짖어도
그 삿기 밥을 물어 그 어미를 먹이나니
아마도 조중증자(鳥中曾子)는 가마귄가 하노라.
3. 김진태
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난다.
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北堂)에 친재(親在)하시니 그를 두려워함이라.
4. 박인로
반중(盤中)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5. 박효관
뉘라서 까마귀를 검고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이 그 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6. 신사임당
백발의 어머님 강릉에 계시는데,
이 몸 서울 향해 홀로 떠나는 마음.
고개 돌려 북평(北坪) 때때로 바라보니,
흰 구름 나는 하늘 아래 저녁 산이 푸르구나.
7. 윤선도
뫼는 길고길고 물은 멀고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많고 하고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울고 가느니.
8. 이 익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셨으니
두 분의 은덕을 갚고자 애를 쓰나
하늘과 같이 크고 넓어서 갚을 길이 없어라.
9. 이숙량
부모님 계신 제는 부모인 줄 모르더니
부모님 여윈 후에 부모인 줄 알오다.
이제사 이 마음 가지고 어데다가 베프료.
10. 정 철
어버이 살아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 뿐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