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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2. 본론
가. 톨도트 — 자손을 넘어선 존재의 의미
나. 바라와 아사 — 시작과 완성의 원리
다. 하늘과 땅 — 존재의 이중 구조
라. 지성소 — 근본 하나님과 하나 되는 자리
마. 예수와 휘장 — 완전한 연결의 사건
바. 옥토 밭 — 완성된 인간
3. 결론
4. 한 줄 요약
5. 마무리
1. 서론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창세기의 ‘창조’를 우주와 만물의 물리적 시작에 관한 이야기로 이해해 왔습니다. 물론 창세기의 본문에는 세계의 기원에 관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언어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창조의 이야기를 인간 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회복의 과정으로 읽을 가능성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히브리어 톨도트(תּוֹלְדוֹת), 바라(בָּרָא), 아사(עָשָׂה) 등의 개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창세기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하늘과 땅’,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와 함께 나타나는 ‘휘장의 찢어짐’이라는 이미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합니다.
그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작 → 형성 → 변화 → 정결 → 연결 → 하나 됨 → 열매
따라서 창조는 단순히 무엇인가가 처음 만들어지는 사건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창조는 시작된 것이 마침내 본래의 목적에 이르는 완성의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경이 말하는 ‘아들’은 단순히 육체적인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 생명을 드러내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여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완성은 무엇인가?”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2. 본론
가. 톨도트 — 자손을 넘어선 존재의 의미
창세기에는 ‘톨도트’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톨도트는 ‘후손’, ‘자손’, ‘계보’, ‘족보’ 등으로 번역됩니다. 실제로 성경의 여러 문맥에서 혈통과 세대의 계보를 가리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톨도트를 단순히 육체적인 혈통의 목록으로만 보지 않고, 어떤 존재로부터 무엇이 나타나고 이어지는가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보면 톨도트는 단순한 ‘자손’의 문제가 아니라 근원으로부터 나타나는 결과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씨앗에서 열매가 나오듯이, 근원으로부터 그 근원의 성격을 드러내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들’이라는 개념 역시 단순한 생물학적 자녀를 넘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근원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라기보다, 그 근원의 생명을 받아 그것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톨도트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나왔으며, 지금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가?”이 질문은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관한 질문입니다.
나. 바라와 아사 — 시작과 완성의 원리
창세기의 창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라(בָּרָא)입니다. 바라는 창세기 1장에서 근본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동사입니다. 한편 성경에는 ‘만들다’, ‘행하다’, ‘이루다’ 등의 의미를 가진 아사(עָשָׂה)도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 책에서는 이 두 단어를 단순히 서로 다른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만 보지 않고, 시작과 형성·완성이라는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즉, 바라 — 시작되는 창조, 아사 — 형성되고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흐름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작만이 아닙니다. 씨앗이 뿌려졌다면 자라야 하고, 자란 것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면에서도 변화는 어느 한순간의 지식이나 감정적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성숙을 거쳐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욕망과 집착을 바라보고, 왜곡된 생각을 분별하고, 마음을 갈아엎으며, 생명의 말씀이 뿌리내릴 수 있는 상태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 전체를 창조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바라와 아사는 시작과 완성을 연결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 하늘과 땅 — 존재의 이중 구조
창세기 1장의 ‘하늘과 땅’은 전통적으로 우주적 공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상징 언어를 내면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하늘과 땅은 인간 존재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을 가리키는 이미지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은 보이지 않는 영역과 영적인 차원을 상징하고, 땅은 인간의 삶과 몸과 마음이라는 구체적인 존재의 영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창조는 단순히 외부 세계의 질서가 세워지는 사건만이 아니라, 혼돈 가운데 있는 인간의 존재가 하나의 질서로 회복되어 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빛이 비추고, 분리가 일어나며, 질서가 세워지고, 생명이 나타나고, 마침내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은 인간 내면의 변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혼돈에서 질서로, 어둠에서 빛으로,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분리에서 하나 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땅’이라는 표현은 인간 존재를 바라보는 하나의 중요한 틀이 될 수 있습니다.
라. 지성소 — 근본 하나님과 하나 되는 자리
성막과 성전에서 지성소는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은 일반적인 공간과 구별된 거룩한 자리였으며, 근본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된 장소로 이해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지성소를 단순히 특정한 건축 공간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지성소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 곧 근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내면의 자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분리의 극복과 하나 됨입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근본 하나님을 외부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궁극적인 회복을 내면의 관점에서 읽는다면, 그것은 근본 하나님을 외부에서 찾아가는 과정만이 아니라 근본 하나님과의 단절이 회복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성소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분리에서 하나 됨으로 나아가는 존재의 가장 깊은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 예수와 휘장 — 완전한 연결의 사건
복음서에서 예수의 죽음과 함께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 사건을 근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길이 열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근본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로 해석해 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 사건을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면의 분리가 무너지는 상징적 사건으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휘장은 경계를 의미합니다. 안과 밖, 거룩한 곳과 속된 곳, 근본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나’와 ‘근원’ 사이에 존재하는 분리의 상징입니다.
그 휘장이 찢어진다는 것은 더 이상 장벽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이미지가 됩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 존재 안에서 분리가 무너지고 연결이 회복되는 길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회복의 핵심은 단순히 어떤 장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근본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라는 의식이 무너지고, 생명의 근원과 하나 됨을 깨닫는 것”에 있습니다.
바. 옥토 밭 — 완성된 인간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여러 종류의 밭으로 설명하십니다. 길가, 돌밭, 가시밭, 그리고 좋은 땅입니다. 이 비유는 단순히 외부의 농업 환경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씀이 인간의 내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열매 맺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잠시 받아들이지만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가시밭과 같은 마음은 세상의 염려와 욕망에 의해 말씀이 막힙니다. 그러나 옥토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자라게 하며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따라서 옥토는 단순히 ‘착한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 뿌리내리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준비된 존재의 상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창조와 개간의 의미가 다시 연결됩니다. 밭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잡초가 자라고 굳어집니다. 그러나 땅을 갈고 돌을 제거하고 가시를 걷어내면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인간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내면을 돌아보고, 집착을 내려놓고, 욕망을 분별하고, 생명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굳어진 마음은 점차 옥토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옥토에서 열매가 나타나듯이, 변화된 존재에서는 그 근원의 생명이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 열매를 이 책에서는 ‘아들’이라는 존재의 나타남과 연결하여 바라보고자 합니다.
3. 결론
창세기를 단순히 ‘세상의 시작’을 기록한 책으로만 읽는다면 우리는 창조의 의미를 과거의 사건에 한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를 인간 존재의 내면에서 계속되어지는 시작과 형성, 변화와 완성의 과정으로 읽는다면 창세기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톨도트는 근원으로부터 나타나는 결과를 생각하게 합니다. 바라는 시작을 보여주고,
아사는 형성과 완성의 과정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늘과 땅은 존재의 구조를 보여주고, 지성소는 가장 깊은 내면의 자리를 가리킵니다.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은 분리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며, 옥토 밭은 생명의 말씀이 뿌리내려 열매 맺는 완성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 모든 이미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됩니다. 창조 → 개간 → 변화 → 열매 → 하나 됨, 따라서 창조의 목적을 단순히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근원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이 인간 안에서 온전히 드러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인간의 완성은 외적인 조건을 더 많이 갖추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면의 분리가 사라지고, 근본 생명이 온전히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4. 한 줄 요약
창조는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개간되고 변화되어 근본 하나님과의 하나 됨과 생명의 열매에 이르는 완성의 과정이다.
5. 마무리
이제 질문은 창세기가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질문은 오늘 내 안에서 무엇이 창조되고 있는가, 입니다. 나는 어떤 밭인가? 내 마음은 길가인가, 돌밭인가, 가시밭인가, 아니면 생명의 씨앗이 뿌리내릴 수 있는 옥토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창조가 시작이라면 완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답은 분명합니다.
창조는 완성을 향합니다. 씨앗은 열매를 향하고, 개간된 밭은 추수를 향하며, 분리된 존재는 하나 됨을 향합니다. 바라로 시작된 창조는 아사를 통하여 형성되고 완성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완성의 자리에서 인간은 더 이상 근본 생명과 분리된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아들’이라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근원으로부터 나와, 근원의 생명을 받고, 그 생명을 드러내며, 마침내 근원과 하나 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창조는 지금도 우리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마음이라는 밭에서는 씨앗이 뿌려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빛은 어둠을 비추고 있습니다. 오늘도 굳어진 땅은 갈아엎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바라에서 아사로, 시작에서 완성으로, 분리에서 하나 됨으로 나아가는 길이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