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고 파괴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는 현실 속에서 직시하지만 성경은 언제 그런 일들이 발생하였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와와 아담이 뱀의 유혹을 빠져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먹는 순간부터 인간 안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은 손상이 되었고 상실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타락이 어떤 것들은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쳤지만 어떤 것들은 점차적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어떤 것들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완전히 상실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앞서 살펴보았듯이 창세기 9장 6절에서 타락한 후에도 여전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살인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3: 9절에서 타락한 후에도 여전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음 받은 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의 어떤 부분들은 여전히 타락후에 인간 속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들은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21에서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고 상실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을 의미하며, 인간의 생각과 사고는 쓸모 없게 되어서 영적 판단력과 분별력이 상실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마음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하나님의 형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 되었으며 상실 되었다는 것을 또 다른 차원에서 반증해 줍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 아들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고자 하신 다는 것은 인간의 형상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하시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형상을 회복할 자로 보내셨다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들이 잃어버린 형상을 회복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증하는 것이 여기에 사용된 단어인 형상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에이콘이라는 단어인데 창세기 1장 26절에서 형상이라고 사용된 첼렘과 같은 뜻의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먼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6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볼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좀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는 이 가리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십니다. 그리고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형상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어떠한 형상의 틀로부터 찍혀지거나 본떠진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동전을 만들려고 할 때 원판이 있어야 합니다. 그 원판 위에 동전을 만들려고 하는 물질을 붓고 찍어서 원판과 모양이 같게 만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자는 성부의 완벽한 재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들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같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로마서 8장 29절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그 택한 자들에게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 하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지만 동시에 성부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를 닮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해서이며 회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를 닮지 않고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결코 회복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은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의 필요성 뿐만 아니라 어떻게 인간은 잃어버리고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구속의 목적이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속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 믿어서 복 받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예수를 닮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를 닮아야 된다는 것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리의 형상이 거기에 담겨 있고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며 그래야 우리의 잃어 버린 참된 형상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인간 다움이란 예수 다움입니다. 바른 사람이란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를 묵상하시고 그분이 어떻게 사셨는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을 닮아 사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될 삶의 방식이며 살아야 할 참된 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