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월에 인쇄된, 나의 결혼 이야기 글 .- ♣21.02.01
<★참고> 1982년 당시만 해도, 자기의 글이 책에 인쇄(印刷)되어 나오면, 몹시
기뻤습니다. 당시 나는 교회 집사였고, 여자고등학교 교사였는데, 1982년 1월
에 출간된 “순복음의 정기”라는 책에, 나의 글(*결혼 이야기~)이 실렸습니다.
오늘, 그 글을 읽어 보면서, 벌써 39년 전의 글이고, 또 결혼 4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글의 내용이 부끄럽지 않음에 감사드립니다.
1982년, 즉 39년 전의 그 글을, 그대로 <아래>에 옮겨 적어 봅니다.
★★. 나의 “결혼”이야기~~
나는 지금도 대학 4학년 때, 경북대 교수 김종택장로님한테 들은 강의를 기억
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들이 졸업반이 되어 취직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종교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좋은 회사에 취직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좋은 취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위해 기도할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사회에 나가면, 취직
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이 좌우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
결혼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부끄럽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좋은 결혼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나는 결혼할 때까지, 늘 그 교수님의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군 생활을 통해서, 신앙은 타락되었고, 나의 생활은 무질서 하였
기에, 결혼을 위해서, 실제로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찌기 부족한
산골 아이, 박태원을, 기독교 학교인 대구 계성중,고, 계명대로 불러 주시사,
예수님을 알게 해 주셨던 하나님은, 타락한 나를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1977년 9월 초순, 군(軍)일과를 마치고, B.O.Q.(독신장교숙소)에서 쉬고 있는
데, 한 사병(최우진 병장)이 찾아 왔습니다. “웬 일이냐?” “예, 저는 정보관님
이 교회에 다니신다는 말을 듣고,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 왔습니다.”
상당히 건방진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나의 무질서한 생활도 반성
해 볼 겸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그는 다시 말을 계속 했습니다. “정보관님
도 모든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시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주일날만 교회에
가고, 다시 동료 장교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하면 안 됩니다.”
갑자기 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 사병의 말에 순종해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일과 후에, 그 사병과 같이 매일 군인교회에
가서, 그 동안의 모든 잘 못을 뉘우치며, 눈물 흘리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5일 동안의 깊은 회개 뒤에, 다시 성령을 간구하였던 바, 3일 만에 방언을
받고, 성령을 받았으니, 그 때의 기쁨은 이루 형용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중, 신앙의 반려자가 될, 좋은 처녀를 만나, 결혼을 해야겠다는 간절한
소원이 생겼고, 또, 대학 졸업반 때,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부대 앞 산곡감리교회(*인천시 부평 산곡동)에 가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답고도 좋은 결혼을 허락해 주십사고 간절히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군(軍)일과 중, 태권도 시합을 하다가, 실수 하여
왼쪽 손 등뼈가 부러졌습니다. 사병도 아닌, 장교가 수도국군통합병원에 가서,
왼손에 기부스를 하고 왔으니, 몹시 부끄러웠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음을 늦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부터 한 주간, 우리 공수부대는 부대를 멀리 떠나서 산악훈련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나는 환자가 되어 그냥 B.O.Q.에 남아 있게 되었습니
다. 그런데, 마침 그 기간에 부대 앞에 있는 산곡감리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
습니다. 나에게는 한가한 기간이었음으로 새벽, 낮, 저녁, 그리고, 철야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때, K양에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K양은 자기가 다니고 있던 신학교가 졸업반 실습기간 이어서, 고향인 조치원
에서 쉬고 있다가, 우연히 인천 부평에 있는 이모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K양도 이모의 권유에 따라 그 부흥회에 참석하게 됐고, K양도 한가한
때여서, 새벽, 낮, 저녁, 그리고, 철야를 하면서 큰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서로 얼굴을 익힐 뿐이었고, 부흥회 기간이어서, 이야기는 전혀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나는 계속 결혼을 위해 주님께 기도 할 때마다,
K양의 모습을 내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한 달 후 추수감사
주일날, K양이 다시 이모와 함께 산곡감리교회로 예배드리러 왔고, 그 때 앞
서 소개한 최병장이 중간 역할을 잘 해서, 쉽게 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자주 만나, 신앙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금요일이면 함께 여의도
순복음교회 철야기도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휴일이면 서울 근교 청계산
에 있는, 은혜로운 기도원에도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는 중, 우리의 정은 두터워졌고, 이렇게 좋은 만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
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 서로의 간증을 통해, 내가 왼쪽 손 등뼈를 다침으로
써, 산곡교회 부흥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K양도 너무나 우연히 그 부흥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음을 믿고, 감사 드렸습니다.
그러다, 우리는 1978년 6월 22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에 있는 엘림교회에서,
평소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신, 기도원 원장 정태래 목사님 주례로,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28살, K양은 24살 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나의 결혼은
주님이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신, 좋은 결혼으로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문제이든지,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문제를 위해, 참 좋으신 하나님께 의논하며,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에필로그(*2021년 2월 1일) -
*결혼 3년 6개월 후, 39년前 쓴 글이지만, 지금 읽으니 가슴이 설렌다.
*종교모임; 대구서문교회 대학부. *1978년 6월 22일은 목요일.
*당시 엘림교회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159-50번지
◆.그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마태복음.19:6, 마가복음.10:9)
◆.사진- ①~⑪- 결혼(*1978.6.22.) 전후의 모습들
첫댓글 이 칼럼(*수필, 사진 11장)은 "박태원목사, 자신"의 수양(수련)을 위해 올려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호도 독자를 교훈(설득)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닙니다.
★.박태원목사 "개인 카페"로 스크랩 해서 옮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