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10신]‘농부 교장선생’인 막내 매제에게
친애하는 매제 보시압
오늘 새벽 6시 50분, 출근하려고 짙은 안개를 뚫고 논산까지 1시간여 달려간 매제를 생각하며 조마조마했지만, 역시나 잘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네. 자네를 생각하면 언제나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지 모르네. 우리 막내 동생과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었지. 그 세월 동안, 시골인 처가 출입은 무릇 기하였으며, 장인 장모를 기쁘게 해드린 것은 또 무릇 기하였는지, 우리 가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오죽했으면 어머니는 “윤서방은 똥도 아깝다”고 했을 것인가.
어제도 그랬네. 큰 매제가 세종시에서 이곳으로 퇴근을 한다기에, 좀 무리이긴 하지만 가는 해가 아쉬워 와서 하루밤이라도 어울렸으면 했네. 아내로부터는 무리한 부탁이라고 지청구를 받았지만 말이네.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벌일망정 이럴 때 만나 지난 1년의 회포를 풀지 않는다면 언제 만나 정겨운 시간을 보낼 것인가. 역시 자네는 동생과 함께 한걸음에 달려왔고, 저녁 7시 30분, 큰동생네와 합류하니 아버지까지 포함해 6명이 둥글게 모였지. 강경에서 사온 모듬회에 한잔씩 하는 모습이 보기에 심히 좋았다네. 더구나 모처럼 기분이 승하신 아버지는 연거푸 서너 잔의 술에 불콰하니 취하셔 노래를 3곡이나 부르셨지. 나는 어제와 같이 송년을 앞두거나 당신의 생신일 때에 총생들이 모여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진짜 효도라고 생각하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런 모임을 잘 주선하는 내가 그런 점에서는 효자라고 할 수 있겠지. 흐흐.
아무튼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어제 저녁식사 후 ‘가족 노래자랑’은 두고두고 추억이 될만하네. 요즘 트롯 열풍이 온나라를 휩쓸고 있다는 것을 어제처럼 실감한 때가 없었네. 아버지의 흥겨운 노래가락에 이어, 언제나처럼 음치이자 박자치인 내가 자청하고 나섰지. 최근 유행한 나훈아의 <테스형>과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을 열창한 후, 동생과 매제들의 노래를 듣기 원했는데, 놀라운 풍경이 벌어졌지 뭔가. 휴대폰으로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를 틀어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족들이 조용히 감상을 하는 것 말일세. 큰동생은 김호중의 팬클럽 회원이고, 막내동생은 임영웅의 팬클럽 회원이라고 했지.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는 것으로 노래자랑을 대신하는 것 말일세. 김호중의 <울 할무니>와 <고맙소>를, 임영웅의 <늙은 부부 이야기>와 <보랏빛 엽서>를 가만히 앉아서 감상할 수 밖에 없는, 희한한 가족 노래자랑. ‘아, 이런 방식도 있을 수 있구나’싶었네. 자기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장점만 황홀한 듯이 연신 늘어놓더군. 환갑도 지낸 동생과 환갑을 2년 앞둔 막내동생의 그런 모습조차 참 보기 좋았다네.
자네 역시 나와 같이 음치이자 박자치이지만, 트롯 평가 하나는 심사위원들 못지 않게 정확하고 점수조차 거의 일치하다고 했지. 그것도 희한한 일이지 뭔가. 2시간여 동안 6명이 노래 감상과 끝없는 수다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일까. 글과 말로 여러 번 얘기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라네. 형제자매끼리 시간만 되면 함께 모여 정다운 얘기꽃을 피우는 것만큼 즐겁고 기쁜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함께 부모님에 대한 추억과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 등을 나누며, 서로 살아가는 얘기와 자식들에 대한 얘기를 털어놓는 소중한 시간 말일세. 대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집에서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런 시간’인데, 어제가 바로 그랬네. 말하지 않아도 속깊은 자네는 잘 알 걸세. 그래서 나의 카톡 요청에 대번에 달려오지 않았는가.
3남2녀의 장남으로서 자네의 일거수일투족을 안다면 아는 나로선, 자네가 때로는 경이롭고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네. 부부교사로 바쁜 나날임에도 인근 10여리에 사는 고향집의 부모님께 거의 날마다 출퇴근 인사를 하다시피 하며 농사일을 돕는, 아니 실제 농부에 버금가는 자네의 일상에 늘 감동했었지. ‘효자 장남’이라니, 금상첨화가 아니고 무엇일 것인가. 농사일, 요리 등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자네는 친가든 처가든 ‘보배 그 자체’이지 않은가. 중학교 교장인 신분도 눈곱만큼 개의치 않고 근면 성실함의 본보기가 바로 자네 아닌가. 하여 내가 지은 자네 별명은 ‘농부 교장선생님’이네. 흐흐. 조금 살았지만, 나는 살면서 그러한 실례를 거의 보지 못했다네. 1인 몇 역을 어쩌면 그렇게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막내가 욕심이 없고 마음이 착하니까 자네같은 짝궁을 만난 것이겠지 하면서도, 어쩜 자네같은 ‘일등신랑’을, 우리 부모는 어쩜 자네같은 ‘120점짜리 사위’를 봤는지 참 복도 많다고 늘 생각했네.
사연이 많다는, 성악에서 트롯으로 변신해 ‘성공’했다는 가수 김호중의 노래처럼 “고맙소”를 연발해도 부족할 것이네. 처가 가족을 대표하여 고맙다는 말을 전하네. 내일모레면 새해이네. 환갑을 맞았는데도 코로나 때문에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학교도 비대면 온라인수업이네 뭐네 참으로 어수선하고 답답한 일년을 보냈지만, 내년엔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임을 믿고, 우리 또 재밌게 사세나. 참 많이 좋아하네, 사랑하네, 이 말을 하고 싶어 처음으로 자네에게 이 편지를 쓰네. 이제 성년이 된 두 아들의 앞길도 꽃길처럼 환하게 풀리기를 비는 마음도 간절하네. 아울러 사돈어르신들의 만수무강도 함께 기원함세. 이만 줄이네. 동생과 함께 연말연시 연휴 뜻깊게 보내시게.
경자년 세밑에
고향에서 '어리바리 처남'이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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