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산동 산수유
구례의 산동면 지리산온천을 지나며 주위가 온통 샛노랗다. 가로수도 산수유, 논둑이나 냇가에도 산수유, 밭에도 산자락에도 산수유, 돌담 밑에도 산수유나무다. 울안에도 골목에도 산수유나무 노랗게 꽃이 피었다. 여기저기서 이따금 마주치는 생강나무와는 다르다. 생강나무는 나무에서 생강냄새가 난다고 하여 생강나무로 불리며 나무의 표면이 매끄러워 반질거리지만 산수유나무는 표면의 거죽이 부풀어 꺼칠꺼칠하니 지저분하다. 꽃은 이른 봄 같은 시기에 핀다. 산자락을 좋아하는 억새와 물가를 좋아하는 갈대도 그냥 쉽게 억새이고 갈대라 부르듯 산수유나 생강나무는 외관상 비슷한데다가 꽃모습이 엇비슷해 혼동하기 쉽다. 나무도 유사하게 사칭하나 보다.
산수유꽃의 꽃말은 호의에 기대한다는 ‘영원불변의 사랑’이다. 이 세상 그토록 단단한 바위도 씻기고 깎이는데 살아있는 것치고 영원불변이 있을까. 더구나 사람의 마음은 요즘 같으면 얄팍한 영리를 쫓아 수시로 변하지 싶다. 그래도 영원불변을 믿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혹여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 사람은 누구일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함께 하겠다고 결혼식장에서 만인 앞에 다짐한 약속처럼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을 수 있을까. 누구도 꿈이 듬뿍 담긴 출발점에서부터 부정하지는 않는다. 긍정에 또 긍정을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인 것이다. 다만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마음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 안타까운 것이다.
산수유꽃은 미처 겨울을 나기도 전에 눈밭에서도 눈을 비비며 잎보다 꽃이 먼저 봄의 전령으로 샛노랗게 피어난다. 봄이 무르익기 전에 꽃이 지는 잔인함으로 종족보존이란 가장 신선한 진통을 겪으며 하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축복을 받는다. 하기야 그만한 아픔도 없이 어떻게 획기적인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 또한 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며 어떻게 새로움을 얻으랴. 살아있는 생명은 언제든 위축되기도 하고 번성하기도 하면서 본능적으로 순응할 뿐이다. 봄맞이를 기다리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노랗게 물들이지 싶다. 풋풋한 열매는 가을에 새빨갛게 익는다. 가을이면 빨간 열매로 익어가듯 나도 한 해가 마무리될 무렵이면 내놓을 만한 결과를 얻어야지.
그 결과라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아 거저 굴러오길 바랄 수는 없다. 세상엔 그냥 공짜는 없다. 그만한 노력을 하며 치열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꽃이 지는 아픔에서 열매를 맺고 숱한 바람에 태풍까지 견뎌내야 한다. 가뭄에 병충해도 이겨내야 한다. 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적당히 얼버무림이 아니다. 그만한 당위성과 확고한 계획에 추진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좌초될지 모를 어려움을 감내해도 꼭 이루어진다고 확신을 할 수는 없다. 세상사 참으로 야박스러운 일이다. 가시밭길을 건너야 비로소 결실의 목전에 다다른다. 야망이나 꿈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수없는 좌절을 겪으면서 인내로 딛고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산하는 한 해에 몇 번씩 눈길을 끈다. 별 볼 일 없지 싶은 나무도 꽃이 피면 벌 나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어 축제를 벌이기도 하고 열매가 익으면 감동을 주고 거두며 나뭇잎이 곱게 물들면 단풍이라고 감탄을 하면서 몰려든다. 지리산 만복대 서쪽에서 갈라져 견두산~천마산~깃대봉~형제봉~천왕봉~갈미봉을 일으키며 반원을 그리다 섬진강으로 잦아든 산줄기 중 고선터널에서 천왕봉까지 소나무숲길을 다섯 시간 걸으며 쑥 냄새도 맡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산행 중 소나무의 푸른 송진 냄새와 갓 돋아난 새싹의 풋풋한 냄새와 산수유 샛노란 꽃빛깔에 듬뿍 취하였다. 이들의 공통분모로 모아진 것은 상큼한 봄이었다. 그만큼 봄 속에 푹 빠져들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