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스피너
손 원
첫돌, 세 돌박이 손자 둘이 요즘 피젯 스피너에 빠져있다. 스피너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난감은 아니다. 중앙의 베어링을 축으로 하여 이것에 이어진 몇 개의 날개로 구성된 납작한 모양의 장난감으로 재료는 주로 메탈이다. 손자가 어쩌다 스피너를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스피너를 판매하는 문방구나 마트도 흔치 않다. 어쩌다 판매가게를 찾아도 몇 개 정도만 보유하고 있어 손자가 몇 번 사 오면 동이 나고 만다.
거실에 놓인 장간감 상자에 스피너가 가득하다. 둘이 앞다투어 상자를 차지한다. 큰놈이 재빨리 몇 개 집어 들고 달아난다. 작은놈은 큰놈이 가져간 것에 탐을 내며 뒤쫓아가면 싸움이 벌어진다. 할아버지가 남은 것으로 작은놈을 달랜다. 둘은 스피너 놀이를 한다. "할아버지 대결해요"라며 마루에 스피너를 돌린다. "할아버지도"라며 돌려 보라고 한다. 자신의 스피너가 비틀거릴 때쯤, 할아버지 스피너를 넘어뜨린다. "내 거는 돌고 있어, 내가 이겼어."라며 좋아한다. 그러기를 몇 번 되풀이한다. 할 때마다 다른 스피너를 골라잡아 대결한다. 스피너마다 이름을 붙여 두고 있다. 왕자 스피너, 피자 스피너, 스파이더 스피너, 무지개 스피너, 나비스피너...,
세돌박이 손자의 스피너 욕심은 끝이 없는 듯하다. 동네 스피너를 파는 가계가 두 곳 있다. 마트 한 곳과 문방구 한 곳이다. 제 할머니를 따라 마트에 가면 뽑기 기계에 다가가 동전 넣기를 기다린다. 쨍그랑 동전을 투입하고 누름 스위치를 눌러 튀어나온 스피너를 집어 든다. 한 번 더 하려고 앙탈을 부려보지만,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온다. 또 다른 길목에 있는 문방구를 지나칠 때면 필히 들러 한두 개씩 구입하다 보니 스피너 상자에 가득 찼다. 그중 마음에 드는 몇 개는 늘 손에 쥐고 있다. 서울에 사는 제 고모가 올 때마다 스피너를 선물했다. 그래서 고모가 온다면 반색한다. 가끔 영상통화를 하면 스피너를 사 달라고 한다. 갈 때 사 준다고 하면 택배로 보내란다. 웬만한 물건은 택배로 구매가 가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문밖의 택배를 들여올 때면, 고모가 보내온 스피너가 있는지부터 살핀다.
한 번은 대규모 완구 가게에 갔다. 손자 녀석의 관심은 스피너였다. 마음에 드는 스피너 몇 개를 집어 들었다. 간 김에 그럴듯한 걸 사주고 싶었다. 팽이 종류가 눈에 띄었다. 케이스에 들어 있는 '베이블레이드'가 괜찮아 보였다. 사용 연령은 초등학생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도와주면 손자 녀석도 다룰 수 있을 것 같아 구입했다. 사용 설명서를 보고 조립하여 사용해 보니 어른도 쉽지 않았다. 권총 모양의 총에 끼워 발사하면 팽이가 튕겨 나가 늘직한 플라스틱 통에서 힘차게 돌았다. 아이에게 사용 방법을 가르쳐 줬지만, 조작은 무리였다. 아이는 시도를 해 보지만 잘되지 않아 짜증을 내며 울어버린다. 그냥 들고 노는 단순한 장난감일 뿐이었고 한 이틀 지나니 아예 고장 나 버렸다. 나이에 맞지 않은 장난감 구입이어서 낭비한 것도 그렇고 손자를 울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상했다. 며칠 뒤 비슷한 기능을 가진 다루기 쉬운 메탈 블레이드를 사 주었다. 잘 작동되어 아이와 같이 즐길 수 있게 되어 흐뭇했다.
격세지감이다. 내 어릴 때는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들어 주셨다. 뾰족한 부분에는 쇠못을 박고, 윗면에는 크레용으로 무지개를 그려 넣었다. 거친 흙바닥에도 잘 돌아 소중하게 지니고 다녔다. 요즘도 나무 팽이가 판매되고 있긴 하지만, 발사 총을 사용하는 메탈 재질의 팽이가 대세다. 할아버지의 나무 팽이는 돌려놓고 팽이채로 때려 주면 오래도록 돌았다. 팽이 돌리는 기술이 필요했고 팽이를 살리려고 진땀을 뺐다. 어린이들의 심신 단련에도 도움이 되는 지혜로운 놀이기구였다. 하지만 요즘 메탈 팽이는 손가락으로 발사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정도다. 어릴 때 마을 공터, 얼음판 위의 팽이치기와는 너무 다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자신의 스피너를 찾는다. 먼저 일어난 놈이 가지고 있으면 쟁탈전을 벌여 시끄럽다. 찾는 것이 없으면 찾아달라고 하기에 엎드려 화장대, 소파 밑을 살피는 등 야단법석을 떨기도 한다. 한 이틀 만에 선호도 순위는 바뀐다. 새로 산 것이 선호도에 앞선다. 그래서 자꾸 새것을 사려고 한다. 쇼핑하는 재미도 아는 듯하다. "하나만 사줄게"하면 받아들이기도 하고 "아니야, 동생 거까지 두 개 살 거야." 하기에 두 개를 살 수밖에 없다. 집에 넘쳐나는 스피너여서 한 개로 땜빵 하려고 하면 동생을 끌어들여 한 개 더 사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고 집에 와서는 독차지하니 말이다. 아이 꾀에 어른이 넘어가기 일쑤다. 밥 먹기 싫어할 때 먹이려 애쓰면 다른 메뉴를 찾고 그것을 권하면 또 다른 메뉴를 찾고하여 결국 제대로 먹지도 않는다. 잠을 재우려고 하면 물 달라, 배고프다, 쉬 마렵다는 등 지연작전을 편다. 그러면 할머니는 오줌받이통을 들이대고, 물 먹이고, 간식을 주고 하지만 정작 애는 관심 없다. 옆에서 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아이 꾀에 어른이 넘어간다면서 아내에게 핀잔을 준다.
얘가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면 이따 스피너 사 줄게 하면 따른다. 스피너를 다루는 솜씨도 제법이다. 스피너를 돌려 손등은 물론이고 손가락에 올려놓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이마, 가슴 위, 배 위 어디든지 빙빙 도는 스피너를 올려놓는다. 그러다 보니 바구니에 가득 찬 스피너는 거실 곳곳에 나뒹굴어 늘 상자에 주워 담아야 한다. 스피너를 밟기라도 하면 발바닥이 아프고 자칫 넘어질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얘야, 아무려면 어떠냐,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2023. 7. 23.)
첫댓글
팽이의 고급형이네요. ㅎㅎ
팽이가 실외형이라면 스피너는 실내형인 것 같습니다.
손주들의 마음을 끄는 비결 하나를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