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포터
브이 캡슐
[서지 사항]
이재은 장편 소설 / Illustration CEE
초판 발행일 2024년 9월 6일 | 128×188㎜ (무선) | 148쪽 | 값 13,800원
ISBN 978-89-6319-600-8 03810
[분류]
국내도서 > 한국 소설 > 장르 소설 > SF소설
국내도서 > 한국 문학 > 한국 소설 > 영어덜트 소설
[주제어]
#SF소설 #미래소설 #SF #외모지상주의 #루키즘 #계급갈등 #아바타 #텔레포터 #북멘토
책 소개
《브이 캡슐》은 SF, 판타지, 추리, 공포 등 여러 장르를 포괄하는 문학 시리즈 ‘텔레포터’의 세 번째 책이다. 최첨단 비주얼 기술이 적용된 미래 도시, 비주얼 시티. 그곳에선 누구나 원하는 외모를 구매하여 착용한다.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고, 옷이며 신발, 머리카락, 눈동자 색까지 살 수 없는 것은 없다. 고교생인 차도은은 이런 비주얼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인플루언서다. 도은의 엄마가 바로 이 비주얼템을 개발한 회사 ‘이너피스’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길을 걷던 도은은 비주얼템 착용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맞닥뜨리게 되고, 시위대 중 한 명이 비주얼템의 효과를 잠시 무력하게 만드는 ‘브이 캡슐’을 꺼내든다. 브이 캡슐을 본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 시작하는데……. 과연 도은의 운명은?
출판사 서평
참신한 상상력의 신예 작가
이재은 작가의 첫 장편 SF 소설
《브이 캡슐》
그곳에선 누구나
우월한 외모를 돈으로 살 수 있다
《브이 캡슐》은 어린이 책 작가에서 영어덜트 독자를 위한 SF 문학에 도전한 이재은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다. 가상의 미래 도시 비주얼 시티에서는 홀로그램 기술을 구현하기 위한 레이저 광선이 늘 도시 전체에 뿌려진다. 이 레이저 광선에 의해 사람들은 얼굴 모습은 물론이고, 체형 및 신장, 의류와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외모와 관련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우월한 외모를 가지기 위해서는 비주얼템이 필요하고, 비주얼템을 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할 뿐이다.
고교생 차도은은 이런 비주얼 시티에서 가장 유명한 인플루언서다. 그녀의 엄마가 비주얼템을 최초로 개발한 회사인 ‘이너피스’의 대표이기 때문에 차도은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는 삶을 살았다. 늘 곁에는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가 넘쳐났고, 기분에 따라 얼굴 모양을 바꾸고, 눈동자와 머리 색을 정했다. 비주얼템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심지어 비주얼템을 착용한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누군가에게 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끔찍하게 두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비주얼 시티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비주얼 시티에서는 테러 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비주얼 기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도시 곳곳에 출몰해 시위를 벌이고, 브이 캡슐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브이 캡슐은 일정 시간 동안 비주얼템 효과를 차단해 본 모습이 드러나게 하는 장치로, 비주얼 시티에 사는 사람들에겐 무한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도은은 바로 눈앞에서 시위대를 맞닥뜨린다. 브이 캡슐이 바로 눈앞에서 터지고 때마침 도은은 브이 캡슐의 피해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피해자는 도은에게 절박한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대로 피해자를 돕는다면 도은마저 본 모습을 들켜 버릴지도 모른다. 과연 도은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또, 이렇게 브이 캡슐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에 휘말려든 도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참신한 상상력으로
현대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도발적으로 그린 소설
《브이 캡슐》은 최첨단 기술을 통해 누구나 원하는 외모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매우 흥미로운 SF 소설이다. 이 작품은 성형 수술과 온갖 명품으로 외모를 치장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진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잔뜩 가공된 사진으로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감춘 채 ‘이것이 진짜 나’라고 홍보하는 것이 일상이 된 우리의 세태를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둘 중 어느 쪽이든 작가는 기술의 발전이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점점 잃어버리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여 한 편의 흥미진진한 SF 소설로 멋지게 풀어낸다.
주인공 차도은은 이 작품 속에서 누구보다 외모에 대한 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으나 첫사랑인 송모현과 만나면서 변화를 겪는다. 비주얼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내추럴 시티 출신의 송모현에게서 진실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꺼이 사랑에 자신을 내던지는 주인공 차도은의 모습은 결코 의존적이지 않고 주체적이며 강인하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랑의 과정은 매우 발랄하고 로맨틱해서 여러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빈부격차에 의해 외모가 등급화, 서열화되는 현실이 녹아 있는데 여기서 드러나는 계급 간의 갈등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존재하지 않는, 배신과 신뢰가 공존하는 세상. 그것이 비주얼 시티와 내추럴 시티 사이의 관계이며,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세상의 진실이다. ‘진실한 사랑이란 대체 뭘까? 눈앞에 보이는 것이 과연 언제나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들이 독자의 예상을 철저하게 깨부수는 마지막 대반전의 결말을 통해 극대화된다.
가짜의 삶을 진짜의 삶처럼 사는 요즘 시대에 지친 젊은이들이라면, 《브이 캡슐》을 통해 잠시 멈춰서 자신의 본모습을 점검하고, 비록 가짜로 살 수밖에 없더라도 더 나은 삶은 없을까 고민해 보는, 값진 경험을 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차례
가짜와 진짜
런웨이
냄새와 향기
너 같은 애
솔직한 공원
추억의 맛
찬성과 반대
사각지대
연결
피해
중독자들
다시 연결
해제
작가의 말
저자 소개
글 이재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씁니다. 확신의 T인간이지만 눈물이 많고, 분명 파워 P인데 쓸모없는 계획을 잘 세우고 잊어버립니다. 얼렁뚱땅 굴러가는 인생이지만 그 와중에도 늘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브이 캡슐》은 세상에 내놓는 첫 장편 소설입니다.
책 속으로
비주얼 시티는 도시 전체에 햅틱 기술과 홀로그램을 결합한 비주얼 시스템을 적용한 공간이다. 비주얼 시티 곳곳에 자리 잡은 비주얼 시스템 타워를 통해 대기 중에 홀로그램 구현을 위한 레이저 광선이 뿌려진다. 도시에 촘촘히 깔린 광선과 내가 가진 비주얼템이 만나면 다양한 홀로그램이 만들어져 인체의 겉모습에 덧씌워진다. 보이는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손대는 순간 진동을 일으켜 보이는 것 그대로 촉감을 느끼게 하는 정교한 햅틱 기술까지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외모에 맞는 목소리까지 구현해 감쪽같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머리칼의 길이며 색깔, 얼굴형, 눈동자의 색이나 눈썹 모양은 물론이고, 몸의 굴곡이나 가슴의 모양, 발의 크기와 손가락의 길이까지 고를 수 있다.
본문 8페이지
브이 캡슐은 기껏해야 5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한 길쭉한 캡슐 모양의 상품이다. 캡슐의 위아래를 잡고 돌려 열면 그 안에 있던 광선 방해 물질이 순식간에 안개처럼 뿜어져 나온다. 안개 속엔 비주얼 시스템 체계를 방해하는 미세한 분말이 촘촘하게 들어 있다. 브이 캡슐에서 나온 안개의 사정거리는 딱 사람 한 명이 뒤집어쓸 정도다. 그래서 브이 캡슐을 적용할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되도록 대상자의 머리 위에서 뚜껑을 여는 것이 좋다.
일단 브이 캡슐 안의 물질을 뒤집어쓴다면, 그 사람이 입고 있던 비주얼템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진짜 모습이 무방비로 드러난다. 이런 정보는 나도 뉴스를 통해서만 접했을 뿐이다. 최근 들어 번화가에서 브이 캡슐을 든 무리들이 시위를 벌인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코앞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본문 11페이지
자기 전, 혼자만의 시간에 어울리는 화장기 없는 피부와 귀여운 파자마를 골랐다. 어쩐지 심심해 보여 동그란 눈도 추가했다. 파리한 입술에 생기를 주고 나니 그제야 만족감이 들었다.
학교 과제도 있고, 소셜 미디어에 새로운 사진도 올려야 하는데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온몸의 기운이 다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거울 속의 내 모습만큼은 쌩쌩했다.
내 진짜 기분이 어떻든 간에 상관없다. 내 안에 감추어 둔 본 모습은 나에게조차 숨기고 싶었다. 아니, 이제 무엇이 진짜인지도 헷갈린다. 나에겐 비주얼템은 꾸밈 아이템이 아니라, 자아 그 자체니까……. 비주얼템이 허용되는 나이인 여덟 살엔 엄마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고, 이제는 내가 스스로 그렇게 선택한 채 10년을 살아왔다.
본문 22페이지
내내 말없이 걷던 송모현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애인이라면 브이 캡슐로부터 지켜 줘야 하는 거 아냐?”
나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송모현은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그냥 꾸미지 않은 진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거 아닐까?”
대답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말을 찾지 못해 대화를 이어 나가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짜 모습을 보여 줘야 할까? 그래서 아빠가 내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는 걸까? 진짜 모습을 보여 준다고 뭐가 달라질까? 어차피 애인에게는 예쁜 모습을 보여 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외모가 어떻게 달라지든 진짜 마음만 있다면 되는 거 아닌가.
본문 53페이지
사실 송모현은 뛰어난 미남은 아니다. 비주얼 시티 애들은 다들 제 개성대로 얼굴을 조합해 만들기 때문에 취향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다들 잘생겼고 예뻤다. 그러니까 비주얼 시티에선 평범한 얼굴이 잘생긴 얼굴인 셈이다. 그에 반해 송모현은 뭐랄까 다른 의미로 평범하고 자연스러웠다. 어쩌다 내추럴 시티에 갔을 때 보았던 얼굴이나, 어제 그 공원에서 간간이 보이던 비주얼템을 벗은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아직 비주얼템을 착용하지 않는 어린아이의 얼굴처럼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끌리는 이유는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송모현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길을 의식한 건지 그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황급히 시선을 거뒀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땐 어떤 순간에도 변함없는 피부 비주얼템을 착용한 게 정말 다행이다.
본문 7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