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기체가 다수 등장한 당시에도 B-58 허슬러 정도로 시각적인 면에서 눈에 띄는 기체는 없었다. 델타 주익과 거대한 엔진 그리고 놀라운 성능에 의해 항공기는 신화의 경지에 도달하고 조종사는 한계를 넘는 속도로 말 그대로 그 날개를 찢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지만 B-58은 조종이 어려운 기체였다. 놀라운 기술을 가지면서 허슬러의 사고율은 무섭게 높고 유지 보수 비용도 마찬가지고 미션 성능은 곧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불과 수십년 밖에 취역하지 않고 전략 폭격기 개발의 궁지를 상징하는 항공기가 되었다.
허슬러는 B-47 스트라토 제트의 직계 후계기가 된 중형 폭격기이다. 중형 폭격기의 임무는 해외 기지를 발진하고 소련을 공격하는 것이었지만 허슬러가 취역까지 중형 및 대형 폭격기의 차이가 좁혀지고 있었다. 공중 급유기가 등장하고 전선 항공 기지의 안전성에 미 공군이 우려를 품고 또한 동맹 국가가 전략 핵무기의 자국내 배치에 우려함으로써 B-58은 미국 내에서 운용할수 밖에 없게 되었다. 콘베어사는 B-36 피스 메이커 폭격기 사업에 진출했다. 거대하고 느린 B-36은 1950년대의 장거리 전략 폭격기로 수소 폭탄을 탑재하고 미국핵 억제력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MiG-15를 비롯한 소련에서 요격 전투기의 출현으로 단번에 무용지물이 되는 과제가 신형 제트 폭격기 역할인 B-47와 B-52에도 남았다.
허슬러는 피스 메이커와 유사성이 전혀 없다. 대형 엔진 4개를 델타익에 장착한 B-58은 마하 2로 비행하며 핵무기와 연료 탱크를 동체 아래에 실었다. 미국내 기지에서 이륙한 KC-135 급유기의 지원을 받아 소련 영공에 고속 및 고고도로 침투하는 동시에 소련 요격기를 따돌리고 핵무기를 투하하는 작전 구상 이었다. 첫 비행은 1956년으로 작전 운용 개시는 1960년 이었다. 총 116대가 조달되었지만 항공기 단가는 B-52 스트라토 포트리스와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 초기엔 델타익기로서 허슬러도 비행 괴물이었다. 이 착륙시 추락 경향이 있고 스핀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파일럿은 제어 방법을 필사적으로 체득했다. 허슬러의 비행 특성에는 독특한 특징이 조종사의 경험 능력과의 조화가 부족했다. 유지 관리에는 전용 공구가 필요하고 매우 비싼 작업이 되었다.
이 때문에 사고율은 놀라울 정도로 높아 116대 중 26대가 사고로 상실되고 10년간 26%를 상실했다. 초창기의 제트기 사고율은 대체로 높았지만 허슬러의 사고율은 두드러졌고 항공기 단가가 높은 것이 아팠다. 만약 B-58의 퇴역을 단행하지 않으면 온전한 건 몇년 동안 소모하였을 것라고 전문가들도 했을 정도다. B-36와 B-47뿐만 아니라 B-58도 실전에 한발도 폭탄 투하를 하지 않았다. 허슬러는 베트남 전에 투입되지 않고 핵 임무에 전념했지만 B-52는 북베트남을 폭격했다. B-58도 이론상으로는 보통 폭탄을 운용 할 수 있었지만 빠르고 저공에서 항공기 제어가 어려워 정확한 폭탄 투하는 어려웠던 것이다.
미 공군은 고성능의 침공 폭격기가 필요로 하는 동안 B-58에 높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B-58의 단점을 열거함으로써 B-70 발키리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그러나 B-52의 후계기를 노린 B-70와 B-58은 같은 운명을 걸었다. 당시 국방 장관은 고고도 SAM 미사일 탑재 요격기의 출현으로 폭격기는 무용지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로버트 맥나마라 장관은 1965년 B-58의 전기 퇴역 명령을 발출하고 퇴역을 완료한 것은 1970 년 이었다. 공용 기간은 10년도 안되었다. B-58을 민간 제트기로 전용하는 방안도 있었지만 예상대로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임무는 B-52가 대체하고 저공 침투는 허슬러보다 효과적으로 했다. 중형 폭격기에 의한 통상 폭탄 투하 임무는 전투 폭격기가 계승해 FB-111 아드바크(이 기체도 긴 투쟁의 역사 있음)에서 다목적 전투기 F-15, F-16 으로 또한 장래는 F-35가 인수한다. 정밀 유도 무기의 출현으로 폭탄 탑재량이 폭격기의 성능을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다.
B-58의 존재는 오히려 인기 문화의 세계에서 선명하다. 미래적인 형태와 위험한 인상이 예술가와 영화 제작자를 자극해 왔다. 특히 B-58 편대가 모스크바 폭격에 투입되는 1964년 영화 Load Fail-Safe (미지의 비행)이 가장 유명하다. 모스크바 공격을 실수로 명령을 받은 편대는 소련 영공에 침입하여 모스크바를 핵 공격한다. 미국 대통령은 뉴욕 공격을 명령한다. B-58은 2차 대전 이후의 전략 폭격 수단으로 공군이 구축한 실적의 일부이다. 대전에서는 B-17, B-24, B-29가 큰 공격 수단이 되었다. 이 경험에서 공군 상층부는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략 폭격을 장기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낸다. SAM이 출현하고 베트남 사태가 겹치면서 또한 당시의 지도층이 은퇴함 으로써 B-58 같은 폭격기에 대한 지지에 금이 갔다.
하지만 ICBM 이라면 폭격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고도를 비상하여 소련 방공망은 무효가 된다. 또한 잠수함 발사 방식의 탄도 미사일은 핵 억지력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약체 폭격기를 연속 순찰 비행시킬 필요가 없다. 이에 대해 각종 미션을 유연하게 해내면서 잔존 가능성이 있는 항공기는 B-52 정도 밖에 없다.